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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히 쓰는 그릇 (딤후2:20-26)

본문

디모데 후서는 바울 사도의 많은 서신 가운데 맨 마지막에 쓴 편지입니다. 바울 사도가 죽을 날이 임박한 것을 알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처럼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로 있었습니다.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라고 하여 디도서와 함께 디모데 전후서를 목회서신이라고도 합니다. 목회자로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잘 교훈하여 주는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디모데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큰 집"은 무엇을 가리키느냐에 대한 해석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집이란 이 세상을 의미한다고 하며, 또 다른 이들은 교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제 생각도 큰 집은 교회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집과 같은 교회에는 금 그릇, 은 그릇처럼 귀하게 쓰는 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 혹은 질그릇 처럼 천히 쓰는 그릇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받은 은사가 각각 다릅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우리 몸에다 비유를 했습니다. 우리 몸에 여러 지체가 있는 것처럼 각기 지체에 따라 기능이 다릅니다. 또한 교회는 건물에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지체가 한 몸을 이루듯, 건물의 여러 부분이 한 건물을 이루듯이 하나님의 교회는 이러한 다양성이 있습니다. 성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재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재능도 다르며,생각도 다르며,성장 과정도 다릅니다. 그러나 다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다 필요한 존재입니다. 일반적으로 배우자 선택 조건의 평균적인 순위를 보면 성격
(1) 건강(2)교육정도(3)순결(4)연령(5)외모(6)직업(7) 사회적 지위(8) 가문(9) 재산(10)의 순위라고 합니다.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교제도 해보고 결혼을 해도 많은 부부들이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이규태 씨가 쓴 "눈물의 한국학"에 보면 결혼한
2,000쌍을 면담한 결과 여성의 70%와 남성의 60%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응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어느 남편은 성격은 좋은데 게을러서 생활능력이 없고, 언제나 가난하게 삽니다 . 어느 여자는 남편감으로 미남에 반해서 택했는데 쩍하면 바람을 피웁니다. 어느 남자는 너무 예쁜 여자에 반해서 결혼했는데 사치가 극에 달하고 집안 살림은 억망입니다. 어느 남편은 능력이 많아서 재산은 많으나 인정은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이것이 좋으면 저것이 부족합니다. 배우자 선택이 이래서 어렵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귀하게 쓰시는 일군입니까 로마서 6:12-13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께서 쓰시는 병기, 무기,일군, 그릇이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 보면 귀하게 쓰는 그릇의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즉 주인은 어떤 그릇을 귀하게 쓰시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귀한 그릇으로 쓰임을 받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귀히 쓰는 그릇이 되기 위하여서는 깨끗하고 거룩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초대 교회에서 일곱 집사를 선택할 때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을 택했습니다. 본문 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여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귀히 쓰는 일군을 택하실 때에 이성문제에 깨끗한 사람, 돈 문제에 깨끗한 사람, 사상문제에 깨끗한 사람. 양심이 깨끗한 사람을 택하십니다. 교계에서 지도자를 택할 때에도 이처럼 깨끗한 사람이 지도자로 선택되어져야 합니다. 지난번 우리 총회에서는 어떻게 하면 깨끗한 선거를 치룰 수 있을까를 하여 선거제도를 바꾸어가면서 선거를 실시하였습니다. 젠에 비하면 많이 깨끗한 선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정평입니다.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편119:9에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2.귀히 쓰는 그릇이 되기 위하여서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여야 합니다. 22절에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는 말씀은 무절제한 욕심을 피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청년의 조급함을 피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청년의 과격한 행동을 피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미국 대통령 클린튼은 지금 청년의 정욕을 피하지 못하고 무절제하게 생활하다가 탄핵을 받을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미국 사회니까 우리하고 사정이 많이 다를 것이지만 강대국의 최고 지도자로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3.귀히 쓰는 그릇이 되기 위하여서는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해야 합니다. 22절 하반절에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의는 자신의 올바른 생활을 말하고 , 믿음이란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을 말하고, 사랑이란 다른 사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말하고 , 화평이란 성도들 간의 조화가 있는 생활을 말합니다. 이렇게 생활하는 사람이 교회에서도 귀하게 쓰여지는 그릇.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활에 대하여 철저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도 없이 제멋대로 일하려는 사람, 다른 사람에 대하여서는 전혀 무관심한 사람, 특히 약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사람이라든가 성도들간에 평화를 깨치는 사람들은 귀히 쓰는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산상보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5:9)고 하였습니다. 어느 집단에나 평화를 만드는 사람 즉 Peace Maker가 있는 반면에 문제를 만들어 내는 사람 즉 Trouble Maker가 있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일하십시다.
4.귀히 쓰는 그릇이 되기 위하여서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란 불필요한 언쟁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독설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근거없는 말을 퍼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말을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부드러운 말, 따뜻한 말, 친절한 말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 24-25절은 23절의 말씀을 한번 더 강조하여 주고 있습니다. 즉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은 피하고 부드럽고 온유한 말로 사람을 대하라는 교훈입니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귀히 쓰는 사람들의 언어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총회에 참석하여 보면 조용 조용히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말할 수 있는데도 목사와 장로들이 모이는 모임인데도 발언하는 사람들의 언어는 얼마나 살벌하고 가시돋치고 심지어 욕설까지 서슴치 아니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 싸우는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교훈을 한 것을 보면 초대 교회에도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으로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 가운데 또한가지는 뒤에서 수군대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말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특하고 놀랍니까 부드러운 말, 온유한 말,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말,부드러우면서도 징계하는 말은 얼마나 귀한지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지금으로 말하면 고등학교 학생 주임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송성찬 장로님이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학생들을 매로 다스리지 않고 말로 설득시켰습니다. 그래서 깡패같은 학생들이 그 선생님과 상담하고 나면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오곤 했습니다. 조용하면서도 설득력있고 감동을 주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사실 귀하게 쓰임을 받는 그릇, 귀하게 쓰임받는 일군입니다. 성 프랜시스의 기도 "주여 나를"이란 찬송이 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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