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1-19)

본문

오늘 본문은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병고침을 받게 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의학의 발달로 문둥병도 치료가 가능하게 되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문둥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이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둥병은 전염이 잘 되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지니라.”(레 13:46)고 했습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문둥병에 걸리게 되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병에 걸리면 아픔을 모르기 때문에 다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모르고 나중에 살이 다 썩게 되어 코가 떨어지고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 결국에는 균이 온몸에 퍼져서 죽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가시다가 한 촌에 이르러 열 명의 문둥병자를 만나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고쳐주었더니 이방인인 한 사람만 와서 감사하고 아홉명은 감사도 없이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방인 외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은혜를 잊어버린데 대해 탄식하신 말씀입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고통을 받았고, 함께 울었고, 함께 한숨 쉬고, 절망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순종했더니 병이 나았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가서 그들의 몸이 깨끗이 나은 것을 보이고 다 나았다는 증명서를 받고 일반 사회 사람들과 자유로이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뻐 뛰며 세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열 사람 모두에게 골고루 똑같이 임했습니다. 열 사람이 다 축복받았고, 은혜를 받았고, 사랑을 힘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여기 고침받고 감사치 아니한 아홉명은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를 잊어버린 인간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 1:2-3)라고 했습니다. 아홉 사람은 왜 주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했을까요 우리는 왜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까 이것이 우리 보통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열 사람 가운데 아홉 사람이 은혜를 잊어버렸는데 이상스럽게도 전부가 유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유대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을 비교해 보면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유대 사람이요, 또 은혜를 깨달아 알만한 사람이 어떤 면으로 보든지 유대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유대 사람 아홉은 전부가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고서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았는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말고 감사합시다.
2. 은혜를 보답하는데 대해 칭찬하신 말씀입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라고 했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왔는지 성경에 기록이 없어 소상히는 모르겠으나 아마 자기들의 병을 고쳐 주기만 하면 자기의 모든 재산을 바치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또 일생 주님의 뒤를 따르며 헌신하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외에는 모두 다 무서운 문둥병을 고침 받고서도 돌아와 고맙다고 말 한 마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는 한 사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이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한 사람의 믿음만 칭찬받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칭찬받는 믿음은 그의 구원과 관계된 것이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사례했다는 것은 물질을 드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둥병자인 그에게는 돈은 없었습니다. 그는 진실로 감사했고 눈물과 마음을 바쳐 감사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사례를 그토록 기뻐하셨습니다.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가겠다는 생각은 환자로서 응당 가질 수 있는 마음일 것이나 ‘감사하기 위해서’ 찾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사람에게는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믿음의 증거요 열매입니다.
3. 은혜를 감사하는데 대해 축복하신 말씀입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축복의 선언입니다. 사마리아인으로서는 생각 밖의 놀라운 축복의 소득입니다. 사례할 줄 모르고 돌아가버린 아홉 사람은 문둥병만 고치고 돌아간 사람들입니다. 즉 병 한가지만 고침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믿음으로 육신의 병 뿐만 아니라 영혼의 병도 고침받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육체의 병은 고쳤지만 영혼은 그대로 병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체는 건강하지만 영혼은 병들어 시들고 메마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육신은 쇠약하지만 그 영혼은 구원받아 강건하고 새 힘이 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후자가 훨씬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인은 두 가지 병을 다 고쳤습니다. 육신도 고쳤고 영혼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 116:12-14)라고 했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시간에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큰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아! 너희들은 어디 있느냐 주님의 음성은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입니다. 여러분은 이 아홉 명 중에 속한 사람은 아닙니까 아니면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사례했던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입니까 다음 주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감사절로 지킵니다. 힘과 정성을 다해 물질을 드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35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