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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와 함께 (요10:1-15)

본문

제가 어느 존경하는 교수님과 함께 성지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학교 졸업한지가 얼마안된 후에 성지에 가 보면 큰 유익이 될 줄 알고 그렇게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 교수님과 함께 가면 큰 도움이 될 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약 20여일동안 거기 다녀오는 동안 교수님은 말씀을 거의 안하시고 오히려 교수님은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열심히 적고 그 하나 하나의 과정을 잘 따라가시기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다 알기에, 이만하면 되었기에 다른 누구의 소리도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다 되었다고 행각하고 더 이상 받아드리지 않는 것은 자기 발전에 저해가 됩니다. 우리는 나보다 더 나은 분이 있음을 알고 잘 받아들일 때 발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후로 그 교수님을 존경하게 되고 그 분이 무척 훌륭한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내가 누군데 얼마나 많이 아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데. ' 하는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의 설교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분은 우리 교단에서 파견한 분이었습니다. 이 분은 우리나라에서는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 한국의 지도자는 다 잘못되었다, 교회 지도자, 목회자도 다 잘못되었고 존경할 사람이 없다' 고 했습니다. 교계 지도자들에게 가까이 가면 오히려 낙심하기에 가까이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 자신은 '자기 아버지가 가장 존경스러운 분이며 자기 아들이 가장 자랑스럽고,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모른다' 고 했습니다. 마치 북한에서 아버지 수령님에게 하는 것처럼 눈물을 철철 흘리며 아버지를 자랑하고 자기 자식 자랑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 분에게는 좋은 아버지요, 자랑스러운 자식일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 아버지나 아들을, 자기 가정에 있는 분을 우상처럼 받들고 하늘처럼 높이고 높혀야 할 분을 높히지 않는 것은, 신학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다듬어지지 않는, 교육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존경할 분이 그렇게 많이 있는데 어떻게 존경할 분이 없다고 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나라에 얼마나 존경할 분이 많은지 모릅니다. 적어도 남에게 말할 때는 자기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실례입니다. 이 세상에 살때 내 집, 내 생각, 내 하는 일, 내 결정, 나의 하는 일은 완전하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언제나 남의 이야기를 듣고 잘 받아 들이는 것이 평화로운 관계가 되게 합니다. 대통령을 모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라가 잘 될 때는 대통령이 신문이나 백성들의 이야기,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데 나라가 잘못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절대로 듣지 않고 본인의 이야기만 주장하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내가 하는 일이 잘못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럴 때 그것은 뉘우치고 반성하고 고쳐야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을이면 뱀이 땅으로 들어가는데, 이 때 뱁을 많이 잡는데 땅군들이 능선에 삼 사백 미터 그물을 쳐 놓으면 아침에 들어가서 수십마리의 뱀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도 뱀을 많이 잡았지만 뱀의 성격이 그물에 걸리면 물러서지 않고 그물이 죽나, 내가 죽나 하면서 대항을 한다고 합니다. 짐승들이 거의 다 그렇다고 합니다. 덫에 걸리면, 조그만 철사에 걸리는 것도 얼른 뒤로 물러서면 되는데 그냥 앞으로 계속 전진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짐승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망하고 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이야말로 양보하고 포기하고 뒤로 물러설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삶을 보면 얼마나 잘 물러서셨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니 뒤로 물러서고 또 도망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요 예수님은 사림들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물러서셨습니다. '내가 누군데 물러서나!' 고 하는 것은 좋은 길이 아닙니다. 가정이 평화로우려면, 만약 남편이 소리지르면 그냥 독창하라고 하면 됩니다. 거기에 이중창하려고 같이 소리지르지 말고 만약 아내가 소리지르면 '소프라노구나' 하면서 그냥 독창하라고 들어줘야 합니다. 그냥 실컷 노래 부르세요 하고 가만 놔두어야 합니다. 이 길만이 길이 아니고 이 사람만이 사람이 아닙니다. 이 직장만이 직장이 아닙니다. 저도 선을 두번 봤습니다. 지금 집사람은 두번째 사람입니다. 처음 선 본 사람에게는 제가 차였습니다. 처음 선 본 그 사람과 몇 번 말이 있은 다음에, 그 신부 집에서 저에게 미리 약속한 어느 사과나무밭에 서 있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옷을 잘 입고, 사과나무를 한 가지 잡은 후에 멋진 포즈를 잘 잡고 잘 보이도록 서 있었는데 그 분이 나를 그만 찼습니다. 저는 너무 섭섭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까, 지금 결혼해 사는 분이 열 배나 더 예쁘고 비교할 수 없이 착한 귀한 분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길만이, 이 분만이, 요것만 잡아야 하고 양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어떤 분야도 안됩니다. 기업도, 연애도, 학문도, 정치도, 경제도 그래서는 안됩니다. 더 좋은 길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혼인말이 있다가 혼인이 안되면 그 집에 가서 불을 지르고, 누가 반대했나 어머니냐 그 어머니를 죽이려고' 합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한 가지만 알고 이렇게 되면 일생이 잘못됩니다.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열 개중에 하나가 안될수도 있습니다. 또 다 안되다가 열 개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직장생활에 고생하다가 그 직장에서 나왔으면 그 쉬는 기간을 인생의 십일조라고 생각하고 그 기간을 쉬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얼마든지 더 좋은 것으로 준비하고 계시다가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소망을 갖고 기다리면 더 좋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한 것이 있음을 믿고 더 찾으며 기다려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수가 됩니다. 목마른 우리에게 시원한 생수이시며, 힘과 기쁨의 생수가 되십니다. 주는 우리 안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시고 포도나무이십니다. 가지인 우리에게 열매맺게 하시는 나무가 되십니다. 더할 수 없는 죄인이, 열매없고 소망없는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열매맺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발을 씻겨 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냄새나고 더러운 우리 발을 씻기시고 오늘도 더러워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씻어주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 늘 같이 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와 주님의 관계를 양과 목자의 관계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은혜가 있으셔서 양과 같은 우리에게 좋은 목자를 보내주시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짐승은 주인을 떠나도 살 수 있습니다. 소나. 닭이나 개나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나라의 양은 그렇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목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는 다릅니다. 유대나라에서는 양이 목자의 인도함을 찾지 않고는 물을 찾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나라에서는 물은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로 멀리 있고, 지형은 너무 절벽이어서 언제 어디서 떨어질지 모르고, 오월부터 시월까지는 온 땅이 메말라 버리기 때문입니다. 유대 나라는 그 시기에는 비 한방울도 내리지 않는 곳입니다. 양은 자기 혼자는 굶어 죽게 되어 있습니다. 들에 짐승이 많기에 사나운 짐승에게 물려 죽게 됩니다. 이런 땅에서 사는 양들의 목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를 위험한 길이 아닌 안전한 길로 인도한다' 고 자신을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잘 이해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형이나 문화가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를 이렇게 보면 '여호와는 나의 돈이시니 부족함이 없다, 뭐니 뭐니하더라도 주는 머니시니, 주께서 돈의 지팡이로 인도하고 돈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니' 라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가난하게 살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돈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주님은 우리의 목자시라' 고 하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은 나의 참 좋은 목자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다음의 다섯가지로 좋은 목자이심을 표현하십니다.
1. 주님은 양의 문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드나드는 문입니다. 통과해야 하는 문입니다. 통과하면 누구나 살 수 있는 문입니다. 구원의 문입니다. 이 문으로 들어오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사죄의 문입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생명을 얻고 천국을 들어가는 구원의 문입니다. 온 인류의 구원이 되는 문입니다. 행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주 예수님만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문으로 들어가며 끝까지 예수 믿는 문으로 늘 출입하며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2. 양을 불러서 인도하여 내십니다. 주님은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부름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부르십니다. 내가 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점을 치듯이 귀신을 찾아가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아! 이삭아! 아브라함아! 마리아야! 사울아! 삭게오야! 하시면서 부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개개인도 늘 부르시고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나왔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창세전에 우리를 부르셔서'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주님은 내 이름을 아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떠나면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주의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 주님을 떠나면 꼭 고민이 생기거나 잠이 안오거나, 고통이 오든지 하면서 주의 음성이 들립니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주님께서는 우리를 늘 부르십니다. 사랑으로, 말씀으로, 은혜로 부르시고 성령님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입니다. 원래 교회라는 말이 본문의 말과 같습니다.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즉 세상에서 불러모은 자들입니다. 교회에 부름받아 나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영적인 양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 한사람 한 사람과 저를 여기까지 부르셨습니다.
3.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목자이십니다. 목자가 양보다 앞서가면 양들은 그 음성을 알고 따라갑니다. 기독교는 따라만 가면 됩니다. 모든 것은 목자되신 주님께서 준비하시고 예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시고 우리는 따라가면 되는 종교입니다. 잘믿는 성도는 주님을 잘 따라간 성도입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성도는 목자를 안따라가는 성도입니다. 욥처럼 하나님을 믿고 '나의 가는 길을 주님께서 잘 아심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선한 목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예비하시고 기다리시고 또 우리 앞날을 알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그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당신의 문제 때문에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시고 마음 아파하셨지 인간의 문제를 몰라서 방황하거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잘 따라가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복되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어디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이 세상에 갈 때 주만 따라가면 됩니다. 성도의 길은 예수를 따라가면서 살기에 세상이 좋고 또 어떻게 살아 가든지 좋은 것입니다. 자식을 보든지 남편을 보든지간에 예수님을 보고 따라가기에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아내를 봐도 예수를 보고 따라가고 보기에 문제가 없습니다. 저의 아버님 85살이신데 저희 집에서 이런 노인분을 모시고 살므로 왜 어려운 일이 없겠어요 그러나 저의 아내가 아버님을 볼 때 '그래도 귀한 아들을 주셨는데 하면서, 잘해야지 하면서, 모시고 산다' 고 합니다. '김삼환씨 같은 아들을 주셨는데' 라고 꾹 참고 산다고 합니다. 예수님이라는 목자를 따라가므로 언제나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살아갈 때도 속상한 일이 많습니다. 화가 여기까지 올라올 때도 많지만, 매일 화나는 일이 있지만 예수를 바라보면 됩니다. 운전하다가 보면 길에서 뒤에 얼마나 차가 밀려 있는데도 끝까지 서로 싸움을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 따라가는 삶이 바로 양떼의 삶입니다.
4. 양으로 생명을 풍성하게 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은 삯꾼 목자와 도적과 다릅니다.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은 칠십, 팔십이요 땅으로 가는 생명이요, 썩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사는 생명으로 오셔서 그를 믿는 자는 죽지 않고 멸망받지 않는 생명을 주셨습니다. 죽어도 사는 생명, 영원히 가는 생명, 하늘나라 가서 사는 생명은 목자 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안 계시면 우리에게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충만케 해 주는 생명을 주십니다. 이 사회는 물질 우선의 사회입니다. 정신적으로 삭막하고, 고통과 고민으로 가득차서 모두가 이 시대를 탈출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 생명을 풍성케하며 누가 우리의 삶을 충만케 해 줄까요 주님을 알면 우리의 삶이 풍성해 지고 충만케 됩니다. 주님을 가까이 할 때만이 풍성해집니다. 삭게오도, 우물가의 여인도, 고기잡는 베드로도 예수를 가까이 함으로 풍성함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면서 왜 여유가 없습니까 더 사랑해야 하는데도 왜 가시돋친 말을 하게 됩니까 그것은 예수를 멀리 두었기 때문입니다.
5. 양을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양을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목자이신 주님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무거운 짐을 지시고, 위험한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지 않고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우리 대신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양의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양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1. 다른 음성은 듣지 말아야 합니다. 목자의 음성만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만 듣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자가 양이 다른 음성을 어떻게 분별하는지 말아보려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목자와 똑같은 복장을 하고 양에게 비슷한 소리로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양들이 가짜임을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 수준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날은 듣는 소리, 채널이 너무 많습니다. 왠 건강이 그렇게 복잡하고 왠 행복이 그렇게 방법이 많은지 모릅니다. 철학에 답이 있습니까 거기서 길과 생명을 찾을 수 있었나요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대답의 대표적인 것은 '생각하는 존재' 라는 정도입니다. 생각함으로 내가 있다는 정도입니다. 어디 심리학적으로 인생의 대답이 나오는가요 과학적으로 인간의 진리를 찾을 수 있나요 예수님만이 나의 길을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만 들어야 합니다. 다른 말을 들으면 안됩니다. 미국 청교도들은 예수님 말씀만 듣고 스위스, 덴마크, 노르웨이도 역시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이렇게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러 말을 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대로 결혼이나, 사업을 하시길 바랍니다.
2. 예수의 문으로만 출입하라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세상에 성공, 인기의 문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 문이 구원의 문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문으로 자꾸 드나들기만 하면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성탄절만 교회에 오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구원의 문을 열고 늘 드나들 때마다 잘될 줄 믿습니다.
3. 우리 안에만 있어야 합니다. 울타리 안입니다. 교회 안입니다. 주님 안입니다. 우리 양의 할일은 밖의 유혹을 받지 않고 밖에 자꾸 나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안의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조금 시험이 들면 밖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 안됩니다. 자꾸 밖에서 물어보면 결국 이중생활을 하게 되고 결국 한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양들은 우리안에 있어야 합니다. '아 주님께서 기다리라는 것이구나, 뛰라는 것이구나' 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머리를 세상에 들이밀면 안됩니다. 저는 엉뚱한 소리도 듣습니다. 김삼환 목사는 몇 십억을 마음대로 쓴다고 하는 밖에서 어떤 목사님이 하시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밖에서 들려오는 몇마디 말을 이 말, 저 말 들으면 시험들지요.성도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잘 자라다가도 나쁜 친구 사귀면 도적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안의 사람을 잘 사귀어야지 밖으로 돌아다니는 말을 들으면 안됩니다.
4. 다른 것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만, 예수만 따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양의 안전과 행복이 있습니다. 목자는 생명을 내놓고 양을 지키려고 하는데, 양들이 다른 것을 따르고 다른 말을 들으려고 할 때 양들이 실패하고 상처를 입습니다. 우리는 양이고 주님이 목자입니다. 주님과 함께 끝까지 승리하는 복된 양의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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