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그 날에 족한 삶 (마6:31-34)

본문

마가릿드 히긴스(Marguerite Higgins)라는 여성은 한국의 6.25 전쟁의 생생한 모습을 종군 취재하여 퓨리처상을 수상한 사람입니다. 그는 미 해병대 제 5중대를 따라서 종군했는데, 어느날 부대는 하루 종일 걸어서 행군을 하다가 저녁 식사를 위하여 잠시 정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강추위와 뼛속까지 스며드는 피곤, 그리고 언제 엄습해 올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에서 병사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체격이 매우 큰 한 병사가 소나무에 기대인 채 깡통에서 차가운 음식을 입에 넣고 있었습니다. 며칠간 계속된 전투로 그의 옷은 진흙탕과 얼음으로 뻣뻣해 졌고 수염이 길게자란 얼굴은 먼지와 흙투성이였습니다. 그의 얼굴은 너무나 심한 피로로 무표정하였습니다. 종군기자는 어떤 좋은 글의 재료라도 생길까 하여 그 병사에 다가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약 내가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고, 내가 당신의 소원은 무엇이나 다 들어준다고 할 것 같으면, 당신은 지금 무엇을 원하겠는가"고 그러자 병사는 잠시 생각하더니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Just Give Me Tomorrow (나에게 내일을 주시오)라고 우리는 이 병사의 말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지나온 나날을 되돌아볼 때, 하루하루를 그렇게 귀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면서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내일은 자연히 있게 마련인 것처럼, 그 내일이 있음을 그렇게 고맙게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이 병사에게서 처럼 하루를 또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를 우리는 미쳐 느끼지 못하면서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날들을 만드시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기본 단위로 하여 낮과 밤을 만드시고, 엿새 동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시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의 삶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자기의 일을 잘 감당하면서 살아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1. 그러기에 우리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하루의 삶에서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하는 근심을 보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까 하는 그런 문제로 평생토록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따져보면, 우리의 근심이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단순히 생존을 위한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라면 그렇게 염려할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중에 나는 새들도 곡식을 창고에 채워두지 아니했어도 하나님이 먹이시고,들에 핀 백합화도 솔로몬의 옷 보다 더 아름답게 입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막상 염려하는 것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남들 보다 더 많이, 더 큰 것, 그리고 남이 없는 것을 갖고 싶어하기 때문에 오는 근심 걱정이라고 봅니다. 남이 갖지 못하는 것을 가져야 행복하고, 남 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야 성공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게 되고, 그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게 되고 또 그 죄가 장성할 때 죽음을 불러오게 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요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에 정치계에서나, 공직에서 남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서로 억울하다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볼 때, 한때는 저들이 다 이 사회에서 그래도 앞서가는 사람들같이 보였고, 한 때는 모두 성공한 것같이 스스로 행복감에 도취되어 있었던 순간들도 있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오늘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저들이 하루하루의 먹을 것이 없어서, 마실것이 없어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아닙니다. 좀더 많이 가지고, 좀더 많이 누리고, 좀더 큰 것을 탐내다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볼때, 행복은 결코 소유에 있는 것은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가치 철학에서는 무엇이 가치인가 하는 물음에서 <관심>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다이아먼드가 가치 있는 보석이라고들 하지만, 거기에 관심이 없으면 그것은 결코 가치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일 수록 가치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관심이 무엇이겠습니까 관심은 마음을 어디에다 두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항상 땅에다 두는 사람이라면 땅이 그에게 가치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항상 연애에다 두는 사람에게는 모든 가치는 사랑일 뿐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모두가 헛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 없이는 못살아'라는 노래까지 나온줄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성도들은 무엇에 우리의 마음을 두어야 하겠습니까골노새서 3: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에 번역을 보면,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 where Christ is, 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바로 그 위에있는것 들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신 바로 그 위에 것이란 무엇이겠습니까 하늘에 있는 것들,즉 땅에 있는 것들과 대조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물질적인 것 보다, 정신적인 것들>, <보이는 것들 보다 보아지 않는 것들>, <순간적인 것 보다 영원한 것들>,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2.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하루에 삶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보면, 하루에 한번도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대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십시오. 빌딩의 숲속에서 부딪치고 밀리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푸른 하늘을 한순간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그것을 구하면서 살아야 할 인간들인데, 대부분의 경우에서 땅만 보고 살고 있습니다. 하루 일과를 땅을 보면서 부터 시작합니다. 하루 일과에서 우선 순위를 땅에 것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줄줄이 잘못되는 것처럼 삶의 우선 순위가 바뀌면 그의 생활도 뒤죽박죽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람의 형체가 잡힐 때 제일 먼저 머리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은 머리를 하늘을 향해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어떤분은 말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늘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존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하늘을 먼저 생각하고, 하늘의 뜻을 살피면서 사는 사람을 일컬어 도인(道人)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을 도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도>란 하늘의 이치입니다. 중국 성경에 보면 <말씀>을 도라고 번역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 것을 태초에 도가 있었다고 그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늘에 뜻이 도(道)라고 한다면, 도(道) 안에 생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인 도(道)를 거역하는 자!,즉 역천자(逆天者)는 망하고 순천자(順天者)는 흥한다고 했습니다. <순천자>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늘을 내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매일의 하루하루 삶에서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서 사는 사람에게 역사를 만들어 가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생각하면서 산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환경에 있든지, 무슨 업종에 종사하던지, 그리고 내가 어떤 능력과 탤런트를 가지고 있던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정반대로 자구 깨면 먼저 땅엣 것만 생각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면 땅에 사람들은 될 지언정 천국 시민(天國市民)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들입니다. 천국 시민은 먼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하루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지식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쓰임 받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진 어떤 소유이든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어떤 능력이든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쓰여지도록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3. 그러기에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루의 삶에서 그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함으로 넘겨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보면, 사람들은 그 날의 괴로움을 다음 날로 연장해 갑니다. 그래서 근심 걱정을 날마다 등에 업고 다닙니다.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는 뜻은,하루하루의 삶을 감사로 이어지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절실한 말입니까 오늘의 대부분의 질병이 신경 질환이라고 합니다. 노이로제라고도 합니다. 노이로제란 헬라어의 정신이라는 말인 누스(Nous)라는 말에서 온 말입니다. 정신에서 온 질환이란 말입니다. 마음 쓰기에서 온 질환이란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날의 괴로움을 그날의 감사로 여길 수 있다면 모든 질병은 살아질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으로 병을 고친 경우들입니다.
제가 후암동 근처에서 살 때,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남산 팔각정으로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하여 가노라면, 본래 후암동이란 동네가 왜정 시대부터 부자들이 많이 살던 동네이었는데, 하루는 정원도 굉장히 넓고 큰 저택에서 들려 오는 소리가 있는데 '죽여라! 죽여! 난 이렇게는 못살아!'라는 여자의 칼날 같은 소리가 들려 왔어 가만히 들어보니, 아마 남편이 외박을 하고 새벽에 들어 온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니, 대 들면서 죽여라! 고 외치면서 난 이렇게는 못산다고 했는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렇게 크고 화려한 집에서도, 못살겠다고 소리를 지르니, 그리고 죽겠다고 하니, 죽을 바에는 그 집 나에게 주고 죽지좋은 사업에 쓰게!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먹을 것, 입을 것, 다 쌓아 놓고도, 노이로제 걸려 있는 사람들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정신의 병이 들어 있습니까매일 매일을 감사하면서 사는 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날의 괴로움을 그날의 감사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 한 일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한날의 괴로움 중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당하는 괴로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도리어 감사로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 가 낮애 맞은 상처로 괴로워해야 할 밤에 저들은 도리어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날의 괴로움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오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한날의 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루를 너무나 낭비하고, 등한히 여기며 불평 불만 속에 살아가지 말고, 매일의 하루하루 생활 속에 비록 괴로움이 있을지라도, 도리어 그 한날의 괴로움에서 감사하면서 살 수 있는 믿음을 소유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복된 삶인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353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