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순종 (빌2:1-11)
본문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봐, 누군 할 줄 몰라서 안하는 줄 알아 그러니, 남의 잔치에 함부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지 말라구. 혹시 우리도 이런 말로, 다른 사람의 충고를 거절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담이 죄의 유혹에 빠져 타락한 이후로, 우리는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어려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순종하는 것이, 마치 약한 사람이 강한 상대에게 할 수 없이 복종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참으로 강한 사람 만이, 진정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빌립 보서 2장 5절과 6절, 그리고 8절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 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동일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의 역할에 대해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 입니까 순종케 하시는 이와 동등하신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 종케 하시는 이에게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 아십니 까 힘이 약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사용자와 근로자, 정부와 국민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권위 와 순종의 관계"로 바뀐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달라질 것입니다. 혹시 무엇엔가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 다면 먼저,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근본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모양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순종을 묵상해 봅니다. 그러면 참으로 능력있는 강한 사람만이, 그리고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도 하나님과 사람 앞 에 참으로 순종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인간을 아울러 이해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 대하게 나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 (요20:19-31) 언젠가 이렇게 고백하시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시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성경에 보니까, 그분은 결코 우리 와 똑같지 않으시지만, 동시에 우리와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또 살고 있지만, 오직 주님 한 분만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동일하십니다. 또 주님은 우리와 똑 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히 4:15).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에도, 주님을 바로 알지 못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5절을 보십시 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 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 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 이렇게 주님의 부 활을 믿지 못하던 도마의 입에서, 결국 어떤 고백이 나오는지 아십니까 요한복음 20장 28절을 보십시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참 으로 믿게 되었을 때,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그제서야 도마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왜냐면 믿음과 순종의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 습니까 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보기 전에는, 내가 듣기 전에는, 아니 내가 이해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지는 않습니 까 그러나 믿음은,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 무 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믿기만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믿음이 출 발점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주님이신 것을 믿으면, 주님께 속한 일을 이 해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 의 일은 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고전 2:9-14).
그런데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또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 주십니다(약 1:5-8).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도 어느날 불 쑥, 도마가 품었던 것과 같은 의심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면, 주님 곁에 다가가서 그 상처를 만진 도마의 마음을 상상하고, 조용히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주님을 불러 보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향해, "주님 앞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분명히 우리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의 눈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 앞에 감사 (요19:17-24)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의 가족은, 나찌 치하에서 곤경에 처한 유태 인을 돕다가 붙잡혀서,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후에 코리 텐 붐은, 피난처(The Hiding Place)라는 제목의 책으로, 수용소에서 겪은 참담한 경험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나찌 수용소에서, 코리 텐 붐은 그의 언니, 벳 치(Betsie)와 함께, 벌거벗은 채, 검사관 앞에 줄 서도록 강요받았습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무력한 짐승처럼, 벌거벗은 채, 검사관 앞에 줄지어 서면서, 코리 텐 붐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을 지 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코리 텐 붐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주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5절과 36절은 "저희가 예수 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고 말씀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한 조각의 옷을 걸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성경은,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님 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서 나누어 가졌다고 증거합니다. 보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예수님은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 매달리셨던 것입니다. 입고 있던 옷을 강제로 빼앗기고, 나찌 수용소의 어 두운 복도에, 벌거벗은 채 서있던 코리 텐 붐은, 앞에 서있는 누이에게 이 렇게 속삭였습니다. "벳치, 그들도 주님의 옷을 뺏어 갔었어. " (침묵이 흐르고) 코리 텐 붐의 속삭임을 듣고서, 한참동안 아무 말없이 앞만 바라 보고 있던 벳치는,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 난 여지껏, 지금처럼 주님을 가까이 느낀 적도 없고, 이렇게 주님께 감사했던 적도 없 어."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일상 생활이 주는 안락함 때문에, 진실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떤 극적인 상황에서, 진실의 소리에 귀기 울이게 됩니다. 물론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곧, 새로운 기쁨 이기도 합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코리 텐 붐이 떠올렸던 주님의 모습은, 그 상황에서 배울 수 있었던 값진 진리이며, 교훈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가 처한 각각의 상황에서, 이렇게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 쩌면 우리는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죽은 나사 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떠올릴 수도 있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이나, 이 순간도 우리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고, 천국 보좌 우편 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마음에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하는 주님의 모습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주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이보다 귀 한 예배는 없습니다. 오늘도 각각의 상황에서 각자가 만나는 변함없는 주 님의 모습을 묵상하고, 감사드리는, 참된 경배의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빌립 보서 2장 5절과 6절, 그리고 8절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 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동일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의 역할에 대해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 입니까 순종케 하시는 이와 동등하신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 종케 하시는 이에게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 아십니 까 힘이 약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사용자와 근로자, 정부와 국민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권위 와 순종의 관계"로 바뀐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달라질 것입니다. 혹시 무엇엔가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 다면 먼저,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근본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모양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순종을 묵상해 봅니다. 그러면 참으로 능력있는 강한 사람만이, 그리고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도 하나님과 사람 앞 에 참으로 순종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인간을 아울러 이해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 대하게 나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 (요20:19-31) 언젠가 이렇게 고백하시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시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성경에 보니까, 그분은 결코 우리 와 똑같지 않으시지만, 동시에 우리와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또 살고 있지만, 오직 주님 한 분만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동일하십니다. 또 주님은 우리와 똑 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히 4:15).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에도, 주님을 바로 알지 못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5절을 보십시 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 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 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 이렇게 주님의 부 활을 믿지 못하던 도마의 입에서, 결국 어떤 고백이 나오는지 아십니까 요한복음 20장 28절을 보십시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참 으로 믿게 되었을 때,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그제서야 도마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왜냐면 믿음과 순종의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 습니까 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보기 전에는, 내가 듣기 전에는, 아니 내가 이해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지는 않습니 까 그러나 믿음은,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 무 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믿기만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믿음이 출 발점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주님이신 것을 믿으면, 주님께 속한 일을 이 해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 의 일은 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고전 2:9-14).
그런데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또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 주십니다(약 1:5-8).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도 어느날 불 쑥, 도마가 품었던 것과 같은 의심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면, 주님 곁에 다가가서 그 상처를 만진 도마의 마음을 상상하고, 조용히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주님을 불러 보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향해, "주님 앞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분명히 우리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의 눈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 앞에 감사 (요19:17-24)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의 가족은, 나찌 치하에서 곤경에 처한 유태 인을 돕다가 붙잡혀서,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후에 코리 텐 붐은, 피난처(The Hiding Place)라는 제목의 책으로, 수용소에서 겪은 참담한 경험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나찌 수용소에서, 코리 텐 붐은 그의 언니, 벳 치(Betsie)와 함께, 벌거벗은 채, 검사관 앞에 줄 서도록 강요받았습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무력한 짐승처럼, 벌거벗은 채, 검사관 앞에 줄지어 서면서, 코리 텐 붐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을 지 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코리 텐 붐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주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5절과 36절은 "저희가 예수 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고 말씀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한 조각의 옷을 걸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성경은,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님 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서 나누어 가졌다고 증거합니다. 보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예수님은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 매달리셨던 것입니다. 입고 있던 옷을 강제로 빼앗기고, 나찌 수용소의 어 두운 복도에, 벌거벗은 채 서있던 코리 텐 붐은, 앞에 서있는 누이에게 이 렇게 속삭였습니다. "벳치, 그들도 주님의 옷을 뺏어 갔었어. " (침묵이 흐르고) 코리 텐 붐의 속삭임을 듣고서, 한참동안 아무 말없이 앞만 바라 보고 있던 벳치는,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 난 여지껏, 지금처럼 주님을 가까이 느낀 적도 없고, 이렇게 주님께 감사했던 적도 없 어."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일상 생활이 주는 안락함 때문에, 진실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떤 극적인 상황에서, 진실의 소리에 귀기 울이게 됩니다. 물론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곧, 새로운 기쁨 이기도 합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코리 텐 붐이 떠올렸던 주님의 모습은, 그 상황에서 배울 수 있었던 값진 진리이며, 교훈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가 처한 각각의 상황에서, 이렇게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 쩌면 우리는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죽은 나사 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떠올릴 수도 있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이나, 이 순간도 우리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고, 천국 보좌 우편 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마음에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하는 주님의 모습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주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이보다 귀 한 예배는 없습니다. 오늘도 각각의 상황에서 각자가 만나는 변함없는 주 님의 모습을 묵상하고, 감사드리는, 참된 경배의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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