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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일을 만날는지 알지못하노라 (행2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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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명한 목사님께서 은퇴찬하 예배에서 목회하면서 가장 감격스러웠고 평생을 두고 잊을수 없는 사건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평안도 어는 산골에서 목회할때 6.25사변이 터졌답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 굴속에 숨어서 막연히 자유스럽게 활동할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믿음 좋은 여자 권사님께서 목사님을 위하여 나물캐는 아낙네로 변장을 하고 바구니속에 음식을 감추어 가지고 와서 조석으로 공궤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9.28 수복후에 갑자기 월남하게되여 목사님은 서울에서 30년동안 목회를 성공적으로 잘 하시여 저명한 목사님으로 은퇴를 하시게 되였지만 권사님의 생사는 알길이 없었습니다. 새벽에 기도할때마다 목사를 지극한 정성으로 사랑해준 아름다운 모습이 목사님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였고 잠시도 방심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하고 교인들을 돌보아 왔다고 간증했습니다. 위대한 목회자 배후에는 훌륭한 성도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일신제단에 불리여 온지 어연 2년이 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대로 일신제단에서 일할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우리 사랑하시는 일신성도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본문에 입각하여 부족한 종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목회자요 신학자요 전도자요 그리고 영광의 순교자였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항구도시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초청하여 예배를 드리며 설교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만나기위하여 100리 이상을 달려왔고 지난날 자기들을 사랑하며 흘렸던 눈물과 고생을 생각하며 그리고 바울선생이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인데 당신의 앞날에 무슨일을 당할런지 알지못한다고 이번이 마지막이 될런지도 모른다는 말에 서로 목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던 것입니다. 사랑과 눈물이 메말라가는 오늘의 교회에 서로 목을 껴안고 우는 순전한 모습에 한없는 동경심이 갑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사랑이 담임목사와 성도들 사이에 넘쳐 흐르기를 바랍니다. 18절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라” 이 말씀은 바울이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 까지 시종여일하게 변함없는 마음으로 충성하였다는 말씀입니다.저도 처음과 나중이 한결 같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에배소 교회를 책망하실때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시종여일하지 못함을 혹독히 책망하셨습니다. 처음은 잘하다가 나중은 엉망인 사람은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책망을 받아 마땅합니다. 사람에게 큰 단점은 처움과 나중이 한결같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으로 시작했다가 미움으로 마치고,성령님으로 시작했다가 사탄으로 끝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어떤의미에서 시종여일하지 못한것이 제일 나쁜점이기도 합니다. 목사와 교회에 있어서 처음에는 열심을 내다가 시들어지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매너리즘이라는 것에 빠져 버리면 하나님 말씀에도 무감각한 냉냉한 목사,냉냉한 교회가 돼 버립니다. 저는 이런 위험성에 빠질까봐 제일 염려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크게 성장해도 처음 제가 일신교회에 부임할 당시 처럼 순전한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목회할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제 많은 교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은 목사나 교인이 처음과 나중이 달라져서 일어나는 문제 입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목사를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배척하고,모셔오기에 앞장섰던 사람이 목사를 내쫒는데 앞장서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이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적고 크고간에 이런일이 생기기 시작하면 교회는 평안한 날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시아에 처음들어간 첫날 부터 떠날때까지 시종여일 했던 것을 본받아 우리 모두 시종여일한 신앙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9a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에서 바울은 겸손과 눈물의 목자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에 일류대학 출신이요 의원 법관출신으로서 교만할만도 한데 성경을 보면 그의 마음은 겸손과 눈물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안드레 머레이는 말하기를 “피조물의 영광은 겸손이요 속죄의 비결도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며 하나님은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교만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합니다. 겸손의 제일 구체적인 표현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스펄죤 목사는 “기도하지 않고 성공했으면 성공한 그것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왜 망하느냐 교만한것 때문에 망한다.교만은 그 자체가 죄요 겸손은 그 자체가 믿음이다.교만은 그 자체가 부패한 증거요 겸손은 성결한 증거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스펄죤은 자기가 말한대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 기도의 사람으로 능력의 설교자가 되였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서로 높아지려는 교만때문입니다. 목사의 교만때문에 순진한 양들이 울고,교인들의 교만때문에 목사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괴로움을 겪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스펄죤 목사님처럼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겸손한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겸손은 곧 예수님의 마음이요 예수 잘 믿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빌2:5-11에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예수믿는 우리 예수의 겸손을 배웁시다. 예수는 하늘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여 나셨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것이 나겠느냐” 할정도로 경시하는 나사렛에서 자랐습니다.
예수는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는 세리와 창기와 같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는 평생을 섬기는 자로 사셨고 당신의 뜻대로 살지 않으시고 보내신 이-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 가셧습니다.그러나 3일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만인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이라고 합니다.지금은 성령님으로 역사하시는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천상천하에 뛰여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토록 겸손하셨는데 우리는 더욱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섬기는 종의 도를 실현해 가는 예수의 사람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19b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섬겼다”고 말씀합니다.바울은 잘 참는 목자였습니다 주의 종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버림을 당해도 멀쩡이 당하면서 괴로움을 참아내야합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있어도 참아 내야 합니다. 교인들이 무슨 말을 하던간에 참아 낼수 있는 종이 되도록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속회의 지도자/속장은 속도들 보다 더 참아야 합니다. 권사는 집사보다 더 참아야 합니다. 장로는 권사보다 더 참아야 합니다. 목사는 장로보다 더 참아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참지 아니하고는 결코 평화로울수가 없습니다. 목사에게 이상한 오해가 생길때가 있습니다. 전혀 목사의 마음과 전혀 다른 엉뚱한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때도 참을 수있는 인내의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21절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0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였다” 합니다.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는 주님의 종이였습니다. 설교는 목사의 생명입니다. 성도들이 목사의 설교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설교에서 설교하는 자가 물론 중요하지만 듣는 자의 자세가 더 훌륭한 설교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들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고 말씀하였습니다. 행 10:에 고넬료 백부장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고넬료는 당시 세도 당당한 로마 군대의 고급 장교였습니다. 그가 베드로의 설교를 듣기위하여 일가 친척과 가까운 친구를 모아 기다리다가 베드로가 들어서자 엎드려 큰 절을 하엿습니다. 베드로가 일으켜세우며 ”일어나라 나도 사람이다“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다시 고넬료가 베드로와 사람들앞에 나서서 말하기를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설교들을 준비하며 겸손한 태도에 그만 성령님의 감동이 휘몰아 쳤습니다.말씀을 전하자 방언은사가 터지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이방인 선교에 획기적인 사건이 되였고 당시 이방인에게도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초대교회 본부 예루살렘교회에서 소동이 일어 났었습니다. 이쯤되면 설교자는 먼저 감동을 받아 설교를 잘하게 돼있습니다. 훌륭한 설교는 훌륭한 회중-아멘 성도를 만나야 합니다. 강단에서 외치는 말씀은 여러분이 들어주지 않는다면
2,30분간 허공치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아무리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라도 듣는 자의 자세가 올바르지 못하면 은혜가 될수가 없습니다. 잘 듣고 은혜 받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설교하는 저에게 고넬료와 그의 사람들처럼 감동의 바람을 불어 넣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성령님의 신바람이 나서 하나님 은혜의 설교자 능력의 설교자 우리 일시제단의 큰 능력의 종이 될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20절 “바울은 무엇이든지 공중앞에서나 집에서나 꺼리김없이 전하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바울은 당신이 말씀 전한대로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목사는 강단에서는 천사인데 가정에서는 다릅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신사이나 보지 않는 곳에서는 불의한 행동을 일삼는 위선자가 있습니다. 목사앞에서는 착하고 선한 양같은 교인이 돌아서서는 갖은 모략과 흉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왕에게 아멜렉을 진멸하도록 명령하셨을때 사울왕은 기름지고 살진 짐승을 진멸하지 않고 몰래 자기 뒷마당에 감추어 놓았습니다. 이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후회거리요 하나님께 근심거리가 되면 큰일입니다. 혹시 나 때문에 하나님께 후회되도록 하신 일은 없으신지요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는 자녀가 되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된 주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울왕이 사무엘 선지자를 보자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다 준행하였다고 호언장담 했습니다. 그때 공교롭게도 뒷마당 에서는 아말렉에서 끌려온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무엘은 “내귀에 들려오는 양의 울음소리와 소의 울음소리는 어찜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사람은 뒷마당의 소리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앞마당이 좋아 보이는 것처럼 잘 믿는 것처럼 신사 숙녀 처럼 미끈하게 꾸밀수 있지만 뒷마당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위선이요 외식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뒷마당을 살피시고 계십니다. 뒤에 감추인 사람과 물질에 위선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시 21a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에게 유대인은 자기 동포요 헬라인은 그가 공부한 문화권이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백성 유대인 뿐만 아니라 자기가 공부하고 성숙한 배경이되였던 헬라문화권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목회는 사람을 살리는 성사업입니다.
그러므로 그 대상이 결코 한정될수가 없습니다. 우리 일신교회에만 한정된것이 아니라 중구용산지방,서울 특별시 전역,우리 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목회하는 목회하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때에 미국의 덴만 박사가 내한하여 전국 순회 집회 당시에 저의 모 교회에 오셔서 집회할때에 세계선교와 국내 선교에 뜻을 둔 사람들이 앞에 나와서 서원 기도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그 때 저는 국내 선교에 뜻을 두고 모세와 같은 민족을 위하여 일하는 주의 종이 되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고 서원하였습니다. 그후 지금 까지 저는 국외 선교 보다는 국내 선교 특히 농어촌 선교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특별히 지방 시골동리마다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저의 꿈이기도 합니다. 지방에는 작지마는 경건의 분위기가 흐르는 아름다운 교회가 건축돼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가 될수 있습니다. 다 쓸어져가는 움막집 같은 교회가 아직도 농어촌에는 많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를 새로 지어 주는 운동을 펴고 싶습니다. 전원속에 걸맞는 아름다운 교회! 누구든 한번 들어가 보고싶은 교회를 지어 주는 운동을 펴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선교 운동이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막대한 헌금이 투자되고 있습니다. 시골교회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아니 교인들에게 조차 개척교회나 시골교회 돕는 것은 인기가 없습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십시요 저는 우리 일신교회가 좀더 부흥하면 매년 한 교회씩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를 이룩해 가는 데 앞장을 서고 싶습니다. 도시나 지방이나 똑같이 부흥되는 교회가 되여져 가는 것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실천사업으로 지방출신 대학생을 위한 선교관과 회현역 노숙노무자무료급식선교관을 운영하였으면 합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2절,24절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인데 거기서 무슨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나의 달려갈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생명까지도 바치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그대로 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 사명에 살고 복음 사명에 죽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사각오로 철두철미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인생 행로는 언제나 험란한 일이었고 죽음이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길을 회피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중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할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기서 무슨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달려갈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을 다하는 일에 생명까지도 바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은 각오가 필요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 각오란 설교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기가 무서워서 의를 버리고 죽음을 모면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찌 죽든 인간은 한번 죽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사형장에 나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영광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열번 죽고 백번 죽어도 좋지만 예수님을 버리고 백년살고 천년살면 무엇합니까 오 주여 이목숨을 아껴 주님께 욕되지 않게 하옵소서 이몸이 죽고 죽어 가루가 될지라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옵소서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최후의 피 한방울 까지도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 날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 하겠습니까/ 다만 일사 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승리입니까 사도바울이 걸어간길 우리 한국교회 초대교회의 사도바울 주기철목사님이 걸으신길 그리고 많은 주의 종들이 이길을 걸어갔기에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신목사도 이 사명의 길을 걷도록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교인 없이 훌륭한 목사가 될수 없습니다. 또한 은혜로운 목사 없이 좋은 양이 나올리가 없습니다. 우리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므로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이 부족한 종이 여러분에게 은혜롭게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상을 보이기에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바라옵기는 우리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충성으로 저의 심장이 뛰게 하여 주시고 겸손히 일하므로 머리가 숙여지게 하시고 모든 허물을 감싸주시므로 감동의 눈물이 재단을 적시게 하시고 여러분의 눈물이 저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저는사랑하는 성도들에게서 때때로 천사와 같은 모습들을 보고는 합니다. 짧은 인생 나그내길에서 에베소교회의 목사 바울같이, 장로님들같이, 모든 성도가 서로 사랑하며 아끼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회-일신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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