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적 신앙 (마14:25-33)
본문
몇 일 전 KBS에서는 생태계에 관한 보도를 하는 가운데, 집에서 길들인 수달을 야생 수달이라고 속여서 촬영 보도한데 대해서 KBS사장이 나와서 사과했는데 MBC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지도자를 허위 날조 보도해 놓고는 사과 할 생각도 하지 않으니 말이 됩니까 우리측 안 변호사와 담당 검사, 판사들을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육지에 있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폭풍이 일어나는 바다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4장 22절에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 하사.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배를 타고 건너가는 중인데 폭풍이 불어닥치며 큰 물결이 일어나 큰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흔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큰 풍파도 만나지 않고 고난과 시험도 당하지 않는 줄 알지만 본문에 보십시오. 예수님이 재촉 하사 제자들은 배를 타고 건너게 하셨는데도 큰 폭풍을 만나 고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도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예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믿음 생활 잘 한다고 해서 폭풍이나 고난을 안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이길 힘을 주시고 폭풍이 지난 후에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번에 교회에 불어닥친 폭풍도 이제는 거의 다 지나갔고 잠시 중단했던 성전 건축도 지난 주 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만, MBC 2580이 방영된 후 큰 시험의 파도가 몰아 닥칠 때 안모 집사님이 교회를 위해 밤을 세워 가며 기도하는데 환상 중에 한 손길이 나타나더니, 그 안에 흰종이 쪽지가 들어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성경 구절이 적혀 있는데 로마서 8장 15-18절이라고 쓰여서 있더랍니다. 그래서 펴 보았더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님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자녀이면 또 함께 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는 말씀이더랍니다. 다시 크게 깨달은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말씀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다."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크신 뜻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몇 주전에는 어느 남자 집사님이 교회를 위해서 금식 기도하는 중에 그와 같은 응답을 받고 와서 "목사님, 하나님께서 장차 있을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보여 주셨습니다. 목사님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라고 하는 간증을 들려 주셨습니다.
1. 인간의 구조와 인식의 방법 흔히 무식한 사람 중에는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이 육신의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다면 그런 하나님은 안 믿겠습니다. 냄새는 코로 맡고, 소리는 귀로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코 코로 소리를 들을 수 없고 귀로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종종 말씀드리듯이 계란에 껍질과 흰자위와 노른자위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사람도 보이는 육체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혼, 즉 정신이 있고 정신보다 더 중요한 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부분의 인식의 방법, 즉 깨달아 아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육신은 5관을 통해서 인식합니다. 즉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져 보는, 오관을 통해서 인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정신은 생각하고 계산하고 추리함으로 인식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뇌사 상태에 있는 사람은 숨은 쉬고, 심장의 박동은 살아 있어도 전혀 인식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영혼은 5관을 통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정신적으로 따져 보고 추리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우리를 대속하시는 십자가의 보혈로 죄씻음 받으면서 죽었던 영혼이 소생하면서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육신의 오관으로 판단해서도 안되고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만 판단해서도 안됩니다. 고린도 후서 4장 18절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하였고 고린도 후서 5장 7절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 함이로다"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2. 믿음으로 행할 때는 모험이 필요합니다. 보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모험이 필요합니다. 몇년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화재가 났을 때 유출된 방사능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수 만 명이 백혈병으로 죽고 암병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또 기형아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 핵방사능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 냄새도 없고 아무 색깔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핵방사능의 힘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살아가며 행동할 때는 인간의 눈으로도 볼 수 없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모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려고 할 때 인간적인 생각이나 계산으로 믿지는 것 같고, 손해나는 것 같고, 죽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 질 때는 모험적으로 행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위험도 무릅쓰고, 손해도 무릅쓰며, 때로는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모험적으로 행동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9절에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2장 25절에도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소욕을 거스르며 역설적으로 살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다 어리석고 미련해 보이만큼 모험적으로 행동하며 살았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베드로의 모험. 수제자 베드로는 다혈질적이어서 덤벙대다가 실수 할 때도 있었지만 주님의 말씀이라면 과감하게 모험적으로 행동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기 잡는 베드로를 부르시며 "이제부터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하실 때 용감하게 배와 그물을 내버려두고 주님을 좇았다고 했습니다. 가족은 어떻게 벌어 먹이나, 이 배와 그물은 내 재산 전부인데.등등, 생각해 볼만 한데 그는 즉각 모험적인 행동을 단행하여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폭풍을 만나 배가 뒤집힐 듯이 요동하는 중에 다른 제자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며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이 나타났다고 더욱 무서워하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물위로 첨벙 뛰어 내렸습니다." 얼마나 과감한 행동입니까 얼마나 멋진 모험입니까 이런 모험적 행동 때문에 성경에서 유일하게 물위로 걸어도 보았고-물론 얼마 후에 의심이 들어와 빠지긴 했어도-예수님의 수제자도 된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모험. 보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동한 사람이야말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실 때, 하나님은 방향도, 목적지도 정해 주시지 않았는데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얼마나 큰 모험입니까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로 제사를 드리라고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번창하게 해 주신다고 하더니 왜, 잡아 바치라고 합니까" 한다던지 "왜, 잔인하게 하나밖에 없는 독자를 바치라고 합니까" 하지도 않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부인과 상의하지도 않고 새벽에 일어나 길을 떠나갔습니다. 3일후 모리아산에 당도해서 나무를 쌓아 놓고 아들을 묶어 단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에게 손을 대지 마라. 네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 살았다"고 말씀하시고 예비해 두셨던 산양은 잡아 제사를 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모험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이런 모험적인 믿음, 모험적인 행동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친구"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3 사르밧 과부의 모험.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고 흉년이 계속되었으니 얼마나 무서운 기근입니까 아마 요사이 북한 사정보다 더 심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시돈땅 사르밧에 있는 가난한 과부에게 보냈습니다. 그 사르밧 과부는 양식을 조금씩 입에 풀칠이나 하며 연명하다가 마지막으로 빵이나 한 개씩 구어 먹고 죽으려던 판인데 엘리야가 나타나 빵을 구워 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환경적으로, 타산적으로 어려운 때 모험적으로 행동하나 못 하나를 TEST하는 분입니다. 그 때에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끼니를 우리 두 식구가 먹고 죽으려던 밀가루 한움쿰과 기름병에 기름 몇 방울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어서 시키는 대로 행동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땅에 흉년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마르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아니 했습니다. 우리 온 가정이 피난 시절에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에 온 식구들이 잊지 않고 명심하고 있으며 또 저희 형제들이 종종 간증하곤 합니다. 군산으로 피난 가서 아버지도, 형님도 잃어버리고 이산 가족이 되었을 때 극심한 경제난으로 쌀 대신 보리겨로 개떡을 쪄 먹기도 하고 쌀겨를 먹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백화 양조장에서 술찌기미를 얻어다 물에 풀어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개복동 교회라고 언덕 위에 있는 큰 교회에서 한장동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할 때, 시간 시간 참석하여 은혜 받는 중에 마지막날 십일조에 관한 설교를 하시는데 은혜를 받고 십일조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십일조 하다가 쌀이 떨어지고, 돈이 떨어지면 "하나님도 인간의 사정을 아시겠지"하고 십일조를 떼어먹고 못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주일날 돈도 없고 쌀한톨 없을 때 저의 모친께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인간의 사정을 아시겠지 십일조로 양식을 사다 먹는게 어떠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어머니! 안됩니다. 사람이 하루 이틀 굶어도 죽지 않는다고 하니 일곱 식구가 다 굶더라도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립시다"했더니, 저의 모친께서도 용기를 얻고 그 십일조를 군산 동부 교회에 가져다 바치며 눈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굶을 줄 알았는데 그날 오후에 저의 부친의 친구되는 사람이 우리 소식을 듣고 쌀을 한 포대나 사다 주어서 오랬만에 배불리 쌀밥을 먹고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구나"하면 깊은 체험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 하면서 예배당도 몇 번이나 지으면서 그와 같은 모험적인 헌금으로 놀라운 기적도 축복도 체험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모험적인 신앙을 굳게 가지면 경제위기로 문제없고 성전 건축도 문제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행동을 유심히 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믿음 생활 잘 한다고 해서 폭풍이나 고난을 안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이길 힘을 주시고 폭풍이 지난 후에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번에 교회에 불어닥친 폭풍도 이제는 거의 다 지나갔고 잠시 중단했던 성전 건축도 지난 주 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만, MBC 2580이 방영된 후 큰 시험의 파도가 몰아 닥칠 때 안모 집사님이 교회를 위해 밤을 세워 가며 기도하는데 환상 중에 한 손길이 나타나더니, 그 안에 흰종이 쪽지가 들어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성경 구절이 적혀 있는데 로마서 8장 15-18절이라고 쓰여서 있더랍니다. 그래서 펴 보았더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님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자녀이면 또 함께 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는 말씀이더랍니다. 다시 크게 깨달은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말씀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다."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크신 뜻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몇 주전에는 어느 남자 집사님이 교회를 위해서 금식 기도하는 중에 그와 같은 응답을 받고 와서 "목사님, 하나님께서 장차 있을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보여 주셨습니다. 목사님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라고 하는 간증을 들려 주셨습니다.
1. 인간의 구조와 인식의 방법 흔히 무식한 사람 중에는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이 육신의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다면 그런 하나님은 안 믿겠습니다. 냄새는 코로 맡고, 소리는 귀로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코 코로 소리를 들을 수 없고 귀로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종종 말씀드리듯이 계란에 껍질과 흰자위와 노른자위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사람도 보이는 육체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혼, 즉 정신이 있고 정신보다 더 중요한 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부분의 인식의 방법, 즉 깨달아 아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육신은 5관을 통해서 인식합니다. 즉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져 보는, 오관을 통해서 인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정신은 생각하고 계산하고 추리함으로 인식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뇌사 상태에 있는 사람은 숨은 쉬고, 심장의 박동은 살아 있어도 전혀 인식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영혼은 5관을 통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정신적으로 따져 보고 추리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우리를 대속하시는 십자가의 보혈로 죄씻음 받으면서 죽었던 영혼이 소생하면서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육신의 오관으로 판단해서도 안되고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만 판단해서도 안됩니다. 고린도 후서 4장 18절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하였고 고린도 후서 5장 7절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 함이로다"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2. 믿음으로 행할 때는 모험이 필요합니다. 보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모험이 필요합니다. 몇년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화재가 났을 때 유출된 방사능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수 만 명이 백혈병으로 죽고 암병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또 기형아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 핵방사능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 냄새도 없고 아무 색깔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핵방사능의 힘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살아가며 행동할 때는 인간의 눈으로도 볼 수 없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모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려고 할 때 인간적인 생각이나 계산으로 믿지는 것 같고, 손해나는 것 같고, 죽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 질 때는 모험적으로 행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위험도 무릅쓰고, 손해도 무릅쓰며, 때로는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모험적으로 행동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9절에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2장 25절에도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소욕을 거스르며 역설적으로 살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다 어리석고 미련해 보이만큼 모험적으로 행동하며 살았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베드로의 모험. 수제자 베드로는 다혈질적이어서 덤벙대다가 실수 할 때도 있었지만 주님의 말씀이라면 과감하게 모험적으로 행동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기 잡는 베드로를 부르시며 "이제부터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하실 때 용감하게 배와 그물을 내버려두고 주님을 좇았다고 했습니다. 가족은 어떻게 벌어 먹이나, 이 배와 그물은 내 재산 전부인데.등등, 생각해 볼만 한데 그는 즉각 모험적인 행동을 단행하여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폭풍을 만나 배가 뒤집힐 듯이 요동하는 중에 다른 제자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며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이 나타났다고 더욱 무서워하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물위로 첨벙 뛰어 내렸습니다." 얼마나 과감한 행동입니까 얼마나 멋진 모험입니까 이런 모험적 행동 때문에 성경에서 유일하게 물위로 걸어도 보았고-물론 얼마 후에 의심이 들어와 빠지긴 했어도-예수님의 수제자도 된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모험. 보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동한 사람이야말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실 때, 하나님은 방향도, 목적지도 정해 주시지 않았는데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얼마나 큰 모험입니까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로 제사를 드리라고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번창하게 해 주신다고 하더니 왜, 잡아 바치라고 합니까" 한다던지 "왜, 잔인하게 하나밖에 없는 독자를 바치라고 합니까" 하지도 않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부인과 상의하지도 않고 새벽에 일어나 길을 떠나갔습니다. 3일후 모리아산에 당도해서 나무를 쌓아 놓고 아들을 묶어 단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에게 손을 대지 마라. 네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 살았다"고 말씀하시고 예비해 두셨던 산양은 잡아 제사를 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모험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이런 모험적인 믿음, 모험적인 행동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친구"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3 사르밧 과부의 모험.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고 흉년이 계속되었으니 얼마나 무서운 기근입니까 아마 요사이 북한 사정보다 더 심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시돈땅 사르밧에 있는 가난한 과부에게 보냈습니다. 그 사르밧 과부는 양식을 조금씩 입에 풀칠이나 하며 연명하다가 마지막으로 빵이나 한 개씩 구어 먹고 죽으려던 판인데 엘리야가 나타나 빵을 구워 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환경적으로, 타산적으로 어려운 때 모험적으로 행동하나 못 하나를 TEST하는 분입니다. 그 때에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끼니를 우리 두 식구가 먹고 죽으려던 밀가루 한움쿰과 기름병에 기름 몇 방울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어서 시키는 대로 행동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땅에 흉년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마르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아니 했습니다. 우리 온 가정이 피난 시절에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에 온 식구들이 잊지 않고 명심하고 있으며 또 저희 형제들이 종종 간증하곤 합니다. 군산으로 피난 가서 아버지도, 형님도 잃어버리고 이산 가족이 되었을 때 극심한 경제난으로 쌀 대신 보리겨로 개떡을 쪄 먹기도 하고 쌀겨를 먹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백화 양조장에서 술찌기미를 얻어다 물에 풀어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개복동 교회라고 언덕 위에 있는 큰 교회에서 한장동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할 때, 시간 시간 참석하여 은혜 받는 중에 마지막날 십일조에 관한 설교를 하시는데 은혜를 받고 십일조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십일조 하다가 쌀이 떨어지고, 돈이 떨어지면 "하나님도 인간의 사정을 아시겠지"하고 십일조를 떼어먹고 못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주일날 돈도 없고 쌀한톨 없을 때 저의 모친께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인간의 사정을 아시겠지 십일조로 양식을 사다 먹는게 어떠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어머니! 안됩니다. 사람이 하루 이틀 굶어도 죽지 않는다고 하니 일곱 식구가 다 굶더라도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립시다"했더니, 저의 모친께서도 용기를 얻고 그 십일조를 군산 동부 교회에 가져다 바치며 눈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굶을 줄 알았는데 그날 오후에 저의 부친의 친구되는 사람이 우리 소식을 듣고 쌀을 한 포대나 사다 주어서 오랬만에 배불리 쌀밥을 먹고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구나"하면 깊은 체험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 하면서 예배당도 몇 번이나 지으면서 그와 같은 모험적인 헌금으로 놀라운 기적도 축복도 체험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모험적인 신앙을 굳게 가지면 경제위기로 문제없고 성전 건축도 문제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행동을 유심히 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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