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전자전(母傳子傳) (딤후1:1-5)
본문
실로 영웅적인 무적의 세기적 세계 선교사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그의 최후의 날을 맞을 때가 가까워 옴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홀로 투옥의 고독을 씹으면서 의사 누가의 조력(助力)을 받으면서 자신의 생애를 정돈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영(靈)은 밤낮 주께 간구하는 삶으로 충만하여 있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영의 간구들 중에 쉬지 않고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보고 싶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나고 보고 싶어진 사람은 다름 아닌 디모데였다고 하였습니다(딤후 1:3,4). 바울은 그를 ‘내 아들’(딤후 2:1)이라 했고, ‘참 아들’(딤전 1:2)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바울이 디모데를 낳았다는 영적 양부(養父) 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감옥에서 바울이 그토록 디모데가 생각나고 보고 싶었던 이유는 1 네 눈물을 생각함이요(딤후 1:4)
2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 1:4). 3 그리고 디모데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 1:5). 그러한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다’(딤후 1:5)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바울이 죽음을 앞에 두고 있던 자리에서 디모데가 생각나고 보고 싶어진 것은 육적인 이유가 아니라 영적인 이유임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말 중에 특별히 디모데의 믿음을 언급할 때 그 믿음은 모전자전(母傳子傳)한 것이라고 한 사실을 봅니다. 디모데의 믿음은,
I. 모전자전(母傳子傳)의 믿음이었습니다. 본문 1장 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1.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믿음이 있었습니다(딤후 1:5). 디모데의 믿음은 ‘먼저’ 그의 외조모와 어머니 속에 있었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저들이 경건한 유대교 신자들로서 저들의 자녀들을 메시아적 소망 안에서 기른 것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들은 유대인이었습니다(행 16:1). 그래서 처음에는 유대교 신앙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라고 하였습니다(행 16:1). 이런 저들은 나중에 바울의 제1차 선교 원정 때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경건한 유대교적 신앙심 위에 그리스도(메시아)교 신앙을 더하게 된 것입니다.
2. 디모데 속에도 믿음이 있었습니다(딤후 1:5). 외조모 로이스(Lois)와 어머니 유니게(Eunice) 속에 있던 믿음이 디모데 속으로 계승이 된 것입니다. 디모데는 할머니와 어머니 속에 있던 구약적 유대교의 경건한 신앙 곧 메시아 소망의 신앙과 성취된 신약의 그리스도 신앙을 유산으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본문에 ‘속(ν )’이라고 하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 말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외식이나 형식으로 존속될 수가 없고, 내실주의(內實主義)에 의해서만 존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디모데 속에는 안수받을 때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사도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딤후 1:6). 이렇게 디모데 속에는 거짓없는 믿음(딤후 1:5)도 있었고, 장로의 회(會)에서 안수받을 때 받은 하나님의 은사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딤후 1:6, 딤전 4:14). 할머니 로이스 ‘속’에 있던 믿음이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고,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던 믿음이 디모데 ‘속’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속에서’ ‘속으로’ 계승되는 성질의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인격의 지성소인 ‘속’, 곧 ‘마음(심령)’에 자리를 잡고 자라는 것입니다. 영(靈)에서 영으로 계승되는 것입니다. 속에서 속으로 계승되는 성질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보는 것보다, 듣는 것보다, 만지는 것보다, 말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뜨거운 것입니다. 확실하고 오래가는 성격의 것입니다. 이렇게 디모데의 믿음은 모전자전(母傳子傳)한 것입니다.
Ⅱ. 모전자전(母傳子傳)하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본문 1장 5절 중에 「···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가정에서의 어머니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손들에게 신앙을 전함에 있어서 남성보다 여성, 부성보다 모성의 영적 영향이 얼마나 직접적이고 감화적이고 효과적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모데가 외조모와 어머니께로부터 받은 모전자전(母傳子傳)하는 신앙교육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 성경교육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서 디모데가 누구에게서 이 성경을 배운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에게 진리의 도를 배웠습니다(딤전 1:2). 그러나 그 전에 벌써 그의 외조모와 어머니 유니게에게 성경교육을 받은바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의 성경교육은 ‘어려서부터’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모전자전(母傳子傳)된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 성경은 바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책이었습니다(요 5:39). 그 성경은 1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져다 준다고 하였습니다(딤후 3:15).
2 뿐 아니라 모든 삶의 실행력도 준다고 하였습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라고 하였습니다(딤후 3:16). 말하자면 판단하고 행동하는 동력이 된다는 말입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이러한 성경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이렇게 자녀에게 어머니의 책임은 중대하고 필요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일수록 성경을 교육하기에 유익하고 또 효과적입니다. 사실상 이러한 성경교육은 아버지보다 어머니 편이 더 유력합니다. 그것은 두 번 하는 해산의 수고요, 즐거움입니다. 육신의 해산은 어머니에게 고통입니다. 사경을 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을 안게 되는 자신의 즐거움이요, 가정의 기쁨이 됩니다. 두 번째 해산은 어려서부터 성경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은 바로 그 자녀에게 영적 생명을 탄생시키는 즐거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 성경교육의 중심 내용은 무엇입니까 1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과 2 성경은 하나님을 가르쳐 주고 3 성경은 사람(인생)을 가르쳐 주고 4 성경은 예수를 가르쳐 주고 5 성경은 구원(믿음)을 가르쳐 주고 6 성경은 교회를 가르쳐 주고 7 성경은 끝날(종말), 곧 영생과 영벌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류 교육의 대헌장입니다. 가정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이 성경을 가르치는 결정적인 교사로 임명을 받은 것입니다.
2. 감동적인 교육, 곧 눈물의 교육이었습니다. 지금 바울이 로마의 감옥생활 중에서 디모데가 생각나고, 보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는 디모데의 눈물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 1:4). 바울은 디모데가 눈물의 사람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가정에 있어서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표자요, 자녀에게 보냄 받은 사신(使臣)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란 이름은 자녀를 위하여 주신 축복의 대명사(代名詞)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없는 자에겐 이 이름이 없습니다. 이 이름은 가정과 자녀에게 전용되는 이름입니다. 관청이나 회사, 학교나 연구실, 기타 다른 일반 사회적 활동 분야에서는 이 이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그 사회와 조직에 필요한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는 이름은 가정의 전용어입니다. 자식들을 위한 이름입니다. 자식을 사랑하고, 교육하고, 축복하고, 양육하는 데 더할 나위가 없는 이름이 곧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이 이름만이 자식에게 감동력을 주고, 감화력을 주고, 위로와 소망과 신뢰를 줍니다. 자녀교육에 결정적인 이름은 아버지, 어머니뿐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에, 자녀를 위하여 아버지, 어머니의 직함을 부여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이름과 자격과 권한으로 자녀들의 인격을 다듬어 가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이 갖고 있는 매력 중의 매력은 사랑이요, 축복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모든 절망을 소망으로, 모든 미움을 사랑으로, 모든 의심을 신뢰로, 모든 어둠을 빛으로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힘이 됩니다. 그 사랑과 축복의 마음은 ‘눈물’이라고 하는 웅변 이상의 감동과 감화력과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 디모데의 눈물은 이러한 할머니와 어머니의 눈물에서 기인된 것 같습니다.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는 눈물의 기도와 찬양과 축복을 먹으면서 자라났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자녀들의 인성과 인격의 성장과 변화에 얼마나 큰 자양분이 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참으로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좋은 양약(良藥)이 됩니다.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눈물의 귀함은 그것이 사랑의 눈물이고, 축복의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눈물이고, 희망의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주신 인생의 가장 위대한 자산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놀라운 인간 탄생의 신비는 우리로 하여금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의 시작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나는 출생할 때부터 나를 향한 어머니의 울부짖음을 들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아들된 자기를 위해 울부짖고 기도하던 그 어머니의 모습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탈리아로 떠나려고 했다. 그날 밤 어머니는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러나 아침 햇살이 비추일 때 나는 그 집을 떠나 버렸다. 그날 밤 나는 기도하며 우시는 어머니를 뒤로 남긴 채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 오 주님! 배를 타는 나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도록 당신께 간구했던 그 분의 눈물은 무엇이었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그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 때문에 탕아생활에서 회개하고 성자가 된 것입니다. 눈물은 귀합니다. 더욱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눈물은 더 귀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눈물일 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의 밑거름이 됩니다. 눈물이 있어야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야 영적 진리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법칙세계는 눈물이 없습니다. 교통법칙, 경제법칙, 국제법칙, 전투법칙, 과학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부력의 법칙, 비행의 법칙 등등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세계는 아무런 감동이나 변화나, 창조를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희비애락(喜悲哀樂) 가운데서 눈물을 흘립니다. 괴로움을 참아 나갈 때 눈물이 납니다. 지은 죄를 회개할 때 눈물이 나고, 주의 용서를 받을 때 눈물이 나고, 남을 용서할 때 눈물이 나고, 또 남을 사랑할 때 눈물이 납니다. 더욱이 부모가 자식을 쳐다 볼 때 눈물이 납니다. 사랑의 눈물입니다. 기쁨의 눈물입니다. 축복의 눈물입니다. 디모데는 이 눈물을 모전자전(母傳子傳)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있는 자식을 향한 눈물은 결코 어머니의 사랑이 고갈되지 않고, 변질되지 않고, 피곤할 줄조차 모르고 움직이고 있다는 위대한 입증이 됩니다. 그래서 매터린크(M. Maeterlink)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을 사랑할 때 풍요로워집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에 있어 비천하고, 추하고, 늙은 어머니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모든 기쁨과 희망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슬퍼 보일 때 주고받는 한 번의 포옹과 입맞춤으로 눈물이 반짝일 때, 모든 아픔들이 사라져 버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에머슨(Emerson)은 ‘인간이란 어머니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필립 부룩스(P. Brooks)는 ‘나의 삶 중에 가장 행복한 부분은 어머니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어머니는 더욱 그러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스(J. Q. Adams)는 ‘현재의 나의 모든 것은 어머니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그러했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그러했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둔 어머니 수넴 여인이 그러했고, 우리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무디(D.L. Moody)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들은 모두 다 위대한 어머니들의 산물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의 눈물은 모전자전(母傳子傳)한 은총의 선물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눈물로 목회하였습니다. 나중에 그의 후임자 디모데도 그렇게 또 눈물로 목회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어머니된 여러분! 예수의 구원을 모전자전(母傳子傳) 합시다. 거룩한 주의 계명을 모전자전(母傳子傳) 합시다. 거룩한 신앙을 모전자전(母傳子傳)함으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거짓없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 줍시다. 그것은 성경적 교육에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생활로 나타내는 어머니의 사랑과 감화, 곧 눈물의 교육에 있습니다. 거룩한 주일성수를 모전자전(母傳子傳) 합시다. 거룩한 십일조와 감사와 봉사와 헌신을 모전자전(母傳子傳) 합시다. 주의 지상 명령인 종말의 세계 선교 운동을 모전자전(母傳子傳) 합시다.
2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 1:4). 3 그리고 디모데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 1:5). 그러한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다’(딤후 1:5)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바울이 죽음을 앞에 두고 있던 자리에서 디모데가 생각나고 보고 싶어진 것은 육적인 이유가 아니라 영적인 이유임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말 중에 특별히 디모데의 믿음을 언급할 때 그 믿음은 모전자전(母傳子傳)한 것이라고 한 사실을 봅니다. 디모데의 믿음은,
I. 모전자전(母傳子傳)의 믿음이었습니다. 본문 1장 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1.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믿음이 있었습니다(딤후 1:5). 디모데의 믿음은 ‘먼저’ 그의 외조모와 어머니 속에 있었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저들이 경건한 유대교 신자들로서 저들의 자녀들을 메시아적 소망 안에서 기른 것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들은 유대인이었습니다(행 16:1). 그래서 처음에는 유대교 신앙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라고 하였습니다(행 16:1). 이런 저들은 나중에 바울의 제1차 선교 원정 때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경건한 유대교적 신앙심 위에 그리스도(메시아)교 신앙을 더하게 된 것입니다.
2. 디모데 속에도 믿음이 있었습니다(딤후 1:5). 외조모 로이스(Lois)와 어머니 유니게(Eunice) 속에 있던 믿음이 디모데 속으로 계승이 된 것입니다. 디모데는 할머니와 어머니 속에 있던 구약적 유대교의 경건한 신앙 곧 메시아 소망의 신앙과 성취된 신약의 그리스도 신앙을 유산으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본문에 ‘속(ν )’이라고 하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 말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외식이나 형식으로 존속될 수가 없고, 내실주의(內實主義)에 의해서만 존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디모데 속에는 안수받을 때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사도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딤후 1:6). 이렇게 디모데 속에는 거짓없는 믿음(딤후 1:5)도 있었고, 장로의 회(會)에서 안수받을 때 받은 하나님의 은사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딤후 1:6, 딤전 4:14). 할머니 로이스 ‘속’에 있던 믿음이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고,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던 믿음이 디모데 ‘속’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속에서’ ‘속으로’ 계승되는 성질의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인격의 지성소인 ‘속’, 곧 ‘마음(심령)’에 자리를 잡고 자라는 것입니다. 영(靈)에서 영으로 계승되는 것입니다. 속에서 속으로 계승되는 성질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보는 것보다, 듣는 것보다, 만지는 것보다, 말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뜨거운 것입니다. 확실하고 오래가는 성격의 것입니다. 이렇게 디모데의 믿음은 모전자전(母傳子傳)한 것입니다.
Ⅱ. 모전자전(母傳子傳)하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본문 1장 5절 중에 「···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가정에서의 어머니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손들에게 신앙을 전함에 있어서 남성보다 여성, 부성보다 모성의 영적 영향이 얼마나 직접적이고 감화적이고 효과적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모데가 외조모와 어머니께로부터 받은 모전자전(母傳子傳)하는 신앙교육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 성경교육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서 디모데가 누구에게서 이 성경을 배운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에게 진리의 도를 배웠습니다(딤전 1:2). 그러나 그 전에 벌써 그의 외조모와 어머니 유니게에게 성경교육을 받은바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의 성경교육은 ‘어려서부터’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모전자전(母傳子傳)된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 성경은 바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책이었습니다(요 5:39). 그 성경은 1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져다 준다고 하였습니다(딤후 3:15).
2 뿐 아니라 모든 삶의 실행력도 준다고 하였습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라고 하였습니다(딤후 3:16). 말하자면 판단하고 행동하는 동력이 된다는 말입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이러한 성경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이렇게 자녀에게 어머니의 책임은 중대하고 필요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일수록 성경을 교육하기에 유익하고 또 효과적입니다. 사실상 이러한 성경교육은 아버지보다 어머니 편이 더 유력합니다. 그것은 두 번 하는 해산의 수고요, 즐거움입니다. 육신의 해산은 어머니에게 고통입니다. 사경을 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을 안게 되는 자신의 즐거움이요, 가정의 기쁨이 됩니다. 두 번째 해산은 어려서부터 성경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은 바로 그 자녀에게 영적 생명을 탄생시키는 즐거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 성경교육의 중심 내용은 무엇입니까 1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과 2 성경은 하나님을 가르쳐 주고 3 성경은 사람(인생)을 가르쳐 주고 4 성경은 예수를 가르쳐 주고 5 성경은 구원(믿음)을 가르쳐 주고 6 성경은 교회를 가르쳐 주고 7 성경은 끝날(종말), 곧 영생과 영벌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류 교육의 대헌장입니다. 가정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이 성경을 가르치는 결정적인 교사로 임명을 받은 것입니다.
2. 감동적인 교육, 곧 눈물의 교육이었습니다. 지금 바울이 로마의 감옥생활 중에서 디모데가 생각나고, 보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는 디모데의 눈물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 1:4). 바울은 디모데가 눈물의 사람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가정에 있어서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표자요, 자녀에게 보냄 받은 사신(使臣)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란 이름은 자녀를 위하여 주신 축복의 대명사(代名詞)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없는 자에겐 이 이름이 없습니다. 이 이름은 가정과 자녀에게 전용되는 이름입니다. 관청이나 회사, 학교나 연구실, 기타 다른 일반 사회적 활동 분야에서는 이 이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그 사회와 조직에 필요한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는 이름은 가정의 전용어입니다. 자식들을 위한 이름입니다. 자식을 사랑하고, 교육하고, 축복하고, 양육하는 데 더할 나위가 없는 이름이 곧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이 이름만이 자식에게 감동력을 주고, 감화력을 주고, 위로와 소망과 신뢰를 줍니다. 자녀교육에 결정적인 이름은 아버지, 어머니뿐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에, 자녀를 위하여 아버지, 어머니의 직함을 부여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이름과 자격과 권한으로 자녀들의 인격을 다듬어 가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이 갖고 있는 매력 중의 매력은 사랑이요, 축복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모든 절망을 소망으로, 모든 미움을 사랑으로, 모든 의심을 신뢰로, 모든 어둠을 빛으로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힘이 됩니다. 그 사랑과 축복의 마음은 ‘눈물’이라고 하는 웅변 이상의 감동과 감화력과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 디모데의 눈물은 이러한 할머니와 어머니의 눈물에서 기인된 것 같습니다.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는 눈물의 기도와 찬양과 축복을 먹으면서 자라났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자녀들의 인성과 인격의 성장과 변화에 얼마나 큰 자양분이 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참으로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좋은 양약(良藥)이 됩니다.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눈물의 귀함은 그것이 사랑의 눈물이고, 축복의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눈물이고, 희망의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주신 인생의 가장 위대한 자산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놀라운 인간 탄생의 신비는 우리로 하여금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의 시작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나는 출생할 때부터 나를 향한 어머니의 울부짖음을 들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아들된 자기를 위해 울부짖고 기도하던 그 어머니의 모습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탈리아로 떠나려고 했다. 그날 밤 어머니는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러나 아침 햇살이 비추일 때 나는 그 집을 떠나 버렸다. 그날 밤 나는 기도하며 우시는 어머니를 뒤로 남긴 채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 오 주님! 배를 타는 나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도록 당신께 간구했던 그 분의 눈물은 무엇이었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그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 때문에 탕아생활에서 회개하고 성자가 된 것입니다. 눈물은 귀합니다. 더욱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눈물은 더 귀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눈물일 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의 밑거름이 됩니다. 눈물이 있어야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야 영적 진리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법칙세계는 눈물이 없습니다. 교통법칙, 경제법칙, 국제법칙, 전투법칙, 과학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부력의 법칙, 비행의 법칙 등등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세계는 아무런 감동이나 변화나, 창조를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희비애락(喜悲哀樂) 가운데서 눈물을 흘립니다. 괴로움을 참아 나갈 때 눈물이 납니다. 지은 죄를 회개할 때 눈물이 나고, 주의 용서를 받을 때 눈물이 나고, 남을 용서할 때 눈물이 나고, 또 남을 사랑할 때 눈물이 납니다. 더욱이 부모가 자식을 쳐다 볼 때 눈물이 납니다. 사랑의 눈물입니다. 기쁨의 눈물입니다. 축복의 눈물입니다. 디모데는 이 눈물을 모전자전(母傳子傳)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있는 자식을 향한 눈물은 결코 어머니의 사랑이 고갈되지 않고, 변질되지 않고, 피곤할 줄조차 모르고 움직이고 있다는 위대한 입증이 됩니다. 그래서 매터린크(M. Maeterlink)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을 사랑할 때 풍요로워집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에 있어 비천하고, 추하고, 늙은 어머니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모든 기쁨과 희망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슬퍼 보일 때 주고받는 한 번의 포옹과 입맞춤으로 눈물이 반짝일 때, 모든 아픔들이 사라져 버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에머슨(Emerson)은 ‘인간이란 어머니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필립 부룩스(P. Brooks)는 ‘나의 삶 중에 가장 행복한 부분은 어머니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어머니는 더욱 그러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스(J. Q. Adams)는 ‘현재의 나의 모든 것은 어머니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그러했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그러했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둔 어머니 수넴 여인이 그러했고, 우리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무디(D.L. Moody)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들은 모두 다 위대한 어머니들의 산물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의 눈물은 모전자전(母傳子傳)한 은총의 선물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눈물로 목회하였습니다. 나중에 그의 후임자 디모데도 그렇게 또 눈물로 목회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어머니된 여러분! 예수의 구원을 모전자전(母傳子傳) 합시다. 거룩한 주의 계명을 모전자전(母傳子傳) 합시다. 거룩한 신앙을 모전자전(母傳子傳)함으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거짓없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 줍시다. 그것은 성경적 교육에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생활로 나타내는 어머니의 사랑과 감화, 곧 눈물의 교육에 있습니다. 거룩한 주일성수를 모전자전(母傳子傳) 합시다. 거룩한 십일조와 감사와 봉사와 헌신을 모전자전(母傳子傳) 합시다. 주의 지상 명령인 종말의 세계 선교 운동을 모전자전(母傳子傳)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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