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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라 (왕상18:30-40)

본문

북 이스라엘은 3년 반 동안 가뭄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3년 반 동안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 세상을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온 땅은 흙먼지만 날리고 논과 밭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을 것이다. 왜 이런 가뭄이 수 년 동안 계속되고 있었는가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 제단을 훼파해 버렸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왕상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할 급선무는 어떤 일이었습니까 하나님 제단을 다시 수축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이 땅에 하나님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우상을 만들어 세우려는 자들이 있다. 학교마다 단군상을 건립하겠다는 저들이 주장이 일단 물러간 것 같지만 저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 이 땅에 세워진 우상이 단군상 뿐인가 왜 이렇게 거짓 것들이 날 뛰는가 우리 교회의 하나님 제단들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마음의 하나님 제단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850:1 로 싸웠는데 어떻게 싸워 이겼습니까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비밀이다. 어떻게 해서 이겼습니까 하나님 제단을 수축해서 이겼다. 엘리야가 어떻게 하나님 제단을 수축했습니까 그리고 수축된 제단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분문 말씀을 통하여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열 두 돌로 제단을 수축하라 31절 =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 두 돌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 야곱의 아들들은 12명이었는데 하나님은 이 12명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12지파로 택하셨다. 그러나 당시에 12지파는 둘로 나뉘어진 상태였다. 북 이스라엘에 10지파 남 유다에 2 지파로 나누어진 상태에서 엘리야는 북 이스라엘 선지자였다. 그러나 엘리야는 먼 옛날 자기들의 조상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엘리야는 하나님이 이 민족을 12지파로 세우셨다는 약속을 믿고 열 두 돌로 단을 쌓아갔다
 야곱의 아들의 지파 = 12 아들을 의미한다. 열 두 돌을 취하니 = 이스라엘 12지파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이 택하신 약속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 = 야곱의 다른 이름이다. 이스라엘의 이름 뜻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 라는 뜻이다. 즉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내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던 것이 야곱의하나님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상을 섬기는 자들로 인해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엘리야는 실망하지 아니했다. 그 무너진 제단 앞에서 엘리야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야곱의 대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기억하면서 엘리야는 열 두 돌로 단을 쌓아갔다. 32절에 보면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엘리야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면 돌로 단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하셨던 그 약속이 야곱을 통해서 이루어진 사실을 알고 있는 엘리야는 하나님이 택한 12지파를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850명의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다. 야곱에게는 다른 이름이 또 있었는데 그 이름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었다. 야곱처럼 사연 많은 인생을 살아온 자도 드물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야곱이었지만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약속하신 야곱 자신의 대를 이어서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은 자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엘리야는 그 언약의 하나님을 믿고 지금 제단을 수축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혹시 우리 교회 제단이 거짓된 세력 때문에 무너지지는 안했습니까 혹시 나 자신의 마음의 성전이 우상의 세력들 때문에 무너지지는 안했습니까 교회 제단이마음의 성전이 무너졌다 할지라도 우리는 엘리야처럼 실망하지 안해야 할 것이다. 낙심하고 좌절하지 안해야 할 것이다. 왜 그렇습니까 약속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마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잠24:16) 우리의 마음의 성전이 무너졌습니까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믿고 제단을 수축해야만 한다. 주저 앉아버려서는 안된다.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찬양'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리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이 시대 교회의 제단들이 수없이 무너져 가고 있다 성도들의 마음의 성전도 흑암의 세력들로 인해 무수히 무너지고 있다. 이대로 무방비 상태로 멍청히 당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낙심하고 좌절만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엘리야의 모습은 한 선지자의 모습이 아니다. 엘리야 시대 같은 상황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찾아 올 때 엘리야 같은 신앙으로 일어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사43:1-2)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약속을 믿으십니까 이제는 더 이상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약속을 붙잡고 무너진 우리들의 제단을 수축해야 한다. 두 번째:제단에 물이 흐르게 하라 ! 33-35절 =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번 그리하라 하여 세번 그리하니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 제단에 번제물을 드리고 번제물과 나무 위에 12통의 물을 갖다 부었다. 그 물을 제단에 번제물을 적시고 제단에 만들어 놓은 도랑에 물이 가득하게 고이게 되었다.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에게 제의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똑같이 송아지를 제물로 드리고 그 제물에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요 하나님이다"는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 엘리야의 제의였다
그런데 제단과 번제물에 12통의 물을 흥건하게 젖은 곳에 불이 임한다고 할지라도 불은 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엘리야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지금 정확히 번제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송아지 = 번제 제물이 될 수 있는 짐승이다. 각을 떴다 = 제물의 팔 다리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꺼내고 정성드려 드린 제물이다. 번제물 = 이스라엘 5대 제사에 가장 기본이 되는 제사이다. 12통의 물 =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언약된 말씀을 의미한다. 물 = 엡5:26에 물은 곧 말씀이다고 했다.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다 = 말씀이 충만한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들 눈에는 엘리야의 행동이 미련하게 보였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엘리야는 하나님의 제사 드리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실 것을 믿고 있었다. 26절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도 송아지를 잡아서 제물로 드렸다. 똑같은송아지 제물을 드린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가 드린 제물은 똑같은 송아지였지만 33절에 번제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번제물 제사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이다. 그러나 이 불이 사람의 힘으로 일으키는 불이 아니라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지는 불로 제물을 태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처음부터 번제 제사를 드리므로 반드시 번제물에 불이 임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물을 번제 제물에 붓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호크마 주석에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 많은 설교자들이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저는 다른 각도로 해석하고 싶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한 자 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아니한 것처럼 하나님 제단에 말씀의 물이 흐르지 않는다면 그 어떤 하나님의 역사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엘리야는 그 비밀을 우리에게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말씀이 충만한 제단만이 하나님의 불의 역사가 임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36절에서 엘리야는 주의 말씀대로 순종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말씀과 함께 하신 분이시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아무리 번제물이 휼륭하다 할지라도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말씀이 없는 번제물이라면 그 번제 제물을 하나님은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번제 제물을 드리는데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대로 해야만 했다. 조금도 인간의 생각과 방법이 있어서는 안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번제 제물이 되셨다. 예수님의 삶은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신 삶이셨고 말씀이 충만한 삶이셨다. 우리 또한 하나님 제단에 제물이 되려면 말씀의 순종함이 있어야 하고 말씀의 충만한 삶을 살아야 제단에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무너진 제단이 수축되었다면 제일 먼저 내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물이 흘러 넘치는 제단이 될 때 하나님의 불이 떨어지는 제단이 될 것이다. 엘리야가 제단에 송아지 각을 떠서 번제물을 드릴 때 자신이 제물이 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제물에 12통의 물을 부은 것은 이스라엘 12지파를 택하시고 언약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물을 부었을 것이다. 내 마음의 제단이 무너졌는데 다시 수축되었습니까 내 자신이 이제 제단에 제물이 되어야 한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 (롬12:1) 말씀이 충만한 신앙이 되어야 한다 내 마음의 제단에 말씀이 흘러 넘치는 신앙이 될 때 성령님의 불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심령에 말씀이 흘러야만 한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말씀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기대할 수 없다. 물이 흐르는 것은 물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말씀이 우리의 심령 속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은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듣고만 끝나는 말씀이 되어서는 안된다. 말씀의 가르침대로 순종하며 따라가는 자들의 심령이 바로 말씀이 흐르고 있는 제단들이다. 말씀을 되새김질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짐승들 중 되새김질 하는 짐승들은 모두 깨끗한 짐승들이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되새김할 때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말씀이 움직이는 것이다. 말씀이 움직일 때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생각들이 물러가고 거짓의 세력들이 발을 드려 놓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제단에 물을 부을 때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거짓된 무리들은 또 일부 백성들도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바보 같은 짓들을 하고 있는 멍청한 놈들이라고 놀리고 있었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말씀에 따라서 순종하며 살 때 거짓된 세력에 잡혀서 사는 세상 사람들 눈에는 바보같이 보일 것이고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전에 "바보들의 행진"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바보들의 행진이 아닌가 생각 해본다 어느 목사님은 고전1:18-3의 설교 제목을 "바보들의 행진" 이라고 설교를 했다. 그렇다 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우리는 바보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바보를 사랑하시고 그 바보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 바보를 통해서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시는 것이다. 지금도 기도원 곳곳에서 주님만 바라보고 금식하며 부르짖는 저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바보 중에 바보처럼보일 것이다. 저도 머지않아 기도원에 금식하러 갈려고 합니다. 정기 가을 노회가 10월 달에 저희 교회에서 있게 되고 부족한 제가 노회장으로 추대를 받아 출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함을 느끼는 저로서는 기도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말씀대로 순종하며 따라가는 삶이 미련하고 바보 같지 보일지 모르지만 그의 삶은 가장 지혜로운 자의 삶이 될 것이고 가장 축복된삶이 될 것이다. ' 예 화 ' 유명한 앗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에게 어떤 날, 제자가 되기를 자원하는 제자 후보생이 두 사람 찾아왔다.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신앙의 훈련을 닦고 싶습니다." 이들 후보에게 프란체스코는 이런 요청을 했다. "저 밭에 나가면 배추들이 많이 있는데, 그 배추를 가져다가 뿌리를 하늘 쪽으로 하고 그 배추를 심으시오." 한 사람이 말없이 그 배추를 들고 나갔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하하, 이 성자가 여기서 오랫동안 도를 닦더니만 정말 돌았구먼" 하고 비웃고 가버렸다 인간의 생각으로 말씀대로 따라 사는 것이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 들지라도 우리는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갈멜산의 엘리야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에게도 임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부르짖는 제단이 되어야 한다. 36-37절 =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 제단을 수축한 엘리야는 말씀에 의지하여 부르짖기 시작했다. 엘리야가 제단을 수축하는 것도 무조건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택한 12지파를 생각하면서 수축하였고 제사 역시도 가장 기본적인 제사 번제 제사를 드렸고 번제물 역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송아지 각을 뜨고 하늘의 불을 기다리는 번제 제사를 드린 것이었다. 이제 기다리면 번제 제물에 불이 임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기다리지 않고 부르짖었다. 엘리야의 기도 역시도 무조건 부르짖은 것이 아니었고 구체적으로 드렸다.
 저녁 소제 = 오후 3시쯤 해당되는 시간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 언약의 하나님 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 중의 하나님 = 함께 하시고 계신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주의 종이 됨과 = 엘리야 자신의 현재 위치를 밝히고 있다. 내가 주의 말씀대로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 엘리야가 이제껏 보인 모든 일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한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엘리야의 이러한 신앙에 어찌 하나님의 불의 응답이 안 임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거짓 선지자들은 26절에 보면 아침부터 낮까지 무려 6시간 동안 몸을 칼과 창으로 찌르면서 가지 부르짖었지만 아무 응답도 받지 못했다. 우리들의 기도가 이런 기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우리는 엘리야가 부르짖기 전에 무엇을 하였습니까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였다. 그리고 약속의 말씀을 충만하게 의지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기도를 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 제단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무너진 제단에서 아무리 부르짖어 보아야 소용없다. 내 마음의 성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가 기도가 제대로 되겠는가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내 신앙 상태에서 우리의 기도가 간절히 나오겠는가 성도 여러분 ! 우리의 마음에 예수를 영접하셨습니까 예수를 영접한 마음이라면 우리의 마음은 주님의 성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히 부르짖어야 한다. 내 마음에 성전이 이루어진 자는 이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해야 한다.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한다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을 믿고 엘리야는 기도했다. 우리의 신앙도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을 믿고 부르짖어야 한다. (렘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엘리야의 기도는 너무 구체적으로 드렸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말씀으로 충만했다고 하나님의 응답이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되지 말고 구체적인 기도가 되어야 한다. (마6:7)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 엘리야는 4가지 기도를 구체적으로 드렸다
1.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짖었다. 이것은 약속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느냐는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의 바알과 아세라 신에 기도했다. 여호와 증인도 안식교도 기도한다 천주교도 불교도 무당들도 기도한다 그러나 저들의 기도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의 기도는 전혀 다른 기도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 " 구약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단계까지는 잘 하고 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예수를 떠나서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철저하게 예수를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우리의 기도는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2. 이스라엘 중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스라엘 중에 함께 하신 하나님을 엘리야는 믿고 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죽은 신에게 부르짖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우리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신다. 구만리 상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우리 중에 함께 하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찬양할 때. 우리가 기도할 때 함께 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 기도가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으십니까 믿는다면 우리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기도를 버리고 더욱 진실된 기도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3. 내가 주의 종이 됨을 부르짖었다. 엘리야는 지금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다. 내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서 어느 상태에서 기도하고 있는지 깨닫고 기도할 때 올바른 기도가 될 것이고 응답된 기도가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 중에도 자기 처신을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생이면 학생답게 옷도 입고 놀아야 하는데 오늘날 누가 학생이고 누가 대학생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이 시대 누가 주부고 미스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그래서 나온 말이 미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성도들에게도 자기의 위치가 있다. 평신도의 기도와 집사의 기도는 같을 수가 없다. 엘리야는 자신이 주의 종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했고 무지한 백성들에게 참 신이 누구인지 보여주어야만 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의 지금 현재 위치가 어디입니까 평신도입니까 집사입니까 권사입니까 평신도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축복해 달라는기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집사라면 이제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자신의 마음의 성전에 무너진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권사라면 집사보다도 더욱 강한 기도를 해야한다. 교회와 목사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의 종은 더 강한 기도를 해야 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성도들 모두들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성도들의 마음의 제단들이 무너진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무너진 곳이 있다면 약속된 말씀으로 제단을 수축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모습이 되어갈 때 교회에 각 마음의 제단에 성령님의 강한 불길이 타오르게 될 것이다.
4. 주의 말씀대로 순종했다고 부르짖었다. 말씀에 순종하며 부르짖는데 어찌 그러한 기도에 응답이 없겠는가 엘리야는 철저히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을 하였다 제단에 열 두 돌을 쌓을 것부터 제물 드리는 것부터 . 모두가 말씀에 의지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엘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기도 하다. 말씀에 순종한 제단에 성령님의 불을 임하게 되어 있다. 마가 다락방에 120명의 무리들이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님의 불을 받았다 여러분의 신앙이 왜 성령님에게 사로잡힘 받지 못하는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에 순종한 자의 신앙이 될 때 여러분 마음에 성령님의 뜨거운 불길이 임하게 되어서 거짓된 세력들을 다 몰아내게 될 것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불의 응답을 받고 어떻게 했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잡아서 모두 죽였다. 이것은 우리의 교회 제단에 우리의 마음의 성전 제단에 성령님의 불이 응답된다면 그 어떤 흑암의 세력들도 다 몰아내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이 거짓 것들을 쫓아낼 수가 없다. 우리 속에도 바알과 아세라 같은 우상적 요소들 쓴 뿌리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제거해야만 한다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 무리들을 이긴게 아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만 붙잡고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주님의 뜻에 맡겼을 때 불의 역사는 나타난 것이다. 엘리야가 자신의 고백을 뭐라고 했습니까 주의 종이라고 고백했다. 자신은 주의 종으로서 약속의 말씀대로 했사오니 이제 주님의 뜻대로 하시라는 기도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와 같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 우리들의 기도도 항상 마지막에는 이렇게 끝나야 할 것이다. "주님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약속의 말씀에 순종했고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저는 부족합니다. 이제 주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 '결론' 엘리야가 왜 능력 있는 선지자였습니까 그는 무너진 제단을 발견 했고 그 무너진 제단을 어떻게 수축해야 하는지 알았고 수축된 제단에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아는 자였고 수축된 제단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선지자였다. 오늘날 교회의 제단들이 무너졌는데도 모르고 있다. 성도들의 마음의 제단들이 무너진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모르고 있고 알고 있다해도 수축하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제는 내가 섬기는 교회 제단을 지켜야 할 때이다. 내 마음의 제단을 지켜야 할 때이다. 어느 한 쪽이 무너져 가고 있는 자가 있다면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신속하게 수축하여야할 것이다. 작은 쥐구멍이라도 없는지 세밀히 살펴보고 있다면 빨리 말씀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거리는 내 마음의 제단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단단하게 수축해야 할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책망 듣는 자들이 없어야 할 것이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 성전을 더럽히고 무너진채 방치해둔다면 그 사람의 영혼도 그렇게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고전3:17) "누구든지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예수로 인해서 우리가 보이는 제단을 섬기고 예수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이 성전이 되었다. 성전을 잘 보존할 때 성령님의 불의 역사는 우리에게 매일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마7: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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