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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영광을 돌리라 (마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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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스탠리스 타인'이란 사람은 문둥병 환자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문둥병 환자 중에서도 아주 심하여 손발이 다 없어지고, 눈,코,입까지 다 썩어져 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항상 기쁘게 나날을 보냈습니다 . 일반 상식으로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지는 가운데서도 그가 어떻게 그렇게 감사하며 살았을까 그는 어느날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 앞으로 가는데 내가 세상에 왔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 유익도 끼치지 못하고 가니 하나님 아버지! 내가 세상에 왔다가 문둥병만 앓다가 이렇게 흉측하게 가는 것 뿐입니까 내가 세상에 왔다 가는 길이 너무 억울합니다" 이때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의 그 문둥병이 극히 추해진 그것으로 영광을 돌리라. 그리고 네가 장차 받을 영광을 보아라" 이때 그는 말하기를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 추하 고 흉측한 이 몸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그에게 장차 그가 받을 영광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문둥이가 보니 보좌가 베풀어졌는데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아름다운 벽옥과 홍보석 같고, 그 옷의 희기가 눈 같으며, 그 앞에 수종자는 천천이요, 만만인데 인자 같은 이 가 그에게 와서 그를 안아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데 큰 생명 강가에 이르니 먼저 온 많은 성도들이 천사들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찬미하며 인자와 그를 향하여 종려나무 가지 를 들고 환영해 줍니다. 보좌에서 음성이 들리는데 "너의 흉측한 육신도 벗을 날이 멀지 않았 으니 너 같은 흉측한 인생도 예수로 더불어 기뻐함을 만민에게 보여줌이 곧 나를 영화롭게 함 이니라" 고 그후 이 문둥이가 곧 책을 써냈습니다. 이 책이 미국에서 대대적인 선풍을 일으 켰습니다. [문둥이가 왜 기뻐하는가를 보여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은 우리 모두 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봅니다. 즉, 비록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문둥이로 일생을 흉측하게 살았으나, 그가 죽어서는 그리스도 품안에서 영광을 누림을 만민에게 보여 줌으로 만민이 구원 얻는 것을 하나님은 기 뻐하신 다는 말씀입니다. 즉, 주님을 모르고 평생을 건강하게 잘살든 사람은 영원히 지옥에 가나, 흉측하게 문둥이로 일생을 살았으나 예수 믿어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 게 되더 라는 말씀입니다. 즉, 현 세상에서 호의호식하며 예수 없이 살다가 지옥에 가느니, 차라리 문둥이로 살다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났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소위 불행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주는 길이 되었다면, 그것이 도리어 행복이란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또 이 신앙이 위대한 것입니다. 어떠한 불행 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여기에서부터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1. 현대인은 모두 문둥병 환자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로 심령이 마비된 채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죄를 죄로 모르고 있는 무감 각해 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문둥병의 특징이 감각의 상실이라면, 오늘의 소위 지성인이요 문화인 이라고 자칭하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살아진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질서와 예의' ' 도덕과 윤리' '선악의 가치판단'이 다 흐려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루어 놓은 사회의 구석구석을 한번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더욱이 공중도덕의 차원에서 한번쯤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마비된 양심들을 볼 수 있습니까 간곳마다 방범 초소요, 파출소요, 교도소입니다. 길하나 건너는 질서도 못 지키고, 운 전하는 예절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채 큰 차들을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면, 어느곳 하나엔들 도 덕과 예 절이 마비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더욱 큰 문제 가 있습니다. 자신의 병이 이렇게까지 깊어진 것을 모르고 있는 형편입니다. 몸으로영광을돌리라 2-어디에서 부터 손을 대야 할지 우리의 썩어 가는 환부는 너무도 심각해 졌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심각한 것이 우리 교회들이 아닌가 깊이 반성해 봅니다. 교회들마다 심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대로 한국 교회가 나가다가는 정말 얼 마나 더 젊은이들을 교회에 남아 있게 할 수 있을까 깊이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젊 은이들 을 이해하려고 않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교회의 배려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교회의 어른들이 학생들의 하는 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저들을 돌보고 있습니까 알면서도 실천 못하고 있었으니, 이것이 문둥병이 아니고 무엇이 겠습니 까 그러나 이렇게 자탄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문둥병자가 어떻 게 고침 을 받았는가 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고침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2. 주님께 나아 와 절하고 간구 하여야 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고침을 받기 전에 먼저 그가 고칠 줄을 믿었습니다. 이 문둥병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미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과 각종 병든자를 고치신 것을 보고 듣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갈망하는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갈망하는 자에게 찾아오십니다. 여기 본문을 보면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절했다는 것'은 전적으로 복종과 항복과 투항과 신뢰와 위임을 뜻합니다. '머리 숙였다는'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님께 머리 숙이지 못하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머리 숙여야 합니다. 왜 신앙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까 예수님께 나아와 머리 숙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자존심이 살아 있어서 그 알량한 재물의 힘을 믿고서 아니 허무한 일장 춘몽과 같은 권력의 등을 기대어서예수께 나오지 못하고 절하지 못하는 사람들 많 이 있습니다.고침을 받으려면 예수님께 나아 와야 합니다. 나아와서 엎드려 절해야 합니다. 항복해야 합니다. 손들고 [당신께 모든 것을 위탁합니다]라고 맡겨야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환자가 되려면 철저하게 환자가 되어야 합니다. 의사보다 자기 병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환자들에게는 의사의 처방이 효력을 낼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나아 와서도 아직도 자기의 아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맡기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신앙생활에서 고침 받는 기적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물에물탄듯, 10년이 되어도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3. 확신이 있는 곳에 기적은 일어납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주님을 믿는 확신이었습니다. [나의 병이 나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 편에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고쳐 주고 안 고쳐 주는 것도 당신 편에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당신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신다면 내 병은 나을 수 있다]는 그런 확신입니다. 이것이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들의 간질병을 주님께 고쳐 달라고 왔던 부모는 [할 수 있거든 내 아들의 병을 고쳐 몸으로영광을돌리라 3-주시옵소서]라고 했을 때,[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 라] 고 책망한 것을 보면, 이 문둥병자의 신앙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 문둥병자의 확신은 전적으로 위임한 확신이었습니다. 이 문둥병자의 '확신'은 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될 것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문둥병 자의 확신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네가 믿고 있는 그대로 내가 너를 고쳐 주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서 요구되는 신앙이 바로 이런 신앙입니다. 우리 힘으로 불가능하게 보이는 마비된 양심까지도 고칠 수 있는 것은 주님만이 할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변에는 불쌍하게 제 고집으로 얽매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잘못된 신앙, 잘못된 이단, 잘못된 종교에 빠져서 생명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는 경 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 지방에서는 300개의 잡신들을 섬기는데 싼다싱이 인도 지방을 전도하면서 보니 한 사람이 한 손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벌써 10년째 그렇게 손을 들 고 있다 고 합니다. 힌두교에서 가장 숭상하는 소를 때린 죄를 속죄 받으려고 그렇게 손을 들 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5년은 더 들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 옆에는 바늘방석에 앉 은 사람 이 있는데 7년째랍니다. 뱀을 때려죽인 죄라고 앞으로 3년을 더 바늘방석에 앉아 있 어야 한 다고 했습니다. 싼다싱은 이 무지한 자들을 책망하면서 어서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 오라고 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택함 받지 않은 백성은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 밀을 아 무리 전해도 듣지 않습니다.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15절에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 을까 두 려워함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권해도 마귀에 속한 백성은 지옥으 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벌써 주님 앞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어떠한 동기로 나왔든 간에 교회에까지 와서 이 문을 들어 섰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변화입니다. 여기까지 오기가 그렇게 쉬운 코스가 아닙니다. 문둥이라고 다 주께로 나와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그러나 택한자들은 제한되었다고 하 였습니다. 그것은 문둥병자들이 다 나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 나아와 간구한 자만이 고침을 받은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문둥병자 같은 병든 문화 속에서 온전한 사람이 될 수있는 유일한 길은 신앙으 로 거듭난 인격들이 되어지는 데 있습니다.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이 썩어 질 죄의 자리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자신을 직시하는 통찰력을 가지 고, 자 신이 병든 것을 깨달아 전인격적으로 주님을 의지 하고 그분의 뜻에 맡길 때, 기적을 경험하 게 될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아무쪼록 문둥병자와 같은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자신도 모르는 사 이에 썩 어져 가는 죄의 혼탁한 세상 속에서 구원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사 장에게 보이라는 것처럼 몸으로 증거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든 성도들이 다 되시 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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