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영광 (히11:23-28)
본문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어떻게 보면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 같지만 또한 우리 삶의 수많은 어려움이, 장애물들이 많은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단순한 시대가 아니고 참 복잡한 시대고, 또 우리의 삶에 요구가 많고, 많은 욕구를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는 수많은, 생각지 않았던 장애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모세가 살았던 그 시대나 또 사도들이 활동했던 그 시대나 또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나 어려움은 언제나 있고 또 앞으로 오는 시대도 더 많은 어려운 장애물이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낙심하며 절망하는 것 보다는 어려움 앞에 더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신앙적으로 이것을 이해하면서 받아들이고 또 감당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 어려움을 신앙의 눈으로 보고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기도하고 어려움이 없을 때 보다 더 힘을 내고 더 부지런해야 되고 더 감사해야 되고 더 주님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요사이 좀 어렵다고 해서, 직장이 없다고 해서 머리를 푹 숙이고 사람을 안 만나려고 하고 가족을 피하고 노숙자가 되고 술취하고 방탕하고 절망을 가지고 자살하고 타락하고, 이것은 어려움을 안고 어려움을 통해서 더 크게 발전하는, 긍정적으로 가는 것 보다는 아주 잘못 되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어느 신문사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지하에 내려가서 잠간 차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예쁜 아주머니가 가까이 와서 구두를 닦으라고 그래요. 구두 닦는 분이 대체로 남자인데 여자분이, 더구나 예쁘게 생긴 아주 젊은 여자분이 " !" 그래요. 저는 참 이상하다 하고 안닦으려하다가 제가 구두를 닦은지가 언제였는지 몇십년 전에 닦고, 닦은 일이 없어서 그리고 너무 놀라워서 "닦으세요" 그리고 보냈어요.
그런데 한 십분 되어서 구두를 닦아 왔는데 나를 보고는 그래요. "목사님이 아니세요"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 잘 안다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반가와서 손을 잡아 주면서 요금이 얼마냐고 하니까 이천원인데 안 받겠다는 거에요. 내가 안 받는다고 안 주겠어요 그래서 오천원을 주면서 손을 잡아 주었더니 얼마나 좋아하고 용기를 얻고 기뻐하면서 제 손을 안 놓으려고해요. 보세요. 여자분이 구두 닦는 것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나 그 분은 삶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거에요. 아마 남이 모르는 어려움이 많이 있겠지요. 그것을 적극적으로 나와서 여자 구두가 아닌 남자 구두를, 여자를 상대하지 않고. 남자들 가운데도 옛날에 고아들이나 아주 형편 없는 사람들이 하는 그 일을 감당하는 거에요. 그리고 저를 목사님인줄 안다 할지라도 그냥 자신이 없어서 내 이런 팔자에 내 이 모양 가지고 목사님이라고 말하기 어려울테지만 적극적으로 목사님이 아니냐고, 그래서 돈도 오천원 벌고 또 손잡아 기도해 주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습니다. 똑같은 사건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감당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 우리 성도들은 어느 모양의 어려움이든지 질병이든지 자녀 문제든지 물질 문제든지 가정, 사업의 문제든지 어떠한 모양의 다양한 문제일지라도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보고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이 배후에 계심을 믿고 우리는 감사하면서 나아갈 때에 고난은 잠간이고 주시는 축복은 영원한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다 갖추어서 완전하게 최고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남이 가진 것을 내가 못 가질 수도 있고 남이 잘하는 것을 나는 못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남이 당하지 않은 어려움을 우리가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남들은 머리가 좋은데 나는 머리가 나쁠 수도 있고 남들은 학력이 높은데 나는 학력이 낮을 수도 있고 남들은 인물이 좋은데 나는 나쁠 수도 있고 키가 큰데 키가 작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작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큰 사람과 경쟁할 수 있는 다른 은사를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길은 많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여러 가지로 주시는 은혜가 많습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가듯이 작은자가 우리가 올라가야 할 길이 많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크게 부흥을 일으킨 주의 종들이 있는데 길선주 목사님, 김익두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 이런 분은 우리 한국 교회사에 크게 한국 교회를 성장시킨 지도자들 이십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다 귀한 분들은 아닙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깡패 출신입니다. 아주 나쁜 깡패, 사람을 데려다가 늘 때리고 빼앗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고 안 만나려고 하고 나무에다가 장날 갈 때면 김익두 안 만나게 해 달라고 모두 소원 할 정도로 소문난 나쁜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그 분이 은헤를 받고 누구보다도 더 뜨겁게 주님을 사랑해서 회개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았습니까 또 우리 최권능 목사님은 그렇게 머리가 남들처럼 지혜롭지 못하고 실력이 없어서 아무리 공부해도 졸업을 못했다고 합니다. 다 졸업을 해서 목사가 되는데도 이 분은 졸업을 못합니다. 아무리 시험을 쳐도 안되는 거에요. 기도는 많이 하고 성령님충만한데 시험만 치면 안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 분이 말하기를 성령님도 시험 앞에는 쩔쩔맨다 그랬어요. 하도 안되어서 4년째 가서는 선교사님한테 학장님한테 찾아 갔대요.그리고 선교사님한테 '기도합시다'그랬대요. 기도하자 그러는데 어떻해요. 기도했어요. 우리 최권능 전도사님이 기도 하는 거에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수님 마음을 감화 감동하셔서 이번에 졸업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내려주시고 졸업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그 분이 "아멘"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는데요. 그 때에 최권능 목사님은 "졸업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합격 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선교사님이 "나 그 말 한 일 없습니다 졸업, 오해입니다 오해, 안되는 겁니다아니 조금 전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 때 아멘 했잖아요 아멘이란 말은 그대로 된다는 말이지 않냐"고, 그래가지고 졸업해도 한국 교회사에 얼마나 큰 일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안 되면 피하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속에서 만나게 되고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르시기도 하고 그 고난의 배후에서 언 제나 하나님은 큰 뜻을 가지시고 우리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라는 이 해석이 세상 사람이 당하는 고난과 기독교의 해석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세상 사람은 고난을 우연하게, 어쩌다가, 자연이나 천재지변이나 사람으로 말이암아 어떻게 잘못되어서, 또 혹은 재수없어서 어떤 운으로 그렇게 당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고난의 배후에는 그냥 내가 나 대로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다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간 것은 형님들이 판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성공시키고 출세하고 세계인류를 위해 일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나를 보냈다는 거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은 빌라도도 아니고 로마군인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라는 거에요. 물론 그 분들이 죽였지만 그 전에 이미 하나님의 계획이, 예수님이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이 있도록 예정이 되어 있고 섭리가 되어 있다 라고 성경은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고난이 그냥 인간이 인간으로 어떤 실수와 잘못으로 말미암아 혹은 누구 때문에 만나는 그런 고난이 아니고 우리 성도들의 고난은 적 든지 크든지 배후에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가 다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애굽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고난의 길로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늘 같이 하셨어요. 모세를 늘 지켜주시고 결국에는 모세를 들어 쓰셔서 잠간의 영광을 버린 이 모세에게 영원한 영광을 주시고, 애굽의 영광을 버린 모세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주시고, 공주의 아들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고, 바로의 궁궐의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온 인류 역사에 최대의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어 주신거에요. 그것이 바로 짧은 고난, 잠간의 고난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그렇게 모세를 길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당하는 이 모든 고난은, 또 우리 민족이 당하는 이 경제위기의 어려운 시련도 반드시 하나님이 배후에 이 민족을 새롭게 쓰시기 위하여 이 민족을 다시 무장시키고 훈련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 배후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또 이 고난 속에 남북이 통일 된 다음에 세계를 향하여 21세기 새로운 선교의 국가로 이 민족을 거듭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믿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고난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고난이 있을 때에 좌절하는 것보다는 믿음으로 신앙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할 줄로 믿습니다. 유명한 '시세로'도 말하기를 '고난이 크면 클수록 영광도 크다' 그랬습니다. 큰 고난을 주 안에서 당하는 분들이 큰 일을 하였습니다. 모세가 그렇고 다윗이 그렇습니다. 훌륭한 일을 하려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오는 시대에 크게 쓰임을 받고 크게 일을 하려면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하나님 자녀가 반드시 입학하는 고난의 학교에, 고난의 필수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참으로 신비로운 보화입니다. 사람은 좋은 것에 의해서 훈련을 받아 잘 되는 것보다는 고난에 의해서 더 빛나게 되고 잘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쇠도 두들기고 불 속에 집어 넣어서 두들길 때 좋은 기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어렸을때는 모든 농기구를가져다가 장날에 가서 풀무불에 달구어가지고 막 두들깁니다. 불 속에 넣습니다.
그런데 불 속에 한 번 넣은 것이 다르고 두 번 넣은 것이 다르고 세 번 넣은 것이 다릅니다. 자꾸 넣었다가 빼가지고 두들기면 그 쇠는 든든해지고 그 연장은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아주 단단하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 들어가는 게 다르고 세 번 들어가는 게 다릅니다. 이 고난도 한 번 겪는 분과 두 번 겪는 분이 다른 것입니다.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십자가의 좋은, 그리스도의 정병이 될 수 있고 좋은 기구가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어야 우리의 성격과 인격이 다듬어지고 하나님 앞에는 순종하는 삶이 되고 의지하고 믿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도 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삶에 무엇을 우선하는지 삶의 우선도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있어야 부모가 귀한 줄도 알게 되고 가족이 귀하고 교회가 귀하고 건강이 귀하고 몸이 아파 보아야 건강이 귀한 줄도 알고 물질의 어려움이 있어야 물질의 어려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깨끗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단장하는 것도 고난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오히려 고난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주셨고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사랑하셨지만 쉽게 기르시지를 아니하셨습니다. 모세는 짧은 고난, 광야의 그 고난이, 이스라엘을 수 십만의 그 군중을 이끌고 나오는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고난을 피하려고 하고 고난이 있으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또 고난 당할 때 누가 이럴 때 좀 도와 주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은 혼자 당해야지 도움을 받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고난이 빨리 지나가면 가치가 없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더구나 쓰임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미국에 옐로스톤이라고하는 공원이 있습니다. 얼마나 큰지요. 크기가 9천 평방Km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강원도 하나만큼 합니다. 여기에는 많은 짐승들이 있는데 이 짐승들에게 지금은 먹이를 절대로 못 주게 합니다.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전에 관광객이 와서 먹이를 자꾸 주니까 짐승들이 나가서 먹을 생각을 안하고 거기 와서 먹다가 겨울이 되서 문을 닫아버리고 관광객이 안오니까 추위에 다 병들고 죽습니다. 그래서 동물들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고 먹이를 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인생이든지 추운 겨울이 누구에게나 다 오게 되어 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에게 이 추운 겨울, 옐로스톤에 오는 겨울이 있다면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오는 겨울도 다 있게 마련입니다. 너무 부모가 지나치게 사랑해 주고 길러 준 사람은 그 때 그 어려움을 이길 수가 없어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를 기를 때에도 너무 지나치게 자녀에 대해서 너무 많은 애정을 가지고 사랑이 넘어 섭니다. 관심이 너무 넘어 섭니다. 군에 갔다 와도 어린애 취급을 하고 끝까지 도와주려 하고 먹이려 하고 입히려 하고, 이것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 보시는 대로 이번에 미국에 대통령 아이도 대학에 들어가니까 집에서 완전히 보내 버립니다. 집에서 데리고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 딸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들어가면 다 기숙사에 넣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학은 그 인원 만큼 기숙사가 확보 되어야 운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 거기서 지냅니다. 거기 와서 빨래 하는 것도 배웁니다. 자기가 전부 다 해야 합니다. 그게 하나하나 훈련이에요. 우리는 서른살이 되어도 어린애 같이 생각하고 내가 다 해 주어야 된다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사회에, 세상에 추운 겨울을 만나서 어려운 삶을 살아야 되는데 우리는 그런 일에 너무 지나치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겨울을 모르고 살아가는 부모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영국의 어떤 학자 한 분은 누에고치 속에서 벌레가 고치를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며 나오는 걸 보고 너무 불쌍해서 그걸 잘라 주었대요. 여러분 고치가 얼마나 단단합니까. 우리말로는 그걸 명주라 하고 요사이는 실크라 하지요. 제일 단단합니다. 칼로도 잘 안 잘라지는 걸 그 약한 벌레가 뚫고 나오려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몸부림을 치는 걸 그걸 잘라 주었어요.
그런데 나와서 며칠도 못되서 날지도 못하고 결국 죽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 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나의 이 어리석은 자비심이 한 생명을 죽게 했으며 나비의 꿈을 빼앗아 버렸다" 그랬어요. 도와 준 것이 결국 못 쓰게 만드는 거에요.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것이 그게 사랑하고 도와 주는 것이 아니에요. 스스로 이겨내도록,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이 세상을 훨훨 날 수 있는, 어떤 고난에도 날아다닐 수 있는 힘 있는 자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날개는 언제 만들어지느냐 그 안에서 몸부림을 칠 때에 날개에 힘이 생긴다는 겁니다. 나는 힘이 바로 거기서 만들어지는데 몸부림을 안치게 도와주는 거에요. 목회도 처음 할 때는 이걸 몰라서 인간적인 자비심과 긍휼이 교인들을 못 날게 만드는 것이 교인들에 대한 지나친 애정,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는 것 때문에 교인을 위대한 십자가의 정병으로 못 기르는 것입니다. 고난을 그대로 두고 일어서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울 만큼 울어야 되고 땀을 흘릴 만큼 흘려야 되고 괴롭고 외로운 것을 당할 만큼 다 만나야 만이 우리가 큰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당해서 이렇게 못견디는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고 60년대 이후에 70년, 80년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이 공부 하나 안 하나 다 취직하고 노나 안 노나 다 길이 열려 있었던 이런 안일한 생각 때문에 오늘 이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래야 됩니다.
세계가 다 그렇게 공부했는데 우리나라는 이제 금년부터 공부가 시작된 이유가 바로 우리가 이 시대를 모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넉넉히 이길 줄로 믿고 큰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민족에게 반드시 주시는 이 고난의 장애물을 믿음 안에서 넉넉히 건너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미국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참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클린턴도 보면 그의 잘못한 것이 너무 나쁘고 저럴수가 있을까 하는, 사람 같이 안 보이지요. 그러나 또한가지 신기한 것은, 다른 민족 같았으면 살아났겠어요 클린턴은 태연스럽게 웃고 전혀 느끼지 않고 골프 다 치고 해외 정상들 다 만나고 저렇게 태연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한 마디만 해도 고개 숙이죠. 꼼짝을 못할텐데. 그런 것도 저렇게 뻔뻔하게 다니는데 더구나 여러분은 그런 죄도 아닌 직장의 어려움이나 생활의 어려움이 뭐가 그렇게 겁이나고 괴롭고 창피해서 고개를숙이고 집안에 처박혀 있고 남을 안 만나려고 합니까. 우리는 실직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사명, 할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길도 많고 할 일도 많습니다. 영어 공부도 하시고 컴퓨터도 배우시고 미래를 위해서 좀 많이 배워 놓으십시오. 하나님이 쓰는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명성교회 하기 전에 너무 고난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그 가지가지 수많은 어려움 수 십년 동안 당하는데도 사십여년 동안 당하는 그 어려움 앞에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아요. 먹을 것이 없을 때 빵 하나 주는 분이 없고 몸이 아파 다 죽어 죽음을 1m 앞에 두고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아무도 저에게 약 한 봉지를 가져다 주는 분이 없었어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어두운 밤을, 캄캄한 밤을 반딧불 하나 누가 비춰 주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거기에서 내 힘이 생긴거에요. 도와줄 이 없는데서 참으로 큰 도움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된 거에요. 목회는 어려운 겁니다. 오히려 그 전에 그런 고난은 나 혼자 당하는 어려움이지만 지금 수 만명을 이끌고 가는 이 어려움은 그 때 어려움과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GM회사 보다도 교회를 몇 만명을 맡아 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겁니다.
GM이라고하는 회사는 돈이 있고, 조직이 있고, 기계를 가지고 하는데 교회는 기계로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조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가지고 운영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난의 학교를 거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믿음으로 이 교회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제가 말씀을 드리면, 제가 몇 년 전에 우리 부목사님들 하고 족구를 하다가 허리를 다쳤어요. 삐끗 했는데 느낌이 그대로 몸이 반토막이 나는 것 같았어요. 위하고 아래하고 내 것이 아니에요. 서로 다르게 느껴졌어요.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왔어요. 해산하는 고통이 왔어요. 그래도 저는 즉시 병원으로 가지도 못하고 그날 저녁부터 거제도에서 있는 집회를 위해서 승용차로 내려갔어요. 얼마나 터덜터덜 그러는지요. 바늘 백개가 내 몸을 찌르는 것과 같은 통증을 일곱 시간을 견디며 뒤에 누워서 거제도까지 가서 거기서 강단을 붙잡고 안떨어지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설교를 하고 호텔에 갔다가 새벽에 와서 또 설교를 하고 잠 한잠 못자고 며칠을 집회를 다 하고 올라왔어요. 병원에 갈 여가가 어디 있고 기브스 할 여가가 어디 있습니까. 집회 때문에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그냥 그대로 계속 있다 보니까 나았어요. 내가 병원에 갈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해외에 가서 집회를 해도 한번 가면 다섯, 여섯 곳에 집회를 하고 쉴 사이 없이 여기 돌아와서 토요일날 와서 그대로 공항에서부터 서류 정리를 수 백 건을 하고 저녁에 또 성경공부 시키고 주일날 새벽부터 1, 2, 3, 4, 5부 예배, 저녁까지 다 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 또 지방 집회 내려갑니다. 월요일 아침 회의 하고 많은 모임을 하고 또 지방으로 내려갑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이런 어려움만 어려움입니까 큰 교회가 되어 보세요. 시기, 질투하는 사람도 말도 못하게 많고 욕하고 뜯어내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동서남북으로 다 문제고 다 적이고 다 짐이고 다 어려움입니다. 어떻게 이겨냅니까 지난 날의 모든 고난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미 준비를 다 시킨거에요. 다 참게 되고 다 감당하게 되고 다 감사하게 되어있습니다. 고난을 거쳐보세요. 모든 세계가 신비한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밥을 먹어 보세요. 나 혼자만 밥을 먹는 것 같고, 고난 당하고 아침 태양이 떠 오르는 걸 보세요. 나를 위해 떠 오르는 것 같고, 고난을 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보세요. 천하에 없는 춘향이 같고요. 고난을 당하고 이 세상을 살아 보세요.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렇게 감사하고 신비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세대가 밥 맛도 없고 살 맛도 없어서 부정적이고 절망으로, 타락으로 가는 것은 고난이 없어서입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을 만나서도 이렇게 슬프게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고난을 모르고 살아 온 사람들이에요.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에게는 오히려 큰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모세는 고난 중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상 주심을 바라보았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버린 것은 애굽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리시는 축복을 바라 본 것입니다. 여러분의 앞날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구약성경 가운데 지혜서 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욥,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입니다. 이 다섯권을 왜 하나로 묶어 놓았느냐. 이것은 유대인들이 편집을 할 때 아주 지혜있게 편집을 했습니다. 욥은 무엇을 말합니까 의인이 고난을 당해서 그 고난 속에 절대로 죽지 않고 오히려 복을받게 되는 것을, 승리하게 되는 것을 욥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욥기를 지나서 시편으로 가면 무엇을 말합니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성전을 사랑하고 기도하게 되는, 경건한 생활로 가는 의인의 그 풍성한 영적 삶이 시편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다음 시편을 건너 가면 잠언으로 옵니다. 고난을 지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건하고, 의롭고,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혜가 생겨서 정치적인 지헤, 기업가의 지혜, 삶의 지혜가, 아이디어가 막 생겨나는, 잠언서는 인간 관계와 모든 자연 속에서 수 많은 지헤가 떠오르는 거에요. 저는 그저께 어떤 목사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인 한 분이 등록을 했는데 이 교인이 우리나라 중요한 부서에 국장으로 있다가 퇴직을 했는데 퇴직금을 가지고 나와서 사업을 하다가 다 잃어버리고 빈 털터리가 되었다는 거에요. 정부에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다가 퇴직해서도 돈을 다 잃어버리고 나니 그 다음에는 하는 것 마다 안 됐어요. 처음에는 직장에서도 누구 보다도 일 순간에 올라갔는데 누구 보다도 경쟁에 이겼는데 추운 겨울을 만나고 나니 길이 없어요. 정권은 바뀌었습니다. 친구들도 다 모두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다니는 딸이 교회 가자고 자꾸 그러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교회에 나왔어요. 은헤를 받았어요. 빈 털터리가 되니까 은헤가 되는 거에요. 누가 은혜를 받느냐 빈 털터리가 되야 은헤를 받아요. 어깨에 힘 있는 것 때문에, 조금 가졌다는 것 때문에 은혜가 안 된 거에요. 오던 그날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은혜를 받았어요. 그리고 이 사람은 몇 사람의 친구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 사업이 잘돼요. 얼마나 복을 받았는지 미국에 있는 큰 신문사에서 발표가 났는데 앞으로 몇 년 안가면 우리나라의 1위 가는 큰 기업이 된다는 거에요. 저도 들었는데요. 몸 안에 조그마한 로봇이, 손톱만한 로봇이 몸 안으로 들어가서 몸 속에 있는 모든 병을 이 로봇이 다 치료하는 이런 것까지 개발했대요. 그래서 지금 기술 첨단분야에 최고로 가고 있다는거에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신비한 새로운 삶으로 시작되었느냐. 고난을 거친 삶이에요. 우리나라에 크게 일 한 분들을 보세요. 누구입니까 정치적으로, 기업가들 가운데도 오늘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분들이 다 고생을 거친 분들이고 고생 안 한 자식들에게 물려 주면 몇 년 안 가서 잘 안되는 거에요. 왜 자식을 미국에서 공부는 시켰는데고난 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그냥 맡겨 놓은 거에요. 감당을 할 수가 없는 거에요. 고난을 당해야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아이디어가 생기는 겁니다. 고난을 인해서 울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물러서지 말고 적극적으로 모세와 같이 광야로 나아가 끊임없이 전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로 순종했어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출40:16에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행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회는 중요한 것이 인간성입니다. 참으로 우리 인간성을 회복해야 되는데 인간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올림픽이 끝나면서부터 우리는 전 세계에 들어볼 수 없는, 너무 잔인하고 비 인간적인, 비 인격적인, 비 신앙적인 이런 성품들이 우리 사회에 지금 안개와 같이 가득차 있습니다. 어머니를 아이들이 죽이고, 자식을 부모가 죽이고, 너무 안타깝고 비참하기 그지 업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영화를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늑대와 함께 춤을' 기억하세요 여기 보면 인디언과 백인들과 그러다가 결국에는 마지막에 인디언들이 철수합니다. 인디언들이 힘으로 당할 수 없어서 다 물러갑니다. 그때에 인디언 추장과 가까운 백인이 하나 있었어요. 그래서 인디언 추장이 마지막 말 하잖아요. 말 하나를 남기는 거에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귀한 방법은 진정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다"고 충고하고 포기하고는 이 추장이 산 속으로 이 인디언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백인들을 향하여 따끔하게 한 마디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잘못된 것은 하나입니다. 인간성을 회복해야 하는데 인간이 인간됨을 잃어버렸어요. 그냥 총을 가지고 어디든지 쏘고 그저 나 하나만 생각하고 막 날뛰는 이런 사람들과 마찬가지에요.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길입니다. 말씀으로 돌아오는 길이에요. 공산주의는, 칼 막스는 인간을 물질로, 유물주의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공산주의가 유물주의를 따라가다가 망한 다음에 그 다음에는 공산주의가 속히 어디로 돌아왔는지 아세요 헝가리와 폴란드와 소련이 어디로 돌아왔어요 모든 공립학교에서 성경를 가르치게 하고 성경으로 돌아갔어요. 성경을 떠나고 몇 십년 동안 방황하던 공산주의 국가가 모스크바 국립대학부터 성경과목을 만들었어요. 온 소련이, 공산권이 지금 빨리일어나는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거에요. 성경은 우리를 회복시킵니다. 땅도 회복시키고 인격도 회복시키고 가정도 회복시키고 모두를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더욱 성경 읽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대로, 말씀의 설계대로 나라를 설계하고 우리 가정의 앞날을 설계하고 우리 행복을 설계하고 우리 사업을 설계하여 세계를 향하여 새롭게 태어나는위대한, 새로운 영광을 창조하는 민족이 되어야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한 십분 되어서 구두를 닦아 왔는데 나를 보고는 그래요. "목사님이 아니세요"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 잘 안다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반가와서 손을 잡아 주면서 요금이 얼마냐고 하니까 이천원인데 안 받겠다는 거에요. 내가 안 받는다고 안 주겠어요 그래서 오천원을 주면서 손을 잡아 주었더니 얼마나 좋아하고 용기를 얻고 기뻐하면서 제 손을 안 놓으려고해요. 보세요. 여자분이 구두 닦는 것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나 그 분은 삶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거에요. 아마 남이 모르는 어려움이 많이 있겠지요. 그것을 적극적으로 나와서 여자 구두가 아닌 남자 구두를, 여자를 상대하지 않고. 남자들 가운데도 옛날에 고아들이나 아주 형편 없는 사람들이 하는 그 일을 감당하는 거에요. 그리고 저를 목사님인줄 안다 할지라도 그냥 자신이 없어서 내 이런 팔자에 내 이 모양 가지고 목사님이라고 말하기 어려울테지만 적극적으로 목사님이 아니냐고, 그래서 돈도 오천원 벌고 또 손잡아 기도해 주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습니다. 똑같은 사건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감당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 우리 성도들은 어느 모양의 어려움이든지 질병이든지 자녀 문제든지 물질 문제든지 가정, 사업의 문제든지 어떠한 모양의 다양한 문제일지라도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보고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이 배후에 계심을 믿고 우리는 감사하면서 나아갈 때에 고난은 잠간이고 주시는 축복은 영원한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다 갖추어서 완전하게 최고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남이 가진 것을 내가 못 가질 수도 있고 남이 잘하는 것을 나는 못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남이 당하지 않은 어려움을 우리가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남들은 머리가 좋은데 나는 머리가 나쁠 수도 있고 남들은 학력이 높은데 나는 학력이 낮을 수도 있고 남들은 인물이 좋은데 나는 나쁠 수도 있고 키가 큰데 키가 작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작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큰 사람과 경쟁할 수 있는 다른 은사를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길은 많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여러 가지로 주시는 은혜가 많습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가듯이 작은자가 우리가 올라가야 할 길이 많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크게 부흥을 일으킨 주의 종들이 있는데 길선주 목사님, 김익두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 이런 분은 우리 한국 교회사에 크게 한국 교회를 성장시킨 지도자들 이십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다 귀한 분들은 아닙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깡패 출신입니다. 아주 나쁜 깡패, 사람을 데려다가 늘 때리고 빼앗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고 안 만나려고 하고 나무에다가 장날 갈 때면 김익두 안 만나게 해 달라고 모두 소원 할 정도로 소문난 나쁜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그 분이 은헤를 받고 누구보다도 더 뜨겁게 주님을 사랑해서 회개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았습니까 또 우리 최권능 목사님은 그렇게 머리가 남들처럼 지혜롭지 못하고 실력이 없어서 아무리 공부해도 졸업을 못했다고 합니다. 다 졸업을 해서 목사가 되는데도 이 분은 졸업을 못합니다. 아무리 시험을 쳐도 안되는 거에요. 기도는 많이 하고 성령님충만한데 시험만 치면 안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 분이 말하기를 성령님도 시험 앞에는 쩔쩔맨다 그랬어요. 하도 안되어서 4년째 가서는 선교사님한테 학장님한테 찾아 갔대요.그리고 선교사님한테 '기도합시다'그랬대요. 기도하자 그러는데 어떻해요. 기도했어요. 우리 최권능 전도사님이 기도 하는 거에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수님 마음을 감화 감동하셔서 이번에 졸업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내려주시고 졸업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그 분이 "아멘"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는데요. 그 때에 최권능 목사님은 "졸업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합격 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선교사님이 "나 그 말 한 일 없습니다 졸업, 오해입니다 오해, 안되는 겁니다아니 조금 전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 때 아멘 했잖아요 아멘이란 말은 그대로 된다는 말이지 않냐"고, 그래가지고 졸업해도 한국 교회사에 얼마나 큰 일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안 되면 피하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속에서 만나게 되고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르시기도 하고 그 고난의 배후에서 언 제나 하나님은 큰 뜻을 가지시고 우리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라는 이 해석이 세상 사람이 당하는 고난과 기독교의 해석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세상 사람은 고난을 우연하게, 어쩌다가, 자연이나 천재지변이나 사람으로 말이암아 어떻게 잘못되어서, 또 혹은 재수없어서 어떤 운으로 그렇게 당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고난의 배후에는 그냥 내가 나 대로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다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간 것은 형님들이 판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성공시키고 출세하고 세계인류를 위해 일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나를 보냈다는 거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은 빌라도도 아니고 로마군인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라는 거에요. 물론 그 분들이 죽였지만 그 전에 이미 하나님의 계획이, 예수님이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이 있도록 예정이 되어 있고 섭리가 되어 있다 라고 성경은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고난이 그냥 인간이 인간으로 어떤 실수와 잘못으로 말미암아 혹은 누구 때문에 만나는 그런 고난이 아니고 우리 성도들의 고난은 적 든지 크든지 배후에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가 다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애굽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고난의 길로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늘 같이 하셨어요. 모세를 늘 지켜주시고 결국에는 모세를 들어 쓰셔서 잠간의 영광을 버린 이 모세에게 영원한 영광을 주시고, 애굽의 영광을 버린 모세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주시고, 공주의 아들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고, 바로의 궁궐의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온 인류 역사에 최대의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어 주신거에요. 그것이 바로 짧은 고난, 잠간의 고난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그렇게 모세를 길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당하는 이 모든 고난은, 또 우리 민족이 당하는 이 경제위기의 어려운 시련도 반드시 하나님이 배후에 이 민족을 새롭게 쓰시기 위하여 이 민족을 다시 무장시키고 훈련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 배후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또 이 고난 속에 남북이 통일 된 다음에 세계를 향하여 21세기 새로운 선교의 국가로 이 민족을 거듭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믿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고난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고난이 있을 때에 좌절하는 것보다는 믿음으로 신앙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할 줄로 믿습니다. 유명한 '시세로'도 말하기를 '고난이 크면 클수록 영광도 크다' 그랬습니다. 큰 고난을 주 안에서 당하는 분들이 큰 일을 하였습니다. 모세가 그렇고 다윗이 그렇습니다. 훌륭한 일을 하려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오는 시대에 크게 쓰임을 받고 크게 일을 하려면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하나님 자녀가 반드시 입학하는 고난의 학교에, 고난의 필수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참으로 신비로운 보화입니다. 사람은 좋은 것에 의해서 훈련을 받아 잘 되는 것보다는 고난에 의해서 더 빛나게 되고 잘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쇠도 두들기고 불 속에 집어 넣어서 두들길 때 좋은 기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어렸을때는 모든 농기구를가져다가 장날에 가서 풀무불에 달구어가지고 막 두들깁니다. 불 속에 넣습니다.
그런데 불 속에 한 번 넣은 것이 다르고 두 번 넣은 것이 다르고 세 번 넣은 것이 다릅니다. 자꾸 넣었다가 빼가지고 두들기면 그 쇠는 든든해지고 그 연장은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아주 단단하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 들어가는 게 다르고 세 번 들어가는 게 다릅니다. 이 고난도 한 번 겪는 분과 두 번 겪는 분이 다른 것입니다.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십자가의 좋은, 그리스도의 정병이 될 수 있고 좋은 기구가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어야 우리의 성격과 인격이 다듬어지고 하나님 앞에는 순종하는 삶이 되고 의지하고 믿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도 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삶에 무엇을 우선하는지 삶의 우선도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있어야 부모가 귀한 줄도 알게 되고 가족이 귀하고 교회가 귀하고 건강이 귀하고 몸이 아파 보아야 건강이 귀한 줄도 알고 물질의 어려움이 있어야 물질의 어려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깨끗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단장하는 것도 고난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오히려 고난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주셨고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사랑하셨지만 쉽게 기르시지를 아니하셨습니다. 모세는 짧은 고난, 광야의 그 고난이, 이스라엘을 수 십만의 그 군중을 이끌고 나오는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고난을 피하려고 하고 고난이 있으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또 고난 당할 때 누가 이럴 때 좀 도와 주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은 혼자 당해야지 도움을 받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고난이 빨리 지나가면 가치가 없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더구나 쓰임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미국에 옐로스톤이라고하는 공원이 있습니다. 얼마나 큰지요. 크기가 9천 평방Km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강원도 하나만큼 합니다. 여기에는 많은 짐승들이 있는데 이 짐승들에게 지금은 먹이를 절대로 못 주게 합니다.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전에 관광객이 와서 먹이를 자꾸 주니까 짐승들이 나가서 먹을 생각을 안하고 거기 와서 먹다가 겨울이 되서 문을 닫아버리고 관광객이 안오니까 추위에 다 병들고 죽습니다. 그래서 동물들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고 먹이를 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인생이든지 추운 겨울이 누구에게나 다 오게 되어 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에게 이 추운 겨울, 옐로스톤에 오는 겨울이 있다면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오는 겨울도 다 있게 마련입니다. 너무 부모가 지나치게 사랑해 주고 길러 준 사람은 그 때 그 어려움을 이길 수가 없어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를 기를 때에도 너무 지나치게 자녀에 대해서 너무 많은 애정을 가지고 사랑이 넘어 섭니다. 관심이 너무 넘어 섭니다. 군에 갔다 와도 어린애 취급을 하고 끝까지 도와주려 하고 먹이려 하고 입히려 하고, 이것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 보시는 대로 이번에 미국에 대통령 아이도 대학에 들어가니까 집에서 완전히 보내 버립니다. 집에서 데리고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 딸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들어가면 다 기숙사에 넣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학은 그 인원 만큼 기숙사가 확보 되어야 운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 거기서 지냅니다. 거기 와서 빨래 하는 것도 배웁니다. 자기가 전부 다 해야 합니다. 그게 하나하나 훈련이에요. 우리는 서른살이 되어도 어린애 같이 생각하고 내가 다 해 주어야 된다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사회에, 세상에 추운 겨울을 만나서 어려운 삶을 살아야 되는데 우리는 그런 일에 너무 지나치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겨울을 모르고 살아가는 부모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영국의 어떤 학자 한 분은 누에고치 속에서 벌레가 고치를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며 나오는 걸 보고 너무 불쌍해서 그걸 잘라 주었대요. 여러분 고치가 얼마나 단단합니까. 우리말로는 그걸 명주라 하고 요사이는 실크라 하지요. 제일 단단합니다. 칼로도 잘 안 잘라지는 걸 그 약한 벌레가 뚫고 나오려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몸부림을 치는 걸 그걸 잘라 주었어요.
그런데 나와서 며칠도 못되서 날지도 못하고 결국 죽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 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나의 이 어리석은 자비심이 한 생명을 죽게 했으며 나비의 꿈을 빼앗아 버렸다" 그랬어요. 도와 준 것이 결국 못 쓰게 만드는 거에요.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것이 그게 사랑하고 도와 주는 것이 아니에요. 스스로 이겨내도록,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이 세상을 훨훨 날 수 있는, 어떤 고난에도 날아다닐 수 있는 힘 있는 자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날개는 언제 만들어지느냐 그 안에서 몸부림을 칠 때에 날개에 힘이 생긴다는 겁니다. 나는 힘이 바로 거기서 만들어지는데 몸부림을 안치게 도와주는 거에요. 목회도 처음 할 때는 이걸 몰라서 인간적인 자비심과 긍휼이 교인들을 못 날게 만드는 것이 교인들에 대한 지나친 애정,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는 것 때문에 교인을 위대한 십자가의 정병으로 못 기르는 것입니다. 고난을 그대로 두고 일어서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울 만큼 울어야 되고 땀을 흘릴 만큼 흘려야 되고 괴롭고 외로운 것을 당할 만큼 다 만나야 만이 우리가 큰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당해서 이렇게 못견디는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고 60년대 이후에 70년, 80년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이 공부 하나 안 하나 다 취직하고 노나 안 노나 다 길이 열려 있었던 이런 안일한 생각 때문에 오늘 이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래야 됩니다.
세계가 다 그렇게 공부했는데 우리나라는 이제 금년부터 공부가 시작된 이유가 바로 우리가 이 시대를 모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넉넉히 이길 줄로 믿고 큰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민족에게 반드시 주시는 이 고난의 장애물을 믿음 안에서 넉넉히 건너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미국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참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클린턴도 보면 그의 잘못한 것이 너무 나쁘고 저럴수가 있을까 하는, 사람 같이 안 보이지요. 그러나 또한가지 신기한 것은, 다른 민족 같았으면 살아났겠어요 클린턴은 태연스럽게 웃고 전혀 느끼지 않고 골프 다 치고 해외 정상들 다 만나고 저렇게 태연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한 마디만 해도 고개 숙이죠. 꼼짝을 못할텐데. 그런 것도 저렇게 뻔뻔하게 다니는데 더구나 여러분은 그런 죄도 아닌 직장의 어려움이나 생활의 어려움이 뭐가 그렇게 겁이나고 괴롭고 창피해서 고개를숙이고 집안에 처박혀 있고 남을 안 만나려고 합니까. 우리는 실직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사명, 할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길도 많고 할 일도 많습니다. 영어 공부도 하시고 컴퓨터도 배우시고 미래를 위해서 좀 많이 배워 놓으십시오. 하나님이 쓰는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명성교회 하기 전에 너무 고난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그 가지가지 수많은 어려움 수 십년 동안 당하는데도 사십여년 동안 당하는 그 어려움 앞에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아요. 먹을 것이 없을 때 빵 하나 주는 분이 없고 몸이 아파 다 죽어 죽음을 1m 앞에 두고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아무도 저에게 약 한 봉지를 가져다 주는 분이 없었어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어두운 밤을, 캄캄한 밤을 반딧불 하나 누가 비춰 주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거기에서 내 힘이 생긴거에요. 도와줄 이 없는데서 참으로 큰 도움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된 거에요. 목회는 어려운 겁니다. 오히려 그 전에 그런 고난은 나 혼자 당하는 어려움이지만 지금 수 만명을 이끌고 가는 이 어려움은 그 때 어려움과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GM회사 보다도 교회를 몇 만명을 맡아 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겁니다.
GM이라고하는 회사는 돈이 있고, 조직이 있고, 기계를 가지고 하는데 교회는 기계로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조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가지고 운영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난의 학교를 거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믿음으로 이 교회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제가 말씀을 드리면, 제가 몇 년 전에 우리 부목사님들 하고 족구를 하다가 허리를 다쳤어요. 삐끗 했는데 느낌이 그대로 몸이 반토막이 나는 것 같았어요. 위하고 아래하고 내 것이 아니에요. 서로 다르게 느껴졌어요.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왔어요. 해산하는 고통이 왔어요. 그래도 저는 즉시 병원으로 가지도 못하고 그날 저녁부터 거제도에서 있는 집회를 위해서 승용차로 내려갔어요. 얼마나 터덜터덜 그러는지요. 바늘 백개가 내 몸을 찌르는 것과 같은 통증을 일곱 시간을 견디며 뒤에 누워서 거제도까지 가서 거기서 강단을 붙잡고 안떨어지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설교를 하고 호텔에 갔다가 새벽에 와서 또 설교를 하고 잠 한잠 못자고 며칠을 집회를 다 하고 올라왔어요. 병원에 갈 여가가 어디 있고 기브스 할 여가가 어디 있습니까. 집회 때문에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그냥 그대로 계속 있다 보니까 나았어요. 내가 병원에 갈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해외에 가서 집회를 해도 한번 가면 다섯, 여섯 곳에 집회를 하고 쉴 사이 없이 여기 돌아와서 토요일날 와서 그대로 공항에서부터 서류 정리를 수 백 건을 하고 저녁에 또 성경공부 시키고 주일날 새벽부터 1, 2, 3, 4, 5부 예배, 저녁까지 다 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 또 지방 집회 내려갑니다. 월요일 아침 회의 하고 많은 모임을 하고 또 지방으로 내려갑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이런 어려움만 어려움입니까 큰 교회가 되어 보세요. 시기, 질투하는 사람도 말도 못하게 많고 욕하고 뜯어내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동서남북으로 다 문제고 다 적이고 다 짐이고 다 어려움입니다. 어떻게 이겨냅니까 지난 날의 모든 고난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미 준비를 다 시킨거에요. 다 참게 되고 다 감당하게 되고 다 감사하게 되어있습니다. 고난을 거쳐보세요. 모든 세계가 신비한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밥을 먹어 보세요. 나 혼자만 밥을 먹는 것 같고, 고난 당하고 아침 태양이 떠 오르는 걸 보세요. 나를 위해 떠 오르는 것 같고, 고난을 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보세요. 천하에 없는 춘향이 같고요. 고난을 당하고 이 세상을 살아 보세요.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렇게 감사하고 신비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세대가 밥 맛도 없고 살 맛도 없어서 부정적이고 절망으로, 타락으로 가는 것은 고난이 없어서입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을 만나서도 이렇게 슬프게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고난을 모르고 살아 온 사람들이에요.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에게는 오히려 큰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모세는 고난 중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상 주심을 바라보았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버린 것은 애굽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리시는 축복을 바라 본 것입니다. 여러분의 앞날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구약성경 가운데 지혜서 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욥,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입니다. 이 다섯권을 왜 하나로 묶어 놓았느냐. 이것은 유대인들이 편집을 할 때 아주 지혜있게 편집을 했습니다. 욥은 무엇을 말합니까 의인이 고난을 당해서 그 고난 속에 절대로 죽지 않고 오히려 복을받게 되는 것을, 승리하게 되는 것을 욥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욥기를 지나서 시편으로 가면 무엇을 말합니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성전을 사랑하고 기도하게 되는, 경건한 생활로 가는 의인의 그 풍성한 영적 삶이 시편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다음 시편을 건너 가면 잠언으로 옵니다. 고난을 지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건하고, 의롭고,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혜가 생겨서 정치적인 지헤, 기업가의 지혜, 삶의 지혜가, 아이디어가 막 생겨나는, 잠언서는 인간 관계와 모든 자연 속에서 수 많은 지헤가 떠오르는 거에요. 저는 그저께 어떤 목사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인 한 분이 등록을 했는데 이 교인이 우리나라 중요한 부서에 국장으로 있다가 퇴직을 했는데 퇴직금을 가지고 나와서 사업을 하다가 다 잃어버리고 빈 털터리가 되었다는 거에요. 정부에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다가 퇴직해서도 돈을 다 잃어버리고 나니 그 다음에는 하는 것 마다 안 됐어요. 처음에는 직장에서도 누구 보다도 일 순간에 올라갔는데 누구 보다도 경쟁에 이겼는데 추운 겨울을 만나고 나니 길이 없어요. 정권은 바뀌었습니다. 친구들도 다 모두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다니는 딸이 교회 가자고 자꾸 그러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교회에 나왔어요. 은헤를 받았어요. 빈 털터리가 되니까 은헤가 되는 거에요. 누가 은혜를 받느냐 빈 털터리가 되야 은헤를 받아요. 어깨에 힘 있는 것 때문에, 조금 가졌다는 것 때문에 은혜가 안 된 거에요. 오던 그날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은혜를 받았어요. 그리고 이 사람은 몇 사람의 친구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 사업이 잘돼요. 얼마나 복을 받았는지 미국에 있는 큰 신문사에서 발표가 났는데 앞으로 몇 년 안가면 우리나라의 1위 가는 큰 기업이 된다는 거에요. 저도 들었는데요. 몸 안에 조그마한 로봇이, 손톱만한 로봇이 몸 안으로 들어가서 몸 속에 있는 모든 병을 이 로봇이 다 치료하는 이런 것까지 개발했대요. 그래서 지금 기술 첨단분야에 최고로 가고 있다는거에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신비한 새로운 삶으로 시작되었느냐. 고난을 거친 삶이에요. 우리나라에 크게 일 한 분들을 보세요. 누구입니까 정치적으로, 기업가들 가운데도 오늘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분들이 다 고생을 거친 분들이고 고생 안 한 자식들에게 물려 주면 몇 년 안 가서 잘 안되는 거에요. 왜 자식을 미국에서 공부는 시켰는데고난 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그냥 맡겨 놓은 거에요. 감당을 할 수가 없는 거에요. 고난을 당해야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아이디어가 생기는 겁니다. 고난을 인해서 울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물러서지 말고 적극적으로 모세와 같이 광야로 나아가 끊임없이 전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로 순종했어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출40:16에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행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회는 중요한 것이 인간성입니다. 참으로 우리 인간성을 회복해야 되는데 인간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올림픽이 끝나면서부터 우리는 전 세계에 들어볼 수 없는, 너무 잔인하고 비 인간적인, 비 인격적인, 비 신앙적인 이런 성품들이 우리 사회에 지금 안개와 같이 가득차 있습니다. 어머니를 아이들이 죽이고, 자식을 부모가 죽이고, 너무 안타깝고 비참하기 그지 업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영화를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늑대와 함께 춤을' 기억하세요 여기 보면 인디언과 백인들과 그러다가 결국에는 마지막에 인디언들이 철수합니다. 인디언들이 힘으로 당할 수 없어서 다 물러갑니다. 그때에 인디언 추장과 가까운 백인이 하나 있었어요. 그래서 인디언 추장이 마지막 말 하잖아요. 말 하나를 남기는 거에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귀한 방법은 진정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다"고 충고하고 포기하고는 이 추장이 산 속으로 이 인디언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백인들을 향하여 따끔하게 한 마디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잘못된 것은 하나입니다. 인간성을 회복해야 하는데 인간이 인간됨을 잃어버렸어요. 그냥 총을 가지고 어디든지 쏘고 그저 나 하나만 생각하고 막 날뛰는 이런 사람들과 마찬가지에요.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길입니다. 말씀으로 돌아오는 길이에요. 공산주의는, 칼 막스는 인간을 물질로, 유물주의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공산주의가 유물주의를 따라가다가 망한 다음에 그 다음에는 공산주의가 속히 어디로 돌아왔는지 아세요 헝가리와 폴란드와 소련이 어디로 돌아왔어요 모든 공립학교에서 성경를 가르치게 하고 성경으로 돌아갔어요. 성경을 떠나고 몇 십년 동안 방황하던 공산주의 국가가 모스크바 국립대학부터 성경과목을 만들었어요. 온 소련이, 공산권이 지금 빨리일어나는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거에요. 성경은 우리를 회복시킵니다. 땅도 회복시키고 인격도 회복시키고 가정도 회복시키고 모두를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더욱 성경 읽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대로, 말씀의 설계대로 나라를 설계하고 우리 가정의 앞날을 설계하고 우리 행복을 설계하고 우리 사업을 설계하여 세계를 향하여 새롭게 태어나는위대한, 새로운 영광을 창조하는 민족이 되어야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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