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요2:1-12)
본문
정경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기독교적 교훈을 주는 외경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모르지만,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산에 올라갈 때 각자 돌을 하나씩 들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나름대로 돌을 하나씩 들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아주 대조적으로 돌을 들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 성질이 급해서 덜렁대는 것이 흠이지만 예수님의 수제자답게 베드로는 힘에 겨울 정도로 큰 돌을 들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돌은 무슨 돌하고 콧방귀를 뀌며 조그마한 돌 하나를 들고 유유히 걸어갔습니다. 어느듯, 산에 다 올라가게 되자,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향해서 기도하시고,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가지고 간 돌이 떡이 되었습니다. 그 날 베드로는 자기 이름대로 배가 드로나도록 포식을 했고, 가룟유다는 자기가 들고 간손 바닥만한 떡하나 먹고 쫄쫄히 굶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여호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습니까 순종을 통해서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충만하게 살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복받는 비결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게,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말씀에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저는 이 말씀이 그렇게 은혜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복받는 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주님의 말씀대로 온전하게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장인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命)하는 그 모든 명령(命令)을 지켜 행(行)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世界) 모든 민족(民族)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福)이 네게 임(臨)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城邑)에서도 복(福)을 받고 들에서도 복(福)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所生)과 네 토지(土地)의 소산(所産)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牛羊)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福)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福)을 받고 나가도 복(福)을 받을 것이니라' 중국에 어질기로 유명한 순 임금님이 하루는 신하들에게 일을 시켰는데 아주 엉뚱한 일을 시켰습니다. 즉 밑 빠진 독에다 물을 부어서 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하들은 밑 빠진 독에 물을 길어 붙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예 임금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신하는 이것이 부질없는 일인줄 알면서도 임금님이 명하신 일이기에 끝까지 물을 길어다 부었습니다. 아무리 부어도 밑빠진 독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우물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어느듯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물 바닥이 번쩍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알고보니 우물 밑바닥에 커다란 금덩어리가 있었습니다. 임금님 말씀에 순종한 신하는 그 금을 임금님에게 가져다 드렸습니다. 그러자 순임금님은 순종한 신하를 크게 치하하시고, 그 금을 상금으로 주셨습니다. 때로는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 답답하게 보입니다. 융통성이 없어 보입니다. 지혜가 없어 보입니다.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지도자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으니라.' 우리는 얼마나 순종하고 있습니까 어디까지 순종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성경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속에 수많은 기적의 사건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이 기적을 통해서 참으로 귀한 메시지를 들려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공생애중 가장 첫 번째로 행하신 오늘의 기적 사건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기적을 영어로 Miracle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기적이라는 말을 쓸 때 두 가지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공관복음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로서 '두나메이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능력, 기사, 이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 속에서 특별하게 역사함으로써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요한복음에서는 '세메이어'라는 독특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 표시, 사인이라는 뜻으로서 오늘 본문11절에서는 '표적'이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이 표적이라는 말은 기적이라는 말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즉 이 말은 단순하게 놀라움을 주는 기적사건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기적사건보다는 오히려 기적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기적을 통한 놀라움 자체보다 오히려 기적의 이면에 담긴 영적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표적의 참 뜻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님께서는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각양 각색의 병든 자를 고치셨고, 죽은자 까지도 살리셨습니다. 바다 위를 걸으셨고, 성난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많은 기적 가운데서 유독 7개 기적 사건만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영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비교해서 기적을 훨씬 깊고 고상한 차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자라나셨던 나사렛 동리에서 가까운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났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계셨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함께 청함을 받은 것을 보면, 오늘의 결혼잔치는 예수님과 모종의 인척관계 되는 사람 집에서 행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실 결혼식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지키는 삼대 종교 절기와 같이 혼인잔치를 무려 일주일동안 합니다. 말이 일주일이지 일주일 동안 손님치른다는 것이 보통 일입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일주일동안 하는 잔치가 없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하는 장례식도 최근에는 삼일장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러나 상주들은 거의 쓰러질 정도로 지쳐버립니다. 그러니 1주일 동안 하는 잔치는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혼주는 자신이 직접 음식을 장만하지 않고 대신 그 일을 할 연회장을 두어서 잔치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잔치를 치르는 집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잔치 집에 꼭 있어야 할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목포 같으면 홍어회가 떨어져다 할까요. 아무튼 잔치를 치르는 혼주와 일을 맡은 연회장은 입장이 아주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먼저 아시고 예수님에게 부탁합니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저는 이것이 매우 훌륭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지금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도 누구인지 정확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기도 아주 적절한 시기에 예수님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그리고 끝입니다. 포도주를 만들어 내라든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든지, 아무튼 뒷말이 없습니다. 그저 지금의 형편만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올바른 기도란 자기의 입장과 처지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형편을 말하기 보다는 내 욕망, 내 소원 아뢰는데 급급하지 않습니까 요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십시오. 만사형통, 풍성풍성하게 주빗시오. 사실 훌륭한 기도는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도 간단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형편을 간단하게 아뢰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분은, 응답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 까지 간여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어머니의 부탁을 받은 예수님의 반응은 너무나 뜻밖입니다. 4절 말씀에 '여자(女子)여 나와 무슨 상관(相關)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어찌보면 아주 냉정한 말처럼 들립니다. 어머니로서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얼마나 위대한 믿음입니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바로 이 믿음과 순종이 놀라운 기적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혼인잔치 장면이 조금 바뀌게 됩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잔치 상에서 바깥 뜰에 있는 돌항아리로 장면이 바뀝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큰 돌 항아리입니다. 그리고 이 항아리를 놓은 목적은 유대인의 정결법에 따라 식사 전에 손을 씻기 위해 쓰일 물을 담아 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왜 굳이 이 돌 항아리 광경을 놓치지 않고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얼마나 크고, 풍성하게 넘쳤는가 하는 점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이 기적의 역사가 단지 사이다 병에 조금 담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돌로 만든 큰 항아리, 그것도 아구까지 꽉 채운 량이었으니 질적으로, 양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기적이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할 것은 이 놀라운 기적의 이면에는 참으로 놀라운 믿음의 순종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인들은 이유도 영문도 모르고, 그저 우리 주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니까 물을 채웠습니다. 그것도 물을 담는 흉내만 낸 것이 아닙니다. 아구까지 꽉 채웠습니다. 그리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순종입니다. 또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어라" 하니까 갖다 주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그런데 아주 의미있는 말씀이 9절 말씀에 나옵니다. '연회장(宴會長)은 물로 된 포도주(葡萄酒)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下人)들은 알더라'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말씀앞에 순종한 사람만이 은혜의 깊이를 압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십일조의 축복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 생활하는 사람만이 그 복을 깨닫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새벽기도회의 축복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 제단을 쌓는 사람만이 그 복을 아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제하는 삶의 복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하는 사람만이 그 복을 아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달고 오묘한 말씀의 은혜를 맛보는 것입니다. 오늘 잔치집에서 그러했습니다. 잔치를 배설한 연회장도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손님도 몰랐고, 신랑도 몰랐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이 하인만이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의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순종은 가장 신비한 은혜요, 가장 능력있는 은사요, 가장 아름다운 축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기적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혼인잔치 집에서 일어났습니다. 혼인잔치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자리입니다. 신랑, 신부, 부모님, 하객들이 다 즐거워 합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참 목적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삶에 기쁨을 주는 종교입니다. 소망을 꿈꾸게 하는 종교입니다.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 종교입니다. 우울하고 침통하게 사는 것은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 우울증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불면증에 시달려서도 안됩니다. 주님께 모든것 다 맡기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기독교는 금욕의 종교가 아닙니다. 금식 자주하고, 철야 많이 한다고 믿음 좋은 것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밥 안 먹고, 잠 안 자고, 금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절제하는 것입니다. 절제와 금욕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들이 예수 믿고 첫 번째 변화는 삶에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장 말씀이 육신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2장 물이 포도주로 변함,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질적 변화입니다. 3장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중생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물과 성령님으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4장 수가성의 여인, 예수님 만나고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우리의 삶, 또한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합니다.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일어났습니까 회당에서 일어났습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갈릴리 가나의 작은 가정에서 일어났습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섬김의 참 뜻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섬기는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랑하기 위해서,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고 그저 자신은 가슴 깊이 주님의 은혜를 간직하면서 초라한 곳에서 은밀한 곳에서, 아무런 보상도, 명예도 바라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조그마한 일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 이것이 우리 주님께 가장 크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봉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삶의 조그마한 부분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기적이 왜 일어났습니까 여러분! 포도주가 없다고 당장 굶어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잔치를 배설한 사람에게는 아주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의 참으로 넓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흔히들 어떤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크게 두가지 반응을 합니다. 한 사람은 그 잘못을 비판하고, 지적합니다. 그런가 하면 오히려 잘못을 감싸주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도와줍니까 아니면 비판만 합니까 우리 주님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봉사입니다. 불행과 곤경에 빠진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 진정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병든 자를 찾아가서 위로하는 것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 쌀이라도 팔아서 찾아가서 격려하는 것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소망을 잃고, 용기를 잃고, 좌절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 넣는 것,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요, 미국 남부지역인 침례교 목사인 말틴 루터 킹목사는 미국 남부 지역인 멤피스에서 백인에게 살해 당하기 전에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유언처럼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나는 당신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싶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거창한 장례식을 삼가해 주십시오. 그리고 긴 칭찬의 말도 삼가해 주십시오. 또 내가 노벨상 수상자라는 것도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학벌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말틴 루터 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다가 갔다고 말해 주십시요.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주기 위해, 헐벗은 사람들에 옷을 주기 위해 살다가 갔다고 말해 주십시오.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살다가 죽은 사랑의 사람이라고 말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한해를 맞이한 것 같이 우리들도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아름답게, 귀하게, 사랑스럽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며 돕고, 격려하면서 살아가십시다. 또한 주님의 뜻일진대 힘들더라도 순종하십시다. 끝까지 참고 순종하십시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순종하십시다. ` 순종할 때 우리는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아주 대조적으로 돌을 들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 성질이 급해서 덜렁대는 것이 흠이지만 예수님의 수제자답게 베드로는 힘에 겨울 정도로 큰 돌을 들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돌은 무슨 돌하고 콧방귀를 뀌며 조그마한 돌 하나를 들고 유유히 걸어갔습니다. 어느듯, 산에 다 올라가게 되자,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향해서 기도하시고,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가지고 간 돌이 떡이 되었습니다. 그 날 베드로는 자기 이름대로 배가 드로나도록 포식을 했고, 가룟유다는 자기가 들고 간손 바닥만한 떡하나 먹고 쫄쫄히 굶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여호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습니까 순종을 통해서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충만하게 살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복받는 비결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게,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말씀에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저는 이 말씀이 그렇게 은혜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복받는 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주님의 말씀대로 온전하게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장인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命)하는 그 모든 명령(命令)을 지켜 행(行)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世界) 모든 민족(民族)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福)이 네게 임(臨)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城邑)에서도 복(福)을 받고 들에서도 복(福)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所生)과 네 토지(土地)의 소산(所産)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牛羊)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福)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福)을 받고 나가도 복(福)을 받을 것이니라' 중국에 어질기로 유명한 순 임금님이 하루는 신하들에게 일을 시켰는데 아주 엉뚱한 일을 시켰습니다. 즉 밑 빠진 독에다 물을 부어서 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하들은 밑 빠진 독에 물을 길어 붙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예 임금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신하는 이것이 부질없는 일인줄 알면서도 임금님이 명하신 일이기에 끝까지 물을 길어다 부었습니다. 아무리 부어도 밑빠진 독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우물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어느듯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물 바닥이 번쩍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알고보니 우물 밑바닥에 커다란 금덩어리가 있었습니다. 임금님 말씀에 순종한 신하는 그 금을 임금님에게 가져다 드렸습니다. 그러자 순임금님은 순종한 신하를 크게 치하하시고, 그 금을 상금으로 주셨습니다. 때로는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 답답하게 보입니다. 융통성이 없어 보입니다. 지혜가 없어 보입니다.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지도자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으니라.' 우리는 얼마나 순종하고 있습니까 어디까지 순종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성경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속에 수많은 기적의 사건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이 기적을 통해서 참으로 귀한 메시지를 들려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공생애중 가장 첫 번째로 행하신 오늘의 기적 사건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기적을 영어로 Miracle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기적이라는 말을 쓸 때 두 가지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공관복음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로서 '두나메이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능력, 기사, 이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 속에서 특별하게 역사함으로써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요한복음에서는 '세메이어'라는 독특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 표시, 사인이라는 뜻으로서 오늘 본문11절에서는 '표적'이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이 표적이라는 말은 기적이라는 말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즉 이 말은 단순하게 놀라움을 주는 기적사건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기적사건보다는 오히려 기적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기적을 통한 놀라움 자체보다 오히려 기적의 이면에 담긴 영적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표적의 참 뜻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님께서는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각양 각색의 병든 자를 고치셨고, 죽은자 까지도 살리셨습니다. 바다 위를 걸으셨고, 성난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많은 기적 가운데서 유독 7개 기적 사건만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영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비교해서 기적을 훨씬 깊고 고상한 차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자라나셨던 나사렛 동리에서 가까운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났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계셨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함께 청함을 받은 것을 보면, 오늘의 결혼잔치는 예수님과 모종의 인척관계 되는 사람 집에서 행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실 결혼식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지키는 삼대 종교 절기와 같이 혼인잔치를 무려 일주일동안 합니다. 말이 일주일이지 일주일 동안 손님치른다는 것이 보통 일입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일주일동안 하는 잔치가 없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하는 장례식도 최근에는 삼일장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러나 상주들은 거의 쓰러질 정도로 지쳐버립니다. 그러니 1주일 동안 하는 잔치는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혼주는 자신이 직접 음식을 장만하지 않고 대신 그 일을 할 연회장을 두어서 잔치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잔치를 치르는 집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잔치 집에 꼭 있어야 할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목포 같으면 홍어회가 떨어져다 할까요. 아무튼 잔치를 치르는 혼주와 일을 맡은 연회장은 입장이 아주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먼저 아시고 예수님에게 부탁합니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저는 이것이 매우 훌륭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지금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도 누구인지 정확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기도 아주 적절한 시기에 예수님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그리고 끝입니다. 포도주를 만들어 내라든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든지, 아무튼 뒷말이 없습니다. 그저 지금의 형편만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올바른 기도란 자기의 입장과 처지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형편을 말하기 보다는 내 욕망, 내 소원 아뢰는데 급급하지 않습니까 요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십시오. 만사형통, 풍성풍성하게 주빗시오. 사실 훌륭한 기도는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도 간단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형편을 간단하게 아뢰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분은, 응답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 까지 간여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어머니의 부탁을 받은 예수님의 반응은 너무나 뜻밖입니다. 4절 말씀에 '여자(女子)여 나와 무슨 상관(相關)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어찌보면 아주 냉정한 말처럼 들립니다. 어머니로서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얼마나 위대한 믿음입니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바로 이 믿음과 순종이 놀라운 기적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혼인잔치 장면이 조금 바뀌게 됩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잔치 상에서 바깥 뜰에 있는 돌항아리로 장면이 바뀝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큰 돌 항아리입니다. 그리고 이 항아리를 놓은 목적은 유대인의 정결법에 따라 식사 전에 손을 씻기 위해 쓰일 물을 담아 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왜 굳이 이 돌 항아리 광경을 놓치지 않고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얼마나 크고, 풍성하게 넘쳤는가 하는 점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이 기적의 역사가 단지 사이다 병에 조금 담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돌로 만든 큰 항아리, 그것도 아구까지 꽉 채운 량이었으니 질적으로, 양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기적이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할 것은 이 놀라운 기적의 이면에는 참으로 놀라운 믿음의 순종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인들은 이유도 영문도 모르고, 그저 우리 주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니까 물을 채웠습니다. 그것도 물을 담는 흉내만 낸 것이 아닙니다. 아구까지 꽉 채웠습니다. 그리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순종입니다. 또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어라" 하니까 갖다 주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그런데 아주 의미있는 말씀이 9절 말씀에 나옵니다. '연회장(宴會長)은 물로 된 포도주(葡萄酒)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下人)들은 알더라'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말씀앞에 순종한 사람만이 은혜의 깊이를 압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십일조의 축복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 생활하는 사람만이 그 복을 깨닫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새벽기도회의 축복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 제단을 쌓는 사람만이 그 복을 아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제하는 삶의 복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하는 사람만이 그 복을 아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달고 오묘한 말씀의 은혜를 맛보는 것입니다. 오늘 잔치집에서 그러했습니다. 잔치를 배설한 연회장도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손님도 몰랐고, 신랑도 몰랐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이 하인만이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의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순종은 가장 신비한 은혜요, 가장 능력있는 은사요, 가장 아름다운 축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기적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혼인잔치 집에서 일어났습니다. 혼인잔치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자리입니다. 신랑, 신부, 부모님, 하객들이 다 즐거워 합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참 목적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삶에 기쁨을 주는 종교입니다. 소망을 꿈꾸게 하는 종교입니다.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 종교입니다. 우울하고 침통하게 사는 것은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 우울증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불면증에 시달려서도 안됩니다. 주님께 모든것 다 맡기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기독교는 금욕의 종교가 아닙니다. 금식 자주하고, 철야 많이 한다고 믿음 좋은 것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밥 안 먹고, 잠 안 자고, 금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절제하는 것입니다. 절제와 금욕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들이 예수 믿고 첫 번째 변화는 삶에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장 말씀이 육신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2장 물이 포도주로 변함,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질적 변화입니다. 3장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중생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물과 성령님으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4장 수가성의 여인, 예수님 만나고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우리의 삶, 또한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합니다.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일어났습니까 회당에서 일어났습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갈릴리 가나의 작은 가정에서 일어났습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섬김의 참 뜻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섬기는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랑하기 위해서,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고 그저 자신은 가슴 깊이 주님의 은혜를 간직하면서 초라한 곳에서 은밀한 곳에서, 아무런 보상도, 명예도 바라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조그마한 일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 이것이 우리 주님께 가장 크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봉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삶의 조그마한 부분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기적이 왜 일어났습니까 여러분! 포도주가 없다고 당장 굶어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잔치를 배설한 사람에게는 아주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의 참으로 넓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흔히들 어떤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크게 두가지 반응을 합니다. 한 사람은 그 잘못을 비판하고, 지적합니다. 그런가 하면 오히려 잘못을 감싸주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도와줍니까 아니면 비판만 합니까 우리 주님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봉사입니다. 불행과 곤경에 빠진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 진정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병든 자를 찾아가서 위로하는 것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 쌀이라도 팔아서 찾아가서 격려하는 것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소망을 잃고, 용기를 잃고, 좌절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 넣는 것,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요, 미국 남부지역인 침례교 목사인 말틴 루터 킹목사는 미국 남부 지역인 멤피스에서 백인에게 살해 당하기 전에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유언처럼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나는 당신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싶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거창한 장례식을 삼가해 주십시오. 그리고 긴 칭찬의 말도 삼가해 주십시오. 또 내가 노벨상 수상자라는 것도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학벌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말틴 루터 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다가 갔다고 말해 주십시요.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주기 위해, 헐벗은 사람들에 옷을 주기 위해 살다가 갔다고 말해 주십시오.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살다가 죽은 사랑의 사람이라고 말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한해를 맞이한 것 같이 우리들도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아름답게, 귀하게, 사랑스럽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며 돕고, 격려하면서 살아가십시다. 또한 주님의 뜻일진대 힘들더라도 순종하십시다. 끝까지 참고 순종하십시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순종하십시다. ` 순종할 때 우리는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