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 돌 (행4:10-12)
본문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있어 물질에 대한 비중은 너무 큽니다. 물질을 너무 사랑하고 의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어 보면, 물질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에게 먹을 것을 주시듯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도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않으며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보면 사는 것이 내 힘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사이 우리 대학생들에게 벤처붐이 일어났습니다. 대학이 하나의 사업화 되고, 공단화 되어 버렸습니다. 학생들이 일찍부터 돈에 눈을 떠서 돈을 버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돈을 버는 교수들도 많아 졌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학생이어야 합니다. 학생은 돈보다는 아름다운 꿈과 이상과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미래와 인생에 대한 한없는 고민을 가지고 국가와 민족 앞에 크게 봉사하고자 하는 푸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대학은 우리 인류를 위해 봉사한 훌륭한 믿음의 선조를 연구하고 배우는 곳입니다. 우리 인류를 위해 봉사한 위인들의 전기를 많이 읽고 연구하여 고상하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며 잉태하는 곳이 대학입니다. 대학은 고상해야 됩니다. 대학은 물질에 대해서 초연해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대학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르바이트도 돈을 많이 주는 곳을 찾다보니 술집으로 나가는 학생들도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저는 밖에서만 들었지 우리 교회 아이들이 그러리라 생각 안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렇게 순진하게 잘 자라던 아이 중에 술집으로 간 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 어쩌다가 그렇게 됐느냐"하고 물어 보니까 먹고살기 위해,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많이 주는 곳을 찾다가 친구들 소개를 받아 가보니 그렇게 빠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자들만 다니는 술집이 있다고 합니다. 하기는 여자들만 모여야 많이 먹겠지요. 편하게 재미있게 하려면 여자들만 모이는 곳이 필요하겠지요. 그런 곳까지 나간다고 합니다.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는 고생하며 다녀야 합니다. 굶어 가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할 때가 그때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배부르게 공부하는 것 보다 배고프게 공부하는 것이 진짜 바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을 위해 사명감도 갖고, 장학관도 세우고, 장학사업도 하려면 배고픔을 아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곁길로 빠져서는 안 됩니다. 돈에 맛을 드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미국에 가 있는 어떤 유학생이 공부를 하다가 아르바이트로 식당 종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많습니다. 미국은 우리와 달라서 모든 것이 팁(tip)입니다. 식당에서 식사하고 밥값만 주고 나오면 욕먹습니다. 세상에 택시도 팁이 있습니다. 택시를 타고 요금만 주고 내리면 멱살 잡힐 분위기입니다. 반드시 팁을 주어야 합니다. 가방을 들어주어도 팁이고, 문만 열어주어도 팁입니다. 만사가 팁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식당에서 일을 해보니 보통 15120%의 팁을 받은 것입니다. 하루에도 그 수입이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이 학생이 그만 공부를 그만두고, 지금까지 종업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공부를 해야지요, 공부를… 성도들이 잘못하여 물질, 소유에 지나친 관심을 갖다보면 발람 선지자도 되기 쉽고, 롯이 되기도 쉽습니다. 물질을 따라 가다가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성경에도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먹었다는 말씀도 나오지 않습니까 having이 아닙니다. 소유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 높은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신령한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존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 위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벧전2:9上)'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녹과 같이 살아야 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having이 아닙니다. 더 하고, 더 있고, 더 잘 벌고, 더 잘 살고, 더 많은 재산을 갖고 날마다 날마다 집 짓고, 더 많은 것을 챙겨서 배부르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물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셨고, 잘 믿는 자와 그릇이 잘 준비된 자에게 하나님께서 물질을 담아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잘 살 생각은 하나도 안 했는데 하나님을 좇아갔더니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뒤로 물질을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롯은 물질을 앞에 두고 따라 갔습니다. 결국 돈도 놓치고, 하나님도 놓치고,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습니다. 요셉이 잘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전혀 잘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뒤로 물질을 따라 붙게 하셨습니다. 세종대왕이 뒤를 따라 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앞에 있으면 사람은 못할 짓이 없습니다. 돈이 강도도 만들고, 돈이 사기꾼도 만들고, 돈이 깡패도 만들고, 돈이 온갖 타락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돈을 따라 골목으로 가보세요. 어떤 골목으로 빠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라 믿음으로 성령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승리가 있습니다. 거룩함이 있습니다. 영원한 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having이 아닙니다. 물질이 아닙니다.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 어떤 위치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미국에 유명한 라이트 밀튼 목사님이라고 계십니다. 그 분은 작은 교회를 목회 하지만 항상 그 분은 '위를 바라보라'라는 설교를 하신다고 합니다. 미국에 계신 분이 하시는 말이 지금 미국에 큰 부흥이 일어나는 교회의 목사님이 계시는데 30대 젊은 분인데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앉을 자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설교시간에 몇 달을 다른 말은 안하고 계속 '오직 주님' 예수님에 대한 설교만 하는데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라는 것입니다. 예수, 오직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의 소망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것입니다. 라이트 밀튼 목사님도 위에 대한 설교만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에게 아들 두 형제, 오빌과 웰버가 있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하여 만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비행기입니다. 아버지의 81회 생일 때 이 두 형제가 아버지를 태우고, 3부자가 생일날 아침에 하늘을 향하여 높이 올라갔습니다. "더 올려라! 위로 더 올려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자가 앞섭니다. 높이 바라보는 자가 잘 됩니다. 까마귀와 같이 물질을 좇아간 사람은 썩은 것을 좇아 길을 잃지만, 성령으로 비둘기 같이 감람잎을 물어오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새로 오는 새 세기에 승리할 줄 믿습니다. 교회는 왜 나옵니까 물질을 잊어버리려고, 물질 위의 것을 찾으려고, 물질이 아닌 성령의 삶을 살기 위해 여기 나옵니다. 교회 오는 날에는 완전히 잊어버려야 합니다. 예배드리면서도 돈 걱정하고, '가게문 열었는지 모르겠네……'하고. 이런 생각하면 안됩니다. '누가 왔는지 모르겠네…….' 잊어버리세요. 모든 것을 잊어버리시고 영적인 것을 찾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어 주시고, 그 독생자 예수님께서 날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야지, 바로 서야지,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지' 여러분이 being에만 관심을 가지면 여러분의 앞날은 형통할 줄 믿습니다. 저는 미국에 가서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님의 형제들이 얼마나 큰 일을 하고 세계적인 일을 하시는지를 보았습니다. 전(全) 미국에서 최고의 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젊은 분인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님이 지금도 부산 달동네에서 몇 십 년 동안 떠나지 않고 거기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떤 자리에 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간다고 해서 그 쪽으로 몰리면 안 됩니다. 하루를 살아도 믿음으로 살고, 어디에서든지 하나님 뜻대로 살면 여러분의 삶도 복 받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들도 크게 복 받을 줄 믿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가 having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잘 사는데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느냐, 우리가 누구이냐'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그곳에 가서 하루라도 그렇게 살자. 못 살아도 그렇게 살자. 가난해도 아무리 어려워도 거기가 어딘지 몰라도 거기 가서 하나님 잘 믿고 살자.'했는데 하나님이 저렇게도 좋은 땅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뒤로, 생각지도 않았던 달라(dollar)를 주어서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영국에서 핍박을 받았던 청교도들은 아메리카로 배를 타고 갔지만, 프랑스에서 핍박을 받던 그리스도인들은 알프스산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땅이 스위스라고 하는 조그만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그들이 모여 살던 땅이 우리 장로교의 본산지인 스위스 제네바입니다. 거기를 중심해서 저들이 모였습니다. 지금도 인구가 600만 정도 밖에 안됩니다. 작은 나라입니다. 많은 인구와 넓은 땅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거기에 맞추어 영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저들에게 물질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주셨습니까 시계를 잘 만드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날 시계 하면 스위스입니다. 자동차, 인공위성도 만드는 시대에 시계를 안 만드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미국도 일본도 영국도 만들고, 전 세계가 시계를 다 만들고 있지만 다른 나라 시계는 인정해 주지를 않습니다. 다른 나라 시계는 값이 쌉니다. 스위스 시계는 얼마나 비싼지 아십니까 제가 스위스 제네바에 시계점에 들어가 가격을 보고 깜짝 놀라 자빠질 뻔했습니다. 얼마나 비싼지……. 시계 하나의 값이 억(億)이 넘는 것이 수두룩한 겁니다. 몇 천 만원 짜리가 꽉 차 있습니다. 중국에도 지금 잘 사는 부유층이 500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다 스위스 시계 갖는 것이 소원이랍니다. 미국의 상류층도 스위스 시계를 원하는 겁니다. 일본의 부유층도 시계는 스위스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겁니다. 전 세계가 스위스 것을 찾습니다. 시계 하나만을 팔아도 세계에서 제일 잘 살고, 제일 신용을 얻고, 제일 부유하고, 제일 좋은 나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잘 경외하면 여러분에게 무엇을 붙여 주실 줄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면 아무도 경쟁이 안되고,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잘 될 줄로 믿습니다. 나는 부족해도 주님이 우리의 모퉁이 돌이 되시고, 주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시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실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하나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냐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모퉁이 돌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에 모퉁이 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류를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의 아들은 우리의 삶에 우리 인간의 모퉁이 돌입니다. 요즈음은 건축할 때 시멘트로 하니까 잘 모르겠지만 저희들이 어릴 때만 해도 집을 지으면 머릿돌, 모퉁이 돌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지금도 모퉁이 돌이 가로 세로 2m, 4m 짜리가 있습니다. 부자집, 궁궐을 지을 때면 모퉁이 돌을 좋은 것을 가져다 놓습니다. 모퉁이 돌은 집의 기초입니다. 모퉁이 돌이 든든해야 집이 든든한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모퉁이 돌이 건물의 중심입니다. 집에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에 모든 집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퉁이 돌이 언제나 먼저입니다. 이것을 세워야 다른 것이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초가 되어야 되고, 예수님이 우리의 중심이 되어야 되고 예수님이 언제나 먼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 머릿돌이 되시면 우리의 인생이 든든하게 되어서 아무도 해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중심이 되어서 우리의 자리를 잡으면 우리는 일생동안 힘있고 능력 있는 삶을, 영광스런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 가정에 머릿돌이 되시면 그 가정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도 해칠 수 없습니다. 복된 가정입니다. 보화입니다. 예수께서 그 가정을 지키심으로 그 가정은 심히 복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 나라의 머릿돌이 되면 그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이번 미국 부시 대통령 취임식이 며칠 안 남지 않았습니까 어제 신문에 순서가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취임식에서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취임식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오느냐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이 기도해 주는 것. 본인에게도 최고의 영광이고 온 국민들도 그것을 귀하게 보는 것입니다. 인간은 너나 나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누가 나라를 다스리면 잘 됩니까 어느 누구도 아니라 주님만이 이 나라를 다스릴 때, 예수께서 이 나라를 다스릴 때 이 나라가 잘 될 줄 믿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힘 있는 것은 예수께서 미국의 머릿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부시가 미국을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머릿돌 되신 예수가 있기에 미국이 든든한 것입니다. 예수가 그 나라를 지킴으로 중심이 흔들리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먼저이기 때문에 그 나라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머릿돌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류를 위하여 머릿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머릿돌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머릿돌을 모르는 것이 불행한 일입니다. 이 머릿돌을 버렸습니다. 건축자들이 집을 짓는데 이 귀한 돌을 모르고 그만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어떤 분은 이 머릿돌을 경홀히 여기다가 빼앗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구약 성경에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을 머릿돌로 섬겨야 하는데 제사장이면서도 자기 자녀들을 귀히 여기다가 그만 사무엘에게 머릿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왕이면서도 머릿돌 되시는 하나님을 귀히 여기지 않고 경홀히 여기다가 다윗이라고 하는 분이 머릿돌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귀한 하나님을 내가 잘 믿어야 되겠다 하여 다윗은 하나님을 잘 섬겨서 생각지도 않은 만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머릿돌을 버렸는데 로마 사람들이 가져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정치의 머릿돌, 헌법의 머릿돌, 경제의 머릿돌, 문화의 머릿돌로 삼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의 머릿돌이 되심으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제 친구 목사님 한 분이 부목사로 있을 때, 섬기는 교회의 당회장 목사님이 목회를 하는 걸 보니까 예수님이 머릿돌이 아닌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다른 데 관심을 많이 갖고,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부목사가 거기서 깨닫고 예수님을 머릿돌로 가져가서 목회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부목사님이 지금 우리 나라에서 최고로 목회를 잘하십니다.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가 귀합니다. 찬송가 102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수 없네 영 죽을 내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예수가 머릿돌입니다. 저희 마을의 한 장로님이 예수님을 머릿돌로 섬기지 않고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 일하러 왔던 일꾼이 글쎄 '이렇게 귀한 예수가 어디 있냐'하고 그만 그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장로님 댁에서 시시하게 여기는 벽돌 취급하던 예수님을 모시고, 십일조 생활 잘하고 주일 성수 잘해서 그 형제들이 팔자를 고쳤습니다. 그 일꾼이 제 친구입니다. 복을 받았습니다. 장로님은 다 잃어버리고 다 빼앗기고 하나도 못 받았지만 그 친구가 머릿돌을 가져가서 팔자를 고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예수를 머릿돌로 섬겨야 집이 든든하고, 예수를 벽돌 취급하면 집이 무너집니다. 복을 못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라에 머릿돌이 되고, 교회의 머릿돌이 될 때 그 나라가, 그 교회가 든든하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만이 우리가 능력 있는 삶을, 능력 있고 건강한 교회를 그리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모퉁이 돌이 되면 든든합니다. 아무도 해칠 자가 없습니다. 시편 18편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십니다. 요새이십니다. 바위입니다. 든든합니다. 맨하탄(Manhattan)은 그 시 전체 건축을 반석 위에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든든합니다. 102층 짜리 건물을 60년 전에 지었는데도 든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삼아 2001년 새로운 한 세기에 주님이 여러분에게 기초가 되셔서 머릿돌이 되고 모퉁이 돌이 되는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물을 먹을 때 반석에서 늘 물을 마셨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쳤더니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돌인데 어떤 돌입니까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는 반석입니다. 이 모퉁이 돌은 그 집에 있는 사람에게 생수를 줍니다. 예수님이 모퉁이 돌이 되는 사람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왜 예수는 반석이기에 그렇습니다. 샘이 나옵니다. 생수가 나오는 것입니다. 물질을 따라간 사람은 생수가 없습니다. 물질은 오히려 더 목마르게 만들고 더 갈급하게 만들어서 더 병들게 하고 타락하게 할지언정 우리를 시원하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만이 목마른 자에게 항상 생수가 되는 줄 믿습니다. 찬송가 316장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라 이곳에 좋은 샘 흐르도다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여러분! 비가 올 때 바위 속으로 들어가면 비가 오지 않습니다. 학교 다닐 때 많이 그랬습니다. "비가 온다!"하면 바위 속으로 가면 비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바위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바람이 막 분다. 눈보라가 친다.' 바위 속에 들어가면 그만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다윗은 늘 바위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바위가 되셔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여러분의 건강을 지켜주십니다. 가정을 자녀를 지켜주십니다. 행복을 지켜주십니다. 모퉁이 돌이 여러분의 가정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마을 산에 바위를 굴러 내어 버렸더니 그만 산사태가 나서 그 마을이 다 덮여 버렸대요. 바위가 되신 예수님을 몰아내고 나니까 소련 공산주의는 그만 산사태가 나서 다 망해 버렸습니다. 북한도 예수님이 그 나라에 바위가 되었더라면 그 나라가 복을 많이 받았을텐데 그만 망해버렸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런 사상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없어져야 하고, 잘 되는 교회가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모퉁이 돌을 해치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입니다. 이 민족이 오늘날까지 번영하는 데에 만가지가 기독교로 인해 온 걸 모르고, 왜 저 북한같이 되려는 것입니까 우리는 정신 차려서 모퉁이 돌을 관리해야 할 줄 믿습니다.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만이 우리의 머릿돌이 될 줄 믿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6절에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퉁이 돌이십니다. 그가 있는 나라만이 승리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모퉁이 돌로 두지 않고, 우상을 모퉁이 돌로 두는 나라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무신론을 모퉁이 돌로 두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저주 아래 있는 것을 봅니다.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28장 16절에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우리 가정의 모퉁이 돌이 되시고 우리 삶의 모퉁이 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금년 일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무엇이 잘 될까 더 무엇을 가질까 바라기보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떤 위치에 서느냐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을 가지고 사는 길만이 우리 교회가 살고 한국 교회가 사는 길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대학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르바이트도 돈을 많이 주는 곳을 찾다보니 술집으로 나가는 학생들도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저는 밖에서만 들었지 우리 교회 아이들이 그러리라 생각 안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렇게 순진하게 잘 자라던 아이 중에 술집으로 간 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 어쩌다가 그렇게 됐느냐"하고 물어 보니까 먹고살기 위해,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많이 주는 곳을 찾다가 친구들 소개를 받아 가보니 그렇게 빠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자들만 다니는 술집이 있다고 합니다. 하기는 여자들만 모여야 많이 먹겠지요. 편하게 재미있게 하려면 여자들만 모이는 곳이 필요하겠지요. 그런 곳까지 나간다고 합니다.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는 고생하며 다녀야 합니다. 굶어 가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할 때가 그때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배부르게 공부하는 것 보다 배고프게 공부하는 것이 진짜 바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을 위해 사명감도 갖고, 장학관도 세우고, 장학사업도 하려면 배고픔을 아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곁길로 빠져서는 안 됩니다. 돈에 맛을 드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미국에 가 있는 어떤 유학생이 공부를 하다가 아르바이트로 식당 종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많습니다. 미국은 우리와 달라서 모든 것이 팁(tip)입니다. 식당에서 식사하고 밥값만 주고 나오면 욕먹습니다. 세상에 택시도 팁이 있습니다. 택시를 타고 요금만 주고 내리면 멱살 잡힐 분위기입니다. 반드시 팁을 주어야 합니다. 가방을 들어주어도 팁이고, 문만 열어주어도 팁입니다. 만사가 팁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식당에서 일을 해보니 보통 15120%의 팁을 받은 것입니다. 하루에도 그 수입이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이 학생이 그만 공부를 그만두고, 지금까지 종업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공부를 해야지요, 공부를… 성도들이 잘못하여 물질, 소유에 지나친 관심을 갖다보면 발람 선지자도 되기 쉽고, 롯이 되기도 쉽습니다. 물질을 따라 가다가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성경에도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먹었다는 말씀도 나오지 않습니까 having이 아닙니다. 소유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 높은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신령한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존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 위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벧전2:9上)'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녹과 같이 살아야 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having이 아닙니다. 더 하고, 더 있고, 더 잘 벌고, 더 잘 살고, 더 많은 재산을 갖고 날마다 날마다 집 짓고, 더 많은 것을 챙겨서 배부르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물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셨고, 잘 믿는 자와 그릇이 잘 준비된 자에게 하나님께서 물질을 담아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잘 살 생각은 하나도 안 했는데 하나님을 좇아갔더니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뒤로 물질을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롯은 물질을 앞에 두고 따라 갔습니다. 결국 돈도 놓치고, 하나님도 놓치고,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습니다. 요셉이 잘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전혀 잘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뒤로 물질을 따라 붙게 하셨습니다. 세종대왕이 뒤를 따라 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앞에 있으면 사람은 못할 짓이 없습니다. 돈이 강도도 만들고, 돈이 사기꾼도 만들고, 돈이 깡패도 만들고, 돈이 온갖 타락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돈을 따라 골목으로 가보세요. 어떤 골목으로 빠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라 믿음으로 성령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승리가 있습니다. 거룩함이 있습니다. 영원한 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having이 아닙니다. 물질이 아닙니다.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 어떤 위치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미국에 유명한 라이트 밀튼 목사님이라고 계십니다. 그 분은 작은 교회를 목회 하지만 항상 그 분은 '위를 바라보라'라는 설교를 하신다고 합니다. 미국에 계신 분이 하시는 말이 지금 미국에 큰 부흥이 일어나는 교회의 목사님이 계시는데 30대 젊은 분인데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앉을 자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설교시간에 몇 달을 다른 말은 안하고 계속 '오직 주님' 예수님에 대한 설교만 하는데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라는 것입니다. 예수, 오직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의 소망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것입니다. 라이트 밀튼 목사님도 위에 대한 설교만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에게 아들 두 형제, 오빌과 웰버가 있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하여 만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비행기입니다. 아버지의 81회 생일 때 이 두 형제가 아버지를 태우고, 3부자가 생일날 아침에 하늘을 향하여 높이 올라갔습니다. "더 올려라! 위로 더 올려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자가 앞섭니다. 높이 바라보는 자가 잘 됩니다. 까마귀와 같이 물질을 좇아간 사람은 썩은 것을 좇아 길을 잃지만, 성령으로 비둘기 같이 감람잎을 물어오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새로 오는 새 세기에 승리할 줄 믿습니다. 교회는 왜 나옵니까 물질을 잊어버리려고, 물질 위의 것을 찾으려고, 물질이 아닌 성령의 삶을 살기 위해 여기 나옵니다. 교회 오는 날에는 완전히 잊어버려야 합니다. 예배드리면서도 돈 걱정하고, '가게문 열었는지 모르겠네……'하고. 이런 생각하면 안됩니다. '누가 왔는지 모르겠네…….' 잊어버리세요. 모든 것을 잊어버리시고 영적인 것을 찾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어 주시고, 그 독생자 예수님께서 날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야지, 바로 서야지,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지' 여러분이 being에만 관심을 가지면 여러분의 앞날은 형통할 줄 믿습니다. 저는 미국에 가서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님의 형제들이 얼마나 큰 일을 하고 세계적인 일을 하시는지를 보았습니다. 전(全) 미국에서 최고의 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젊은 분인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님이 지금도 부산 달동네에서 몇 십 년 동안 떠나지 않고 거기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떤 자리에 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간다고 해서 그 쪽으로 몰리면 안 됩니다. 하루를 살아도 믿음으로 살고, 어디에서든지 하나님 뜻대로 살면 여러분의 삶도 복 받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들도 크게 복 받을 줄 믿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가 having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잘 사는데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느냐, 우리가 누구이냐'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그곳에 가서 하루라도 그렇게 살자. 못 살아도 그렇게 살자. 가난해도 아무리 어려워도 거기가 어딘지 몰라도 거기 가서 하나님 잘 믿고 살자.'했는데 하나님이 저렇게도 좋은 땅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뒤로, 생각지도 않았던 달라(dollar)를 주어서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영국에서 핍박을 받았던 청교도들은 아메리카로 배를 타고 갔지만, 프랑스에서 핍박을 받던 그리스도인들은 알프스산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땅이 스위스라고 하는 조그만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그들이 모여 살던 땅이 우리 장로교의 본산지인 스위스 제네바입니다. 거기를 중심해서 저들이 모였습니다. 지금도 인구가 600만 정도 밖에 안됩니다. 작은 나라입니다. 많은 인구와 넓은 땅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거기에 맞추어 영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저들에게 물질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주셨습니까 시계를 잘 만드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날 시계 하면 스위스입니다. 자동차, 인공위성도 만드는 시대에 시계를 안 만드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미국도 일본도 영국도 만들고, 전 세계가 시계를 다 만들고 있지만 다른 나라 시계는 인정해 주지를 않습니다. 다른 나라 시계는 값이 쌉니다. 스위스 시계는 얼마나 비싼지 아십니까 제가 스위스 제네바에 시계점에 들어가 가격을 보고 깜짝 놀라 자빠질 뻔했습니다. 얼마나 비싼지……. 시계 하나의 값이 억(億)이 넘는 것이 수두룩한 겁니다. 몇 천 만원 짜리가 꽉 차 있습니다. 중국에도 지금 잘 사는 부유층이 500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다 스위스 시계 갖는 것이 소원이랍니다. 미국의 상류층도 스위스 시계를 원하는 겁니다. 일본의 부유층도 시계는 스위스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겁니다. 전 세계가 스위스 것을 찾습니다. 시계 하나만을 팔아도 세계에서 제일 잘 살고, 제일 신용을 얻고, 제일 부유하고, 제일 좋은 나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잘 경외하면 여러분에게 무엇을 붙여 주실 줄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면 아무도 경쟁이 안되고,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잘 될 줄로 믿습니다. 나는 부족해도 주님이 우리의 모퉁이 돌이 되시고, 주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시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실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하나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냐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모퉁이 돌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에 모퉁이 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류를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의 아들은 우리의 삶에 우리 인간의 모퉁이 돌입니다. 요즈음은 건축할 때 시멘트로 하니까 잘 모르겠지만 저희들이 어릴 때만 해도 집을 지으면 머릿돌, 모퉁이 돌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지금도 모퉁이 돌이 가로 세로 2m, 4m 짜리가 있습니다. 부자집, 궁궐을 지을 때면 모퉁이 돌을 좋은 것을 가져다 놓습니다. 모퉁이 돌은 집의 기초입니다. 모퉁이 돌이 든든해야 집이 든든한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모퉁이 돌이 건물의 중심입니다. 집에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에 모든 집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퉁이 돌이 언제나 먼저입니다. 이것을 세워야 다른 것이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초가 되어야 되고, 예수님이 우리의 중심이 되어야 되고 예수님이 언제나 먼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 머릿돌이 되시면 우리의 인생이 든든하게 되어서 아무도 해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중심이 되어서 우리의 자리를 잡으면 우리는 일생동안 힘있고 능력 있는 삶을, 영광스런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 가정에 머릿돌이 되시면 그 가정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도 해칠 수 없습니다. 복된 가정입니다. 보화입니다. 예수께서 그 가정을 지키심으로 그 가정은 심히 복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 나라의 머릿돌이 되면 그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이번 미국 부시 대통령 취임식이 며칠 안 남지 않았습니까 어제 신문에 순서가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취임식에서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취임식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오느냐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이 기도해 주는 것. 본인에게도 최고의 영광이고 온 국민들도 그것을 귀하게 보는 것입니다. 인간은 너나 나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누가 나라를 다스리면 잘 됩니까 어느 누구도 아니라 주님만이 이 나라를 다스릴 때, 예수께서 이 나라를 다스릴 때 이 나라가 잘 될 줄 믿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힘 있는 것은 예수께서 미국의 머릿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부시가 미국을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머릿돌 되신 예수가 있기에 미국이 든든한 것입니다. 예수가 그 나라를 지킴으로 중심이 흔들리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먼저이기 때문에 그 나라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머릿돌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류를 위하여 머릿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머릿돌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머릿돌을 모르는 것이 불행한 일입니다. 이 머릿돌을 버렸습니다. 건축자들이 집을 짓는데 이 귀한 돌을 모르고 그만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어떤 분은 이 머릿돌을 경홀히 여기다가 빼앗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구약 성경에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을 머릿돌로 섬겨야 하는데 제사장이면서도 자기 자녀들을 귀히 여기다가 그만 사무엘에게 머릿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왕이면서도 머릿돌 되시는 하나님을 귀히 여기지 않고 경홀히 여기다가 다윗이라고 하는 분이 머릿돌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귀한 하나님을 내가 잘 믿어야 되겠다 하여 다윗은 하나님을 잘 섬겨서 생각지도 않은 만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머릿돌을 버렸는데 로마 사람들이 가져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정치의 머릿돌, 헌법의 머릿돌, 경제의 머릿돌, 문화의 머릿돌로 삼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의 머릿돌이 되심으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제 친구 목사님 한 분이 부목사로 있을 때, 섬기는 교회의 당회장 목사님이 목회를 하는 걸 보니까 예수님이 머릿돌이 아닌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다른 데 관심을 많이 갖고,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부목사가 거기서 깨닫고 예수님을 머릿돌로 가져가서 목회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부목사님이 지금 우리 나라에서 최고로 목회를 잘하십니다.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가 귀합니다. 찬송가 102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수 없네 영 죽을 내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예수가 머릿돌입니다. 저희 마을의 한 장로님이 예수님을 머릿돌로 섬기지 않고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 일하러 왔던 일꾼이 글쎄 '이렇게 귀한 예수가 어디 있냐'하고 그만 그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장로님 댁에서 시시하게 여기는 벽돌 취급하던 예수님을 모시고, 십일조 생활 잘하고 주일 성수 잘해서 그 형제들이 팔자를 고쳤습니다. 그 일꾼이 제 친구입니다. 복을 받았습니다. 장로님은 다 잃어버리고 다 빼앗기고 하나도 못 받았지만 그 친구가 머릿돌을 가져가서 팔자를 고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예수를 머릿돌로 섬겨야 집이 든든하고, 예수를 벽돌 취급하면 집이 무너집니다. 복을 못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라에 머릿돌이 되고, 교회의 머릿돌이 될 때 그 나라가, 그 교회가 든든하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만이 우리가 능력 있는 삶을, 능력 있고 건강한 교회를 그리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모퉁이 돌이 되면 든든합니다. 아무도 해칠 자가 없습니다. 시편 18편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십니다. 요새이십니다. 바위입니다. 든든합니다. 맨하탄(Manhattan)은 그 시 전체 건축을 반석 위에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든든합니다. 102층 짜리 건물을 60년 전에 지었는데도 든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삼아 2001년 새로운 한 세기에 주님이 여러분에게 기초가 되셔서 머릿돌이 되고 모퉁이 돌이 되는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물을 먹을 때 반석에서 늘 물을 마셨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쳤더니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돌인데 어떤 돌입니까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는 반석입니다. 이 모퉁이 돌은 그 집에 있는 사람에게 생수를 줍니다. 예수님이 모퉁이 돌이 되는 사람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왜 예수는 반석이기에 그렇습니다. 샘이 나옵니다. 생수가 나오는 것입니다. 물질을 따라간 사람은 생수가 없습니다. 물질은 오히려 더 목마르게 만들고 더 갈급하게 만들어서 더 병들게 하고 타락하게 할지언정 우리를 시원하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만이 목마른 자에게 항상 생수가 되는 줄 믿습니다. 찬송가 316장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라 이곳에 좋은 샘 흐르도다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여러분! 비가 올 때 바위 속으로 들어가면 비가 오지 않습니다. 학교 다닐 때 많이 그랬습니다. "비가 온다!"하면 바위 속으로 가면 비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바위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바람이 막 분다. 눈보라가 친다.' 바위 속에 들어가면 그만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다윗은 늘 바위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바위가 되셔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여러분의 건강을 지켜주십니다. 가정을 자녀를 지켜주십니다. 행복을 지켜주십니다. 모퉁이 돌이 여러분의 가정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마을 산에 바위를 굴러 내어 버렸더니 그만 산사태가 나서 그 마을이 다 덮여 버렸대요. 바위가 되신 예수님을 몰아내고 나니까 소련 공산주의는 그만 산사태가 나서 다 망해 버렸습니다. 북한도 예수님이 그 나라에 바위가 되었더라면 그 나라가 복을 많이 받았을텐데 그만 망해버렸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런 사상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없어져야 하고, 잘 되는 교회가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모퉁이 돌을 해치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입니다. 이 민족이 오늘날까지 번영하는 데에 만가지가 기독교로 인해 온 걸 모르고, 왜 저 북한같이 되려는 것입니까 우리는 정신 차려서 모퉁이 돌을 관리해야 할 줄 믿습니다.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만이 우리의 머릿돌이 될 줄 믿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6절에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퉁이 돌이십니다. 그가 있는 나라만이 승리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모퉁이 돌로 두지 않고, 우상을 모퉁이 돌로 두는 나라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무신론을 모퉁이 돌로 두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저주 아래 있는 것을 봅니다.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28장 16절에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우리 가정의 모퉁이 돌이 되시고 우리 삶의 모퉁이 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금년 일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무엇이 잘 될까 더 무엇을 가질까 바라기보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떤 위치에 서느냐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을 가지고 사는 길만이 우리 교회가 살고 한국 교회가 사는 길인 줄 믿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