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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 (요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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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이기 때문에 여 기에서 언급되는 말씀들은 어떤 표현들 보다도 가독교에 대한 깊은 내용들을 잘 설 명하고 있습니다. 1절은 영광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영광이란 우리가 일반적을 생각 하는 영광들인 하나님의 전능하심, 의로우심, 거룩하심 등 이런 것들보다도 우리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죄와 형벌의 자리에서 구원해 내시려는 뜻에 관 한 영광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절에서는 권세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 권세는 영광과 영생 의 사이에 있는 것을 보셔야 합니다. 이 세가지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을 보셔서 우리들이 가지는 권세란 어떤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정리하게 되기를 바 라는 것입니다. <본론> 보통 권세라 하면 일종의 권위라는 말과 세력, 힘, 이런 것들이 복합되어진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권위라 하면 싫어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권위에 반대 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권위라는 그 말 속에는 일종의 독재성이나 폭군적인 요소를 연상하 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60년대에 전 세계가 한 때 데모로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것이 1980년대에 이르러서 드디어 일어났습니다만, 그것이 정치이든 어떤 사회적 인 것이든 무조건 다 걸고 넘어진 것입니다. 물론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만, 결국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권위라고 인정되는 것은 어떤 성역의 있었어도 큰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수님들이 큰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종교도 그런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대단한 권위적인 영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 도 권위적인 것이 먹혀 들어가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 그런 것들이 싫어졌습니다. TV나라디오의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이것은 테레비젼 방송이다 이것은 리디오 방송이다 하는 어떤 독특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목사님들도 그랬습니다. 어떤 독특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목소리를 들어야 은혜로운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소 권위적인 목소리로 어나운서 가 방송을 해야 방송을 듣는 것같은 느낌을 가지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은 그렇게 하는 것이 싫어진 것입니다. 어느 틈엔가 우리들도 자유의 물결에 영향을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강대상의 호화찬란함도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목사가 너무 목사같이 생긴 것도 좀 싫어진 것입니다. 요즘은 교회도 너무 멋있게 짓는 것 도 결혼식 할때는 좋지만 다른 때에는 싫어진 이런 반권위적인 분위가 서시히 팽배 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권위를 가진 자들이 개인적이고도 편협하며 변덕스럽게 그 세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권위라고 할때에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속박과 피해를 당한다는 의식인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권위에 대한 반대말이 자유라고 인식되어 진 것입니다. 원래 권위라는 말은 힘이나 세력 보다도 지식이나 지혜라는 말과 훨씬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무엇을 가장 하고 싶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실컷 놀고 싶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 소원대로 놀게 해주면 얼마 못가서 심심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까, 학생들이 놀고 싶다는 그 말에는 게임을 한다든지 무슨 놀이를 하자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단지, 지금 하고 있는 이 공부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실제 속셈인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지 않게 되자 그 다음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생의 삐뚤어진 단면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모두가 돈에 거의 마음을 다 빼앗기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 여러분들에게 1억 의 돈을 준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은행에 집어 넣어 놓고서 이자를 꼬박꼬박 받아 먹고 편하게 살겠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돈이 생기는 것은 좋 아는 하지만 그것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일은 잘 못합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 마음놓고 우리에게 돈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 중에서 참으로 시간이 없다, 바쁘다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 정작 여유있는 시간을 주면 무었을 할 것 같습니까 지금 바쁘고 격무에 시달리 니까 피곤하다는 입장에서 쉬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주었더니 퇴폐한 쪽으로 속히 달려가 버린 것이 서구의 사회입니다. 주 5일 근무와 주 6일 근무 중에서 어느 것이 낫습니까 주 5일만 일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이야기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시달리어 피로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입장에서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을 많이 주기 위해 주 5일만 일하게 하였더니 정신 병자만 더 늘었으며 퇴폐와 타락을 가속시켰을 뿐이었습니다.
미국의 가장 큰 범죄가 폭력범과 성범죄입니다.
그런데 범인들을 검거하여 왜 그런 일을 했느냐고 물으면 그냥 재미로 했다는 정신 이상적 발언을 서슴없이 합니다. 수퍼마켓 가서 기관단총을 쏘아놓고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재미로 심심해서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랬다고 합니다. 인간은 범죄한 이후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 건강이나 돈이나 지혜들을 결코 스스 로의 자력으로는 제대로 사용할 능력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냥 주어 놓으면 무슨 일 저지를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주시면 반드시 그것을 가지 고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 부모나 선생을 먼저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죄성을 지닌 인간들인 우리에게 부모를 주시고 선 생님을 주셔서 그 밑에서 배우며 크게 하시는 이 일이야말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 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어느 모임에서나 어른은 대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젊 은 사람들은 어른을 대접해야 합니다. 그것을 할 줄 모르면 무지한 사람입니다. 무례한 것 이전에 무지한 일인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힘으로 하려고 합니다. 이상주의자입니다. 나이든 이상주의자는 없습니다.
언제나 이상주의는 젊은 법입니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젊은 자들이 이상주의자가 되는 이유는 그 가 기대하고 그가 신념으로 갖고서 결심한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때려야 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자녀를 절제 속으로 몰아 넣 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구속해야 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 들은 자유를 외칩니다. 그러나 나중에 커 보면 부모에게 우리에게 식사하는 예법을 잘 가르쳤다든지, 하기 싫은 수영을 잘 가르쳤다든지, 끝까지 피아노를 하도록 시켜 주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얼마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며 덕이되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부모님의 구속력있는 강력한 처사들에 대하여 고마움을 잊지 않게 됩니다 그때 공부 안하려고 도망가던 것을 그렇게 붙잡고 때려서 공부 잘하게 만들어 준 것 이 얼마나 다행한 일어었습니까 본인이 아직 경험이 없고 철이 없어서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부모 쪽에서 강압하며 강요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수준의 힘과 지혜를 가 르켜서 권위라고 그럽니다. 이런 것이 참된 권위의 본래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같은 권위 앞에 본래가 머리를 숙일 줄 모르는 존재들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범죄 타락한 이후로 각자가 다 신으로 생각하며 살아가 고 있기 대문입니다. 다시말해 모두가 자기가 제일 잘났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며 그 역사는 언제나 책임을 상대방에게 미루 고 권리는 자기가 가지겠다는 싸움이었습니다. 이것이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과 개인과 개인간의 분쟁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할 수만 있다면 책임 을 전가 시키고 우겨대고 권리를 뺏을 수 있는 힘들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돈과 지위와 지식을 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지하며 무식하며 게으르며 완악한 죄성들을 본 래부터 품고 있었던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지키려 면 누군가가 간섭하고 정당한 선을 그어 주어서 결국은 그것에 승복하고 항복하여서 우리 모두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힘과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참된 권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권위가 우리 인간들에게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오로지 무 엇으로부터의 자유만 있을 뿐이지 무엇을 위한 자유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권위를 가질 만큼 지혜롭지 못하고 지식이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7:2절에 이르면 우리는 바로 그 권세를 주님이 가지셨다는 선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권세를 가지신 것은 우리를 호령하고 압제하여 우리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그럽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받은 권세라 그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에 있게 되므로 누리게 될 엄청난 축복과 약속들에 대하여 새삼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정말 권위다운 참 권위 아래에 있게 되는 축복인 것입니다. 빌2:6-11절에 보면 이것이 확실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 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순종이 있었기에 오늘 본문인 요17:2절에 있는 것 같은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이름 앞에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게 했습니다.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 즉 권위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케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그것이 바 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원하시는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러 그렇게 하기 위하여 먼저 예수그리스도를 만민을 다스리는 권위의 자리에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히4:14-16절에 보면 이에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 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 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 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기에서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중보 의 사역을 아직도 계속하고 계신다고 그럽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 하시며 변호하시며 중보하는 사역을 계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세상의 권세자들과는 다르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권세자들은 보통 자기의 변덕과 편협에 의해 기 분나는 대로 그 권위를 행사하므로 우리에게 피해를 주기가 다반사 입니다. 그러니 자연 권위자들에 대하여 불신과 반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 위는 결코 그렇게 행사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으시기 때문에 이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한 자가 아닙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 을 받으신 자입니다. 그는 굶주려 보셨으며, 목말라 보셨으며, 피곤해 보셨으며, 세상 살이의 어려움을 우리와 똑같이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를 위한 대언 자 역활을 하실 수 있으며 중보자 역활을 하실 수 있으며 우리를 다스릴 권한을 가 지실 자격을 갖추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위에 군림하시는 것은 그 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올라가신 것은 그냥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그 보좌의 자리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단체로 여행을 하게 될때에 그 많은 인원 의 공동 이익과 편의을 위하여 보통 일을 맡을 대표자를 뽑게됩니다. 그때에 누구를 뽑습니까 이름 가나다 순으로 뽑습니까 아닙니다. 그 일을 맡을 만한 실력과 경험 을 갖춘 사람을 뽑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권세를 가졌다는 것은 이와같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 시고 대언하시고 중보하실 수 있는 자격과 실력을 갖추신 분이시기에 그러한 권위를 가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 위에 권위를 가지셨다는 것은 세상에서 처럼 귀챦고 싫은 일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기뻐하고 환영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되 무조건 우리 편을 드시는 세상의 부모들과는 같지 않습니다. 세상의 부모는 그 자녀를 어디로 인도해야 될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어디로 인도해야 되는지를 가장 확실히 알고 계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히5:7-10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 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 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 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대속하여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는 일을 가운데 서서 하는 중 보자인 동시에 또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어쨌든 용납되는 모습으로서 모든 백성들 앞에 하나님의 백성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유일하게 보여주는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좇아가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지 상에서 살으신 그 생애는 하나님 앞에서 합격점을 받으신 생애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들이 걷는 길을 다 걸으셨기에 이 길이 어떠한가를 다 알고 계십니다. 이 길의 어려움과 목적지와 사정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께서 만이 우리의 진정한 권위자가 될 수 있으신 것입니다. 오늘날 부모된 우리들은 자녀들을 훨씬 잘못 가르칠 때가 많습니다. 옛날에 고생하 던 시절을 생각해서 일종의 보상심리로 내가 못 먹었던 것을 내 자식에게는 실컷 먹 이고, 내가 못해 보았던 것을 내 자식에게는 마음껏 시키고, 내가 부모들에게 심하 게 맞은것 때문에 내 아이들은 절대 안 때리며 키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애들 을 다 버렸습니다. 살만 피둥피동 쪘고 키문 멀쑥하게 컸지 인내가 없고 끈기가 없는 애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은 자녀들을 제대로 키울줄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 자신이 영원한 진리와 목표를 못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잘 먹고 편하게 살고 좋은 것 타면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있는 자들이 므로 자녀들을 그 모양으로 밖에는 못 키우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고 있습니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사실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 만큼 밖에는 가르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가치있다 고 인정하는 그것 외에는 격려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실제적으로 가지고 있는 목표와 기준과 가치관이 허술한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우리 주 옛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처럼 실 력도 없으면서 권세를 가진 자가 아닌 것입니다. 주님이야말로 참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주님이 가지신 권세가 무엇이며 그 권세가 어디에 사용되어야 하는 지를 마28:18-20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모두 가지셨습니다. 우리를 다스리실 뿐 만 아니라 모든 권세를 지금 갖고 계십니다. 지진이 나며, 바람이 불며, 태풍이 오 며, 모든 사회 생활과 경제 생활, 그리고 자녀들의 입학 탈락 등 뭐든지 다 주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그냥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주님의 허락 없이는 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제자들이 편했다는 기록이 사도행전 어느 한 군데도 나타나 있지 않 습니다. 오히려 여러 군데서 핍박과 반대가 있었으며 순교까지 당하게도 했습니다. 바울의 생애를 보면, 한 번도 편한 날이 없었던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고후 11장에서 사도 바울의 생애를 자기가 증언하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그러니까 39대씩 마즌 매를 다서번 맞고 파선에서 일주야를 깊음 속에서 보내며 강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춥고 헐 벗고 굶주리고 한 번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이가 항상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목표를 가졌길래 이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자로 세우시 려고 지금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기 때문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신자는 은혜를 받고난 이후에 이제 세상의 목표와는 전혀 다른 목표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잊고 살적이 얼마나 많은 지를 모릅니다. 그러니 혼동 과 고통 속에 빠져 신앙이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말씀을 근거로 분명히 눈을 떠야 합니다.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목적하며 살아가야 할 자인지를 아ㅊ아야 합니다.
롬8:28절을 보십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 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 만큼 신나는 약속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선이란 여러분들의 욕심과는 분명히 구별 되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여러분은 혹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야 말로 참으로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 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놀라운 권세를 가지시고 다스리시고 지도하시는 손길 아래에 놓여 있는 자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많은 실패를 겪었습니까 신앙 때문에 좌절과 자존심 상하는 경험들을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런것 때문에 결코 실패자 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좌절할 수 없는 영원한 승리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이가, 천하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이 가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여러분을 위하여 피흘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같은 권세와 사랑을 근거로하여 이같은 고백이 결론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롬8:38-39절에 말씀처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 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
<결론>

지금 여러분에게 무엇이 슬프게 만듭니까 여러분들을 억울하게 할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 자신이 아직도 인생을 자폭하고 말 목표와 허황된 욕심으로 이끌고 있 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정검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구의 권위 아래 있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서 나아가는 인생이 되었음을 분명 히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놀라운 기적과 감사와 찬송으로 내 인생의 방향이 잡히 고 궁극적인 승리의 목표가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마땅한 생활과 책임인 동 시에 권리임을 아셔야 합니다. 이 놀라운 권리를 잊어버리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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