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박힌 것 외에는 (고전2:1-5)
본문
어느 조그마한 교회 정문 아치에 이런 표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파한다." 이 표어가 말해 주듯 온 교회는 그리스도안에서 경건하게 생활하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구원의 유일한 방편으로 제시했습니다. 그 경건한 자들의 세대가 지나가고 십자가와 그 메시지를 '도살장 의 복음'이라고 생각하는 세대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희생적 죽음에 대한 필 연성'을 제거하고, 그리스도의 '모범과 교훈에 의한 구원'을 전파하 기 시작했으며, 교회 표어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이란 말을 삭제 해 버렸습니다. 얼마쯤 세월이 지나자, "왜 설교를 그리스도와 성경의 가르침에만 국한하느냐"라는 질문과 함께 '사회복음'이니, '정치'니 하는 것 에 대하여 그리스도라는 말없이 강론을 펴 나갔으며, 표어에서도 '그리스도'를 떼어버려 결국 '우리는 전파한다'로 변했습니다. 마침내 인간의 여러 철학과 사회적인 여러 상황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자리에 들어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짧은 이야기는 세기초에 세상을 뒤엎었던 사람중에 한 사람이었던 사도 바울이 세속적이고 문명이 발달된 고린도 지방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 그것도 십자가에 못박 히신 그 분'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본문 의 말씀과 너무나도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이 이야기는 요즈음 한국 교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 여 주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교회력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 음을 생각하면서 회개하고 경건한 생활을 해야하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번 3월달 목회계획을 '십자가와 고난(죽 음)'이라고 정하고 매 주일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이며, 3월달 첫 주일인 오늘은 십자가 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못박힌 것 외에는' 이라는 제 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십자가'는 헬라어로 '스타우로스'라고 하는데 원래는 단순히 땅 에 수직으로 박힌 뽀족한 기둥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고대 '앗시리 아'로부터는 범죄자의 시체를 이 기둥에 꽂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길거리에 전시하여 '범죄애 대한 경고'를 삼는 관습이 있었 다고 합니다. 그 후로 '로마시대'에 이르러서는 흉악범으로서 사형을 언도받은 죄인을 십자가로 된 나무에 달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못 박아 죽이는 제도가 계속되었습니다. 이 '십자가 사형법'은 가장 비 참하게 인간의 물과 피, 즉 인체의 수분을 완전히 제거시켜 죽이는 무섭고도 잔인한 사형 방법인 것입니다. 호흡이 멈추는 그 시간까지 의식이 살아있게 하여 끝까지 고통을 당하게 하는 것이 십자가 사형방법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피가 흘러 내리는 것을 자신이 의식하면서 죽어 간다는 것은 죽음 가운데 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총살'이나 '교수형'이나 '단두형'은 순간적으로 끝나지만, 십자가의 죽음은 죽음의 과정이 가장 오래 걸리면서 본인이 그 고통을 끝까지 알고 느끼게 하는 잔인한 사형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단지 2천년 전에 한 정치범이 로마제국의 사형법에 의해서 처형된 것 이라고만 생각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타락직후,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 손의 발꿈치를 상하리라."고한 창 3:15절 말씀에서부터 '계획'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십자가 사건'은 모세의 율법에 양과 소를 잡아 속죄제나 화목제를 드린 제사제도에서 '예표'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가 사 53장에서 어린양의 희생을 '예언한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나아가서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 기간동안 친히 십자가를 지실 것을 여러차례 '예언한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이 '십자가 사건'은 외형적으로 보면 가룟 유다의 배신과 은 30에 파는 과정을 거쳐, 빌라도 총독의 불의한 재 판에 의해서 집행되었지마는 그러나 이 '십자가의 사건'은 사실상 '예언의 성취'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필연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죽으러 오신 분'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현재 우리 한국교회는 많은 긍정적인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수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실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사분오열'되어 약 200여개의 교파들이 난립해 있고, 우리 나라에서는 장로교가 부흥한다고 하니까 너도나도 '장로교'라는 간판을 내걸기 때문에 '예수교 장로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파만 도 120여개나 되며,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도 없을 정도로 수라장 이 된 실정입니다. 누가 '신령한 은사'를 좀 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만 하면 물불 을 가리지 않고 안수를 받으러 좇아다니고, 이 집회, 저 집회 따라 다 니는 현상은 기독교가 '미신화'되고 '샤마니즘화'된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같은 교회안에서도 신자들끼리 '시기하고 질투'하여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허다하고, 교회끼리는 교인 쟁탈전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 재 합니다. 직분을 맡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사회에 나가면 전혀 기독교인답지 않게 사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근간에 일어난 대형 사건들에는 영락없이 교인들이 연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Church-man)들은 많은데 그리스도인(Christian)과 제자들은 찾아보기 힘든 현실인 것입니다. 이런 여파로 요즈음 우리 한국교회는 100여년 동안에 인구의 25% 가 기독교인이 될 정도로 급성장하던 성장이 멈추었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교회들마다 전도는 안되고,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하고 있으 며, 한국 교회의 내일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많은 청소년들이 교회 를 등진채 저 세상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실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들을 일일이 다 이야기할 수 있겠습 니까 아무튼 요즈음 우리 한국 교회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을 종합해 볼 때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곰곰히 생각해 볼 때에, 그 '근본 이유'는 우리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과 힘'을 덧입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을 잃어 버리고, 체험하지 못한채 교회를 다닌 다고 왔다갔다만 하니까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썩는 냄새 만 '풀-풀' 풍기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사회를 이끌고 나가야 할 우리들이 십자가의 능력을 덧입기는 커녕 오히려 '불신풍조'만 조성시키며 '손가락질과 비웃음 거리'가 되고 있으니 더 이상 한국교회가 성장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교회와 성도들의 안타까운 현 실을 생각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류는 아담의 범죄 이후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그 분과 도 저히 교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너 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기의 외아들을 이 땅 에 보내어 '모욕적이고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게 하셨고,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들은 '십자가의 공로' 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죄악으로 물든 우리들의 심성을 결단코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가 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국의 위대한 부흥사이며 영적 거인이라 불리우는 '디엘 무디'가 하루는 탄광의 책임자에게 구원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무디의 말을 다 듣고난 그 사람은, "너무 싸군요!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니 어디 그런 값싼 것을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겠소"하면 서 자기는 못 믿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무디' 선생은, "당신은 매일 수백 피트나 되는 땅속까지 승강기를 타고 스윗치만 누르면 오르내릴 수 있는데 그럴 수 있게 되 기까지는 당신의 회사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설을 해 놓았기 때 문입니다. 그처럼 '구원'도 하나님께서 이미 2천년 전에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그 외아들의 고귀한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셨기 때문에 당신 은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랍니다."라고 설명을 해 주자 그 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단순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 1:12절 말씀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특권)를 주셨다고 했으며, 롬 10:9절에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는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삶' 은 어떠한가 살펴 보겠습니다. '종교에 매이지 않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의 저자 Fritz Ridenour는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 가운데서 '완전 사면'되었다고 하면 서 '집행유예'가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죄악의 권세에서 잠시동안만 해방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해방'된 것입니다. 고후 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 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세상 소속에서 하늘나라 소속으로 바뀌게 된 것이며, 결국은 그곳의 '시민 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또한 갈 2:20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옛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박 혀 죽었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으로써 주님께서 내 삶의 조정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지금 이 시대, 이 한국 땅에 왜 존재하는가"하는 참다운 '존재 의미'를 깨닫게 되고, '생의 가 치관'이 뚜렷하게 정립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기쁨'과 삶 의 '희열'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멀리 '골고다 언덕'에서 지금도 들려오는 저 무지몽매한 군중들의 야유소리와 비웃는 웃음소리,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망치소리를 조용히 귀 귀우려 들어 봅시다! 그리고 추잡하고 더러운 우리의 몸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끌 고 그 십자가 밑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립시다! 그 분의 붉디 붉은 핏방울과 물(땀)방울이 나의 등에 뚝-뚝 떨어져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린다고 생각해 보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과연 그래도 지금과 같은 우리의 부끄러운 행동들과 이기 적인 기도 제목들이 수정되지 않을까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인간과 우주를 사랑하여 우리 의 사랑을 받는 시인 '윤동주씨'의 시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 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 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씨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십자가'라는 시 입니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했다는 죄목으로 일본 유학중 체포되어 결국은 생체주사 실험용으로 사용되다가 1945년 2월 10일, 그의 시에 있는 내용처럼 꽃다운 나이에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바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끊는 피, 뜨거운 피,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게 하기 위해 흘려 봅시다!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들의 온갖 허물과 죄, 위선 등을 철저히 회개 하십시다! 분명코 하늘의 용서와 평화, 그리고 그리스도의 도우심과 승리가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사순절 3번째 주일,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을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3월 첫주일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 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 니하겠노라!"고 굳게 결심한 사도바울의 결심이 여러분들의 '결심과 각오'가 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모두의 삶은 '승리와 기쁨'의 나날, '평화와 감격의 나날'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Thomas A Kempis가 한 말을 여러분들에게 드립니다. "참고 순종하며 십자가를 져라! 그리하면 마지막에는 그 십자가가 너를 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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