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는 집 (마7:24-26)
본문
1.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깊은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아마 부실 공사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집이 있다고 하시었습니다. 얼마 못 가서 무너질 집과 반대로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너질 집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요, 무너지지 않는 집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나, 반석 위에 지은 집이나, 맑은 날에는 별 이상이 없지 만, 일단 비가 오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면, 결과는 뻔하게 드러납니다. 모래 위에 지었던 집은 흔적도 없이 무너져 떠내려가지만, 반석 위 에 집은 흔들림이 없이 굳건히 서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나는 모래 위에 세웠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이었기 때문 이란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모를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아마 이 말을 모를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대로 보면,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라고 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because it had been founded on the rock" 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어의 rock 이란 말은 바위, 암석, 반석, 이란 뜻인데, 그 바위 위에 지었다는 말입니다. 바위가 비바람에 흔들거립니까 더욱이 그 밑에 모래라는 말 (sand)과 비교해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위(rock)와 모래(sand), 무엇 이 다릅니까 바위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지만, 모래는 바람에 날려 가고, 빗물에 씻겨 떠내려갑니다. 너무나 상식적인 평범한 자명한 말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자명한 말은 귀담아 듣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철학자 하이덱거(M. Heidegger)는 '자명한 진리는 혹암보다 더 어둡다'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태양 빛이 얼마나 밝습니까 그러나 너무나 밝기에 우리 눈에는 새 까막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죽는다'는 자명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도 사람들은 죽음에 관하여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또 그런 말은 들으려고도 아니합니다. 진리(眞理)의 자명성(自明性)이 오히려 상 식(常識)에 파묻혀 버린 채,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듯 오늘 우리들이 그런 상태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들어 말하려고 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 당시에도 유명한 사람들의 글과 책이 있었습니다. 헬라의 문학과 철학, 로마의 법과 예술, 그리고 애굽의 지식과 기술들이 지배 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갈릴리에서 나타난 한 젊은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고 아예 멸시했던 나사렛 예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머리 좋은 사람들, 남보다 앞서간다는 사람들, 소위 출세했다는 사람 들 중에 교회에 나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PC 통신 에 들어가 종교 문제를 다루는 토론에 들어가 보니,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예수 를 알기를 하나의 역사적 인물로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는 상식에 속한 젊은이들 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중의 서가에서 돌아다니는 책들을 몇 줄 읽 고서는 그대로 인용하면서 마치 자기가 조물주가 된것인양, 신이 어떻고, 종교가 어떻고, 죽음과 내세가 어떻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웃기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사람들을 대하여 우리 주님은 가장 평범한 상식의 비유를 가지고 가장 심오한 진리를 설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지만,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처음 목회할 때, 모래 위에 집은 믿지 않는 사람들 이고, 반석 위에 집은 믿는 사람들이라고 그렇게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 에 다시 깨달은 것은, 이 두 가지 집은 교회밖에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이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이 말을 듣는다' 고 했으 니, 매주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말씀을 항상 접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 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교회에 나와 설교를 듣고, 또 집에서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바로 우리들 자신들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석 위에 짓는 사람들 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또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듣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것, 다 좋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저들을 따라갈 만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저들은 매일 성경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듣기만 했지 행하지를 안하였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라야 반석 위에 지은 집 과 같아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인격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가정은 어떤 비바람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기업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민족과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난 일년 동안 얼마나 말씀대로 행하여 왔습니까 말씀을 수 없이 듣고 또 들었지만, 들은 말씀대로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실패한 것을 가만히 보면,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알고 있는 사람들,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야고보 장로는 믿음, 믿음, 하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까지 알아서, '행하지도 못할 바엔 무엇을 믿으려고 하느냐' 고 하면서 교회 를 떠나려고 합니다. 굉장히 자신만이 솔직하고 다른 사람은 다 이중 인격인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 모래 위에 짓는 어리석은 생각일 뿐 입니다. 참된 신앙은 비바람이 불고 홍수를 만나 보아야 합니다. 교인들 중에서도 보면, 보통 때는 잘 모릅니다. 환난과 질고, 고난과 역경의 바람에 부딪쳐 보아야 무너질 신앙생활을 했는 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말씀을 듣기만 하면서 직분을 맡은 사람들, 그리고 주일 예배에 참석하여 머리로만 말씀을 듣고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의 역풍이 닥칠 때, 과연 그 인격이 얼마나 굳건히 서 있을 수 있겠는가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한 중소기업의 사장이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가서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경제적 파경의 바람이 부딪칠 때 견디어 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얻어 먹을 힘만 있어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면서 거지가 또 다른 거지들을 먹여 살리는 것을 보고 꽃동네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기록도 읽었습니다. 여러분! 이것 이 무슨 차이입니까 하나는 말씀을 듣기만 했고, 다른 하나는 듣고 행하였다는 그 차이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어야 하겠습니까 듣고 행하는 믿음이어야 하겠습니다.
2.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 고 하였습니다.(시119:105) 세상에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생 길에서 넘어지는 사람 들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생활 속에 비틀거리는 사람들 많습니다. 젊어서 벌써 비틀거리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술, 폭력, 마약, 에이즈로 얼룩진 인생들, 그런가 하면 실망과 좌절로 무력증(無力症)에 빠진 사람들, 모두 발에 등(燈)이 없거나 가는 길이 캄캄해 빛이 없기에 그 길에서 넘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 고 하였습니다. '말씀'은 가는 길을 비추어 주는 빛입니다. '말씀'은 법도(法道)와 율례(律例)입니다. '말씀'을 떠나면 어둔 길을 헤드라잇 없이 운전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짐작대로 운전해 가는 길에서 어찌 전복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떠난 행위는 설계를 무시하고 짓는 집과 같습니다. 자기 편리한 대 로, 자기 주장과 자기 고집, 당장에 보이는 이익 때문에 설계를 무시하고 짓는 집!,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 케 되었음으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시119:104) '말씀'은 사람으로 어리석음에서 명철케 하고, 거짓된 행위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 리이다" 라고 순종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베드로는 어부로 평생 업을 삼아 왔던 사람이요, 예수는 나 무나 깎고 맞추는 목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밤이 맞도 록 자신의 전문 지식과 기술과 능력으로도 못 잡았지만, 내가 당신의 말을 의지 하여 그물을 내리겠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보통 순종이 아닙니다. 우리들 같 았으면, "목사님!, 무얼 안다고 그러십니까 저는 이 분야에서 전문가입니다." 라 고 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다고 하 였습니다. 그래서 아마 베드로가 수제자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시편 119:165절에 "주의 법(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 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장애물이 많은 세상에서 장애물이 없게 해 달라고만 기도하였지, 말씀대로 순 종하지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3. 새해에는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의 기초를 무엇에다 두려고 하십니까 저는 언제나 결혼 주례를 하면서 지혜로운 건축자들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행복을 어떤 조건들 위에 찾으려고 합니다. 배우자의 외모, 지성, 학교, 가문, 경제력등 그런 조건들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세태(世態)입니다. 그리고 쉽게 그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모래성을 쌓고 그 위에서 행복을 누려 보려고 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혼 여행에서 갈라서고, 몇 달이 못 가서 울고불고 싸우고, 조그마한 시련 과 역경의 비바람에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가정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이 기초가 된 지식, '말씀'위에 세워진 가정, '말씀'대로 경영하는 사 업과 재물이어야 영원합니다. 이것은 한 민족과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등한히 여기거나, 거역한 민족, 국가, 사상과 이념, 다 무너졌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얻은 것, 다 바람과 함께 없어지고 맙니다.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려면 좁은 길, 좁은 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들고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거역하고, 무시하면, 쉽게 일을 끝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빨리 성공할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모두 그런 길을 가려고 합니다. 쉬운 길이고, 넓은 길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결국 사망으로 끝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계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결코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 오니 주의 의로운 s규례가 영원하리이다" (시11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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