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3:1-5)
본문
오늘 본문 5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하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을 제목으로 정하고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오늘날은 정보화 시대가 되어 가면서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피곤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어느 조사 기관이 미국의 아버지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는데,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을 조사 해 보았더니 “피곤하다”, “돈이 없다”, “조용히 해라” 이런 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은 “공부나 해라!” 하는 말이 오늘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랍니다. 왜 현대인들이 이렇게 피곤합니까 인생의 실존문제 때문에 피곤한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속 썪고 이렇게 아니꼬운 소리를 들으면서 직장을 다녀야 하는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가.” 하면서 탄식하는 것은 실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고통 때문에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사회는 사회문제로, 가정은 자녀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 노후의 문제 등으로 삶의 여러가지 고통스러운 일이 많기 때문에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향상과 성장을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까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물쭈물하게 되면 컴맹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그 자리를 내 놓아야 하는 형편이 되고, 외국어 하나쯤은 해야 되기 때문에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일어 학원이나 영어 학원에 가기 때문에 아주 피곤한 것입니다. 자기 성장을 하지 않으면 길이 없으니 삶이 피곤한 것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기업이 더 발전 해야 되겠기에 사업의 문제로 바쁘고 피곤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양심과 싸우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안면을 뒤로 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형편에서.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양심적인가 도덕적인가”를 고심하다보니 사람들에게 지치고 삶에 피곤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는데, 노아 한 사람만이 좁은 길로 가는 외로움과 고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면 월급 봉투가 얇은 사람들은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한잔해야 모든 것을 다 잊어 버려지고. 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요정에 가서 여자를 앉히고 먹고 마시면서 잊어 버릴려고 합니다. 그 다음의 단계는 마약 단계요, 도박의 단계로 들어 갑니다. 그래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되고 결국은 파탄이 나고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어찌하든지 현실을 도피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너무 삶이 피곤하고 힘들고. 그래서 끝내는 좌절하고, 본연의 위치를 잃어 버려가는 모습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람은 손 하나가 말라져서 못쓰게 생겼습니다. 이 사람은 열심히 살려고 돌을 깨뜨려 생계를 유지하던 석공인데, 그만 손 하나가 말라서 삶이 피곤하고 지친 것입니다. 손이 말라 오그라 들었으니 이제는 쓸모 없는 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기적이 일어 났는데, 삶에 살 맛이 나고 신바람이 나는 기적의 문이 열려진 것입니다. 오늘 주의 성전에 나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발걸음이 복되어. 삶에 지치고 피곤한 인생에 살맛이 나고, 신바람이 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 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마른 손이 회복되고 삶에 신바람이 나는 복된 길이 열려 지겠습니까
첫째는, 예배를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본문 막3:1절 말씀에 “거기 있는지라.” 하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예배드리는 날, 예배를 드리는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사람은 예배드리는 날을 귀히 여긴 것입니다. 사실 손마른 이 사람은 삶이 부자유합니다. 장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배드리는 날을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곳은 여호와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사정을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사정을 들어 주시는 기회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에 나온 것은 주님이 지명하여 불러 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믿든지 못 믿든지 우리 하나님이 불러 내신것입니다. 개별 초청입니다.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나의 모든 생애를 아시는 하나님,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셔서 불러 내신것입니다(사43:1,3,4) 한 나라의 대통령의 초청장 하나만 받아도 어깨가 으쓱해 지는데, 하물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되신 우리 하나님의 초청장을 받은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멀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를 막아 버리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해 가지고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다니다가 수확의 열매를 못 맺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어려움이 자꾸만 생긴다면 “하나님을 멀리 하지 않았는가” 하고 뒤돌아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왕정시대 사울과, 다윗, 솔로몬의 시대까지는 그래도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먹고 살만하니까 하나님이 제일 미워 하시는 일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 하시는 일은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이는 불순종보다 더 못된 악행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고 참으시고 오래참으시다가 마침내 고개를 돌리시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고개를 돌리시면, 이른비와 늦은비가 내리지 아니하니 농사가 안되었습니다. 유목민 사회에서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절망입니다. 그래서 기근이 와서 죽겠다고 모두들 아우성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멀리하면 되는일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수고의 열매를 흩으시고, 찢으시고, 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스바냐 3장에 보니까, 앞으로 22년 후에 있을 이스라엘 민족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이제라도 돌아오지 아니하면 흩어버린다, 진멸한다, 찢어 버린다. 하나님이 버리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꺠닫고 돌아오면 껴안아 주고, 싸매어 주고, 흩어졌던 것 모아 주시고, 칭찬과 명성을 주고, 존귀하게 하고, 높여 주리라고 했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은 우리 하나님이 품어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안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많은 자녀들 중에서도 부모에게 가깝게 하는 자식에게 더 정이 가는 법입니다. 정을 나눌려고 하는 자식에게 부모의 마음이 더 많이 갑니다. 이와같이 우리 하나님도 예배드리는 것을 귀중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축복해 주십니다. 사도행전 8장에보면, 에디오피아의 재무장관이 예루살렘에 볼일을 보러 왔다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귀중히 여긴 것입니다. 그랬더니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있어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통하여 성경의 말씀을 깨닫고 세례까지 받게 되엇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에디오피아가 복음을 받아 들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그 나라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니 점점 못살게 되고 살기 힘든 나라가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멀리하다 보니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요4:23). 1950년대 미국이라는 나라는 청교도의 신앙을 이어 받아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본주의 신앙으로 살아왔습니다. 주일이 되면 상가의 문을 닫고, 온 가족이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 입고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의 미국사회는 경제적으로도 세계적이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세계 제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에 접어 들어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 “성경을 학교에서 읽지 마라! 공공단체에서 기도하지 말라”고 공포한 이후부터는 경제적으로 점점 내려가고, 온갖 범죄와 문제들이 만연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 할렘가를 가보면 그 화려하던 옛날 도시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마약이나 성도덕이 극에 달하고, 범죄의 온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도 해결할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위에서 내려주시는 신령한 은혜가 임했는데,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예배 드리는 날,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 앞에 회복의 길만 바라 본 것입니다. 바로 그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문제들이 있습니까 “왜 이렇게 말라만 가고, 오그라 들고 있습니까” 하고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능력의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잘 드리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마른 것을 회복시켜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로, 예배 중에 주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막3:3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 아무나 못 들어 갔습니다. 몸이 부정한 사람들이 못들어 가고, 몸에 심한 병이 있거나 불구자도 못들어 가고, 이방인도 못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이후부터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되 말씀을 만나야 됩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요1:1). 오늘날 고민이 많아 밤잠을 못자는 사람들, 꿈이 부푼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 모두가 다 누구든지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을 만나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 됩니다. 손마른 사람이 교회에 나가니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여러가지 징조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꿈으로 보여 주시고, 또 어떤 경우는 마음에 깨달음이 오고, 어떤 경우는 말씀을 듣다가 힘이 생기고 담대함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이 웬지 모르게 눈물이 줄줄 나오게 됩니다. 시골 교회에서 횟수로 10년을 목회하는 동안에 말로는 “예배당에 나가야지요, 나가야지요!” 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자칭 미인이고, 자칭 지성인이고, 아주 예의가 바른 사람인데. 교회만 안 나오는 것입니다. 나를 만나면 “목사님!” 하고 부르면서 아주 깍듯이 인사도 하는 사람인데, 교회만 안나오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목회를 하던중에 그 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부흥회를 인도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교회는 나오지 않지만 예의가 바른 사람이라서 인사차 집회에 참석하게 된 것입니다. 집회 중 어느 시간에 모두다 기도를 하면서 뜨겁게 성령님이 임하셨는데, 안수를 하기 위해서 한바퀴를 돌고 다시 앞자리로 가는데. 아, 이 사람이 손을 치켜 들고 흔드는 것입니다. 앉으리고 하니까 이번에는 엄지 손가락을 폈다 오무렸다, 폈다 오무렸다 하면서 코밑에 들이 밀고는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미쳤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염려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까 옛날에 물레질을 하다가 눌려서 그만 엄지 손가락을 못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집회를 하면서 소원이 있으면 기도하라고 해서 기도를 하면서 안수 기도를 받는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손가락이 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신바람이 나서 손을 흔들며 보라고 한 것입니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니, 온 교회가 더욱 은혜를 사모하고 성령님이 충만히 임하게 되었습니다. 예배중에 주님의 말씀을 받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셋째로, 주님이 말씀하실 때 얼른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막3:5절 말씀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희망이 없고, 절망적이고, 오라져서 펼 힘이 없고, 살 맛이 없고, 소망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권고하실 때, 그저 아멘으로 순종하고 실천에 옮기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 영적으로 균형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신령한 영의 지체가 말라 들어가고 오그라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석은 잘 하는데 봉사를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데 기도를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낮예배는 참석하는에 오후예배는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는데 감사헌금은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노는 일은 잘 하는데, 하나님의 교회에 일하는 것은 외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는 잘하는데 전도는 안하는 사람이있습니다. 영적으로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잘 하는데 기분이 나쁘면 팽게치고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모두는 영적인 불구자의 모습입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된다고 했습니다(요삼1:2). 그래서 말씀을 믿고 좌우로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장부답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서슴치 말고 “아멘!”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 깨닫게 해 주시고, 성경 말씀을 읽다가 듣다가 깨닫게 해 주시고, 길을 걷다가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즉시 실천에 옮기라는 것입니다. 빨리 순종하면 순종하는 것 만큼 빨리 회복시켜 주십니다. 메말라 가던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오그라 들던 것을 펴게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하고 바라는 모든 일들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들, 귀히 여기는 일들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더욱 새롭게 하시고, 오그라 진 것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주시고, 살맛나고, 힘이 생기고,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강건하고,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 성광의 권속들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기업이 더 발전 해야 되겠기에 사업의 문제로 바쁘고 피곤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양심과 싸우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안면을 뒤로 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형편에서.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양심적인가 도덕적인가”를 고심하다보니 사람들에게 지치고 삶에 피곤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는데, 노아 한 사람만이 좁은 길로 가는 외로움과 고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면 월급 봉투가 얇은 사람들은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한잔해야 모든 것을 다 잊어 버려지고. 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요정에 가서 여자를 앉히고 먹고 마시면서 잊어 버릴려고 합니다. 그 다음의 단계는 마약 단계요, 도박의 단계로 들어 갑니다. 그래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되고 결국은 파탄이 나고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어찌하든지 현실을 도피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너무 삶이 피곤하고 힘들고. 그래서 끝내는 좌절하고, 본연의 위치를 잃어 버려가는 모습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람은 손 하나가 말라져서 못쓰게 생겼습니다. 이 사람은 열심히 살려고 돌을 깨뜨려 생계를 유지하던 석공인데, 그만 손 하나가 말라서 삶이 피곤하고 지친 것입니다. 손이 말라 오그라 들었으니 이제는 쓸모 없는 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기적이 일어 났는데, 삶에 살 맛이 나고 신바람이 나는 기적의 문이 열려진 것입니다. 오늘 주의 성전에 나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발걸음이 복되어. 삶에 지치고 피곤한 인생에 살맛이 나고, 신바람이 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 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마른 손이 회복되고 삶에 신바람이 나는 복된 길이 열려 지겠습니까
첫째는, 예배를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본문 막3:1절 말씀에 “거기 있는지라.” 하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예배드리는 날, 예배를 드리는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사람은 예배드리는 날을 귀히 여긴 것입니다. 사실 손마른 이 사람은 삶이 부자유합니다. 장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배드리는 날을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곳은 여호와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사정을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사정을 들어 주시는 기회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에 나온 것은 주님이 지명하여 불러 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믿든지 못 믿든지 우리 하나님이 불러 내신것입니다. 개별 초청입니다.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나의 모든 생애를 아시는 하나님,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셔서 불러 내신것입니다(사43:1,3,4) 한 나라의 대통령의 초청장 하나만 받아도 어깨가 으쓱해 지는데, 하물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되신 우리 하나님의 초청장을 받은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멀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를 막아 버리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해 가지고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다니다가 수확의 열매를 못 맺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어려움이 자꾸만 생긴다면 “하나님을 멀리 하지 않았는가” 하고 뒤돌아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왕정시대 사울과, 다윗, 솔로몬의 시대까지는 그래도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먹고 살만하니까 하나님이 제일 미워 하시는 일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 하시는 일은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이는 불순종보다 더 못된 악행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고 참으시고 오래참으시다가 마침내 고개를 돌리시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고개를 돌리시면, 이른비와 늦은비가 내리지 아니하니 농사가 안되었습니다. 유목민 사회에서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절망입니다. 그래서 기근이 와서 죽겠다고 모두들 아우성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멀리하면 되는일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수고의 열매를 흩으시고, 찢으시고, 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스바냐 3장에 보니까, 앞으로 22년 후에 있을 이스라엘 민족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이제라도 돌아오지 아니하면 흩어버린다, 진멸한다, 찢어 버린다. 하나님이 버리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꺠닫고 돌아오면 껴안아 주고, 싸매어 주고, 흩어졌던 것 모아 주시고, 칭찬과 명성을 주고, 존귀하게 하고, 높여 주리라고 했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은 우리 하나님이 품어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안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많은 자녀들 중에서도 부모에게 가깝게 하는 자식에게 더 정이 가는 법입니다. 정을 나눌려고 하는 자식에게 부모의 마음이 더 많이 갑니다. 이와같이 우리 하나님도 예배드리는 것을 귀중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축복해 주십니다. 사도행전 8장에보면, 에디오피아의 재무장관이 예루살렘에 볼일을 보러 왔다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귀중히 여긴 것입니다. 그랬더니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있어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통하여 성경의 말씀을 깨닫고 세례까지 받게 되엇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에디오피아가 복음을 받아 들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그 나라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니 점점 못살게 되고 살기 힘든 나라가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멀리하다 보니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요4:23). 1950년대 미국이라는 나라는 청교도의 신앙을 이어 받아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본주의 신앙으로 살아왔습니다. 주일이 되면 상가의 문을 닫고, 온 가족이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 입고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의 미국사회는 경제적으로도 세계적이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세계 제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에 접어 들어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 “성경을 학교에서 읽지 마라! 공공단체에서 기도하지 말라”고 공포한 이후부터는 경제적으로 점점 내려가고, 온갖 범죄와 문제들이 만연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 할렘가를 가보면 그 화려하던 옛날 도시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마약이나 성도덕이 극에 달하고, 범죄의 온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도 해결할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위에서 내려주시는 신령한 은혜가 임했는데,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예배 드리는 날,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 앞에 회복의 길만 바라 본 것입니다. 바로 그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문제들이 있습니까 “왜 이렇게 말라만 가고, 오그라 들고 있습니까” 하고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능력의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잘 드리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마른 것을 회복시켜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로, 예배 중에 주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막3:3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 아무나 못 들어 갔습니다. 몸이 부정한 사람들이 못들어 가고, 몸에 심한 병이 있거나 불구자도 못들어 가고, 이방인도 못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이후부터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되 말씀을 만나야 됩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요1:1). 오늘날 고민이 많아 밤잠을 못자는 사람들, 꿈이 부푼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 모두가 다 누구든지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을 만나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 됩니다. 손마른 사람이 교회에 나가니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여러가지 징조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꿈으로 보여 주시고, 또 어떤 경우는 마음에 깨달음이 오고, 어떤 경우는 말씀을 듣다가 힘이 생기고 담대함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이 웬지 모르게 눈물이 줄줄 나오게 됩니다. 시골 교회에서 횟수로 10년을 목회하는 동안에 말로는 “예배당에 나가야지요, 나가야지요!” 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자칭 미인이고, 자칭 지성인이고, 아주 예의가 바른 사람인데. 교회만 안 나오는 것입니다. 나를 만나면 “목사님!” 하고 부르면서 아주 깍듯이 인사도 하는 사람인데, 교회만 안나오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목회를 하던중에 그 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부흥회를 인도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교회는 나오지 않지만 예의가 바른 사람이라서 인사차 집회에 참석하게 된 것입니다. 집회 중 어느 시간에 모두다 기도를 하면서 뜨겁게 성령님이 임하셨는데, 안수를 하기 위해서 한바퀴를 돌고 다시 앞자리로 가는데. 아, 이 사람이 손을 치켜 들고 흔드는 것입니다. 앉으리고 하니까 이번에는 엄지 손가락을 폈다 오무렸다, 폈다 오무렸다 하면서 코밑에 들이 밀고는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미쳤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염려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까 옛날에 물레질을 하다가 눌려서 그만 엄지 손가락을 못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집회를 하면서 소원이 있으면 기도하라고 해서 기도를 하면서 안수 기도를 받는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손가락이 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신바람이 나서 손을 흔들며 보라고 한 것입니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니, 온 교회가 더욱 은혜를 사모하고 성령님이 충만히 임하게 되었습니다. 예배중에 주님의 말씀을 받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셋째로, 주님이 말씀하실 때 얼른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막3:5절 말씀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희망이 없고, 절망적이고, 오라져서 펼 힘이 없고, 살 맛이 없고, 소망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권고하실 때, 그저 아멘으로 순종하고 실천에 옮기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 영적으로 균형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신령한 영의 지체가 말라 들어가고 오그라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석은 잘 하는데 봉사를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데 기도를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낮예배는 참석하는에 오후예배는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는데 감사헌금은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노는 일은 잘 하는데, 하나님의 교회에 일하는 것은 외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는 잘하는데 전도는 안하는 사람이있습니다. 영적으로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잘 하는데 기분이 나쁘면 팽게치고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모두는 영적인 불구자의 모습입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된다고 했습니다(요삼1:2). 그래서 말씀을 믿고 좌우로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장부답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서슴치 말고 “아멘!”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 깨닫게 해 주시고, 성경 말씀을 읽다가 듣다가 깨닫게 해 주시고, 길을 걷다가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즉시 실천에 옮기라는 것입니다. 빨리 순종하면 순종하는 것 만큼 빨리 회복시켜 주십니다. 메말라 가던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오그라 들던 것을 펴게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하고 바라는 모든 일들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들, 귀히 여기는 일들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더욱 새롭게 하시고, 오그라 진 것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주시고, 살맛나고, 힘이 생기고,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강건하고,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 성광의 권속들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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