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이 계신다 (요6:1-15)
본문
제 혀가 제 머리의 명령을 잘못 수행해서 발음이 잘못나오는 것을 저 스스로 좀 압니다. 그래서 이런 노쇠현상을 보면서 은퇴를 잘 해야겠는데 하는 생각을 요즘 갖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머리가 잘 못 기억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교정 할 능력이 없습니다. 지난 주 설교 하고 나서 한 분이 제게 찾아와 이 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이번에 태국도 갔다오셨습니까?'
무슨 소리 냐고 되물으니, 설교 중에 계속 태 국, 태국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태국 이 아니라 터키입니다. T자로 시작 된다는 것 외에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또 오늘 1부 예배에서는 물고 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마리로 먹였다고 그랬다나요? 이처럼 노쇠, 기억력 기능 저하 등 부품고장을 더 러 일으킵니다. 어떤 때는 젊고 건 강한 사람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너무 긴장하면 실수를 합니다. 어떤 분이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에 처음 으로 부임해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교 원고를 들고 가서 열심 히 설교했는데, 오병이어 사건을 이 야기하면서 계속 물고기 2000마리와 보리 떡 5000개로 다섯 명 먹였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말씀한 겁니다. 설교가 끝나고 가만히 있었으 면 좋겠는데 앞에 계신 장로님이
'나도 그 정도는 한다'고 그랬습니다. 이 분이 너무 무안해서 설교를 다시 하기로 작정하고 그 다음 주에 지난 주보다 더 열심히 설교 준비를 한 다음, 이제는 바로 물고기 두 마 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였다고 했습니다. 설교를 잘 끝내 고 그냥 내려갔으면 되는데 지난주 에 말씀하신 장로님에게
'장로님, 이래도 하시겠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장로님 하시는 말씀이
'지금도 할 수 있다'
'어떻게 하시겠습 니까?'그러니까
'지난 주 먹고 남은 것 주면 된다'고 하더래요. 지난 주 에는 5명분 밖에 먹은 것이 없으니까요.
우리가 이렇게 유쾌하게 웃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금씩 관점이 다 릅니다. 마태와 마가는 세례 요한의 순교 직후에 이 일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은 그 때를 유월절 가까운 때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배를 타고 호수를 지나가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적한 곳에 쉬시는 예수님을 좇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누가는 벳새다 고을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 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나온 병자들을 친히 고쳐주셨 습니다. 날이 저물어갑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에 보면 12사도가 예수님께 나아와 말합니다.
'무리를 보 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 며 먹을 것을 먹게 해주십시다. 여 기에는 빈들이고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빌립 에게 묻습니다.
'이 사람들로 먹을 것을 어떻게 줄 수 있겠느냐?'
그 때 빌립이 말합니다.
'각 사람에게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데나리온 의 떡이 부족합니다.'
이 말씀을 종 합해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앞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을 보 시고 좀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 려오는데, 이 사람들 먹을 것을 우리가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는가?'
그랬더니 빌립이
'이 사람들이 조금 씩 간단하게 요기만 해도 200 데나 리온이 필요합니다.'
200 데나리온 은 한 사람의 품삯 200일 분입니다. 하루 일하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제자들을 가르 치시고 해가 지자 제자들이 빌립과 예수님의 대화를 아시고 먼저 말했 습니다.
'주님, 우리가 거한 이 빈들 은 마실 물이나 먹을 양식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이 사람들 을 흩으십시다. 그래서 마을에 가서 저들이 음식을 나눠먹게 하고 그리고 저녁에 잠도 자야될 것이 아닙니 까?'
보내자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합니다.
'너희에 게 있는 것 없느냐?'는 질문 앞에 안드레가 어린 소년 하나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 소년이 가진 도시락 입니다.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 적 은 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유익이 되겠습니까?'하고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을 앉히라고 말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잔디밭에 앉히기 시작했습니다.
남을 도울 때 참 지혜롭게 도와야 됩니다. 잘못 도우면 도운 것이 원망이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터키 방문시에 디하르바크라는 터키의 동부지방에 갔습니다. 이곳 은 쿠르드 족의 옛수도로 지금도 터 키 행정력이 잘 미치지 않는 도시입니다. 헷 족속들의 유물들이 많다고 해서 박물관을 찾아갔습니다. 박물 관 관광을 하고 나오는데 구걸하는 아이 세 명이 껌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심코 적은 돈을 주고 껌을 한 개 샀더니 조금 있으니까 스무 명, 서른 명이 한꺼번에 달려 들어요. 그리고는 껌을 내놓으면서 손을 잡기도 하고 호주머니에 손이 들어가기도 하고 야단이예요. 그래서 얼른 간신히 차를 탔는데, 차타 고 나오면서 보니까 자기의 껌을 안 사줬다고 껌 못판 아이가 돌맹이를 던지더라구요. 잘못 도와주려고 드 면 오히려 낭패를 봅니다. 하란에도 갔습니다. 하란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갈대 아 우르를 떠나 도착했던 첫 정착지 입니다. 거기서 다시 가나안으로 내 려왔습니다. 야곱의 우물이 있다, 아 브라함의 우물이 있다고 해서 돌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좇 아다니는 아이들이 10명, 20명 자꾸 불어납니다. 같이 동행했던 분이 하 도 아이들이 뭘 달라고 하니까 거기 서 산 건포도 한 봉지를 나누어주었 습니다. 그랬더니 어디서 숨어있던 아이들까지 모두 덤벼들어서 30여 명이 떼거리로 가져가는데, 나중에는 자기들끼리 싸웁니다. 도와주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1980년도에 남서울교회에 서 처음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보 트 피플(Boat People)을 돕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UN난민기구에서 연락이 오기를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보트를 타고 목숨을 걸 고 온 사람들 5만 명이 필리핀의 팔 라완 섬에 살고 있는데, 음식은 UN 식량기구에서 나누어주지만 옷이 없 어서 사람들이 추워합니다.'
적도 가까운데 뭐가 그렇게 춥냐고 했더 니, 항상 40도 내외에서 살던 사람 이 20도 이하로 내려가면 추워서 못 견딘답니다. 특별히 영양이 나쁜 사람은 동사(凍死)하는 경우가 있답니다. 저는 동사는 영하권으로 내려가 야 동사하는 줄 알았는데 사람 몸 체온 26도 이하로 내려가면 동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항력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 죽는 사람 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 들이 이불을 덮고 자는 습관이 안되 었기 때문에 옷을 보내달라고 한 것 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옷을 모아 몇 컨테이너를 보내었습니다. 그 옷 을 보내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았는데 대한민국에는 구호물자를 받는 법은 있어도 구호물자를 내보 내는 법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에 저희가 대통령령으로 한번 한 것 이 관례가 되어서 관행으로 주지, 관련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야 만적인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제 가 국회의원들에게 몇 번이나 이것 을 건의했는데도 '우리 나라도 도울 사람이 많은데, 외국 준다면 한 번 에 안됩니다.'는 것입니다. 야만 국 가나 하는 짓입니다. 정말 적십자사 로, 보사부로, 외무부로 이 사안이 축구 볼 돌리듯이 왔다갔다 몇 차례 하다가, 결국 당시 국부위원장이었던 전두환씨에게 편지를 써 직소를 해서 통과가 되어 처음으로 한국의 민간단체 의류품이 나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다시 UN난민기 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마닐라에 서 당신들이 보내준 컨테이너는 잘 받았는데, 이것을 팔라완 섬까지 가는 운송비는 누가 냅니까?' 하며 운송비까지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외국에 나가기 위해서도 $300, $500 밖에 환전을 안 해주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8,000을 내 라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필 리핀 대사에게 직접 전화를 해 이쪽 외무부로 입금시키면 그 쪽 대사관 에서 $8000을 찾아달라고 해서, 그 렇게 팔라완 섬까지 물건이 잘 도착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국에서 옷을 나눠주기로 했 다고 하니까 그 섬 안에 있는 난민 5만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창구 가 터져 버렸습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체면도 없습니다. 백화점에서 세일한다고 개장시간 맞춰 기다리는 귀부인들 모습 보세요. 그것 보다 더 절실한 난민들, 생사가 달린 문제니까 그렇 게 안 달려들었겠습니까? 도와주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간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힘센 사람이 먼저 와서 음식을 못 채가도록 줄을 세워 앉혔습니다. 그리고 그 떡을 붙잡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그 떡을 나누어주었고 제자들은 그 나눠진 떡을 사람들에 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에게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떡이 나 갔는지 저는 모릅니다. 또 제자들에 게서 떡이 어떻게 변화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졌는지 모릅니다. 많은 설명은 있는데, 그 모든 설명 은 하나마나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이 기적을 우리 앞에 보여주 신 것은 우리가 산수문제 풀 듯이 잘풀어서 증명하라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내가 믿는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신앙고백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시면 물위로 걷는 것이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그 분이 전능하신 창조주시면 죽은 나사로를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오 너라'고 불러내시는 것이 너무 당연 하지 않습니까? 창조주 하나님, 그 분을 내가 참으로 구세주와 주님으 로 믿느냐고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내 인생 속에 그 분이 함께 계신 것을 믿느 냐고 묻습니다.
여기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빌립입니다. 이 사람들 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니까 정확 하게 계산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 이 조금씩 요기만 해도 200 데나리 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돈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정확하게 이야 기했습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입니다. 저녁에 해가 뉘엇뉘엇 지니까
'주님,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모두 흩어서 각 성 과 각 촌에 나가 스스로 식사를 해 결하도록 하십시다.'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입니다.
'주님, 여기 한 아이가 보리 떡 다 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많은 사람에게는 아무 소 용이 없지 않겠습니까? 너무 적지 않습니까?'하고 가능성을 가지고 나 갔습니다. 네 번째 사람입니다. 어린 소년입니다. 그 소년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선생님이 음식이 필요하 다니까 자기 것 내놓았습니다.
제가 이번 터키에서 마을 입주식하면서 행사 중에, 한 마디 하라고 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지은 이 100채의 집, 너무 초라해서 죄송합니다. 집집 마다 들어가니까 이 적은 집 지어준 것을 눈물 흘리며 감사했는데, 이것 이 그렇게 감사로 표현될 것은 아니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서 지어준 이 집이 그냥 간단한 간이주택이라면 당신들은 50년 전에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목숨을 버려주 었습니다. 그런고로 감사한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습니다. 다만 우리들 은 은혜를 기억한다는 의미로 이 건 물 100채를 지어드립니다. 사실 건 물 수십 만 채가 무너진 터키의 참 상 앞에 너무 부족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속에 한 아름 다운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자 기 마을의 빈들에 위대한 선생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보겠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도시락을 싸주었 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서 병든 자들을 치료해주시며 말씀하시는 그 위대한 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는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하 지만 눈물 흘리며 듣는 어른들의 모 습을 보면서 선생님이 소중한 말씀 하시는구나 하고 간접적인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사시간이 되 어 그 선생님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 을 주라고 하시며
'너희에게 가진 것 없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때, 이 소년은 누추한 것이지만 자기도 시락을 선생님께 드렸습니다. 그랬 더니 그 분이 그것으로 나누셔서 거기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을 다 먹였습니다.
저는 이 100채의 집이 그 소년의 손에 쥐어 주었던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 같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지만 위대한 그 분에게 붙잡혀서 이 땅의 무너진 마을이 5 년 후, 10년 후에 다시 멋지게 지어 지는 영광의 비젼을 바라봅니다. 이 번의 이 참사는 큰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비극을 비극으로 그냥 맞이 하고 끝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비극을 주춧돌로 해서 더 멋진 영광스러움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있 었습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시카고에 엄청난 화재가 났습니다. 그 다음, 시카고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한 도시를 다시 건설해냈습니다. 여러분처럼 똑같이 샌프란시스코는 60년 전에 큰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들은 얼마 있다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라는 샌프란시스코를 다시 건설했습니다. 이 100채의 적은 건물이 그 분의 손 에 드려져서 50년 후, 100년 후에 얄로바시가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 운 항구로 거듭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랬더니 그것이 성경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환호하며 박수 를 치더라구요. 아마 모슬렘이 예수님 이야기 듣고 박수친 예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집뿐만 아 니라 그들 마음속에 심어주신 복음 의 씨앗들을 50년 후에 30배, 60배, 100배로 자라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 소년은 자기 것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나도 그까짓 것 드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우리 어렸을 때 가난 한 시절, 15명, 20명되는 식구가 저 녁 때 고구마 삶은 광주리가 들어오 면 형제이고 자매이고 상관없이 큰 것 붙잡으려고 얼마나 아웅다웅 했 어요. 이것이 우리들 아닙니까? 그 리고 남에게 큰 것이 가면 얼마나 밉든지 말이지요? 이것이 우리의 모 습입니다. 이 소년은 최소한 하루 동안 굶을 것을 작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필요하다니까 내어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적은 것에, 내 적은 능력에, 내 적은 소유에 내 적은 재능에 좌절하 지 마십시오. 우리 곁에는 그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의 손에 붙잡히면 그 분이 하십니다. 놀라운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어떤 때는 이 렇게 절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 혼자만 정직하게 해봤자, 사회의 거 대한 구조적 악 속에서 내 정직만 훼손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절망합니다. 아닙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 정직은 주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나 같은 것은 능력도 없는데, 이 적 은 능력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물러서지 마십시오. 주님께 맡기십 시오. 내 주변의 환경보다 내 가능 성 보다 더 크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왜 나의 적음만 한합 니까? 주님 앞에 손을 펴 내놓지 않 습니까? 이런 사람들 있습니다.
'내 가 지금은 너무 적어서 내놓을 수가 없구요. 이것 잘 키워서 내놓겠습니다.'
그러면 십중팔구 주님의 송아 지가 됩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어떤 분이 송아지 두 마리를 사왔습니다. 얼룩 송아지와 황소 송아지를. 그리고 와서는 자기 아내에게 말하 기를
'여보, 이 소 잘 키웁시다. 그래서 그 중의 한 마리는 우리 주님 께 드립시다.'
약속을 했습니다. 그 러니까 부인이 하는 말이
'어떤 송 아지를 주님께 드릴 것입니까?'
'아 니, 잘 키워서 그 중의 한 마리를 드린다.'고 그냥 그렇게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홍수가 났습니다. 사온 송아지 중 한 마리가 떠내려갔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이 말하기를
'주 님의 송아지 떠내려갔다.'
여러분, 주께서 지금 여러분의 것을 원하십니다. 미루시지 마십시오. 내놓으십 시오. 제가 보니까 먼저 내놓은 사람일수록 보상이 큽니다. 주님의 손 에 내어놓으십시오. 그 다음 일은 우리 주께서 행하십니다. 주님이 계 십니다. 저는 그 주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오늘도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이 귀한 축복이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 풍성해서 오병이어 의 기적이 풍성히 넘쳐 내 이웃들에 게까지 크게 축복해주는 축복의 원 천으로서의 삶을 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머리가 잘 못 기억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교정 할 능력이 없습니다. 지난 주 설교 하고 나서 한 분이 제게 찾아와 이 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이번에 태국도 갔다오셨습니까?'
무슨 소리 냐고 되물으니, 설교 중에 계속 태 국, 태국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태국 이 아니라 터키입니다. T자로 시작 된다는 것 외에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또 오늘 1부 예배에서는 물고 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마리로 먹였다고 그랬다나요? 이처럼 노쇠, 기억력 기능 저하 등 부품고장을 더 러 일으킵니다. 어떤 때는 젊고 건 강한 사람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너무 긴장하면 실수를 합니다. 어떤 분이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에 처음 으로 부임해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교 원고를 들고 가서 열심 히 설교했는데, 오병이어 사건을 이 야기하면서 계속 물고기 2000마리와 보리 떡 5000개로 다섯 명 먹였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말씀한 겁니다. 설교가 끝나고 가만히 있었으 면 좋겠는데 앞에 계신 장로님이
'나도 그 정도는 한다'고 그랬습니다. 이 분이 너무 무안해서 설교를 다시 하기로 작정하고 그 다음 주에 지난 주보다 더 열심히 설교 준비를 한 다음, 이제는 바로 물고기 두 마 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였다고 했습니다. 설교를 잘 끝내 고 그냥 내려갔으면 되는데 지난주 에 말씀하신 장로님에게
'장로님, 이래도 하시겠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장로님 하시는 말씀이
'지금도 할 수 있다'
'어떻게 하시겠습 니까?'그러니까
'지난 주 먹고 남은 것 주면 된다'고 하더래요. 지난 주 에는 5명분 밖에 먹은 것이 없으니까요.
우리가 이렇게 유쾌하게 웃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금씩 관점이 다 릅니다. 마태와 마가는 세례 요한의 순교 직후에 이 일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은 그 때를 유월절 가까운 때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배를 타고 호수를 지나가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적한 곳에 쉬시는 예수님을 좇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누가는 벳새다 고을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 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나온 병자들을 친히 고쳐주셨 습니다. 날이 저물어갑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에 보면 12사도가 예수님께 나아와 말합니다.
'무리를 보 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 며 먹을 것을 먹게 해주십시다. 여 기에는 빈들이고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빌립 에게 묻습니다.
'이 사람들로 먹을 것을 어떻게 줄 수 있겠느냐?'
그 때 빌립이 말합니다.
'각 사람에게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데나리온 의 떡이 부족합니다.'
이 말씀을 종 합해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앞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을 보 시고 좀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 려오는데, 이 사람들 먹을 것을 우리가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는가?'
그랬더니 빌립이
'이 사람들이 조금 씩 간단하게 요기만 해도 200 데나 리온이 필요합니다.'
200 데나리온 은 한 사람의 품삯 200일 분입니다. 하루 일하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제자들을 가르 치시고 해가 지자 제자들이 빌립과 예수님의 대화를 아시고 먼저 말했 습니다.
'주님, 우리가 거한 이 빈들 은 마실 물이나 먹을 양식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이 사람들 을 흩으십시다. 그래서 마을에 가서 저들이 음식을 나눠먹게 하고 그리고 저녁에 잠도 자야될 것이 아닙니 까?'
보내자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합니다.
'너희에 게 있는 것 없느냐?'는 질문 앞에 안드레가 어린 소년 하나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 소년이 가진 도시락 입니다.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 적 은 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유익이 되겠습니까?'하고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을 앉히라고 말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잔디밭에 앉히기 시작했습니다.
남을 도울 때 참 지혜롭게 도와야 됩니다. 잘못 도우면 도운 것이 원망이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터키 방문시에 디하르바크라는 터키의 동부지방에 갔습니다. 이곳 은 쿠르드 족의 옛수도로 지금도 터 키 행정력이 잘 미치지 않는 도시입니다. 헷 족속들의 유물들이 많다고 해서 박물관을 찾아갔습니다. 박물 관 관광을 하고 나오는데 구걸하는 아이 세 명이 껌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심코 적은 돈을 주고 껌을 한 개 샀더니 조금 있으니까 스무 명, 서른 명이 한꺼번에 달려 들어요. 그리고는 껌을 내놓으면서 손을 잡기도 하고 호주머니에 손이 들어가기도 하고 야단이예요. 그래서 얼른 간신히 차를 탔는데, 차타 고 나오면서 보니까 자기의 껌을 안 사줬다고 껌 못판 아이가 돌맹이를 던지더라구요. 잘못 도와주려고 드 면 오히려 낭패를 봅니다. 하란에도 갔습니다. 하란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갈대 아 우르를 떠나 도착했던 첫 정착지 입니다. 거기서 다시 가나안으로 내 려왔습니다. 야곱의 우물이 있다, 아 브라함의 우물이 있다고 해서 돌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좇 아다니는 아이들이 10명, 20명 자꾸 불어납니다. 같이 동행했던 분이 하 도 아이들이 뭘 달라고 하니까 거기 서 산 건포도 한 봉지를 나누어주었 습니다. 그랬더니 어디서 숨어있던 아이들까지 모두 덤벼들어서 30여 명이 떼거리로 가져가는데, 나중에는 자기들끼리 싸웁니다. 도와주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1980년도에 남서울교회에 서 처음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보 트 피플(Boat People)을 돕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UN난민기구에서 연락이 오기를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보트를 타고 목숨을 걸 고 온 사람들 5만 명이 필리핀의 팔 라완 섬에 살고 있는데, 음식은 UN 식량기구에서 나누어주지만 옷이 없 어서 사람들이 추워합니다.'
적도 가까운데 뭐가 그렇게 춥냐고 했더 니, 항상 40도 내외에서 살던 사람 이 20도 이하로 내려가면 추워서 못 견딘답니다. 특별히 영양이 나쁜 사람은 동사(凍死)하는 경우가 있답니다. 저는 동사는 영하권으로 내려가 야 동사하는 줄 알았는데 사람 몸 체온 26도 이하로 내려가면 동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항력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 죽는 사람 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 들이 이불을 덮고 자는 습관이 안되 었기 때문에 옷을 보내달라고 한 것 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옷을 모아 몇 컨테이너를 보내었습니다. 그 옷 을 보내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았는데 대한민국에는 구호물자를 받는 법은 있어도 구호물자를 내보 내는 법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에 저희가 대통령령으로 한번 한 것 이 관례가 되어서 관행으로 주지, 관련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야 만적인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제 가 국회의원들에게 몇 번이나 이것 을 건의했는데도 '우리 나라도 도울 사람이 많은데, 외국 준다면 한 번 에 안됩니다.'는 것입니다. 야만 국 가나 하는 짓입니다. 정말 적십자사 로, 보사부로, 외무부로 이 사안이 축구 볼 돌리듯이 왔다갔다 몇 차례 하다가, 결국 당시 국부위원장이었던 전두환씨에게 편지를 써 직소를 해서 통과가 되어 처음으로 한국의 민간단체 의류품이 나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다시 UN난민기 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마닐라에 서 당신들이 보내준 컨테이너는 잘 받았는데, 이것을 팔라완 섬까지 가는 운송비는 누가 냅니까?' 하며 운송비까지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외국에 나가기 위해서도 $300, $500 밖에 환전을 안 해주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8,000을 내 라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필 리핀 대사에게 직접 전화를 해 이쪽 외무부로 입금시키면 그 쪽 대사관 에서 $8000을 찾아달라고 해서, 그 렇게 팔라완 섬까지 물건이 잘 도착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국에서 옷을 나눠주기로 했 다고 하니까 그 섬 안에 있는 난민 5만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창구 가 터져 버렸습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체면도 없습니다. 백화점에서 세일한다고 개장시간 맞춰 기다리는 귀부인들 모습 보세요. 그것 보다 더 절실한 난민들, 생사가 달린 문제니까 그렇 게 안 달려들었겠습니까? 도와주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간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힘센 사람이 먼저 와서 음식을 못 채가도록 줄을 세워 앉혔습니다. 그리고 그 떡을 붙잡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그 떡을 나누어주었고 제자들은 그 나눠진 떡을 사람들에 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에게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떡이 나 갔는지 저는 모릅니다. 또 제자들에 게서 떡이 어떻게 변화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졌는지 모릅니다. 많은 설명은 있는데, 그 모든 설명 은 하나마나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이 기적을 우리 앞에 보여주 신 것은 우리가 산수문제 풀 듯이 잘풀어서 증명하라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내가 믿는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신앙고백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시면 물위로 걷는 것이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그 분이 전능하신 창조주시면 죽은 나사로를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오 너라'고 불러내시는 것이 너무 당연 하지 않습니까? 창조주 하나님, 그 분을 내가 참으로 구세주와 주님으 로 믿느냐고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내 인생 속에 그 분이 함께 계신 것을 믿느 냐고 묻습니다.
여기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빌립입니다. 이 사람들 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니까 정확 하게 계산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 이 조금씩 요기만 해도 200 데나리 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돈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정확하게 이야 기했습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입니다. 저녁에 해가 뉘엇뉘엇 지니까
'주님,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모두 흩어서 각 성 과 각 촌에 나가 스스로 식사를 해 결하도록 하십시다.'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입니다.
'주님, 여기 한 아이가 보리 떡 다 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많은 사람에게는 아무 소 용이 없지 않겠습니까? 너무 적지 않습니까?'하고 가능성을 가지고 나 갔습니다. 네 번째 사람입니다. 어린 소년입니다. 그 소년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선생님이 음식이 필요하 다니까 자기 것 내놓았습니다.
제가 이번 터키에서 마을 입주식하면서 행사 중에, 한 마디 하라고 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지은 이 100채의 집, 너무 초라해서 죄송합니다. 집집 마다 들어가니까 이 적은 집 지어준 것을 눈물 흘리며 감사했는데, 이것 이 그렇게 감사로 표현될 것은 아니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서 지어준 이 집이 그냥 간단한 간이주택이라면 당신들은 50년 전에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목숨을 버려주 었습니다. 그런고로 감사한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습니다. 다만 우리들 은 은혜를 기억한다는 의미로 이 건 물 100채를 지어드립니다. 사실 건 물 수십 만 채가 무너진 터키의 참 상 앞에 너무 부족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속에 한 아름 다운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자 기 마을의 빈들에 위대한 선생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보겠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도시락을 싸주었 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서 병든 자들을 치료해주시며 말씀하시는 그 위대한 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는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하 지만 눈물 흘리며 듣는 어른들의 모 습을 보면서 선생님이 소중한 말씀 하시는구나 하고 간접적인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사시간이 되 어 그 선생님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 을 주라고 하시며
'너희에게 가진 것 없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때, 이 소년은 누추한 것이지만 자기도 시락을 선생님께 드렸습니다. 그랬 더니 그 분이 그것으로 나누셔서 거기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을 다 먹였습니다.
저는 이 100채의 집이 그 소년의 손에 쥐어 주었던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 같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지만 위대한 그 분에게 붙잡혀서 이 땅의 무너진 마을이 5 년 후, 10년 후에 다시 멋지게 지어 지는 영광의 비젼을 바라봅니다. 이 번의 이 참사는 큰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비극을 비극으로 그냥 맞이 하고 끝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비극을 주춧돌로 해서 더 멋진 영광스러움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있 었습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시카고에 엄청난 화재가 났습니다. 그 다음, 시카고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한 도시를 다시 건설해냈습니다. 여러분처럼 똑같이 샌프란시스코는 60년 전에 큰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들은 얼마 있다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라는 샌프란시스코를 다시 건설했습니다. 이 100채의 적은 건물이 그 분의 손 에 드려져서 50년 후, 100년 후에 얄로바시가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 운 항구로 거듭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랬더니 그것이 성경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환호하며 박수 를 치더라구요. 아마 모슬렘이 예수님 이야기 듣고 박수친 예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집뿐만 아 니라 그들 마음속에 심어주신 복음 의 씨앗들을 50년 후에 30배, 60배, 100배로 자라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 소년은 자기 것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나도 그까짓 것 드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우리 어렸을 때 가난 한 시절, 15명, 20명되는 식구가 저 녁 때 고구마 삶은 광주리가 들어오 면 형제이고 자매이고 상관없이 큰 것 붙잡으려고 얼마나 아웅다웅 했 어요. 이것이 우리들 아닙니까? 그 리고 남에게 큰 것이 가면 얼마나 밉든지 말이지요? 이것이 우리의 모 습입니다. 이 소년은 최소한 하루 동안 굶을 것을 작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필요하다니까 내어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적은 것에, 내 적은 능력에, 내 적은 소유에 내 적은 재능에 좌절하 지 마십시오. 우리 곁에는 그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의 손에 붙잡히면 그 분이 하십니다. 놀라운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어떤 때는 이 렇게 절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 혼자만 정직하게 해봤자, 사회의 거 대한 구조적 악 속에서 내 정직만 훼손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절망합니다. 아닙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 정직은 주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나 같은 것은 능력도 없는데, 이 적 은 능력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물러서지 마십시오. 주님께 맡기십 시오. 내 주변의 환경보다 내 가능 성 보다 더 크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왜 나의 적음만 한합 니까? 주님 앞에 손을 펴 내놓지 않 습니까? 이런 사람들 있습니다.
'내 가 지금은 너무 적어서 내놓을 수가 없구요. 이것 잘 키워서 내놓겠습니다.'
그러면 십중팔구 주님의 송아 지가 됩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어떤 분이 송아지 두 마리를 사왔습니다. 얼룩 송아지와 황소 송아지를. 그리고 와서는 자기 아내에게 말하 기를
'여보, 이 소 잘 키웁시다. 그래서 그 중의 한 마리는 우리 주님 께 드립시다.'
약속을 했습니다. 그 러니까 부인이 하는 말이
'어떤 송 아지를 주님께 드릴 것입니까?'
'아 니, 잘 키워서 그 중의 한 마리를 드린다.'고 그냥 그렇게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홍수가 났습니다. 사온 송아지 중 한 마리가 떠내려갔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이 말하기를
'주 님의 송아지 떠내려갔다.'
여러분, 주께서 지금 여러분의 것을 원하십니다. 미루시지 마십시오. 내놓으십 시오. 제가 보니까 먼저 내놓은 사람일수록 보상이 큽니다. 주님의 손 에 내어놓으십시오. 그 다음 일은 우리 주께서 행하십니다. 주님이 계 십니다. 저는 그 주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오늘도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이 귀한 축복이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 풍성해서 오병이어 의 기적이 풍성히 넘쳐 내 이웃들에 게까지 크게 축복해주는 축복의 원 천으로서의 삶을 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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