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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인 만남 (렘2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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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3 인간의 생활은 끝없는 만남의 연속이다. 이 만남을 분류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물질적인 만남 . 시공을 초월할 수 없는 순간적인 한계 속에서이다.
2. 인격적인 만남 . 마찬가지이다.
3. 영적인 만남 . 시공을 초월하는 영원한 관계로 연결된다. 이러한 만남에 있어서 그 대상이 누구이며,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가 가지각색으로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본다. 이 만남 속에서 순간적인 기쁨이 있는가 하면 괴로움과 고통이 되는 만남도 있다. 어떤 사람은 순간의 만족을 위하여 불의한 방법으로 물질을 만남으로 인하여 오래도록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우리는 가끔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인격적인 만남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번민과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는 멍에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번민과 고통을 해결하여 주는 정말 반가운 사람도 있다. 여러분은 늘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 만나기만 하면 지금의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 살고 있다. 엄청난 물질을 만나면 현재의 고통이 해결 될 것이라고 하는 기대를 가지고 살고 있다. 그 사람을 만나서 내 처지를 이야기하면, 지금의 이 문제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물질은 내게서 멀리 있는 것만 같고, 만나서 도움을 청하고 싶은 사람은 왜 그런지 나를 피하는 것 같은 생각에 공연히 마음이 섭섭하게 느껴지는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한가지 분명하게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내가 세상생활에 얽매어 여호와 하나님을 매 순간 만나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만나시기 위하여 분주히 나를 찾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내가 권력의 회전의자에 앉아서 몸을 숨기고 있을 때에나, 재물의 담벼락에 기대어 있을 때에도, 정욕과 환상의 벽 속에 숨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애타게 부르며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선지자 예레미야는 내 영혼의 영원한 안식처까지 약속하여 주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하면서 그 구체적인 만남의 지름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시간 여러분은 만나야 할 그 분을 만나게 됨으로 여러분의 모든 소망을 이루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I. 만나고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잠언 2:3-를 보면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라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설레임의 간절한 소망을 가져야 한다. 찾으면 찾고 말면 말지  하는 성의 없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히브리서 11:6 에 기록한 말씀대로 "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는 신념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인간은 자기의 노력에 의하여 영적인 진리를 깨달아 알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 그 계시가 아니면 하나님에 대하여 안다고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을 찾고 진리를 찾아 나가는데 있어서도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어린 아이와 같이 구하여야 한다. 사람들 간에 있어서 정신력과 이성의 차이는 대단하다. 대학교수와 유치원아간의 차이를 설명하여 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하물며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를 비교하겠는가 바울 선생이 말한대로 인간의 지혜로운 것이 하나님의 미련한 것 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자.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마태는 세리였다. 한 마디로 계산에 빠른 사람이다. 이 계산에 빠른 마태가 예수님의 부르심이있을 때에 계산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의 이 세리 생활 보다는 이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보았다. "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열심으로 참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진지하게 믿으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만나시며 진리이신 예수를 마침내 뵈옵게 될 것이다.
II. 순종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을 만난 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믿을 뿐 아니라 순종하겠다는 자세이다. 믿음이란 순종이 수반되어야 한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무슨 행함을 요구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 줄 상급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순종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1. 75 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 고향을 떠났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났다. 그에게 한가지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니라.>
2. 사랑하는 조카 롯의 종들과 다툼이 있을 때에도 롯은 자기 눈에 보기 좋은 곳을 택하였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였다.
3. 100 세나 되어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요구하였을 때에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자식을 결박하여 희생을 드리고자 결행하였다. 야고보 기자는 이 사실을 아브라함의 행함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순종은 후대에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본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간단하고 명백한 것이다. 진리는 알기 쉽다. 진리를 알고나면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하여 자유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진리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진리를 소유하려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순종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면 순종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이다. "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기도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응답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신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흥정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해 달라고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나에게 대한 하나님의 분부를 받아 들이고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응답 즉 아멘인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통로이다. 기도를 통하여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고백한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끝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회개하고, 하나님은 용서하신다고 하는 것은 진리이다. 이 진리를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기쁨은 경험한 자 밖에는 알 수가 없다.
III. 하나님은 끝이 좋으시다. 하나님의 생각에 대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 11 절 하나님께서 가지신 생각과 계획은 그 시작이나 끝이나 모두 좋으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하나님은 심판 대신에 구원을 주시며 절망 대신에 희망을 주시며 회의와 의심 대신에 확신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생각하자. 산상 보훈에 나타난 주님의 교훈에서도 기도에 관하여 가르치는 가운데 "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라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가르치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구하고 찾는 자에게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하는 약속이 아닌가
그러므로 희망을 가져야 한다. 시 42:5 에서 시편 기자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훈이 무엇인가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결코 피곤해 하거나 불안하여 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이 시련과 역경을 겪을 수록 더욱 큰 소망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약속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여러분에게 주신 것을 믿는가 우리의 신앙생활도 끝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 좋은 끝을 보고야 말겠다고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신앙을 경주에 비교하였다. 아마도 바울은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벌어진 여러가지 경기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그 날에 있었던 경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경기에 출전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을 경주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여가 선용이 아니다. 등산이나 가고 낚시질이나 가는 것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하여 선수들이 가지는 희생을 가져야 한다. 얼마전 삼성과 해태 사이에 벌어진 야구 경기를 보신 분이라면 야구 경기에서 투수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이다. 전력투구라는 말은 아마도 야구 경기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 하나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그의 던지는 공이 위력이 없으면 감독은 가차 없이 투수를 교체한다. 선수들은 새로운 투수가 전력 투구 해 줄 것을 바란다. 혹시 타자가 공을 때렸다 하더라도 내외 야수들이 공을 잘 잡아 주고 온 정력을 기울여 협력하여 주면 팀은 이기게 된다. 여기 여가 선용하러 오신 분이 있는가 그래서는 하나님을 뵈올 수가없다. 전심 전력을 다하라. 실패와 역경에서 낙심되는 일이 있는가 주저 앉아 있기만 할 것인가 전심 전력하여 주님께 호소할 것이다. 모든 것을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마무리를 좋게 하신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기 바란다. 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욱 좋은 것을 계획하고 계신 분이시다.
결론
1. 순간적인 만남 보다는 영원한 만남을 생각하라.
2. 하나님과의 만남은 기도 속에서 풍성하여 진다.
3. 좋은 끝마무리를 생각하고 순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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