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의 인도를 받는 삶③ (요10:9-10)
본문
예수님과 우리는 목자와 양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안에 있는 양인 우리에게 베푸시는 혜택을 크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생명을 보호 받을 수 있습니다. 양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책이 없어서 목자의 보호를 받아야만 할 무력한 존재인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우리 자신의 신앙과 영적생명을 스스로 지킬수 없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오직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과 그 목자를 보내신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만 궁극적인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요10:28-29, 시23:4). 두번째는, 양식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양은 스스로 꼴을 찾아다니며 양식을 공급할 능력이 없습니다. 목자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날 그날의 필요한 꼴을 얻을 수 있습니다(요10:9-10, 시23:1). 세번째는, 길을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양은 방향감각이 없어서 쉽게 길을 잃습니다. 다른 모든 동물이 “귀소본능”이 있어서 저마다 자기집을 찾아올 수 있지만, 양만은 방향을 찾지 못합니다. 따라서 목자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쉽게 길을 잃고 맙니다. 우리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한다 할 때 목자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시23;3). 이미 우리는 두시간에 걸쳐 어떻게 목자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섭리적 인도와는 달리, 우리가 알고 그의 음성을 들으며 따라가도록 하는 방식으로 인도하시며, 각자 각자를 따로 따로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획일적으로가 아니라 각자의 독특성과 은사를 따라 인도하셔서 가장 적절한 곳에서 한평생을 기쁨으로 온힘을 기울여 살게 하심을 생각했습니다. 이제 오늘은 목자로부터꼴과풍성한 양식을 어떻게 공급받으며 살수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하겠습니다.
첫째, 그날에 필요한 양식을 먹이십니다. 우리는 팔레스틴 지역에서의 목양의 풍경을 생각해 보십시다. 목자가 온종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여 꼴을 뜯게 하다가, 저녁이 되면 우리로 데려와서 저녁 동안의 추위와 맹수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공동 우리에 양들을 들여보내서 맡겨 두었다가, 아침이 되면 그 우리를 찾아가서 자기 양들을 불러내어 다시 푸른초장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들어가며 나오며라는 말속에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면 그날에 필요한 “꼴”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의미 입니다. 당시 목양의 풍경을 그리며 표현한 것입니다.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인 우리 성도들에게그날 그날의 만나를 먹이십니다. 그날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십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그날의 만나를 먹게 하신것과 같습니다. 출애굽 후 먹을 것이 없어서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리셔서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두게 하셨습니다(출16:4).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시고 인도하신 것을, 시78:52 에서는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같이 지도하셨도다!고 합니다. 따라서 참으로 주님을 목자로 모신 양이라면, 매일 매일 그분으로부터양식을 공급받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과연 내가 목자되신 예수님의 양인가를 확인해야 하며, 혹시 양이라 할지라도 비실 비실한 병든 양일 것입니다. 건강한 정상적인 양은 목자로 인해서 그날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1. 생명의 양식은 무엇입니까 양인 성도가 날마다 먹고 살아야 할생명의 양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입니다. 마4:4에서 예수님께서는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신8:3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를 먹게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수 있는 인생임을 알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생명의 양식으로 생각하며, 그 말씀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사십니까 아니면떡으로만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인가를 분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아직도떡만 있으면 살수 있다고 생각하며 교회를 출입하는 정도라면 사실예수님의 양이 아닌 증거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자신에게 있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모든 인생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까닭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수 있음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도입니다. 떡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짐승입니다. 그들에게는떡만 있으면 삽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참 성도는영의 양식인 말씀이 있어야 살수 있는 것입니다.
2. 말씀이 개인의 생명 양식이라는 뜻은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누구에게나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한 말로 들렸을 때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아무개야,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너한테 한말이다!라고 하는 듯이, 그 개인을 불러 내었을때,아, 그렇구나!하고 거기에 응답하고 순종했다면 그로써 내가 부르심을 받은 것이고 응답한 것입니다. 그러한 말씀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있어 왔지만, 그것이 내개인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아, 이것이 주께서 내게 주시는 약속이구나!하고 믿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개인적으로 불러내셔서 꼴을 먹이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든지, 혹은 성경을 보지 않고 묵상을 하든지, 그 말씀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들려오는 말씀이고, 나에 대한 약속으로, 위로로, 격려로, 나를 경책하는 말씀으로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던져주는 말이 아니라,아무개야, 내가 너 개인에게 준다!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보든지 안보든지,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개인적으로 울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날도 있고, 안 읽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생활 원칙은 내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어야 합니다.
3. 깨달아지는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이 개인의 생명의 양식으로 제공되어 깨달아지는 방식은 두가지 입니다. 꼭 필요한 시기에 그 말씀이 떠오르게 합니다. 내가 한주일 전에 들은 설교가 되었든지, 일년전에 읽은 어떤 말씀이 되었든지, 어떤 필요한 시기에 그 말씀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에, 그 상황이 과거와 같이 인생 생활 가운데의 한 단면으로 그냥 의미없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깨닫게 하는 하나의 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축이 돌면서, 즉 상황이 바뀌면서 말씀을 또 하나 깨닫게하고, 어떤 상황이 임했을 때 그로 말미암아서 결국은 말씀의 새로운 뜻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주께서 내 이름을 날마다 불러 나가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늘 말씀과 함께 역사하셔서 내안에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으로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이 한꺼번에 다 깨달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나의 상황이라는 것도 모든 성경말씀을 한꺼번에 다 깨달을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 장성의 정도도 있고, 또 내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환경의 여러가지 여건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합력해서 어떤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앙의 장성 정도에 맞게 자꾸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한꺼번에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다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어려운 이야기를 깨닫는 날도 올 것이지만, 지금 나의 장성의 정도에서 매시간, 매일 혹은 그때 그때 점점 더 장성해 가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혹은 때때로 인생생활을 해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성경의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런 문제 앞에서 우리는 자기 장성의 정도에 따라서 지금 까지 알고 믿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도리를 따라서 문제에 임하며, 무엇보다도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때에 성령님께서 필요한 말씀을 가지시고 나로 하여금 깨닫고 믿게 하사 문제를 풀고 전진하여 가게 하십니다. 일정한 기간에 집중적으로 배우게 합니다. 그때 그때 깨닫게 하시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어느 시기가 되면 어떤 일정한 시간 안에 특별히 무엇을 쭉 알고 배우고 더 많이 터득하게 하는 때도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그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그럴만한 시간이나 생활의 여유가 없이 분주해져서, 이전에 받아서 저축하고 있는 것을 쓰도록 하는 일이 앞으로 오겠으므로, 그전에 미리 준비를 시키느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특별히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주시는 것이고, 또 그러한 것을 간절히 원하는 심정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을 드려서 준비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둘째, 생명을 더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 우리의 생활에는 그렇게 큰 변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생활이던지 하루, 이틀, 사흘 계속적으로 비슷한 생활을 하고 보면 나중에 일종의 타성이 생기기 쉬운 것입니다. 직장생활도 그렇고, 학교생활이나 주부생활도 그렇습니다. 타성에 젖어서 아무런 생동감이나 점점 더 풍성한 삶이 없이 그저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1. 타성에 젖은 생활 사람이 어떤 환경속에서든지, 그속에서 자기의 생활을 타성에 맡겨 가지고 그대로 지내고, 무슨 큰 풍파없이 먹고 입고 사는 것이 큰 지장이 없으면 그대로 지냅니다. 건강이나 잘 유지하고, 대체로 먹고사는 문제에 지배를 받아서 거기에 주력하고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타성에 젖어서 그만 그만한 정도에서 살고마는 일이 참 많습니다. 주일에는 예배당 가고, 또 가끔 기도회에 모이고, 때때로 성경읽고 자기 집안일을 돌아 보면서 그렇게 일생을 삽니다. 그러니까 결국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무슨 중대한 변화가 있다든지 장성의 현저한 사실이 있다든지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오래 예수를 믿었느니라 하는 것뿐이지, 무슨 현저하게 내어놓을 만한 열매가 없습니다. 과연 그 사람의 품성에 있어서도 그 이전과 비교해 보아서 아주 현저하게 완전히 변화된 사람으로서 인격적인 품성과 품격이라는 것을 자꾸 더 현저하게 드러내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이런식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면 그는 자기가 확연히 주의 음성을 매일 듣고 주께서 주시는 양식을 먹어서 생명이 더 풍성해지는 생활을 한 것인가 아닌가를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2. 일상생활에서 더욱 풍성한 삶은 무슨 특별한 생활이 없는데, 이런 생활속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더욱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매일 매일 생활을 평이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타성에 젖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더욱 더 말씀을 풍성히 깨달아서 고도의 높은 경지로 자꾸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환경이라는 것은 늘 비슷하지만, 자기의 깨달음과 생각하는 것과 마음 상태는 자꾸 고결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모신자는 그분으로 인해 풍성한 삶을 얻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에게서 매일 매일 살아서 움직이고 그말씀이 나에게 분명한 음성으로 들렸다면, 그것은 세월이 가는 동안에 나에게 괄목한 만한 변화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앞으로 처음에 나왔을때에는 어린아이 같아서 무엇인지 희미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현저하게 그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신비한 경지에, 즉 더욱 거룩하고 더욱 능력있는 경지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타성적인 생활에 젖어있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첫째, 그날에 필요한 양식을 먹이십니다. 우리는 팔레스틴 지역에서의 목양의 풍경을 생각해 보십시다. 목자가 온종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여 꼴을 뜯게 하다가, 저녁이 되면 우리로 데려와서 저녁 동안의 추위와 맹수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공동 우리에 양들을 들여보내서 맡겨 두었다가, 아침이 되면 그 우리를 찾아가서 자기 양들을 불러내어 다시 푸른초장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들어가며 나오며라는 말속에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면 그날에 필요한 “꼴”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의미 입니다. 당시 목양의 풍경을 그리며 표현한 것입니다.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인 우리 성도들에게그날 그날의 만나를 먹이십니다. 그날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십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그날의 만나를 먹게 하신것과 같습니다. 출애굽 후 먹을 것이 없어서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리셔서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두게 하셨습니다(출16:4).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시고 인도하신 것을, 시78:52 에서는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같이 지도하셨도다!고 합니다. 따라서 참으로 주님을 목자로 모신 양이라면, 매일 매일 그분으로부터양식을 공급받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과연 내가 목자되신 예수님의 양인가를 확인해야 하며, 혹시 양이라 할지라도 비실 비실한 병든 양일 것입니다. 건강한 정상적인 양은 목자로 인해서 그날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1. 생명의 양식은 무엇입니까 양인 성도가 날마다 먹고 살아야 할생명의 양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입니다. 마4:4에서 예수님께서는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신8:3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를 먹게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수 있는 인생임을 알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생명의 양식으로 생각하며, 그 말씀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사십니까 아니면떡으로만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인가를 분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아직도떡만 있으면 살수 있다고 생각하며 교회를 출입하는 정도라면 사실예수님의 양이 아닌 증거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자신에게 있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모든 인생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까닭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수 있음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도입니다. 떡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짐승입니다. 그들에게는떡만 있으면 삽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참 성도는영의 양식인 말씀이 있어야 살수 있는 것입니다.
2. 말씀이 개인의 생명 양식이라는 뜻은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누구에게나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한 말로 들렸을 때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아무개야,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너한테 한말이다!라고 하는 듯이, 그 개인을 불러 내었을때,아, 그렇구나!하고 거기에 응답하고 순종했다면 그로써 내가 부르심을 받은 것이고 응답한 것입니다. 그러한 말씀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있어 왔지만, 그것이 내개인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아, 이것이 주께서 내게 주시는 약속이구나!하고 믿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개인적으로 불러내셔서 꼴을 먹이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든지, 혹은 성경을 보지 않고 묵상을 하든지, 그 말씀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들려오는 말씀이고, 나에 대한 약속으로, 위로로, 격려로, 나를 경책하는 말씀으로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던져주는 말이 아니라,아무개야, 내가 너 개인에게 준다!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보든지 안보든지,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개인적으로 울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날도 있고, 안 읽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생활 원칙은 내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어야 합니다.
3. 깨달아지는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이 개인의 생명의 양식으로 제공되어 깨달아지는 방식은 두가지 입니다. 꼭 필요한 시기에 그 말씀이 떠오르게 합니다. 내가 한주일 전에 들은 설교가 되었든지, 일년전에 읽은 어떤 말씀이 되었든지, 어떤 필요한 시기에 그 말씀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에, 그 상황이 과거와 같이 인생 생활 가운데의 한 단면으로 그냥 의미없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깨닫게 하는 하나의 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축이 돌면서, 즉 상황이 바뀌면서 말씀을 또 하나 깨닫게하고, 어떤 상황이 임했을 때 그로 말미암아서 결국은 말씀의 새로운 뜻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주께서 내 이름을 날마다 불러 나가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늘 말씀과 함께 역사하셔서 내안에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으로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이 한꺼번에 다 깨달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나의 상황이라는 것도 모든 성경말씀을 한꺼번에 다 깨달을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 장성의 정도도 있고, 또 내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환경의 여러가지 여건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합력해서 어떤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앙의 장성 정도에 맞게 자꾸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한꺼번에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다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어려운 이야기를 깨닫는 날도 올 것이지만, 지금 나의 장성의 정도에서 매시간, 매일 혹은 그때 그때 점점 더 장성해 가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혹은 때때로 인생생활을 해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성경의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런 문제 앞에서 우리는 자기 장성의 정도에 따라서 지금 까지 알고 믿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도리를 따라서 문제에 임하며, 무엇보다도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때에 성령님께서 필요한 말씀을 가지시고 나로 하여금 깨닫고 믿게 하사 문제를 풀고 전진하여 가게 하십니다. 일정한 기간에 집중적으로 배우게 합니다. 그때 그때 깨닫게 하시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어느 시기가 되면 어떤 일정한 시간 안에 특별히 무엇을 쭉 알고 배우고 더 많이 터득하게 하는 때도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그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그럴만한 시간이나 생활의 여유가 없이 분주해져서, 이전에 받아서 저축하고 있는 것을 쓰도록 하는 일이 앞으로 오겠으므로, 그전에 미리 준비를 시키느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특별히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주시는 것이고, 또 그러한 것을 간절히 원하는 심정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을 드려서 준비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둘째, 생명을 더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 우리의 생활에는 그렇게 큰 변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생활이던지 하루, 이틀, 사흘 계속적으로 비슷한 생활을 하고 보면 나중에 일종의 타성이 생기기 쉬운 것입니다. 직장생활도 그렇고, 학교생활이나 주부생활도 그렇습니다. 타성에 젖어서 아무런 생동감이나 점점 더 풍성한 삶이 없이 그저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1. 타성에 젖은 생활 사람이 어떤 환경속에서든지, 그속에서 자기의 생활을 타성에 맡겨 가지고 그대로 지내고, 무슨 큰 풍파없이 먹고 입고 사는 것이 큰 지장이 없으면 그대로 지냅니다. 건강이나 잘 유지하고, 대체로 먹고사는 문제에 지배를 받아서 거기에 주력하고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타성에 젖어서 그만 그만한 정도에서 살고마는 일이 참 많습니다. 주일에는 예배당 가고, 또 가끔 기도회에 모이고, 때때로 성경읽고 자기 집안일을 돌아 보면서 그렇게 일생을 삽니다. 그러니까 결국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무슨 중대한 변화가 있다든지 장성의 현저한 사실이 있다든지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오래 예수를 믿었느니라 하는 것뿐이지, 무슨 현저하게 내어놓을 만한 열매가 없습니다. 과연 그 사람의 품성에 있어서도 그 이전과 비교해 보아서 아주 현저하게 완전히 변화된 사람으로서 인격적인 품성과 품격이라는 것을 자꾸 더 현저하게 드러내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이런식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면 그는 자기가 확연히 주의 음성을 매일 듣고 주께서 주시는 양식을 먹어서 생명이 더 풍성해지는 생활을 한 것인가 아닌가를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2. 일상생활에서 더욱 풍성한 삶은 무슨 특별한 생활이 없는데, 이런 생활속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더욱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매일 매일 생활을 평이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타성에 젖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더욱 더 말씀을 풍성히 깨달아서 고도의 높은 경지로 자꾸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환경이라는 것은 늘 비슷하지만, 자기의 깨달음과 생각하는 것과 마음 상태는 자꾸 고결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모신자는 그분으로 인해 풍성한 삶을 얻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에게서 매일 매일 살아서 움직이고 그말씀이 나에게 분명한 음성으로 들렸다면, 그것은 세월이 가는 동안에 나에게 괄목한 만한 변화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앞으로 처음에 나왔을때에는 어린아이 같아서 무엇인지 희미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현저하게 그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신비한 경지에, 즉 더욱 거룩하고 더욱 능력있는 경지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타성적인 생활에 젖어있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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