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 (창39:1-6)
본문
요셉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가문의 축복을 집성(集成)한 사람입니다. 보통 우리가 아브라함을 말할 때 ‘믿음’을, 이삭을 말할 때 ‘사랑’을, 야곱을 ‘소망’의 사람으로 말합니다. 요셉은 그 조상들의 특징들인 믿음, 소망, 사랑을 모두 집성한 축복의 사람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 형들의 미움을 사서, 형들의 간계의 결과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사람들에 팔려서 멀고 먼 애굽땅까지, 가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 애굽 땅 바로왕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잘 집에 노예로 또 팔리게 되었습니다(창37:25, 28, 36, 39:1). 요셉의 나이 17세였습니다(창37:2). 지금 우리는 놀라운 성경의 한 기록을 만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39장 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더 놀라운 기록을 또 봅니다. 39장 5절에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고 한 말씀입니다.
I. 이것은 이방인의 집에 내린 여호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집이란 애굽 바로앙의 시위대장 보대발의 집을 가리킵니다(39:5). 언제부터였던가 그 장관(시위대장)이 요셉에게 가정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할 때부터였다고 하였습니다(39:4-5). 그 때부터 하나님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게까지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그 집에 와서 가정 총무를 맡게된 그 날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기록입니다. 이 말은 그 가정에 요셉이 가정 총무를 맡기 전과 후의 차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말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성경과 역사 중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남방 그달에 우거할 때,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빼앗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 날반에 하나님이 진노하사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게 하였습니다(창20:18). 하나님은 그날 밤에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사, 그 사람 아브라함의 아내를 되돌려 보내라. 그 사람은 큰 선지자이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 것이고, 만약 되돌려 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 집에 속한자가 다 정녕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창20:1-7). 결국 아브라함은 사라를 다시 되찾게 되고, 아비멜렉 왕 앞에 나타나서 그와 그 아내와 여종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시 저들의 태가 열리고, 그와 그들의 가정과 땅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렀던 20년동안에 그 집이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된 사실을 창세기 31장 22절로 42절 중에서 보게 됩니다. 그 하나님은 요셉이 가정 총무로 머물렀던 그 애굽 사람, 보디발 장관 집에 복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나중에 요셉이 총리로 중임을 맡게 된 때부터 전 애굽 천지를 축복으로 덮어 놓고 말았습니다. 요셉이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을 때 7년 풍년의 축복을 받아 전 애굽의 각 성에 밭의 곡식들을 저축하고 저정했는데 그 곡식이 바다 모래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41:47-49). 참으로 그 애굽 사람의 집(나라)이 받은 하나님의 복이었습니다.
Ⅱ. 이것은 요셉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적 축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39장 5절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 잡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고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밝히고 있는 중심은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 요셉을 형통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39장 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그 주인 보디발 장관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3절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요셉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같혔을 때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신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였다(창19:2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23절이 또 말하기를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했다는 말뒤에는 반드시 ‘형통’이라고 하는 말이 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 ‘형통’이란 돌진, 번성, 승리를 뜻합니다. 중대하고 중대한 진리는 하나님이 요셉의 형통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위대한 진리 기록의 확실한 계획과 목적과 의미를 나중에 요셉 자신이 형님들을 만난 자리에거 확실하게 토로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고 있습니다. 요셉이 두번째 곡물 사러 왔던 형들 앞에서 방성대곡하면서, 자기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나는 요셉입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애굽에 팔어버린 당신들의 아우 요셉입니다라고 자기를 알렸습니다. 이 엄청난 요셉의 자기 폭로, 요셉의 자기 공개 앞에 어쩔 줄 모르고 떨고 있는 형들 앞에서 자신이 보디발 장관집에 가정 총무가 되고 이제 애굽에 총리가 된 결정적인 의미를 이렇게 공개하였습니다. 이 일은
1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의 생명을 위한 하나님 자신의 결정적인 섭리였습니다.
3 그는 이것을 큰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형들 앞에서 자신이 형들에게 팔림을 받아 애굽으로 온 것이니 보디발 장관 집에 총무로 종살이 한 것이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 생활을 한 것이나,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하므로 애굽의 총리가 된 이 모든 자신의 걸음이,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선민 구원을 진행시키는 구원사적 섭리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형들 앞에서 하나님이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재하신 주권적 계획, 하나님의 목적적 계획,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를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내린 하나님의 축복은 바로 요셉 곧 선민구원을위한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섭리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Ⅲ.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은 역사상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은 영적으로 말할 때 애굽이요, 소돔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입니다(계11:8). 이 소돔과 애굽을 가리켜, 콘 성, 큰 바벨론이라고도 이름 부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 애굽 사람의 집들입니다. 그럼에도 그 애굽 사람의 집들이 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개인의 가정잉 복을 받을 때가 있고, 그 애굽 사람이 살고 있는 국가(나라)라고 하는 집에 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축복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애굽의 바로가 다스리는 나라(집)에 그 수를 셀수 없는 복을 주었습니다. 세계라고 하는 열강들 중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집에 복을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오늘 선진국이라고 하는 모든 나라들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난 5월 6일 주간에 일본에 가서 설교하던 중, 선진국을 이렇게 정의한 바 있습니다.
첫째로 정신문화가 선진,둘째 인권 존중의 선진,셋째, 기술과 경제 문화의 선진,넷째, 받아 가진 것을 선용하는 선진, 곧 세계화에로의 선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나라들은 예외가 없이 기독교적 정신에 뿌리를 박고 있었습니다. 미국, 카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델란드, 이태리, 덴마크, 스위스, 호주 등 등.이 그러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은 선진국이라고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선진국가들은 본래부터 그러햇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저들 나라들도 전 애굽 사람의 집들이었습니다. 저들 백성 가운데 예수의 복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수효가 많아지기 시작 할 때부터 축복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 애굽사람들의 집(나라)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기도와 감사와 찬송과 전도와 구제가 있기 시작 할 때부터 그 나라(집)들이 복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성경관, 신관, 인생관, 그리스도관, 구원관, 교회관, 종말관 곧 기독교 진리의 정립이 있기 시작 할 때부터였습니다. 뿐 아니라 성경의 빛 앞에서 찾은 바른 국가관, 민족관, 교육관, 사회관, 문화관, 역사관, 세계관을 가질 때부터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형통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들(나라)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볼 때 존재하는 오늘 지구촌의 집들은(나라)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볼 때 존재하는 오늘 지구촌의 집들은(나라), 그리고 저들의 역사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의 무대입니다. 복음선교의 무대입니다. 비록 이 세상이 ‘그 애굽 사람의 집(나라)’일지라도 이 애굽 사람의 집들 가운데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 오늘의 삭개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애굽 사람의 집에(나라), 오늘의 요셉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애굽 사람의 집은 복을 받아야 됩니다. 바로 이것이 ‘의인 열사람’의 힘이요, 존재 가치입니다. 애굽 사람의 집에(나라) 의인 열사람 때문에 저들도 함께 일반 은총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 ‘한국’이라고 하는 집(나라)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조국 한국도 ‘그 애굽 사람의 집’(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애굽 사람의 집 안에 오늘의 요셉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요셉들 때문에 우리의 조국, 한국은 복을 받고 있습니다. 31년간의 일제 박해 아래서 우리는 살아 남았습니다. 그것은 일제신사참배에 항거한 수많은 순교자들과, 투옥당하여 고난받던 우리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6. 25 사변으로, 전 남한이 공산주의자들이 침략에 짓밟혔으나 우리는 다시 잃어버린뻔 했던 남한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이북에서 피난 온 기독교인들과 전 남한에서 부르짖던 기독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민군들의 죽창에 죽임을 당한 순교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당의 독재, 민주당의 무능, 그리고 반세기에 가까운 군사혁명 정부의 공포정치, 휴전선 북방의 위협 중에도,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교육적으로, 경제적으로, 점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000만이 넘은 기독 신자들의 회개와 기도와, 전도와 나라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 나라 성장 과정에는 각계 각층에 요셉같은 정치가, 교육가, 사업가, 기술자, 농민, 어민, 공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위하여 ‘저 애굽 사람의 집’인 한국에 복을 주신것 입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는 더 잘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성숙되고 교육이 더 잘되고, 경제가 더 잘되고 이 백성들의 삶의 질이 더 나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와 국민의 명예가 더 높아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쭐을 믿습니다. 나아가 통일 한국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땅에 ‘오늘의 요셉’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를 책임졌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창고를 열고 세계를 먹여 살렸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이 일 때문에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주신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한국 교회가 받은 세계선교를 위하여, 이 땅에 사람의 집(나라)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I. 이것은 이방인의 집에 내린 여호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집이란 애굽 바로앙의 시위대장 보대발의 집을 가리킵니다(39:5). 언제부터였던가 그 장관(시위대장)이 요셉에게 가정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할 때부터였다고 하였습니다(39:4-5). 그 때부터 하나님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게까지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그 집에 와서 가정 총무를 맡게된 그 날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기록입니다. 이 말은 그 가정에 요셉이 가정 총무를 맡기 전과 후의 차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말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성경과 역사 중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남방 그달에 우거할 때,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빼앗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 날반에 하나님이 진노하사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게 하였습니다(창20:18). 하나님은 그날 밤에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사, 그 사람 아브라함의 아내를 되돌려 보내라. 그 사람은 큰 선지자이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 것이고, 만약 되돌려 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 집에 속한자가 다 정녕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창20:1-7). 결국 아브라함은 사라를 다시 되찾게 되고, 아비멜렉 왕 앞에 나타나서 그와 그 아내와 여종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시 저들의 태가 열리고, 그와 그들의 가정과 땅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렀던 20년동안에 그 집이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된 사실을 창세기 31장 22절로 42절 중에서 보게 됩니다. 그 하나님은 요셉이 가정 총무로 머물렀던 그 애굽 사람, 보디발 장관 집에 복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나중에 요셉이 총리로 중임을 맡게 된 때부터 전 애굽 천지를 축복으로 덮어 놓고 말았습니다. 요셉이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을 때 7년 풍년의 축복을 받아 전 애굽의 각 성에 밭의 곡식들을 저축하고 저정했는데 그 곡식이 바다 모래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41:47-49). 참으로 그 애굽 사람의 집(나라)이 받은 하나님의 복이었습니다.
Ⅱ. 이것은 요셉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적 축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39장 5절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 잡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고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밝히고 있는 중심은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 요셉을 형통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39장 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그 주인 보디발 장관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3절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요셉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같혔을 때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신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였다(창19:2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23절이 또 말하기를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했다는 말뒤에는 반드시 ‘형통’이라고 하는 말이 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 ‘형통’이란 돌진, 번성, 승리를 뜻합니다. 중대하고 중대한 진리는 하나님이 요셉의 형통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위대한 진리 기록의 확실한 계획과 목적과 의미를 나중에 요셉 자신이 형님들을 만난 자리에거 확실하게 토로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고 있습니다. 요셉이 두번째 곡물 사러 왔던 형들 앞에서 방성대곡하면서, 자기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나는 요셉입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애굽에 팔어버린 당신들의 아우 요셉입니다라고 자기를 알렸습니다. 이 엄청난 요셉의 자기 폭로, 요셉의 자기 공개 앞에 어쩔 줄 모르고 떨고 있는 형들 앞에서 자신이 보디발 장관집에 가정 총무가 되고 이제 애굽에 총리가 된 결정적인 의미를 이렇게 공개하였습니다. 이 일은
1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의 생명을 위한 하나님 자신의 결정적인 섭리였습니다.
3 그는 이것을 큰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형들 앞에서 자신이 형들에게 팔림을 받아 애굽으로 온 것이니 보디발 장관 집에 총무로 종살이 한 것이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 생활을 한 것이나,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하므로 애굽의 총리가 된 이 모든 자신의 걸음이,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선민 구원을 진행시키는 구원사적 섭리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형들 앞에서 하나님이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재하신 주권적 계획, 하나님의 목적적 계획,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를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내린 하나님의 축복은 바로 요셉 곧 선민구원을위한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섭리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Ⅲ.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은 역사상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은 영적으로 말할 때 애굽이요, 소돔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입니다(계11:8). 이 소돔과 애굽을 가리켜, 콘 성, 큰 바벨론이라고도 이름 부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 애굽 사람의 집들입니다. 그럼에도 그 애굽 사람의 집들이 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개인의 가정잉 복을 받을 때가 있고, 그 애굽 사람이 살고 있는 국가(나라)라고 하는 집에 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축복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애굽의 바로가 다스리는 나라(집)에 그 수를 셀수 없는 복을 주었습니다. 세계라고 하는 열강들 중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집에 복을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오늘 선진국이라고 하는 모든 나라들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난 5월 6일 주간에 일본에 가서 설교하던 중, 선진국을 이렇게 정의한 바 있습니다.
첫째로 정신문화가 선진,둘째 인권 존중의 선진,셋째, 기술과 경제 문화의 선진,넷째, 받아 가진 것을 선용하는 선진, 곧 세계화에로의 선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나라들은 예외가 없이 기독교적 정신에 뿌리를 박고 있었습니다. 미국, 카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델란드, 이태리, 덴마크, 스위스, 호주 등 등.이 그러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은 선진국이라고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선진국가들은 본래부터 그러햇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저들 나라들도 전 애굽 사람의 집들이었습니다. 저들 백성 가운데 예수의 복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수효가 많아지기 시작 할 때부터 축복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 애굽사람들의 집(나라)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기도와 감사와 찬송과 전도와 구제가 있기 시작 할 때부터 그 나라(집)들이 복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성경관, 신관, 인생관, 그리스도관, 구원관, 교회관, 종말관 곧 기독교 진리의 정립이 있기 시작 할 때부터였습니다. 뿐 아니라 성경의 빛 앞에서 찾은 바른 국가관, 민족관, 교육관, 사회관, 문화관, 역사관, 세계관을 가질 때부터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형통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들(나라)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볼 때 존재하는 오늘 지구촌의 집들은(나라)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볼 때 존재하는 오늘 지구촌의 집들은(나라), 그리고 저들의 역사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의 무대입니다. 복음선교의 무대입니다. 비록 이 세상이 ‘그 애굽 사람의 집(나라)’일지라도 이 애굽 사람의 집들 가운데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 오늘의 삭개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애굽 사람의 집에(나라), 오늘의 요셉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애굽 사람의 집은 복을 받아야 됩니다. 바로 이것이 ‘의인 열사람’의 힘이요, 존재 가치입니다. 애굽 사람의 집에(나라) 의인 열사람 때문에 저들도 함께 일반 은총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 ‘한국’이라고 하는 집(나라)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조국 한국도 ‘그 애굽 사람의 집’(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애굽 사람의 집 안에 오늘의 요셉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요셉들 때문에 우리의 조국, 한국은 복을 받고 있습니다. 31년간의 일제 박해 아래서 우리는 살아 남았습니다. 그것은 일제신사참배에 항거한 수많은 순교자들과, 투옥당하여 고난받던 우리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6. 25 사변으로, 전 남한이 공산주의자들이 침략에 짓밟혔으나 우리는 다시 잃어버린뻔 했던 남한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이북에서 피난 온 기독교인들과 전 남한에서 부르짖던 기독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민군들의 죽창에 죽임을 당한 순교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당의 독재, 민주당의 무능, 그리고 반세기에 가까운 군사혁명 정부의 공포정치, 휴전선 북방의 위협 중에도,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교육적으로, 경제적으로, 점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000만이 넘은 기독 신자들의 회개와 기도와, 전도와 나라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 나라 성장 과정에는 각계 각층에 요셉같은 정치가, 교육가, 사업가, 기술자, 농민, 어민, 공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위하여 ‘저 애굽 사람의 집’인 한국에 복을 주신것 입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는 더 잘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성숙되고 교육이 더 잘되고, 경제가 더 잘되고 이 백성들의 삶의 질이 더 나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와 국민의 명예가 더 높아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쭐을 믿습니다. 나아가 통일 한국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땅에 ‘오늘의 요셉’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를 책임졌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창고를 열고 세계를 먹여 살렸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이 일 때문에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주신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한국 교회가 받은 세계선교를 위하여, 이 땅에 사람의 집(나라)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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