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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히 쓰는 그릇 (딤후2:20-23)

본문

구약성경 예레미아 18장 6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는 말씀이 있읍니다. 이 말씀은 곧 <여호와 하나님은 그릇을 만드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그릇을 비져서 불에 구워냅니다. 그릇의 크기 와 모양에 따라 용도가 결정이 되고 그릇은 용도를 따라 쓰여지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을 <토기장이>라고 말씀한 데는 깊은 뜻이 있읍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 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90장 3절을 보면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제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흙이 인생의 고향이기 때문에 흙에서 취한 인간의 육체는 누구 이든 흙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처럼 생전에 문전걸식을 했든지, 천하를 호령하고 살던 영응호걸이였든지 간에. 일단 죽으면 그 육체는 흙으로 돌아갈 수밖 에 없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이라는 그릇을 진흙으로 만드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릇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여진 여러 종류의 그릇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
1 물담는 호리병을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물병인 데 특히 팔레스타인 지방은 물이 귀한 곳이기 때문에 물병의 용도는 증요합니다. 물병으로 물을 길어다가 집에서 음료수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2바구니를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광야에서 5000명 군중을 배부르게 먹이신 후 남은 부스러기를
I2 바구니 거두었 다고 마태복음 14장 13-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사용한 바구 니 역시 그릇의 일종 이었습니다. 3 우물에서 물을 퍼내는 두레박을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두레박이 없으면 물을 퍼낼 수가 없습니다.
4사발을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사발은 물을 퍼서 마신다든지 음 식을 담아 먹는데 사용되는 그릇입니다. 5 접시를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의 하나였읍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사람을 가르켜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성경뿐 만 이 아니고 옛 사람들도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여 말한 적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대기만성이란 말도 그런 뜻입니다. 즉 큰 사람이 되려면 쉽 게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 저 사람은 <큰 그릇>이라고 할 때 그 사람됨이 크거나 흘륭한 것을 가르키는 말인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말함으로 사람을 질그릇을 비유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에서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이며 믿음의 아들이며 젊은 목회자였던 디모데에게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 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 나니
그러므로 누군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 비함이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금그릇이냐 은그릇이냐 나무닝릇이냐 질그릇이냐도 중요하지만 무 엇을 담느냐, 어떻게 쓰여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 구체적인 말씀을 나눠보기로 하겠습니다.
1. 그릇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 여러 종류의 그릇들이 있습니다. 사람도 천태만상입니다. 색깔별로는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화 수준이 높은 민족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손가락으로 밥을 먹고 손가락으로 일들을 처리하는 미개 민족 도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부처를 믿는 민족, 알라신을 섬기는 민족, 태양을 섬기는 민족, 신사참배하는민족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차이 역시 천태만별입니다.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많이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부 지런한 사람, 게으른 사람 그야말로 가지각색의 그릇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이 세상인 것입니다. 이 세계는 그릇 전시장입니다.
2. 그릇은 깨끗해야 귀한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본문 2장 21절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게 하 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했습니다. 양잿물이나 극약을 담았던 그릇에 음식이나 음료수를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릇은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야 캐끗한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릇이 깨끗해 질 수 있습니까 예전에 쓰던 놋그릇 같은 경우는 거의 매일 닦아야 합니다. 그래야 윤이 나고 색이 제대로 드러 납니다. 요즘엔 놋그릇을 닦는 화학약품이 나왔습니다만 예전엔 기와장을 캐뜨려 그 가루로 그릇을 닦곤 했습니다. 어떻게 좋은 일꾼,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신의 마음과 생활을 날마다 깨끗하게 닦아야 합니다. 때가 묻지 않도록 닦아 야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 이라'고 말씀했웁니다. 아무리 음식이 캐끗해도 그릇이 더러우면 좋 은 음식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릇에 묻어선 안 될 것이 묻어 있다든지하면 거기에 담긴 음식도 더 러워지게 됩니다, 그 사람의 값어치는 그가 얼마나 깨끗한 말을 하 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그의 행실이 중요합니다. 예전 어느 서당 선생 처럼 자신은 <바담풍>하면서 제자들에게는 <바람풍>하라고 하면 그게 되질 않는다는 얘깁니다. 여러분 ! 우리의 그릇을 깨끗하게 합시다. 그릇이 캐끗해야 캐끗한 가정이 되고 깨끗한 사회가 되고 깨끗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단 한번도 도덕적인 생활이나 양심문제로 책잡혀 본 일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어떻게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물 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그릇이 깨끗해서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그릇이 되기 위해 말씀으로 딱어내고, 성령님의 불로 소독합시다. 식당에서도 깨끗한 그릇 을 사용하려면 소독하고 끓는 물로 씻어 내야 합니다. 우린 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들음으로 우리의 오염된 영흔을 씻 어내야 합니다. 깨끗한 그릇이라야 귀히 쓰이게 됩니다. 만일 내가 귀 히 쓰임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돈이 없기 때문도 아니고 권력이 없기 때문도 아니고 지식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아직 하나님이 귀히 쓰실만큼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 빈 그룻이라야 됩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어떤 사람이 요즘으로 말하면 신학 교를 다니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빚 만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빚장이가 두 아이들을 종으로라도 데려가겠다고 성화였습니다. 이 딱한 사정을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와 호소했습니다. 그때 엘리사 선지자는 그 여자에게 '네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그 여자는 '기름 한 병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총 재산이라고는 기름 한 병밖 에 없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너는 밖에 나가 빈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얼마든지 많이 빌리라 그리고 그 빈 그릇들을 방에 가지고 들어가서 문을 닫고 네 두 아들과 함께 기름을 부어서 차는대 로 겨 놓고 그것을 내다가 팔아서 빚도 갚고 생활 기반도 닦으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대로 했습니다. 빈 그릇들이 다 채워질 때까지 기름을 채 웠습니다. 그러니까 빈그릇이 준비된 만큼 기름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빈그릇 이라야 다른 물체를 담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 담고 있는 물체보다 더 값지고 귀한 보배가 있다면 그 보배를 담기 위해 현재 가지고 있는 믈체을 꺼내 놓지 않겠습니까 때묻은 헌 손수건을 꺼내고 정결한 새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는 것 과 같습니다. 빈그릇은 겸손과 순종을 의미합니다. 교만한 그릇에 주님의 은혜는 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 장 6절에서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세계를 주름잡던 불란서의 영응 나폴레옹이 헤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다음과 같은 사 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두개의 힘이 있다. 그것은 칼과 정신인데 정신이 항상 칼을 이겼다'고 그는 칼로 구라파를 정복하려던 정복주의]히 였습니다. 그러나 정신의 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사뎃 예수여 당신은 내가 총칼로 정복하지 못한 세계를 사랑으로 정복하였습니다.라고 절규했던 것입니다. 우린 무엇을 가졌던지, 무엇이 되었던지 간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귀한 그릇으로 쓰임받게 됩니다.
4. 그릇에는 담길 것이 담겨져야 합니다. 이사야 66장 20절을 보면 '예물은 캐끗한 그릇에 담아서 드려야 한 다'고 했습니다. 그릇은 저마다 용도가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대로 호리병, 두레박, 사발, 접시, 바구니 등 각각 그 쓰임이 다릅니다. 접시로 우물 에서 물을 퍼 올릴 수는 없습니다. 바구니로 물을 나를 수도 없습니다. 사발이나 접시에 물을 담아 가지고 먼 길을 여행할 수도 없논 것 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다 각각 자기할 일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31절을 보면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첫째는 사도요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 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 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던 레위 사람들처럼 하나님께서 각기 주신 그 일을 열심으로 해야 합니다. 각각 다른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그 은사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내 그릇에다가는 무엇을 담아야 합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 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내 몸은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몸을 더럽히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했읍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성령님의 전이 됩니다. 그러나 마귀를 내 속 에 담으면 악마의 집이 됩니다. 추한 것을 담으면 추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담으면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여러분 흑시 내 속에 담아선 안 될 것을 담고 있지 않습니까 내 신앙과 내 영흔에 도움되지 않는 것들을 지니고 있진 않습니까 그 것을 버립시다. 그래야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됩니다.
5. 그릇은 잘 보관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19장 11절을 보면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캐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특히 질그릇은 한번 깨지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인생은 질그 릇입니다. 하나의 그릇을 비져내는 것도 어렵습니다만 보관하는 일과 지키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지키지 못하면 깨집니다. 한번 깨지면 일생을 흔적을 가지고 살아 야 합니다. 성공도 중요하고 출세도 증요합니다만 한번 넘어지기 시 작하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성공도 증요합니다 만 그 성공을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린 우리의 그릇 우리의 삶으로 오직 주님의 영광을 드러 내는 데 힘써야 합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아르트르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베토벤 의 교향곡 제 9번을 연습하고 있던 단원들이 토스카니니의 지휘에 감 동된 나머지 일제히 그에게 일어나 박수를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박수 갈채와 환호가 있었을 때 토스카니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단원 들에게 손짓을 하면서 '아니요 ! 여러분 조용히들 하십시요, 갈채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베토벤입니다'라고 말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갈채와 환호와 영광을 돌립시다 그것이 그릇이 할일이고 크게 쓰임받는 비결이고 좋은 그릇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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