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이 사는 길 (삼하24:10-25)
본문
1. 본문은 다윗의 생애에 있어서 두 번째 큰 범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즉위 초기에 보잘 것 없는 군사력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모든 나라들을 점령하고 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의 승리이시며 나의 방패이시며 나의 요새시며 나의 등불이라고 겸손해 했습니다. 그러던 다윗이 본문에 서 보면 정반대로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인간들의 힘을 더욱 의지하는 교만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개 목동을 일약 신정국가 이 스라엘의 왕으로 높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 고 세상에 있는 자신의 권세와 새력을 확인하고자 인구조사를 실시했던 것입니다. 인구조사는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적 눈으로 볼 때 잘 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안목에서 볼 때 이러한 다윗의 행위는 그 어느 죄보다 큰 죄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왕이 되었던 다윗이 이제 세상 권력을 의존하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는 큰 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뒤 늦게 마음에 자책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 가지 재앙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첫째 재앙은 7년 기 근이고,둘째 재앙은 석 달 동안 다윗이 대적에게 쫓겨 다니는 생활이며,셋째 재앙은 나라 전체에 3일 동안 온역(질병)이 휩쓰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각각 기근의 환난, 전쟁의 환난, 병의 환난을 말합니다. 다윗이 선택 한 환난은 병의 환난이었습니다. 결국 이 병의 환난으로 이스라엘 전역에 온역이 돌아 3일 동안에 무려 7만명이나 죽음을 당했습니다. 나라 지도자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7만 명의 백성들이 병의 환난 가운데 죽어 갔습니다. 재앙을 내리는 천사가 계속해서 수도 예루살렘을 치려하자 다윗은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환난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삼하24:17)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다윗의 회개를 들으시고 선지자 갓을 통하여 명 령하십니다.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재앙을 완전히 그치게 하는 방안으로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입니다. 나라 민족 에 내린 재앙을 그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서 제사를 드리고자 했을 때 타작 마당 주인인 아라우나는 거저 왕 에게 드리려고 했으나 다윗은 이렇게 말하며 거저 받기를 거절합니다. "(삼하24:23)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고하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 다 (삼하24:24)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 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 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결국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그 타작 마당을 타당한 값을 치루고 그곳에서 회개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 으시고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앙 을 그치게 하는 제사의 장소로 지시하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은 이후에 솔로몬의 성전 터가 되었습니다. "(대하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 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 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이스라엘 민족의 환난을 그치게 한 이 장소는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워진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인류에 게 내린 환난과 재앙을 그치게 하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전 인류에게 내려진 죽음의 재앙을 멈추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오늘 우리 남북한을 비롯하여 전 세계는 7대 환난과 재앙가운데 있습니다. 이름하여 천재 지변의 환난, 전쟁의 환난, 병의 환난, 정치의 환난, 경제의 환난, 죄악의 환난, 심령 번민의 환난 등에 세계 거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지도자 다윗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의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난과 재앙 가운에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자신의 범죄를 곧 바로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게 되면 얼마든지 이 땅에 내린 환난과 재앙에서 구원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이 땅 에 임하고 있는 재앙과 환난을 멈추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엄청난 환난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상 최대의 풍년을 눈 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먼저 우리 나라의 지난 한 해 동안의 교통사고의 통계를 살펴보면 우리 나라가 환난 가운데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도시 교통연 구소>에서 밝힌 통계 결과는 우리 나라 교통 사고가 "웬만한 전쟁보다 피해 크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교통사고로 1만명 이상이 죽고 30만명이 넘 게 다친다. 지난 10년 동안 3백만명 이상이 죽거나 다친 것이다. 좀 더 풀어서 보면 지난 10년 동안 서 너집에 한 집은 교통사고를 경험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는 흔히 전쟁이 일어나면 망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 승패를 떠나서 일단 전쟁을 치르게 되면 인적 피해도 크고 물적 피해도 커서 국력이 쇠잔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것은 일반화된 얘기다. 그렇 다면 웬만한 전쟁보다 피해가 크다는 교통사고에 대해서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큰 손실을 주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교 통사고로 날려버리는 돈은 6조6천억원에 이르며 이 같은 규모는 매일 1 백 80억원이 교통사고비용으로 날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의 목 숨을 돈으로 바꿀 수 없듯이 사망자의 손실비용도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사고를 당한 가족의 슬픔도 돈으로 환 산할 수 없을 뿐더러 부상당한 사람의 좌절감도 계량화할 수 없기는 마 찬가지다. 계량화할 수 없는 부분의 피해는 더 크고 깊기 때문에 돈으로 환산할 수없다 1년동안의 교통사고로 인한 재산피해액 6조8천억원. 이 돈은 우리나라 GNP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매일 1백80억원씩 증 발되는 재산피해액은 종업원 1백여명의 건실한 중소기업이 1년동안 꾸준 히 벌어들이는 매출액과 맞먹는 돈이다. 자동차사고에 의한 사망자수가 지난해 1만3백23명을 기록, 하루 평균 28명이 교통사고로 귀중한 생명을 잃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철도 선박항공 등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총발생건수는 25만9백42건, 이중 자동차사고가 24만8천8백65건으로 99.1%를 차지했으며, 사망자도 총 1 만8백95명중 자동차에 의한 사망이 99%인 1만3백23명에 달했다. 총사망 자중 자동차사고 사망률이 차지하는 비율은 6.7%,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 요사망 원인중 1위인 암사망률 2
1.3%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하루 28명에 이르는 교통사고 사망자는교통대란이라는 전투현장에서 1 개 소대급 인원들이 매일 희생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망자뿐 아니라 자동차사고에 의해 장애자가 된 피해자들의 후유증은 더 심각하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가 최근 교통사고에 의한 후유장애인 5백1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46.1%가 심각한 생계문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들 중 1년 이내에 사고전의 직장이나 직업으로 돌아간 사람 은 24% 뿐이었으며, 사고를 당한지 5년이 넘도록 실직상태인 피해자가 48.9%나 됐다. 사고충격으로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교 통장애인도 58.4%에 달했으며 이들 중 7
4.2%가 소외감과 사회적 편견 냉대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고려하거나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 경제적 손실이 사망에 의한 손실 못지 않게 크고 심각하다는 것을 단 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 어린이교통안전연구소가 초등학교 1-3학년 생 8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어린이 50.4%가 교통사고를 당 했거나 당할 뻔한 경험이 있고 68.8%는 교통사고를 당할까봐 늘 불안하 다고 밝혀 우리사회에서 교통사고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질병'으로 인 식되고 있다.> 교통사고로 인한 백성들이 당하는 심령 고통의 환난은 측량할 수 없다. 우리 나라의 교통 사고가 이 정도면, 사망률로 보면 전쟁의 환난에 못지 않고, 경제적 손실로 보면 경제의 환난에 틀림없으며, 사고 당사자 및 그 가족들이 당하는 정신적 심적 고통으로 말하면 심령 번민의 환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우리의 동포들인 북한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김정일 한 사람으로 인 하여 북한 땅에 겪고 있는 환난과 재앙은 이렇습니다. "양주 한 병 값이면 북한동포 1만5천명이 한 끼니 먹습니다. 북한주민 들은 하루에 식량을 1백-2백g 배급받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식량기구 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6백-8백g의 식량은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국 제시세로 옥수수 1톤이 1백50-1백70달러입니다. 16만원이 안 되는 돈이 죠. 옥수수 1톤을 현재 배급량인 2백g씩 배급하면 5 천명이 먹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하룻밤 술집에서 마셔버리는 양주 한 병 값이면 북한 사람 1만 5천명이 한 끼니를 먹는다는 얘기입니다" 어찌됐든 북한은 <지도자> 한 사람의 정치 왜곡으로 인해 80%, 1천 7 백만의 인민들이 굶주려 죽어가는 기근의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김일 성이 살아 생전에 북한 전국토에 김일성 동상을 무려 2만 9천개나 세워 하나님 보다 김일성을 우상으로 모셨으니 어찌 한발과 수해 등 천재지변 의 환난을 통한 기근의 환난이 임하지 아니하겠습니까 미국의 월간 라이프 지는 최근 특집호에서 지난 1천년을 만들어낸 1백 대 사건과 1백인의 인물을 선정, 지난 1천년을 회고했습니다. 그 지난 1 천년을 만든 20대 사건 가운데 9위가 히틀러의 출현과 유대인 대학살 사건이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지난 1천년간 출현한 세계 최대의 괴물로 꼽혔습니다. 지난 1933년 권력을 장악한 그의 광기는 1천7백만 군인과 6 천만 민간인, 그리고 6백만 유대인, 도합 8천 3백만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광기로 말미암아 1억 가까운 백성들이 당한 지상 최대의 전쟁과 죽음의 환난이었습니다.
4.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나라 경제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생산 증가율 보다는 소비증가율이 훨씬 높다는 데 있습니다. 관세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모피의류. 화장품. 위스키. 승용 차 등 주요 고급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이 2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최 근 당국이 집계한 20대 주요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통관기준)은 지난 해 20억 9천 4백만 달러를 기록, 전년의 14억 1천 1백만 달러에 비해 무려 48.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양주 한 품목만해도 연간
3,4억 달 러를 고스란히 해외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국가 경쟁력의 지표 가 되는 외환보유고는 형편이 떨어지고 재경원이 공식집계한 총외채와 순외채는 각각 약 1천억 달러와 2백 50억 달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소비행태는 건전치 못할 뿐만 아니라 한계소비 성향이 100.2를 기록하므로 소비증가가 소득증가보다 많다는 것을 보여주 고 있습니다. 한국 여대생들의 옷 신발 가방 장신구 화장품 등 평균적인 몸 치장비는 미국의 3-4배, 일본의 2-3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봉급생활자 등 일 반 서민들의 경우 매달 카드빚으로 카드빚을 갚는 "외상 인생"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외상 구입의 주요 수단인 신용카드의 연체금액이 지 난 3월말 현재 1조 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30대 재벌 그룹이 보유한 자산 총액은 우리 나라 한해 예산의 5배에 육박하는 무려 287조원에 달 하는 데, 이중 자기돈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활은 모두 빚이라고 합니다.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들은 결국 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80%가 거품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맹이는 없고 빈껍데기 뿐 입니다. 우리 나라 경제위기는 이와같은 소위 '거품 경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품'이란 겉보기에는 많아 보이고 부풀어 보이는 것이 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곧 꺼져 버리는 것입니다. '거품'은 자기가 가진실제 보다 자신을 크게 보이게 만들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하고 곧 꺼지면서 자기의 보잘 것 없는 실체를 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거품' 은 경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품경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거품 을 일으켜 놓았습니다. 거품은 정치 경제에만 있지 아니하고 한국 교회에 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인 수가 남한 인구의 1/4 에 이른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빛과 소금'이 1/4이나 되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부정 부패와 사치와 허영, 그리고 음란과 타락으로 더욱 어두 워지고 있으며, 죄악으로 썩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240여 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약 100여명이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데 국회의원들 중에 기업들로 부터 비자금 받지 아니한 의원이 얼마나 됩니까 이 나라의 법을 세우는 의원들이 얼마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사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 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 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 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1:13) 헛 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 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사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 리며 악행을 그치고 (사1: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 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 라." '무수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다할지라도, 제아무리 '많이 기도한다' 할지라도, 각종 절기를 모두 다 지킨다 할지라도 악행과 악업을 버리고 손을 깨끗이 하며 공의와 자비, 선행을 베풀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 수천 수만의 제물보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주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미가 6:8)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는 거품 제사, 신앙은 거품 신앙에 불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거품 의식으로 가득찬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시고 저들의 그 위선 을 날카롭게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행실은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잔치 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즐기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이 자기를 선생이라고 불러 주기를 즐긴다" 저들의 이런 행위는 모두 거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저들이 진정 율법 을 사랑하고 그 율법대로 행하려면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자가 되어 야 하고, 말만 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을 베푸는 자가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화려한 쭉정이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저들의 위선을 꿰뚫어 보시고 저들의 여지없이 공격하시어 저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어 내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경제 정치 사회의 거품을 걷우어내기 전에 먼저 우리 신앙의 거품을 걷어내야 합니다. 나라 민족을 위해 누구를 막론하고 거품들을 걷 어내야합니다. 다시말해 국가 민족이 살 길을 얻기 위해서 나라의 모든 지도자들과 더불어 백성들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지 아니하면, 복음 전파 100년의 역사로 말미암아 5천년역사의 때묻은 가난의 질곡을 벗어 나 누리게 된 국가 민족의 번영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것입니다. 이번 전국 27개 도시를 순회하며 긴급 환난 경고집회가 국가 민족에 내려지고 있는 각종 환난을 멈추게 하는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이 되어지 기를 축원합니다.
5. 마지막으로, 대선을 앞두고 대선 주자들의 탐욕적인 권력 쟁취로 인 한 이 땅에 정치적 환난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소위 '성공한 목사'까지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창당을 서두르고 엄청난 헌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목사는 오직 복음을 전하며 생명을 걸고 진리를 사수 하라고 주어진 직분이지 정치나 하라고 안수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사명의 목표는 성공(success)가 아니라 신실한 증인(gaithful witness)이 되는 것이요, 능력, 권력(power)가 아니라 선포(proclamation) 요, 기술(technique)이 아니라 진리(Truth)요, 방법(method)이 아니라 메시 지(message)인 것입니다. 앞에서 잠깐 소개했던 라이프지 선정, 지난 1천년을 만든 20대 사건 가운데 제 1위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습니다. 예수탄생 이후 두 번째 맞는 천년의 최대 사건은 1455년 독일 대장장이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성경을 인쇄한 사건이었습니다. 귀족과 성직자의 전유물이던 성경은 그의 인쇄기를 통해 일반에 퍼져나갔고, 이후 르네상스와, 문예부 흥과 16세기 종교개혁, 18세기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다시말 해 그간 1천년이 넘게 귀족들과 성직자의 손에 갇혀있었던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이 금속활자 발명으로 말미암아 일반 평민들게 확산되므로 세 계 문화 문명사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암흑기의 중세 교회를 개혁하고 혁명하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확산되기 시작한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18세기 산업 혁명을 가져와 세계 인류의 삶의 패턴을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하나님 말씀, 복음 전파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과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지 세상 정치 권력이나 물질 장악, 성공 등을 퉁해 세상을 점령하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교회 의 가장 강력한 행동은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핍박을 초래할지라도 진리를 사수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지 이익단체나 세상 권세에 대한 압력단체가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독교는 타 종교와 종교단체를 형성하여 정부와 사회에 대하여 한 목소리 를 내자는 압력단체를 결성하고 있습니다. 중세 기독교가 결성한 십자가 군은 약 200년에 걸쳐 8번이나 형성되었지만 여지없이 실패하여 멸망당 하고 교회의 위신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군 이 실패한 자리에 지금 이방 종교 터키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는 역사적 인 사실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교회가 받은 권력(능력)은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 하는 복음전파의 능력(권력)입니다. 복음 전파의 영적인 능력은 세상에서 말하는 권세나 권력과는 무관한 권력, 능력을 말합니다. 마태 복음 28장 18절에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복음 전파를 위 한 영적인 권세를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 예수님께 던진 제자들의 질문은 "(행1:6)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 이까" 였습니다. 제자들은 회복된 나라에서 얼마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나라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왕국을 회복하여 권위와 지위를 가지고 로마인들에게 권력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수 있는 때가 지금입니 까" 그러나 그런 나라에 관한 것은 알 바가 아니고 대신에 그는 능력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 전파의 영적인 능력이었습니다. "(행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행1:8)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 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교세가 크게 확장되 며 나라가 잘 되겠느냐며 엉뚱한 망상에 빠져 있습니다.
또한 소위 "우리 종교"를 가진 신자가 정권을 잡았으니 이 판에 선교도 하고 교세를 확장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종교를 크게 떨치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자 생각한 다면 그것은 비록 있음직한 일이긴 해도 종교다운 발상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답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종교를 종교가 되지 않게 해 버리기 때문에 현실적인 효용의 측면에서 보아도 결코 득이 되는 일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인이 자기네 신자라고 희희락락한다거나 어떤 정치 인이 자기네 신자도 아닌데 자기네 종교를 찾아왔다고 해서 즐거워한다 거나, 고위층 인사나 국회의원 등 권력층이 자기네 교회에 많다고 긍지를 가지거나, 자기네 종교 신자인 정치인이 다른 종교에 찾아가 축복을 받으 러 왔다고 해서 토라진다거나 하는 것은 한결같이 종교가 참으로 비굴할 정도로 정치 세력 앞에서 맥을 못 추는 추잡한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아직도 이 땅에 근절되지 못하고 있는 정경유착의 부패고리 못 지않은 정.종유착(政.宗癒着)의 부패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는 부패한 정치 세력에 대해 크게 비판적이어야지, 그 힘의 그늘 에서 어떻게 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라면 그것은 이미 종 교가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의 또 다른 정치 집단일뿐입니다. 인류의 종교 역사는 종교가 그 시대의 아픔과 고난에 동참했을 때는 그 존재 의미가 확연했지만, 세력과 돈 주머니를 잔뜩 거머 쥐고 이른바 그 영화로움을 누리게 되면 이미 그 존재 의미가 탈색되고, 마침내 얼마 가지 못해서 사 실상 소멸될 수밖에 없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랑곳없이 오늘의 종교들은 그 아픔과 고난의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면서도 권력과 금 력의 그늘 아래서 오히려 영화로움을 누리려는 듯한 종교 타락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혹자는 나라 민족을 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기독교인들이 정부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언뜻 보면 이 방법이 한 국 가와 백성의 도덕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지름길같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순진무구하고도 위험천만한 승리지상주의의 발로(發露)입니다. 기독교인들을 고위 공직에 세우면 모든 사회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은 주제넘은 생각일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며 진실되 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일찌감치 로마 원로원을 점령했을 것입니다. 권력이란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는 분명한 구별이 있어야 합니다. 종교적인 주장 은 선지자의 몫이지 정치지도자의 몫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첫 번째 자격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떠 들어 대는 소리는 종교와 정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無知蒙昧) 것입니다. 다른 전문분야와 마찬가지로, 정치인들도 자신들의 품성뿐만 아니라 각자의 자질과 능력을 근거로 선출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 엘의 신정정치에서조차 볼 수 있었던 사실입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를 권하여 "(출18:21)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루터는 무능한 크리스챤보다 유능한 터키 사람에게 통치받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정 치 지도자들은 권력 쟁취를 위해 종교에 아부하며 종교를 더럽히고 있으 며, 종교는 이들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 놀음과 권력 앞에 치졸하고 비겁 한 추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월간지 <신동아>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는 대선 주자 가운데 유일한 개신교 신자. 따라서 자민련측에선 은근히 개신교 신자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김총재는 감리교단의 모(母)교회인 정동감리교회에 30년 가까이 다니 고 있다. 오랫 동안 집사로 있다가 지난 4월에 권사로 승진 했다고 한다. 김총재는 80년 관훈토론회에서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밝 힌 적이 있다.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의문을 가 졌습니다. 그래서 통 안가다가 66년부터 정동교회에 적을 두었습니다. 제 아우는 자다 말고 성경을 읽는 깊은 신앙인입니다만 나는 일요일에도 잘 안 갑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안식을 필요로 할 때 교회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목사님을 모셔다가 조찬기도회 같은 모임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김총재의 집안은 종교가 모두 다르다. 김총재의 부인 박영옥 여 사는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에는 개인 사정으로 성당에 자주 못 나간다고 전한다. 현재 파나마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김총재의 외아들 김진씨 역시 가톨릭 신자. 한편 김총재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딸 예리씨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청연화(靑蓮花)라는 법명을 가지고 있다. 지난 초파일에 전국 사찰에 가장 많은 연등을 단 것으로 알려진 예리씨는 김총재와 불교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맡고 있다. 김총재 자신도 불교 와 인연이 있다.
92년 대선 무렵 원불교 종법사에게서 수산(首山)이라는 법호를 받은 것. 그런 인연 탓인지 김총재는 지난 5월14일 법호 수산을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여 부처님오신 날 메시지를 발표했다. 김총재는 자신 이 믿지 않는 종교의 예식에 참여하는 데 대해자기가 믿는 종교가 소 중하면 타인이 믿는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존중론에 입각해 보면 문제가 없다고 원론적으로 답변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 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6:15) 그리스도와 벨 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 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 셨느니라 (고후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고후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전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 치 아니하노라 (고전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치 못하리라 (고전10:22) 그러 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권력의 매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의지가 강한 크리스 챤이라도 한번 권력의 맛을 보면섬김의 도리에서 쉽게 벗어나게 되는 것 입니다. 아랫 사람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류 최초의 범죄도 바로 권력에 대한 미혹 그 자체였습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고 하나님께 속한 권력(power)을 획득할 수 있 다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에덴 동산의 죄는 권력 (power)의 죄"라고 말했습니다. 권력은 처음부터 사탄의 강력한 무기 중 의 하나가 되어 왔습니다. 예수께서 사탄으로부터 받은 시험도 바로 그 권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밀턴은 그가 쓴 <실락원>에서 루시퍼에 대해 말하기를 "다스리는 일 은 지옥에서라도 해 볼 만한 것이다. 천국에서 섬기는 것보다는 지옥에서 다스리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인류 구속의 사역을 하시면서 권력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철저하게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마20: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 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마20: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 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20: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 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20: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 20: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 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 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눅22: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막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계급의식이 강했던 당시 문화 속에서는 혁명 적인 메시지였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회당의 특별석에 앉고, 주인들은 노예를 지배하고, 남자는 여자 위에 군림함으로써 신분과 특권이 엄격 하게 분리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권력과 돈, 명성과 영향력이 다 양한 형태로 우상화되고 있는 오늘날 동서양의 계급의식 문화 속에서도 거의 혁명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계급 파괴', '신분 파괴', '권력 파괴'의 폭탄 선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권력은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으며, 창조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파 괴하는 권력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삶을 위한 필요한 모든 것이 풍요롭고 완벽한 에덴 동산, 그야말로 낙원에 살았지만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 금단의 열매를 먹어치웠습니다. 그것이 바 로 권력의 죄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마땅한 것 이상의 존재가 되려 했고, 그 이상을 갖고자 했으며, 알려고 했습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피조물임을 알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았어야 했던 것입니다. 종교는 종교 이상 의 것을 차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는 복음 전파이외의 다른 사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능력, 성령님 이상 의 것을 차지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허영의 시대에 빠져 대중매체에 열광적으로 미치고 있습니다. TV에 출연하는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고 TV를 비롯하여 대중매체 에 출연 여부가 그 사람의 지명도와 능력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기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머거리지는 <그리스도와 대중매체>에서 만일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셨던 시험을 오늘날 당하게 되었다면 사탄 은 네 번째의 시험, 즉 국영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것을 제의했으리라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재물(Mammon)이 또 하나의 권세로 그 위력을 떨 치고 있습니다. 폴 트르니에는 "GNP가 현대의 금송아지"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Sex), 종교적 율법주의, 기술문명, 자기도취, 군국주의, 절대 적 회의주의 등도 이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권세들입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는 이들 권세들을 어떻게 멸망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골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 셨느니라."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일만 천군천사를 불러 세상 정사와 권세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 분은 힘의 논리를 사용하기를 거절하셨 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이 세상 정사 와 권세들을 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야만 그 권세들을 깨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 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엡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엡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엡6:17) 구원의 투 구와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강력한 무기인 것입니다. "(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참으로 십자가는 모든 관계를 치료하는 창조적인 권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은 먼저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다음으로 인간과 인간과의 파괴된 관계가 회 복되었으며, 더 나아가 나와 그것, 즉 자연과의 관계도 회복된 것입니다. "(롬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 목제물로 세우셨으니."
그러므로 진정한 권력은 십자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세상을 점령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권력에 대해 맞불작전으로 세상 권력을 동원하지 말고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리석어 보여도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참된 권력은 십자가에 보여준 종의 형체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참된 권력은 십자가에 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겸손에서 유지되는 것입니다. 권력에는 파괴하는 권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창조하는 권 력도 존재합니다. 창조하는 권력은 생명과 기쁨 그리고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창조하는 권력은 관계를 소생시켜 주며 참된 자유와 변화를 가져옵니다. 창조하는 권력은 영적인 능력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입니다. 또한 창조하는 권력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줍니다. 모세의 경우가 그 렇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사람이었으나 그는 그 권력으로부터 도망칠 것을 강요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광야에서 그는 새로 운 경험을 했는데 곧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에 돌아와 바로의 권세에 대항하여 호령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는 이미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손에 들려진 것은 양을 치는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옛날의 교만은 간데 없고 그 자리에는 온유함과 겸손 그리고 확신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내 백성을 내어 보내라."는 힘찬 그의 명 령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하의 바로 조차도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창조하는 권력은 이처럼 참된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성도의 무기가 있다면 바로 십자가입니다. 진 정한 능력(권력)은 십자가의 희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진정한 능력(권 력)은 십자가의 겸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진정한 능력(권력)은 십자가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끝까지 지고 가야할 것이 있 다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 민족을 위해 끝까지 지고 가야 할 것이 있다면 십자가입니다. 이 나라 통일을 위해 끝까지 지고 가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이 나라 민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고전 1;23)가 믿지 않는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여도 구원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 하나 사명자는 십자가를 구하여야 합니다. 사명자는 십자가만을, 그리스도께서 못박히신 십자가만을 자랑하여야 합니다.
6. 국가와 민족이 사는 변화의 역사는 무엇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바울은 누구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한 때 그는 박해자였으며, 침략군 이 도시를 약탈하듯, 멧돼지가 포도원을 약탈하듯 교회를 약탈하던 자였 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늘로서 빛이 그를 비추었던 것입니다. "(행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그 한 순간에 그리스도의 원수였던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 되었 습니다. 그것은 그 때 한 인간이 죽고 다른 인간이 태어났다고 밖에 달리 말할 길이 없습니다. 옛 바울은 죽고, 새 바울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는 누구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때문 이었습니다. 깊은 밤 어두움 속에 잠겨가고 있는 이 나라 민족이 사는 길은 역사의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부정 부패, 사치와 허영, 음란를 추방하는 길은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우상숭배를 추방하고 그 세력을 꺾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역사의 찌꺼기 사회주의 세력을 일소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세우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여호와의 정부>를 세우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 민족의 역사가 새로워 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새로워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이 나라 민족의 내일의 새로운 역사를 위해 때를 얻든지 못 든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기치를 높 이 세워 이 땅에 모든 환난을 멈추게 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국가와 민족이 사는 길, 상부 인생들의 범죄로 인해 이 땅에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7대 환난에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 권력이 아니라 7대 환난에서 나라 민족을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복음의 능력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왕이 되었던 다윗이 이제 세상 권력을 의존하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는 큰 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뒤 늦게 마음에 자책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 가지 재앙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첫째 재앙은 7년 기 근이고,둘째 재앙은 석 달 동안 다윗이 대적에게 쫓겨 다니는 생활이며,셋째 재앙은 나라 전체에 3일 동안 온역(질병)이 휩쓰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각각 기근의 환난, 전쟁의 환난, 병의 환난을 말합니다. 다윗이 선택 한 환난은 병의 환난이었습니다. 결국 이 병의 환난으로 이스라엘 전역에 온역이 돌아 3일 동안에 무려 7만명이나 죽음을 당했습니다. 나라 지도자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7만 명의 백성들이 병의 환난 가운데 죽어 갔습니다. 재앙을 내리는 천사가 계속해서 수도 예루살렘을 치려하자 다윗은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환난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삼하24:17)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다윗의 회개를 들으시고 선지자 갓을 통하여 명 령하십니다.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재앙을 완전히 그치게 하는 방안으로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입니다. 나라 민족 에 내린 재앙을 그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서 제사를 드리고자 했을 때 타작 마당 주인인 아라우나는 거저 왕 에게 드리려고 했으나 다윗은 이렇게 말하며 거저 받기를 거절합니다. "(삼하24:23)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고하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 다 (삼하24:24)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 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 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결국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그 타작 마당을 타당한 값을 치루고 그곳에서 회개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 으시고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앙 을 그치게 하는 제사의 장소로 지시하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은 이후에 솔로몬의 성전 터가 되었습니다. "(대하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 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 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이스라엘 민족의 환난을 그치게 한 이 장소는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워진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인류에 게 내린 환난과 재앙을 그치게 하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전 인류에게 내려진 죽음의 재앙을 멈추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오늘 우리 남북한을 비롯하여 전 세계는 7대 환난과 재앙가운데 있습니다. 이름하여 천재 지변의 환난, 전쟁의 환난, 병의 환난, 정치의 환난, 경제의 환난, 죄악의 환난, 심령 번민의 환난 등에 세계 거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지도자 다윗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의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난과 재앙 가운에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자신의 범죄를 곧 바로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게 되면 얼마든지 이 땅에 내린 환난과 재앙에서 구원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이 땅 에 임하고 있는 재앙과 환난을 멈추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엄청난 환난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상 최대의 풍년을 눈 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먼저 우리 나라의 지난 한 해 동안의 교통사고의 통계를 살펴보면 우리 나라가 환난 가운데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도시 교통연 구소>에서 밝힌 통계 결과는 우리 나라 교통 사고가 "웬만한 전쟁보다 피해 크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교통사고로 1만명 이상이 죽고 30만명이 넘 게 다친다. 지난 10년 동안 3백만명 이상이 죽거나 다친 것이다. 좀 더 풀어서 보면 지난 10년 동안 서 너집에 한 집은 교통사고를 경험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는 흔히 전쟁이 일어나면 망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 승패를 떠나서 일단 전쟁을 치르게 되면 인적 피해도 크고 물적 피해도 커서 국력이 쇠잔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것은 일반화된 얘기다. 그렇 다면 웬만한 전쟁보다 피해가 크다는 교통사고에 대해서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큰 손실을 주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교 통사고로 날려버리는 돈은 6조6천억원에 이르며 이 같은 규모는 매일 1 백 80억원이 교통사고비용으로 날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의 목 숨을 돈으로 바꿀 수 없듯이 사망자의 손실비용도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사고를 당한 가족의 슬픔도 돈으로 환 산할 수 없을 뿐더러 부상당한 사람의 좌절감도 계량화할 수 없기는 마 찬가지다. 계량화할 수 없는 부분의 피해는 더 크고 깊기 때문에 돈으로 환산할 수없다 1년동안의 교통사고로 인한 재산피해액 6조8천억원. 이 돈은 우리나라 GNP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매일 1백80억원씩 증 발되는 재산피해액은 종업원 1백여명의 건실한 중소기업이 1년동안 꾸준 히 벌어들이는 매출액과 맞먹는 돈이다. 자동차사고에 의한 사망자수가 지난해 1만3백23명을 기록, 하루 평균 28명이 교통사고로 귀중한 생명을 잃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철도 선박항공 등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총발생건수는 25만9백42건, 이중 자동차사고가 24만8천8백65건으로 99.1%를 차지했으며, 사망자도 총 1 만8백95명중 자동차에 의한 사망이 99%인 1만3백23명에 달했다. 총사망 자중 자동차사고 사망률이 차지하는 비율은 6.7%,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 요사망 원인중 1위인 암사망률 2
1.3%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하루 28명에 이르는 교통사고 사망자는교통대란이라는 전투현장에서 1 개 소대급 인원들이 매일 희생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망자뿐 아니라 자동차사고에 의해 장애자가 된 피해자들의 후유증은 더 심각하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가 최근 교통사고에 의한 후유장애인 5백1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46.1%가 심각한 생계문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들 중 1년 이내에 사고전의 직장이나 직업으로 돌아간 사람 은 24% 뿐이었으며, 사고를 당한지 5년이 넘도록 실직상태인 피해자가 48.9%나 됐다. 사고충격으로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교 통장애인도 58.4%에 달했으며 이들 중 7
4.2%가 소외감과 사회적 편견 냉대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고려하거나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 경제적 손실이 사망에 의한 손실 못지 않게 크고 심각하다는 것을 단 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 어린이교통안전연구소가 초등학교 1-3학년 생 8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어린이 50.4%가 교통사고를 당 했거나 당할 뻔한 경험이 있고 68.8%는 교통사고를 당할까봐 늘 불안하 다고 밝혀 우리사회에서 교통사고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질병'으로 인 식되고 있다.> 교통사고로 인한 백성들이 당하는 심령 고통의 환난은 측량할 수 없다. 우리 나라의 교통 사고가 이 정도면, 사망률로 보면 전쟁의 환난에 못지 않고, 경제적 손실로 보면 경제의 환난에 틀림없으며, 사고 당사자 및 그 가족들이 당하는 정신적 심적 고통으로 말하면 심령 번민의 환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우리의 동포들인 북한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김정일 한 사람으로 인 하여 북한 땅에 겪고 있는 환난과 재앙은 이렇습니다. "양주 한 병 값이면 북한동포 1만5천명이 한 끼니 먹습니다. 북한주민 들은 하루에 식량을 1백-2백g 배급받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식량기구 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6백-8백g의 식량은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국 제시세로 옥수수 1톤이 1백50-1백70달러입니다. 16만원이 안 되는 돈이 죠. 옥수수 1톤을 현재 배급량인 2백g씩 배급하면 5 천명이 먹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하룻밤 술집에서 마셔버리는 양주 한 병 값이면 북한 사람 1만 5천명이 한 끼니를 먹는다는 얘기입니다" 어찌됐든 북한은 <지도자> 한 사람의 정치 왜곡으로 인해 80%, 1천 7 백만의 인민들이 굶주려 죽어가는 기근의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김일 성이 살아 생전에 북한 전국토에 김일성 동상을 무려 2만 9천개나 세워 하나님 보다 김일성을 우상으로 모셨으니 어찌 한발과 수해 등 천재지변 의 환난을 통한 기근의 환난이 임하지 아니하겠습니까 미국의 월간 라이프 지는 최근 특집호에서 지난 1천년을 만들어낸 1백 대 사건과 1백인의 인물을 선정, 지난 1천년을 회고했습니다. 그 지난 1 천년을 만든 20대 사건 가운데 9위가 히틀러의 출현과 유대인 대학살 사건이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지난 1천년간 출현한 세계 최대의 괴물로 꼽혔습니다. 지난 1933년 권력을 장악한 그의 광기는 1천7백만 군인과 6 천만 민간인, 그리고 6백만 유대인, 도합 8천 3백만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광기로 말미암아 1억 가까운 백성들이 당한 지상 최대의 전쟁과 죽음의 환난이었습니다.
4.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나라 경제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생산 증가율 보다는 소비증가율이 훨씬 높다는 데 있습니다. 관세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모피의류. 화장품. 위스키. 승용 차 등 주요 고급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이 2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최 근 당국이 집계한 20대 주요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통관기준)은 지난 해 20억 9천 4백만 달러를 기록, 전년의 14억 1천 1백만 달러에 비해 무려 48.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양주 한 품목만해도 연간
3,4억 달 러를 고스란히 해외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국가 경쟁력의 지표 가 되는 외환보유고는 형편이 떨어지고 재경원이 공식집계한 총외채와 순외채는 각각 약 1천억 달러와 2백 50억 달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소비행태는 건전치 못할 뿐만 아니라 한계소비 성향이 100.2를 기록하므로 소비증가가 소득증가보다 많다는 것을 보여주 고 있습니다. 한국 여대생들의 옷 신발 가방 장신구 화장품 등 평균적인 몸 치장비는 미국의 3-4배, 일본의 2-3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봉급생활자 등 일 반 서민들의 경우 매달 카드빚으로 카드빚을 갚는 "외상 인생"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외상 구입의 주요 수단인 신용카드의 연체금액이 지 난 3월말 현재 1조 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30대 재벌 그룹이 보유한 자산 총액은 우리 나라 한해 예산의 5배에 육박하는 무려 287조원에 달 하는 데, 이중 자기돈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활은 모두 빚이라고 합니다.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들은 결국 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80%가 거품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맹이는 없고 빈껍데기 뿐 입니다. 우리 나라 경제위기는 이와같은 소위 '거품 경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품'이란 겉보기에는 많아 보이고 부풀어 보이는 것이 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곧 꺼져 버리는 것입니다. '거품'은 자기가 가진실제 보다 자신을 크게 보이게 만들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하고 곧 꺼지면서 자기의 보잘 것 없는 실체를 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거품' 은 경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품경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거품 을 일으켜 놓았습니다. 거품은 정치 경제에만 있지 아니하고 한국 교회에 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인 수가 남한 인구의 1/4 에 이른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빛과 소금'이 1/4이나 되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부정 부패와 사치와 허영, 그리고 음란과 타락으로 더욱 어두 워지고 있으며, 죄악으로 썩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240여 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약 100여명이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데 국회의원들 중에 기업들로 부터 비자금 받지 아니한 의원이 얼마나 됩니까 이 나라의 법을 세우는 의원들이 얼마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사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 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 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 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1:13) 헛 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 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사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 리며 악행을 그치고 (사1: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 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 라." '무수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다할지라도, 제아무리 '많이 기도한다' 할지라도, 각종 절기를 모두 다 지킨다 할지라도 악행과 악업을 버리고 손을 깨끗이 하며 공의와 자비, 선행을 베풀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 수천 수만의 제물보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주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미가 6:8)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는 거품 제사, 신앙은 거품 신앙에 불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거품 의식으로 가득찬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시고 저들의 그 위선 을 날카롭게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행실은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잔치 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즐기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이 자기를 선생이라고 불러 주기를 즐긴다" 저들의 이런 행위는 모두 거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저들이 진정 율법 을 사랑하고 그 율법대로 행하려면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자가 되어 야 하고, 말만 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을 베푸는 자가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화려한 쭉정이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저들의 위선을 꿰뚫어 보시고 저들의 여지없이 공격하시어 저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어 내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경제 정치 사회의 거품을 걷우어내기 전에 먼저 우리 신앙의 거품을 걷어내야 합니다. 나라 민족을 위해 누구를 막론하고 거품들을 걷 어내야합니다. 다시말해 국가 민족이 살 길을 얻기 위해서 나라의 모든 지도자들과 더불어 백성들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지 아니하면, 복음 전파 100년의 역사로 말미암아 5천년역사의 때묻은 가난의 질곡을 벗어 나 누리게 된 국가 민족의 번영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것입니다. 이번 전국 27개 도시를 순회하며 긴급 환난 경고집회가 국가 민족에 내려지고 있는 각종 환난을 멈추게 하는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이 되어지 기를 축원합니다.
5. 마지막으로, 대선을 앞두고 대선 주자들의 탐욕적인 권력 쟁취로 인 한 이 땅에 정치적 환난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소위 '성공한 목사'까지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창당을 서두르고 엄청난 헌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목사는 오직 복음을 전하며 생명을 걸고 진리를 사수 하라고 주어진 직분이지 정치나 하라고 안수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사명의 목표는 성공(success)가 아니라 신실한 증인(gaithful witness)이 되는 것이요, 능력, 권력(power)가 아니라 선포(proclamation) 요, 기술(technique)이 아니라 진리(Truth)요, 방법(method)이 아니라 메시 지(message)인 것입니다. 앞에서 잠깐 소개했던 라이프지 선정, 지난 1천년을 만든 20대 사건 가운데 제 1위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습니다. 예수탄생 이후 두 번째 맞는 천년의 최대 사건은 1455년 독일 대장장이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성경을 인쇄한 사건이었습니다. 귀족과 성직자의 전유물이던 성경은 그의 인쇄기를 통해 일반에 퍼져나갔고, 이후 르네상스와, 문예부 흥과 16세기 종교개혁, 18세기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다시말 해 그간 1천년이 넘게 귀족들과 성직자의 손에 갇혀있었던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이 금속활자 발명으로 말미암아 일반 평민들게 확산되므로 세 계 문화 문명사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암흑기의 중세 교회를 개혁하고 혁명하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확산되기 시작한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18세기 산업 혁명을 가져와 세계 인류의 삶의 패턴을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하나님 말씀, 복음 전파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과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지 세상 정치 권력이나 물질 장악, 성공 등을 퉁해 세상을 점령하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교회 의 가장 강력한 행동은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핍박을 초래할지라도 진리를 사수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지 이익단체나 세상 권세에 대한 압력단체가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독교는 타 종교와 종교단체를 형성하여 정부와 사회에 대하여 한 목소리 를 내자는 압력단체를 결성하고 있습니다. 중세 기독교가 결성한 십자가 군은 약 200년에 걸쳐 8번이나 형성되었지만 여지없이 실패하여 멸망당 하고 교회의 위신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군 이 실패한 자리에 지금 이방 종교 터키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는 역사적 인 사실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교회가 받은 권력(능력)은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 하는 복음전파의 능력(권력)입니다. 복음 전파의 영적인 능력은 세상에서 말하는 권세나 권력과는 무관한 권력, 능력을 말합니다. 마태 복음 28장 18절에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복음 전파를 위 한 영적인 권세를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 예수님께 던진 제자들의 질문은 "(행1:6)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 이까" 였습니다. 제자들은 회복된 나라에서 얼마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나라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왕국을 회복하여 권위와 지위를 가지고 로마인들에게 권력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수 있는 때가 지금입니 까" 그러나 그런 나라에 관한 것은 알 바가 아니고 대신에 그는 능력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 전파의 영적인 능력이었습니다. "(행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행1:8)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 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교세가 크게 확장되 며 나라가 잘 되겠느냐며 엉뚱한 망상에 빠져 있습니다.
또한 소위 "우리 종교"를 가진 신자가 정권을 잡았으니 이 판에 선교도 하고 교세를 확장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종교를 크게 떨치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자 생각한 다면 그것은 비록 있음직한 일이긴 해도 종교다운 발상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답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종교를 종교가 되지 않게 해 버리기 때문에 현실적인 효용의 측면에서 보아도 결코 득이 되는 일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인이 자기네 신자라고 희희락락한다거나 어떤 정치 인이 자기네 신자도 아닌데 자기네 종교를 찾아왔다고 해서 즐거워한다 거나, 고위층 인사나 국회의원 등 권력층이 자기네 교회에 많다고 긍지를 가지거나, 자기네 종교 신자인 정치인이 다른 종교에 찾아가 축복을 받으 러 왔다고 해서 토라진다거나 하는 것은 한결같이 종교가 참으로 비굴할 정도로 정치 세력 앞에서 맥을 못 추는 추잡한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아직도 이 땅에 근절되지 못하고 있는 정경유착의 부패고리 못 지않은 정.종유착(政.宗癒着)의 부패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는 부패한 정치 세력에 대해 크게 비판적이어야지, 그 힘의 그늘 에서 어떻게 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라면 그것은 이미 종 교가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의 또 다른 정치 집단일뿐입니다. 인류의 종교 역사는 종교가 그 시대의 아픔과 고난에 동참했을 때는 그 존재 의미가 확연했지만, 세력과 돈 주머니를 잔뜩 거머 쥐고 이른바 그 영화로움을 누리게 되면 이미 그 존재 의미가 탈색되고, 마침내 얼마 가지 못해서 사 실상 소멸될 수밖에 없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랑곳없이 오늘의 종교들은 그 아픔과 고난의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면서도 권력과 금 력의 그늘 아래서 오히려 영화로움을 누리려는 듯한 종교 타락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혹자는 나라 민족을 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기독교인들이 정부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언뜻 보면 이 방법이 한 국 가와 백성의 도덕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지름길같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순진무구하고도 위험천만한 승리지상주의의 발로(發露)입니다. 기독교인들을 고위 공직에 세우면 모든 사회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은 주제넘은 생각일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며 진실되 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일찌감치 로마 원로원을 점령했을 것입니다. 권력이란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는 분명한 구별이 있어야 합니다. 종교적인 주장 은 선지자의 몫이지 정치지도자의 몫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첫 번째 자격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떠 들어 대는 소리는 종교와 정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無知蒙昧) 것입니다. 다른 전문분야와 마찬가지로, 정치인들도 자신들의 품성뿐만 아니라 각자의 자질과 능력을 근거로 선출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 엘의 신정정치에서조차 볼 수 있었던 사실입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를 권하여 "(출18:21)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루터는 무능한 크리스챤보다 유능한 터키 사람에게 통치받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정 치 지도자들은 권력 쟁취를 위해 종교에 아부하며 종교를 더럽히고 있으 며, 종교는 이들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 놀음과 권력 앞에 치졸하고 비겁 한 추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월간지 <신동아>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는 대선 주자 가운데 유일한 개신교 신자. 따라서 자민련측에선 은근히 개신교 신자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김총재는 감리교단의 모(母)교회인 정동감리교회에 30년 가까이 다니 고 있다. 오랫 동안 집사로 있다가 지난 4월에 권사로 승진 했다고 한다. 김총재는 80년 관훈토론회에서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밝 힌 적이 있다.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의문을 가 졌습니다. 그래서 통 안가다가 66년부터 정동교회에 적을 두었습니다. 제 아우는 자다 말고 성경을 읽는 깊은 신앙인입니다만 나는 일요일에도 잘 안 갑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안식을 필요로 할 때 교회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목사님을 모셔다가 조찬기도회 같은 모임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김총재의 집안은 종교가 모두 다르다. 김총재의 부인 박영옥 여 사는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에는 개인 사정으로 성당에 자주 못 나간다고 전한다. 현재 파나마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김총재의 외아들 김진씨 역시 가톨릭 신자. 한편 김총재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딸 예리씨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청연화(靑蓮花)라는 법명을 가지고 있다. 지난 초파일에 전국 사찰에 가장 많은 연등을 단 것으로 알려진 예리씨는 김총재와 불교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맡고 있다. 김총재 자신도 불교 와 인연이 있다.
92년 대선 무렵 원불교 종법사에게서 수산(首山)이라는 법호를 받은 것. 그런 인연 탓인지 김총재는 지난 5월14일 법호 수산을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여 부처님오신 날 메시지를 발표했다. 김총재는 자신 이 믿지 않는 종교의 예식에 참여하는 데 대해자기가 믿는 종교가 소 중하면 타인이 믿는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존중론에 입각해 보면 문제가 없다고 원론적으로 답변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 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6:15) 그리스도와 벨 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 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 셨느니라 (고후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고후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전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 치 아니하노라 (고전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치 못하리라 (고전10:22) 그러 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권력의 매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의지가 강한 크리스 챤이라도 한번 권력의 맛을 보면섬김의 도리에서 쉽게 벗어나게 되는 것 입니다. 아랫 사람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류 최초의 범죄도 바로 권력에 대한 미혹 그 자체였습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고 하나님께 속한 권력(power)을 획득할 수 있 다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에덴 동산의 죄는 권력 (power)의 죄"라고 말했습니다. 권력은 처음부터 사탄의 강력한 무기 중 의 하나가 되어 왔습니다. 예수께서 사탄으로부터 받은 시험도 바로 그 권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밀턴은 그가 쓴 <실락원>에서 루시퍼에 대해 말하기를 "다스리는 일 은 지옥에서라도 해 볼 만한 것이다. 천국에서 섬기는 것보다는 지옥에서 다스리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인류 구속의 사역을 하시면서 권력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철저하게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마20: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 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마20: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 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20: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 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20: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 20: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 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 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눅22: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막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계급의식이 강했던 당시 문화 속에서는 혁명 적인 메시지였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회당의 특별석에 앉고, 주인들은 노예를 지배하고, 남자는 여자 위에 군림함으로써 신분과 특권이 엄격 하게 분리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권력과 돈, 명성과 영향력이 다 양한 형태로 우상화되고 있는 오늘날 동서양의 계급의식 문화 속에서도 거의 혁명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계급 파괴', '신분 파괴', '권력 파괴'의 폭탄 선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권력은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으며, 창조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파 괴하는 권력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삶을 위한 필요한 모든 것이 풍요롭고 완벽한 에덴 동산, 그야말로 낙원에 살았지만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 금단의 열매를 먹어치웠습니다. 그것이 바 로 권력의 죄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마땅한 것 이상의 존재가 되려 했고, 그 이상을 갖고자 했으며, 알려고 했습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피조물임을 알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았어야 했던 것입니다. 종교는 종교 이상 의 것을 차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는 복음 전파이외의 다른 사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능력, 성령님 이상 의 것을 차지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허영의 시대에 빠져 대중매체에 열광적으로 미치고 있습니다. TV에 출연하는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고 TV를 비롯하여 대중매체 에 출연 여부가 그 사람의 지명도와 능력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기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머거리지는 <그리스도와 대중매체>에서 만일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셨던 시험을 오늘날 당하게 되었다면 사탄 은 네 번째의 시험, 즉 국영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것을 제의했으리라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재물(Mammon)이 또 하나의 권세로 그 위력을 떨 치고 있습니다. 폴 트르니에는 "GNP가 현대의 금송아지"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Sex), 종교적 율법주의, 기술문명, 자기도취, 군국주의, 절대 적 회의주의 등도 이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권세들입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는 이들 권세들을 어떻게 멸망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골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 셨느니라."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일만 천군천사를 불러 세상 정사와 권세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 분은 힘의 논리를 사용하기를 거절하셨 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이 세상 정사 와 권세들을 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야만 그 권세들을 깨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 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엡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엡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엡6:17) 구원의 투 구와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강력한 무기인 것입니다. "(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참으로 십자가는 모든 관계를 치료하는 창조적인 권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은 먼저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다음으로 인간과 인간과의 파괴된 관계가 회 복되었으며, 더 나아가 나와 그것, 즉 자연과의 관계도 회복된 것입니다. "(롬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 목제물로 세우셨으니."
그러므로 진정한 권력은 십자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세상을 점령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권력에 대해 맞불작전으로 세상 권력을 동원하지 말고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리석어 보여도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참된 권력은 십자가에 보여준 종의 형체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참된 권력은 십자가에 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겸손에서 유지되는 것입니다. 권력에는 파괴하는 권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창조하는 권 력도 존재합니다. 창조하는 권력은 생명과 기쁨 그리고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창조하는 권력은 관계를 소생시켜 주며 참된 자유와 변화를 가져옵니다. 창조하는 권력은 영적인 능력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입니다. 또한 창조하는 권력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줍니다. 모세의 경우가 그 렇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사람이었으나 그는 그 권력으로부터 도망칠 것을 강요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광야에서 그는 새로 운 경험을 했는데 곧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에 돌아와 바로의 권세에 대항하여 호령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는 이미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손에 들려진 것은 양을 치는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옛날의 교만은 간데 없고 그 자리에는 온유함과 겸손 그리고 확신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내 백성을 내어 보내라."는 힘찬 그의 명 령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하의 바로 조차도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창조하는 권력은 이처럼 참된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성도의 무기가 있다면 바로 십자가입니다. 진 정한 능력(권력)은 십자가의 희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진정한 능력(권 력)은 십자가의 겸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진정한 능력(권력)은 십자가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끝까지 지고 가야할 것이 있 다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 민족을 위해 끝까지 지고 가야 할 것이 있다면 십자가입니다. 이 나라 통일을 위해 끝까지 지고 가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이 나라 민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고전 1;23)가 믿지 않는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여도 구원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 하나 사명자는 십자가를 구하여야 합니다. 사명자는 십자가만을, 그리스도께서 못박히신 십자가만을 자랑하여야 합니다.
6. 국가와 민족이 사는 변화의 역사는 무엇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바울은 누구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한 때 그는 박해자였으며, 침략군 이 도시를 약탈하듯, 멧돼지가 포도원을 약탈하듯 교회를 약탈하던 자였 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늘로서 빛이 그를 비추었던 것입니다. "(행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그 한 순간에 그리스도의 원수였던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 되었 습니다. 그것은 그 때 한 인간이 죽고 다른 인간이 태어났다고 밖에 달리 말할 길이 없습니다. 옛 바울은 죽고, 새 바울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는 누구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때문 이었습니다. 깊은 밤 어두움 속에 잠겨가고 있는 이 나라 민족이 사는 길은 역사의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부정 부패, 사치와 허영, 음란를 추방하는 길은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우상숭배를 추방하고 그 세력을 꺾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역사의 찌꺼기 사회주의 세력을 일소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세우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여호와의 정부>를 세우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 민족의 역사가 새로워 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새로워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이 나라 민족의 내일의 새로운 역사를 위해 때를 얻든지 못 든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기치를 높 이 세워 이 땅에 모든 환난을 멈추게 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국가와 민족이 사는 길, 상부 인생들의 범죄로 인해 이 땅에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7대 환난에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 권력이 아니라 7대 환난에서 나라 민족을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복음의 능력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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