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사용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눅22:35-38,47-53)
본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라고 명하셨습니다(36절).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분 자신을 붙잡으려는 사람을 겨냥해서 칼을 휘두른 베드로에게 “네 검을 집에 도로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2)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헛갈리게 하는 말씀임에 틀림없습니다. 도대체 칼을 사용하라는 말씀입니까,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입니까
첫째, 예수님의 말씀은 무기 사용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오후에 야외친교회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 율도에 갔는데 처음 가는 길인데다 외길이고 한적한데 뒤에서 계속 승용차가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문 잠금장치를 누르고 운행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저 혼자만 가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새벽기도에 나올 때 남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날 때에는 긴장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갑을 일부러 빼놓고 나오는 것도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워낙 강력사건이 많이 발생하다 보니 어디 혼자 다니기가 겁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린이 유괴, 학교주변 폭력, 인신매매, 성폭행, 강도 등등. 벌써 몇 년 전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유도나 태권도 합기도와 같은 무술을 배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호신용으로 가스총이 판매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험악한 시대에)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서라도 살지어다” 주님께서는 사역 초기에 제자들을 둘씩 내어보내어 복음을 전하며 귀신을 내어쫓게 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9:1-6). 그때에 그들에게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좇아 그렇게 했고 그들을 영접하는 자들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그들은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때를 회상시키시며 지금부터는 그와 반대로 행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이것은 상황이 변했음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상황이 그때와 많이 다르니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주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했고 그 시간이 조만간 닥쳐올 것입니다. 한때 주님께 호감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 등을 돌리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자들의 전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영접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사람이 많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때에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고 귀신을 좇아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능력도 제한될 것이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 이적을 행하는 능력은 주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광야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의 신발이 닳지 않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늘로서 만나를 내려서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기대하지 말고 신을 준비하고 옷을 준비하고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며 일을 해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이 바뀐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 위에서 활동하시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누가복음 9장의 역사가 우리에게 항상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전도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어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준비하고 필요하나 없는 것은 채워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칼입니다. 주님께서 전대와 주머니와 더불어 칼을 준비하라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칼을 사용하는 것을 옹호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무기 사용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오른쪽 뺨을 치면 왼쪽도 돌려대라는 계명과 어긋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계명과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또한 다음에 다룰 칼을 칼집에 꽂으라는 명령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말씀은 무기 사용을 일절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는 주님의 말씀을 무기를 사용하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종이 예수님께 가까이 접근했을 때 사정 없이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칼을 사용하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칼을 칼집에 넣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기 사용을 완전히 금하라는 뜻이라면 주님께서 굳이 칼을 사라고 말씀하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칼을 써야 할 때가 있긴 있습니다만 몇 경우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칼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칼을 써서 싸울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그것을 분별치 못하고 칼을 휘둘렀으므로 주님께서 막으신 것이었습니다. 칼을 사용하는 것이 옳지 못하기 때문에 막으셨다기보다 적절치 않은 때에 칼을 사용했기 때문에 막으신 것입니다. 칼을 사용하는 것이나 총을 사용하는 것이나 생명을 위협하고 빼앗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그 점에서는 개인이 총칼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나 집단이 싸우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칼을 사용해도 되나 안 되나 하는 문제는 전쟁에 총칼을 들고 참여해도 되나 안 되나 하는 문제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전쟁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견해가 세 가지 있습니다. 평화주의자는 무기를 휘두르며 피를 흘리는 모든 싸움은 부당하며 그리스도인은 이것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행동주의자는 국가권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이라도 국가가 징집하는 모든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 견해에는 각각 부분적이나마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권세에 복종하라고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과 어긋날 때에는 더 높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이 가르침은 정당치 못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시킵니다. 성경은 또한 전쟁이라고 해서 모두 다 필연적으로 악한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여러 왕들과 싸우는 창세기 14장 이야기는 부당한 개인적인 침략자뿐만 아니라 부당한 국가적인 침략자들을 대적해야 한다는 원리를 제시해 줍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도둑이나 살인자가 될 수 있으므로 그 경우 대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인 선별주의입니다. 전쟁에 관한 이 포괄적인 지침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언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분별력을 줄 것입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지 다른 방법이 있는데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의 말씀은 무기 사용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오후에 야외친교회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 율도에 갔는데 처음 가는 길인데다 외길이고 한적한데 뒤에서 계속 승용차가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문 잠금장치를 누르고 운행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저 혼자만 가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새벽기도에 나올 때 남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날 때에는 긴장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갑을 일부러 빼놓고 나오는 것도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워낙 강력사건이 많이 발생하다 보니 어디 혼자 다니기가 겁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린이 유괴, 학교주변 폭력, 인신매매, 성폭행, 강도 등등. 벌써 몇 년 전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유도나 태권도 합기도와 같은 무술을 배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호신용으로 가스총이 판매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험악한 시대에)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서라도 살지어다” 주님께서는 사역 초기에 제자들을 둘씩 내어보내어 복음을 전하며 귀신을 내어쫓게 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9:1-6). 그때에 그들에게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좇아 그렇게 했고 그들을 영접하는 자들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그들은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때를 회상시키시며 지금부터는 그와 반대로 행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이것은 상황이 변했음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상황이 그때와 많이 다르니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주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했고 그 시간이 조만간 닥쳐올 것입니다. 한때 주님께 호감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 등을 돌리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자들의 전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영접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사람이 많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때에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고 귀신을 좇아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능력도 제한될 것이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 이적을 행하는 능력은 주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광야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의 신발이 닳지 않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늘로서 만나를 내려서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기대하지 말고 신을 준비하고 옷을 준비하고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며 일을 해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이 바뀐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 위에서 활동하시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누가복음 9장의 역사가 우리에게 항상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전도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어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준비하고 필요하나 없는 것은 채워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칼입니다. 주님께서 전대와 주머니와 더불어 칼을 준비하라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칼을 사용하는 것을 옹호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무기 사용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오른쪽 뺨을 치면 왼쪽도 돌려대라는 계명과 어긋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계명과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또한 다음에 다룰 칼을 칼집에 꽂으라는 명령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말씀은 무기 사용을 일절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는 주님의 말씀을 무기를 사용하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종이 예수님께 가까이 접근했을 때 사정 없이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칼을 사용하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칼을 칼집에 넣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기 사용을 완전히 금하라는 뜻이라면 주님께서 굳이 칼을 사라고 말씀하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칼을 써야 할 때가 있긴 있습니다만 몇 경우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칼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칼을 써서 싸울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그것을 분별치 못하고 칼을 휘둘렀으므로 주님께서 막으신 것이었습니다. 칼을 사용하는 것이 옳지 못하기 때문에 막으셨다기보다 적절치 않은 때에 칼을 사용했기 때문에 막으신 것입니다. 칼을 사용하는 것이나 총을 사용하는 것이나 생명을 위협하고 빼앗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그 점에서는 개인이 총칼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나 집단이 싸우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칼을 사용해도 되나 안 되나 하는 문제는 전쟁에 총칼을 들고 참여해도 되나 안 되나 하는 문제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전쟁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견해가 세 가지 있습니다. 평화주의자는 무기를 휘두르며 피를 흘리는 모든 싸움은 부당하며 그리스도인은 이것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행동주의자는 국가권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이라도 국가가 징집하는 모든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 견해에는 각각 부분적이나마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권세에 복종하라고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과 어긋날 때에는 더 높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이 가르침은 정당치 못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시킵니다. 성경은 또한 전쟁이라고 해서 모두 다 필연적으로 악한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여러 왕들과 싸우는 창세기 14장 이야기는 부당한 개인적인 침략자뿐만 아니라 부당한 국가적인 침략자들을 대적해야 한다는 원리를 제시해 줍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도둑이나 살인자가 될 수 있으므로 그 경우 대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인 선별주의입니다. 전쟁에 관한 이 포괄적인 지침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언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분별력을 줄 것입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지 다른 방법이 있는데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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