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린 여자를 고친 바울 (행16:16-25)
본문
빌립보에서 바울은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줌으로써, 매를 맞고 투옥 당하였습니다. 왜 이같은 결과가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귀신들린 여인을 보는 시각차이 때문이었 습니다.
1.주인들의 시각 귀신들린 여인을 주관하는 주인들은 그녀를 공유 재산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녀 가 귀신들렸다는 것은 귀신의 포로가 된 것이므로 그녀 자신에게는 대단히 불행스러 운 일이었으나, 그 주인들은 오히려 유익한 일로 여겼습니다. 당시 종들은 주인의 소유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혀 점치는 행위로 벌어 들이는 수입에 그 주인들은 재미를 붙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을 단지 영리의 수단으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인들은 그녀의 영적 정신적 회복 같은 것은 조금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 주인들은 그 여종이 미친 것을 이용하여 더 많은 수입 올리기 에 급급하였습니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 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점은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벌이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점쟁이를 통해서라도 미래의 일을 알아보고 자 하는 거은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들어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인간 의 능력으로는 단 한 치의 앞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떤 특별한 능력을 빌어서 미 래를 점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단편적이고 불완전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점치는 여인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 여인이 다른 사람들의 앞날은 점쳐 주면서 정작 자신의 미래와 자신의 운명은 바꾸어 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점치는 능력은 악 령에 의한 미미한 초능력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바울 사도의 시각 점치는 귀신 들린 여인이 바울 사도를 만날 때마다 지극히 높은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라 고 외쳐댔습니다. 그때마다 바울 사도는 "괴로와"하였습니다(18). 18절에 "괴로워 하여"라는 말은 `철저히 괴로워하다'라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녀의 주인들의 비인도적인 행위와 그녀가 흉악한 귀신에 들려 있는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고서 괴로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억압을 당하고, 착취를 당하며 인간이 아닌 존재로 살아가도록 강요받고 있는 사실 앞에서 분노하고 괴로웠던 것입니다. 모든 인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몸소 체험하고 그 복음을 전 하는 자로서 더욱 더 그같이 처참한 광경 앞에 괴로웠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녀를 고쳐줌으로써 주인의 소득원을 없어진 것을 알고 행패 부릴 것을 미리 예견하였지만, 그 주인들의 물질적인 이익보다 머저 한 사람의 영혼이 더 중요 하였기에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쳐 주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점치는 여종을 조종하는 정체가 마귀임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에게 나올 것을 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앞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 하늘과 땅 어디에도 없습니다. 드디어 그 여종은 마귀로부터 놓임을 받고 자유로운 심령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는 곳에는 항 상 자유가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3.상관들의 시각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관원들에게 끌고 가 고소하였습니디.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여 주고, 불의한 행동을 깨우쳐 주는 의로운 사람들에게 감사하기 보다 오히려 미워하고 파멸 시키려는 것이 부패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20절에 나오는 상관들은 재판관을 가리킵니다. 이들의 시각에는 여인의 인권이나 사회 정의 같은 문제가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국민을 손해 보였다는 시각에서 바울의 일행을 때리고 투옥하였습니다. 이같이 처단 한 것에 대하여 고소한 내용에 대하여 그 성의 무리들까지 동조하고 나섰습니다. 복음을 위한 길에 첩첩이 원수들이 가로막고 괴롭혀서 절망을 주고 위 협을 주는 어두움의 반대 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4.옥중에서 찬미하는 바울과 실라
1)예수님만 의지함 합법적인 절차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바울과 실라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 들이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였노라고 하였더라면 매도 맞지 않았을 터인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방법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고난이 올 때에 성도는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기 이전에 먼저 예수님을 의 지하여야 합니다.
2)하나님의 뜻을 기대한 바울과 실라 바울과 실라는 주어진 외부적인 상황에 좌절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 습니다. 그럼에도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소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의 지시를 받아 빌립보 성에 왔기에 루디아를 회심시켰고 점치는 여인을 고 침으로 계속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매를 맞고 감옥에 앉아 있으면서도 성령님의 계속적인 인도를 받고 있도 를 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3)매임을 이긴 바울과 실라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도 하늘을 향한 푯대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 고 찬미하였습니다. 비록 그들의 육체는 때리고 묶어서 감옥에 던질 수 있었지만 그 들의 심령은 그 누구도 묶어 둘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늘의 영광을 바라도 찬송 하였던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없는 심령들은 하나님이 형상의 가치를 모릅니다. 모든 것이 계산적이고 타산적일 따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인생의 가치와 존귀함이 있습니니다. 그리고 성도가 주님을 위하여 어려움을 당할 경우에 그것이 영원한 영광을 위한 과정임을 기억하여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후4:1)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1.주인들의 시각 귀신들린 여인을 주관하는 주인들은 그녀를 공유 재산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녀 가 귀신들렸다는 것은 귀신의 포로가 된 것이므로 그녀 자신에게는 대단히 불행스러 운 일이었으나, 그 주인들은 오히려 유익한 일로 여겼습니다. 당시 종들은 주인의 소유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혀 점치는 행위로 벌어 들이는 수입에 그 주인들은 재미를 붙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을 단지 영리의 수단으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인들은 그녀의 영적 정신적 회복 같은 것은 조금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 주인들은 그 여종이 미친 것을 이용하여 더 많은 수입 올리기 에 급급하였습니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 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점은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벌이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점쟁이를 통해서라도 미래의 일을 알아보고 자 하는 거은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들어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인간 의 능력으로는 단 한 치의 앞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떤 특별한 능력을 빌어서 미 래를 점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단편적이고 불완전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점치는 여인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 여인이 다른 사람들의 앞날은 점쳐 주면서 정작 자신의 미래와 자신의 운명은 바꾸어 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점치는 능력은 악 령에 의한 미미한 초능력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바울 사도의 시각 점치는 귀신 들린 여인이 바울 사도를 만날 때마다 지극히 높은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라 고 외쳐댔습니다. 그때마다 바울 사도는 "괴로와"하였습니다(18). 18절에 "괴로워 하여"라는 말은 `철저히 괴로워하다'라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녀의 주인들의 비인도적인 행위와 그녀가 흉악한 귀신에 들려 있는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고서 괴로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억압을 당하고, 착취를 당하며 인간이 아닌 존재로 살아가도록 강요받고 있는 사실 앞에서 분노하고 괴로웠던 것입니다. 모든 인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몸소 체험하고 그 복음을 전 하는 자로서 더욱 더 그같이 처참한 광경 앞에 괴로웠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녀를 고쳐줌으로써 주인의 소득원을 없어진 것을 알고 행패 부릴 것을 미리 예견하였지만, 그 주인들의 물질적인 이익보다 머저 한 사람의 영혼이 더 중요 하였기에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쳐 주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점치는 여종을 조종하는 정체가 마귀임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에게 나올 것을 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앞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 하늘과 땅 어디에도 없습니다. 드디어 그 여종은 마귀로부터 놓임을 받고 자유로운 심령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는 곳에는 항 상 자유가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3.상관들의 시각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관원들에게 끌고 가 고소하였습니디.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여 주고, 불의한 행동을 깨우쳐 주는 의로운 사람들에게 감사하기 보다 오히려 미워하고 파멸 시키려는 것이 부패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20절에 나오는 상관들은 재판관을 가리킵니다. 이들의 시각에는 여인의 인권이나 사회 정의 같은 문제가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국민을 손해 보였다는 시각에서 바울의 일행을 때리고 투옥하였습니다. 이같이 처단 한 것에 대하여 고소한 내용에 대하여 그 성의 무리들까지 동조하고 나섰습니다. 복음을 위한 길에 첩첩이 원수들이 가로막고 괴롭혀서 절망을 주고 위 협을 주는 어두움의 반대 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4.옥중에서 찬미하는 바울과 실라
1)예수님만 의지함 합법적인 절차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바울과 실라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 들이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였노라고 하였더라면 매도 맞지 않았을 터인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방법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고난이 올 때에 성도는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기 이전에 먼저 예수님을 의 지하여야 합니다.
2)하나님의 뜻을 기대한 바울과 실라 바울과 실라는 주어진 외부적인 상황에 좌절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 습니다. 그럼에도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소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의 지시를 받아 빌립보 성에 왔기에 루디아를 회심시켰고 점치는 여인을 고 침으로 계속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매를 맞고 감옥에 앉아 있으면서도 성령님의 계속적인 인도를 받고 있도 를 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3)매임을 이긴 바울과 실라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도 하늘을 향한 푯대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 고 찬미하였습니다. 비록 그들의 육체는 때리고 묶어서 감옥에 던질 수 있었지만 그 들의 심령은 그 누구도 묶어 둘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늘의 영광을 바라도 찬송 하였던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없는 심령들은 하나님이 형상의 가치를 모릅니다. 모든 것이 계산적이고 타산적일 따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인생의 가치와 존귀함이 있습니니다. 그리고 성도가 주님을 위하여 어려움을 당할 경우에 그것이 영원한 영광을 위한 과정임을 기억하여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후4:1)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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