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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성벽 (느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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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볼 때 그 나라가 어떤 종교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회와 문화는 많은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가령 티베트 같은 곳은 아침에 잠이 깬 사람들이 돼지우리에서 나오 기도하고 개와 함께 자다가 나오기도 하고 원숭이나 고양이 등과 같은 동물들과 자다가 부시시 일어난다고 합니다.그들은 전생 즉, 윤회설을 믿기 때문에 전생에 내가 개일수도 있고 또 앞으로 고양이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특별히 자기를 따르는 동물이 있으면 죽은 어머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도에 외교관으로 나갔던 분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어느 날 저녁에 차를 뒤로 후진시켰는데 그 차뒤에 놀고 있는 아이를 보지 못하고 그만 차에 치어 죽고 말았답니다.큰일 났다는 생각에 그 아이를 들고 어머니에게 찾아가 말하기를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아이가 뒤에서 노는 것을 보지 못하고 차를 후진시키다가 아이가 죽었으니 돈으로라도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어머니는 태연스럽게 말하기를 “아니예요 아이들은 많은데요,뭐 그 아이가 죽고 사는 것은 그 아이의 자신의 운명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 하더랍니다.죽든 살든 가난하든 부하든 자신의 운명이라고만 생각하는 운명론적 불교 사상을 믿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발전이 없습니다. 기독교 사상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성경의 사상을 요약해 본다면 인간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패하고 타락하고 패배한 장소에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셨습니다.성서의 역사는 이와 같은 사람들의 역사입니다.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보내신 느혜미야라는 선지자를 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무너진 성벽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상 숭배로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그 결과로 나라는
B.C 586에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침략을 당해서 성전과 성벽이 무너지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그들은 거기서 약70년간의 포로 생활을 하였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죄에 빠졌던 그들이었지만 그들을 사랑하셔서 스룹바벨이라는 지도자를 통하여 제1차로 포로들을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그리고 이어서 에스라라는 학자를 통하여 제2차 포로 귀환을 하도록 하셨습니다.그들은 고국에 오자마자 성전을 지으며 영적부흥운동을 하였습니다.그 후 1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예루살렘의 성벽은 여전히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느혜미아는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하나니라는 자신의 동생을 통하여 듣게 된 것입니다.그리고 그 때부터 그의 마음 속에는 더욱 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소원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의 허락을 얻어 이스라엘로 제3차 귀환을 하게 된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다. “내가 예루살렘에 거한지 삼 일에”말씀 그대로 느혜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온지 삼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그가 이제 예루살렘에 돌아 온 사실 속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세 가지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개인의 이익과 영광을 추구하기보다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인격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느혜미야의 직책을 주목해 보십시다.1:11에 보면 그는 술 관원 이라고 했습니다. 왕이 마시는 술을 담당하는 직책을 말합니다.사실 어떻게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직책같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고대사회에서 음식이나 술을 담당하는 사람은 왕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음식에 얼마든지 독을 타서 반란을 꾀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더욱이 느혜미야는 잡혀 온 포로 중의 하나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신임 받는 측근이 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젼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그냥 머물러 있는 다면 그는 계속해서 출세의 길이 열리는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의 동족을 위하여 떠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그들을 위하여 희생하기로 다짐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어떤 조그만 마을에 황금 알을 낳는 닭이 있었습니다.마을 사람들은 그 닭의 알을 하루에 한집씩 돌아가면서 갖기로 상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중 어리석고 욕심 많은 한 사람이 그 닭의 배를 갈라 버리고 말았습니다.닭의 뱃속에는 알이 많을 테니 그 알을 몽땅 혼자 가지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기적인 면이 다 있습니다.그러나 이런 이기성을 버릴 때 하나님의 축복이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아브라함이 자기 자식만 생각하여 이삭을 바치지 않았다면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를 대접하지 않고 자기들만 먹으려고 밀가루와 기름을 감추어 두었다면 그 극한 가뭄 동안에도 차고 넘치는 축복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진 아이가 자기만 생각하여 주님께 내어놓지 않았다면 광야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복음성가에 이런 가사가 있잖습니까.“이상하다 동전 한잎 욺켜 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위에 가득하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주님께서 자신을 버리고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셨듯이 우리의 인격이 더 자랄수록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든 오로지 나, 내가, 내 자녀만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높아 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선택한 용기 있는 결단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느혜미야가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면 나라를 튼튼히 하려는 목적이 있었지만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성벽을 쌓기 위해서 입니다.왜 성벽을 쌓으려 했을까요.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전입니다.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모든 역사와 문화와 정치가 이루어 졌습니다.이제 가까스로 파괴된 성전이 지어졌지만 이웃나라 이방 족속에게는 그 화려한 성전이 탈취의 표적이 되었습니다.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보물창고인 셈입니다.바벨론 왕도 이스라엘로 쳐들어 왔을 때 성전의 금과 보석으로 된 모든 기구들을 자기 나라로 가져갔었습니다.성전이 더럽혀지거나 파괴되는 것은 곧 이스라엘의 멸망을 의미합니다.그 성전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이 성벽을 쌓아서 이방인의 탈취를 막는 것입니다.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여 그 성전을 지키기 위하여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신하가 임금 앞에서 근심스런 표정을 하는 것은 자칫 불충에 해당하는 죄가 될 수 있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1에 보니 느혜미야는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왕 앞에서 근심스런 얼굴을 함으로 왕에게 귀국을 요청할 기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 한 왕이 기독교인들을 잡아 놓고 설득을 했습니다.“너희 중 믿음을 포기하면 평생 먹고 살 금 덩어리를 주겠다”.그러자 그 말을 들은 몇 명이 앞으로 나왔습니다.“너희 중 믿음을 포기하면 평생 높은 관직을 보장해 주겠다”.다시 또 몇 명이 앞으로 나갔습니다.남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너희는 무엇을 주기 원하느냐”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왕이여 왕은 우리를 사랑하되 생명을 바쳐 사랑하실수 있습니까.어찌 나 같은 죄인를 위하여 생명을 바쳐서 사랑하신 주님을 실망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만약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될 것이니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우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여러분 지금 이순간에도 어느 부둣가에서 어느 공항에서 어느 주님에게 빚진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하여 선교사로 자신을 헌신하며 떠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우리는 매 순간 계속해서 결단을 내리며 삽니다.얼마 전에 저희 교회 어떤 자매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어떤 형제는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어떤 전도사님은 가정 예배를 드려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님의 사랑을 지식으로 알고 배운다 해도 삶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소리만 날뿐입니다.비록 느헤미야 같이 그렇게 커다란 결단이 요구되는 현실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생활 가운데에서 주님 편에서 조그만한 일 부터 결단을 내리는 삶이 필요합니다.주님을 위하여,교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십시요.하다못해 화분에 물 한 그릇 주는 것도 아름다운 일입니다.점심 식사를 위해 내가 먼저 손을 걷고 나서는 것도 주님께서 보실 때 아름다운 일입니다.내가 희생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것을 피하지 마십시요.축복의 기회로 알고 주님에게 진 사랑의 빚을 갚는 계기를 삼기 바랍니다.
셋째로 느혜미야의 귀국은 기도 응답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1:4-11절을 보십시다.느혜미야는 이 일을 위하여 수일 동안 금식을 하며 기도했습니다.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진실한 기도인지를 보십시요.그의 기도는 백성을 대신하여 회개하는 겸손한 기도였습니다.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부르짖는 기도였습니다.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기도였습니다.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엊 그제 국민 일보에 세계 마약의 70%를 공급하는 마약 왕인 쿤사로 부터 탈출하여 지난달 12일 우리 나라에 도착한 문충일씨의 간증이 실린 글이 있었습니다.그는 지난 50여년동안 만주,내몽고 등지를 다니면서 감옥 생활과 탈출과 은둔 생활을 반복해 왔답니다.그러면서 그는 틈틈히 극동 방송을 들으면서 믿음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께 이 악의 소굴에서 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답니다.그래서 그는 그가 쓴 탈출이라는 수기에 다시 한국에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와 기도 응답의 섭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됩니다.“목사님 설교대로 하나님 말씀을 믿고 내가 이런 기도를 했는데 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기도는 내 소원과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다만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의 시기와 방법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여러분 만약 제가 “주님 올 12월달 까지 저희 교회에 10만 명의 교인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한다면 이루어지겠습니까 .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박목사야 한국 교회 목사들마다 그렇게 기도하니 4천만으로는 도저히 부족해서 중국에서 사람들을 데려와야 할 지경이니 나도 난처하구나구나.이제 네 기도를 들었고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딴 생각말고 지금 있는 양들이나 열심히 목양하거라”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빌4:6에 이렇게 말씀합니다.“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라고 했습니다.특히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뜻을 헬라어 원어를 보면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감사의 기도를 아울러 하라”는 뜻입니다.걱정 말고 응답해 주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같이하라는 것입니다. 이 응답의 체험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다. 느혜미야는 혹 방해자들을 피해서 은밀히 말을 타고 성을 돌아보았습니다.그 튼튼하던 성벽들은 다 무너졌습니다.안식의 그늘이 되어 주던 성벽의 돌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습니다.참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현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뿐 만 아니라 성문은 불에 타서 검게 그을려 있었습니다.방치된 성벽에는 잡초만 무성한 채 깊은 밤 그림자에 덮여 있는 것입니다.그는 말로만 듣던 슬픈 현실을 차례 차례 점검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성전과 백성의 방패 역할을 하는 성벽이 무너진 현실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이스라엘의 믿음이 무너진 것입니다.단단한 돌은 믿음을 상징합니다.마16:18에서 주님은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반석은 바로 베드로의 믿음을 가르키는 것입니다.우리 개개인의 신앙을 지켜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믿음입니다.그래서 엡6:16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하였습니다.말씀의 검은 적을 공격하지만 믿음의 방패는 적의 궤궤를 막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방벽이 무너져서 탈취꾼들이 수시로 드나드니 얼마나 비참한 현실입니까. 여러분의 방벽은 어떻습니까.여러분의 믿음은 든든하십니까.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암이라는 병은 엑스레이로 진단하기 전에는 잘 모른다고 합니다.조금씩 조금씩 침투해 갑니다.며칠전 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었는데 4개월동안 고려 병원에 입원해 있었답니다.무슨 병이냐고 물었더니 사업을 열심히 하다보니 밥을 제때에 먹지 못해서 위장이 망가지고 과로가 싸여 쓰러졌다는 것입니다.진찰을 하는 의사가 놀라면서 말하기를 아니 어떻게 이지경이 되도록 일을 했느냐고 묻더랍니다.그래서 사업으로 번 돈을 다 병원에 주고 간신히 통원 치료를 하고 있답니다.사단은 우리의 믿음의 성벽에 조금씩 조금씩 구멍을 냅니다.깨어 있어 내가 나를 살피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원수가 들어와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다음의 몇 가지 간단한 질문으로 자신의 믿음을 한번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5-
1.나는 어떤 일을 만나든지 모든 일에 감사하고 있는가.
2.나는 교회와 주님을 섬기며 봉사하는 일에 기쁨을 가지고 있는가.
3.나는 나 자신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서 틈틈이 기도 생활을 하는가.
4.나는 영의 양식인 말씀을 그리워하며 그 말씀을 얼마나 읽고 있는가.
5.나는 내가 가진 감격스런 이 복음의 소식을 누구에게 전하고 있는가. 6.나는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을 내 생애의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가. 7.나는 하늘나라의 상급과 소망을 바라며 살고 있는가. 어떻습니까.여러분은 이 질문에 몇 가지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서에서는 불에 그을린 믿음이 있습니다.불 가운데 겨우 구원을 얻은 믿음입니다.나약한 믿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한번 뚫린 곳을 막지 않으면 그 구멍은 더 커지고 그리로 원수가 들락거리며 약탈해 갑니다.혹 여러분은 무너진 곳이 없는지 차례차례 살펴보십시요.원수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바로 무너진 곳 가까이에 있습니다. 곁길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듯이 오래토록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하나님은 그래도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느혜미야 역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람입니다.이렇게 사람을 보내셨던 하나님은 마침내 하나님 스스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그 분이 예수그리스도십니다.원수에게 짓밟혀서 무너져 방치된 인간의 영혼,죄악의 잡초만이 무성한 버려진 인간을 구원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주님은 오셨습니다.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그 피를 주고 우리를 사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다시 허물어질 눈에 보이는 성벽을 쌓으신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돌로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인가를 쟁취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이미 주님께서 이루신 것을 지키며 누리는 것입니다.이제 원수 마귀는 다만 우리를 위협하고 공격할 뿐 우리를 완전히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주님께서 든든히 세워 주셨기 때문입니다.우리를 세우신 그 분께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우리 자신의 믿음을 돌아봅시다.이전 보다 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삽시다.나보다는 조금만 더 우리의 형제자매와 이웃을 생각합시다.일이든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용기를 냅시다.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든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의 기도를 합시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그 성벽은 온통 금으로 되어 있습니다.그 성은 우리가 거할 영원한 천국의 완전한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그 찬란한 성에서 영광의 나팔 소리를 듣게 될 그날까지 주님은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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