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위대한 지도력은 어디서 왔는가? (출2:1-25)
본문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의 출생에서 미디안 광야로 도피한 때까지의 기록이다. 모세의 생애를 120년에서 세 구분으로 나누어 놓고 볼 때 첫 40년 부분에 해당한다. 보통 출생에서 바로의 왕궁에서의 40년, 미디안 광야 생활 40년, 출애굽 여정에서의 40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오늘 우리는 구약 시대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이며, 히브리 민족의 최고의 영웅인 모세의 탁월한 지도력에 대하여 살펴보고져 한다. 과연 모세의 위대한 지도력은 어디서 왔는가
1.육적인 훈련에서 왔다. 모세의 삶은 갖은 파란 곡절을 겪어야 하는 삶이었다. 남아 살해령, 노예 신분, 심한 노역, 동족을 향한 불타는 마음, 동족의 반목 등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시련이나 훈련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과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위대한 지도자”로,“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어져 가고 있었다.
⑴.출생 본문 1-2절에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라고 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12 지파 중 하나님을 위해 부르심을 입은 레위 족속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레위의 손자요, 고핫의 아들인 아므람이요, 어머니는 레위의 딸인 요게벳이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는 “남아 살해령”이 내려져 있었다. 세월이 흘러 요셉의 치적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바로 왕조가 통치할 때, 히브리 민족의 왕성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히브리 민족 탄압 정책을 폈다. 노예로 삼아 강제 노역을 시키고 중노동의 고역을 통해 기존 남자를 죽이고, 출생하는 아이들에 대해서 “남아 살해령”을 내려 히브리 민족 말살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모세는 태어나 어머니의 품에서 석 달을 숨겨 자랐다. 아마도 아이의 울음 소리가 컸기 때문이리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어 갈 상자에 담아 나일강 갈대 숲에 버리게 되었다. 그 석 달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기간이었으리라. 그 이상은 부모의 사랑도, 어머니의 희생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여기서도 우리는 아브라함의 경우에서처럼, 인간의 수단, 방법, 능력, 노력이 끝날 때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역사하심을 보게 된다. 바로의 딸은 단순히 목욕하려 하수로 내려왔다. 갈 상자 속의 어린 아이를 보고 여성 본래의 모성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배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 사하심을 그녀는 몰랐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의 안전을 “그 시대의 최고의 안전막”으로 보호하셨다. 어디 그뿐인가…. 생모의 젖을 먹고 자라게 하심으로 히브리 사람으로 자라게 하셨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어머니의 사랑과 히브리 민족의 하나님 신앙을 먹고 자라나게 하셨다.
⑵.바로의 왕궁에서 본문 10절에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고 했다. 모세는 자신의 가정에서, 자신의 친부모의 사랑 속에 어린 유년기를 보내었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그것도 양육비를 받아 가며 모세를 기르는 부모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왕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굶어 죽을까 염려하심일까
그렇다면 굳이 왕궁이 아니라도 모세를 먹여 살리실 수 있는 것이다. 궁중으로 인도하심에는 다른 뜻이 있다. 그 궁중에서 “그 시대 최고의 학문”을 쌓기 위해서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쓰실 위대한 지도자로 손색이 없도록 최고의 학문을 수련시키신다. 남아 학살령에서 살아 남은 것만도 큰 은혜이다. 허기야 살아봤댔자 히브리인 노예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들어 쓰시고져한 모세는 노예의 신분이지만 “그 시대 최고의 학문”을 연마케 하셨다. 바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⑶.실패를 통하여 본문 14절에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라고 했다. 소위 말하는 순풍에 돛단 듯, 모세의 삶은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한 삶이었고, 실패를 모르는 축복의 삶이었다. 그 어떤 애굽인도 누릴 수 없는 “그 시대 최고의 축복”을 누린 삶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실패가 찾아왔다. 애굽인에 의해 강제 노동을 당하는 형제의 고역을 치켜 보며 울분을 참고 있는데, 애굽인의 채찍에 당하는 히브리 민족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의분을 감추지 못한 체 애굽인을 쳐죽여 모래 속에 묻어 버렸다. 이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힘, 수단, 방법, 노력, 꾀로 이루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 드릴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도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거듭했던가 “하나님의 의”를 버리고, “사람의 의”를 세우려는 어리석음이여! 거기에 인간의 교만이 자리하고, 사탄의 유혹이 깃들인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실패를 맛보고야 깨닫게 되니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다.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은 아닌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이튿날 히브리 형제간의 싸움에 끼여들다 어제의 일이 폭로되고, 히브리 민족을 위하여, 동족을 위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자신을 따라 주리라던 기대도, 형제의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도, 히브리 민족의 멍에를 꺾어 버리리라는 꿈도,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실패를 모르고 달려온 그의 삶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낭패이다. 한 번 실수로 실패하니 모든게 헛것이 된다. “바로의 딸의 아들”이라는 신분도 사라지고, 지금까지의 바로 왕의 사랑과 은총도 사라지고, 오히려 살인자란 죄명과 체포령이 떨어졌다. 결국 모세는 혈혈단신(孑孑單身) 미디안 광야로 달아나게 된다. 혼자이다. 지금까지 좋은 환경은 다 사라지고, 실패자, 살인자로 바로의 낯을 피해 도망하는 도망자가 된 것이다. 바로 왕궁의 스타로, 대단하고 위대한 존재로 생각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며, 또 형제를 위한 의분과 대의 명분도 살인이라는 죄를 덮을 수 없음을 깨달으며, 어제의 죄악된 삶을 갖고서는 오늘에 아무리 선한 외침도 아무 힘이 없음을 곰곰이 생각하며, 터벅터벅 걷는 미디안 광야길 그 길은 분명 실패자의 길이요, 도망자의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이 모세의 생의 마지막 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를 통하여 훈련하시는 시련과 고난의 길이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로 훈련시키시는 과정이었다.
2.영적인 훈련에서 왔다. 누가 뭐래도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였고, 히브리 민족의 영웅이다. 그러한 모세의 위대한 지도력은 어디서 왔는가 영적인 훈련에서 왔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영적 훈련은 어떻게 받았는가
⑴.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본문 9절에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라고 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자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 감사가 넘칠 뿐이다.
그런데 그 아이를 자신이 젖을 먹이며 키울 수 있다니 얼마나 큰 은혜인가 거기에다 키우는 삯까지 받고서 말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남아 학살령에서 살아 남고, 자신의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을 익히며 자라는 모세 바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함께 하심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그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란 아이는 결코 망하지 않는 법이다. 한나의 무릎 위에서 자란 사무엘, 유니게의 무릎 위에서 자라난 디모데를 보라. 어머니 요게벳의 무릎 위에서 히브리 민족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익히고,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먹고 자라나는 모세 그는 어린 유년기에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영적 훈련을 쌓았다. 젖먹이는 기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 성경은 밝히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사무엘의 경우에서 살펴보면, 자기 혼자서 신변 처리(잠자고, 옷 입고, 밥 먹고)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대략 7세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 기간 동안 모세는 어머니로부터 신앙 교육을 받고, 히브리 민족의 여호와 하나님을 가슴에 새겼다. 그분만이 히브리 민족의 소망이요, 구원자로 섬겼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실 인도자로 믿었다.
⑵.미디안 광야에서 본문 15절에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고 했다. 바로 왕궁에서 “그 시대 최고의 학문”을 연마하고, “그 시대 최의 스타”로 자라난 모세,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은 “그 시대 최고”의 인간적인 여건으로는 안되었다. 인간의 여건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실패자, 살인자, 도망자라는 낙인이었다.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는 “그 시대 최고의 스타”에서 실패자의 처참한 모습으로 추락한 자신을 바라보며,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 참으로 의지할 게 못되는 인간, 그 인간의 무능함과 미약함을 체험으로 익히고 있다.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며 40년간의 수련을 쌓는 모세의 미디안 광야 생활 양 떼를 치며 한 마리의 양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양 떼를 치며 한 마리 양의 생명의 귀중함을 배웠다. 양 떼를 치며 양무리를 인도하는 법을 배웠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양 떼인 이스라엘을 맡기시기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훈련이다. 하나님의 양 떼인 이스라엘을 맡겨 다스리게 하실 다윗을 준비하시며, 그 아비의 양 떼를 치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라.
⑶.가시나무 떨기 체험으로 출애굽기 3: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고 했다. 모세의 영적 훈련의 최고의 절정이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며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 하나님은,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셨다(출3:6).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듣고, 안다”고 하셨다(출3:7). “내가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고 하셨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셨다(출3:10). 비로소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 “그 시대 최고의 스타”로서 가졌던 기대로도, 히브리 민족을 위한 의분으로도, 형제의 고통을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도 불가능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심을 입었다.
3.하나님이 함께 하심에서 왔다. 하나님의 양무리인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나가는 지도자 모세, 누가 뭐래도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요, 히브리 민족의 영웅이었다. 그 모세의 위대한 지도력은 어디서 왔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서 왔다고 성경은 밝힌다.
⑴.겸손한 사람에게 출애굽기 3:11-12절에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했다. “그 시대 최고의 스타”로 자신만만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여호와 하나님의 “이제 가라” 말씀 앞에 자신의 부족을 아뢴다. “정녕 너와 함께 하시라”는 약속도, 이적과 기사의 표징에도 모세는 자신의 부족을 고한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겸손이 지나치면 핑계와 불충이 되고 만다. 결국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부족을 채워주실진데 무엇을 두려워하리요. 그저 아-멘으로 응답할 것밖에 없다.
⑵.하나님의 지팡이 출애굽기 4:20절에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고 했다.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신 하나님, 못 믿어워 하는 모세에게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지팡이”이다. 모세의 손에 쥐어진 지팡이는 더 이상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였다.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표이다.
1.열 재앙 모세와 바로 왕의 줄다리기는 열 재앙으로 이루어진다. 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 재앙이다. 이 중 피(출7:17), 개구리(출8:5), 이(출817), 우박(출9:23), 메뚜기(출10:13), 흑암(출10:22, 모세의 손에 지팡이가 있었다고 보면) 등 여섯 재앙은 “하나님의 지팡이”로 내려졌다.
2.홍해를 갈라지게 모세의 기적으로 불려지는 그의 대표적인 이적이다. 가장 웅대하고 극적인 장면들이다. 모세의 기적이라 불려지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지팡이”로 말미암은 이적이다. 진퇴양난의 절대절명의 위기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 모세의 당당함과 여유 있는 모습, 바로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모습이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모습이다(고후4:8).
3.바위에서 샘물이 마실 물이 없어서 원망하는 백성들,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시고 만나 내려 먹이시는 하나님, 그 전능의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고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들, 참으로 야속한 일이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곧잘 원망하는 백성들, 그래도 그들이 하나님이 맡겨 주신 “하나님의 양 떼”이기에 야속하다 말 못하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모세, 바로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호렙산 바위에서 샘물이 나게 하여 므리바가 되게 하고(출17:6), 신 광야 가데스에서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한 것도 모세의 손에 쥐어진 “하나님의 지팡이”로 말미암은 이적이다(민20:10).
4.아말렉과의 전쟁 모세의 손이 오르내림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라진 유명한 전쟁이다. 전투하는 군사에 전혀 관계없이 모세의 손이 문제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의 손에 쥐어진 “하나님의 지팡이”가 가져다 준 이적이다(출17:9).
⑶.반역자의 처단에서 고라, 다단, 아비람, 온, 네 사람이 중심이 되어 250명의 족장들이 반역을 도모했다. 땅이 입을 열어 삼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심을 보여 주셨다.
⑷.가나안을 눈앞에 두고서 신 광야 가데스에서 모세의 실수, 이로 인해 하나님은 모세를 버리셨다. 여호수아로 대신하게 하셨다. 그렇게도 소원했던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서 그 땅을 밟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보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니 모세의 손에 쥐어진 “하나님의 지팡이”도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지팡이”가 아니었다. 지난날의 “모세의 지팡이”로 돌아왔다.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혈기를 부리는 모습이다. 혈기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지난 날 “그 시대 최고의 스타”로 부렸던 혈기 안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모세이었지만 “우리가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반석을 두 번 내리쳤다. 인간의 혈기는 늙어 가도 죽지 않았고, 미디안 광야의 훈련에서도 죽지 않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에서도 죽지 않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고(고전9:27), 날마다 죽노라고(고전15:31) 고백하였나 보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호수아가 들어간 것은 더 큰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지만 그가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것은 하나님을 뒤로하고, “우리가”하는 인간적인 요소가 튀쳐 나왔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히브리 민족의 영웅 모세, 오늘의 지도자들이 부러워하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은 그의 위대한 지도력 때문이다. 모세의 위대한 지도력은 어디서 왔는가 다시 한번 곰곰이 묵상해 보자.
1.육적인 훈련에서 왔다. 모세의 삶은 갖은 파란 곡절을 겪어야 하는 삶이었다. 남아 살해령, 노예 신분, 심한 노역, 동족을 향한 불타는 마음, 동족의 반목 등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시련이나 훈련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과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위대한 지도자”로,“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어져 가고 있었다.
⑴.출생 본문 1-2절에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라고 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12 지파 중 하나님을 위해 부르심을 입은 레위 족속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레위의 손자요, 고핫의 아들인 아므람이요, 어머니는 레위의 딸인 요게벳이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는 “남아 살해령”이 내려져 있었다. 세월이 흘러 요셉의 치적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바로 왕조가 통치할 때, 히브리 민족의 왕성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히브리 민족 탄압 정책을 폈다. 노예로 삼아 강제 노역을 시키고 중노동의 고역을 통해 기존 남자를 죽이고, 출생하는 아이들에 대해서 “남아 살해령”을 내려 히브리 민족 말살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모세는 태어나 어머니의 품에서 석 달을 숨겨 자랐다. 아마도 아이의 울음 소리가 컸기 때문이리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어 갈 상자에 담아 나일강 갈대 숲에 버리게 되었다. 그 석 달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기간이었으리라. 그 이상은 부모의 사랑도, 어머니의 희생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여기서도 우리는 아브라함의 경우에서처럼, 인간의 수단, 방법, 능력, 노력이 끝날 때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역사하심을 보게 된다. 바로의 딸은 단순히 목욕하려 하수로 내려왔다. 갈 상자 속의 어린 아이를 보고 여성 본래의 모성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배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 사하심을 그녀는 몰랐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의 안전을 “그 시대의 최고의 안전막”으로 보호하셨다. 어디 그뿐인가…. 생모의 젖을 먹고 자라게 하심으로 히브리 사람으로 자라게 하셨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어머니의 사랑과 히브리 민족의 하나님 신앙을 먹고 자라나게 하셨다.
⑵.바로의 왕궁에서 본문 10절에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고 했다. 모세는 자신의 가정에서, 자신의 친부모의 사랑 속에 어린 유년기를 보내었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그것도 양육비를 받아 가며 모세를 기르는 부모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왕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굶어 죽을까 염려하심일까
그렇다면 굳이 왕궁이 아니라도 모세를 먹여 살리실 수 있는 것이다. 궁중으로 인도하심에는 다른 뜻이 있다. 그 궁중에서 “그 시대 최고의 학문”을 쌓기 위해서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쓰실 위대한 지도자로 손색이 없도록 최고의 학문을 수련시키신다. 남아 학살령에서 살아 남은 것만도 큰 은혜이다. 허기야 살아봤댔자 히브리인 노예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들어 쓰시고져한 모세는 노예의 신분이지만 “그 시대 최고의 학문”을 연마케 하셨다. 바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⑶.실패를 통하여 본문 14절에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라고 했다. 소위 말하는 순풍에 돛단 듯, 모세의 삶은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한 삶이었고, 실패를 모르는 축복의 삶이었다. 그 어떤 애굽인도 누릴 수 없는 “그 시대 최고의 축복”을 누린 삶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실패가 찾아왔다. 애굽인에 의해 강제 노동을 당하는 형제의 고역을 치켜 보며 울분을 참고 있는데, 애굽인의 채찍에 당하는 히브리 민족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의분을 감추지 못한 체 애굽인을 쳐죽여 모래 속에 묻어 버렸다. 이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힘, 수단, 방법, 노력, 꾀로 이루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 드릴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도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거듭했던가 “하나님의 의”를 버리고, “사람의 의”를 세우려는 어리석음이여! 거기에 인간의 교만이 자리하고, 사탄의 유혹이 깃들인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실패를 맛보고야 깨닫게 되니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다.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은 아닌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이튿날 히브리 형제간의 싸움에 끼여들다 어제의 일이 폭로되고, 히브리 민족을 위하여, 동족을 위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자신을 따라 주리라던 기대도, 형제의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도, 히브리 민족의 멍에를 꺾어 버리리라는 꿈도,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실패를 모르고 달려온 그의 삶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낭패이다. 한 번 실수로 실패하니 모든게 헛것이 된다. “바로의 딸의 아들”이라는 신분도 사라지고, 지금까지의 바로 왕의 사랑과 은총도 사라지고, 오히려 살인자란 죄명과 체포령이 떨어졌다. 결국 모세는 혈혈단신(孑孑單身) 미디안 광야로 달아나게 된다. 혼자이다. 지금까지 좋은 환경은 다 사라지고, 실패자, 살인자로 바로의 낯을 피해 도망하는 도망자가 된 것이다. 바로 왕궁의 스타로, 대단하고 위대한 존재로 생각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며, 또 형제를 위한 의분과 대의 명분도 살인이라는 죄를 덮을 수 없음을 깨달으며, 어제의 죄악된 삶을 갖고서는 오늘에 아무리 선한 외침도 아무 힘이 없음을 곰곰이 생각하며, 터벅터벅 걷는 미디안 광야길 그 길은 분명 실패자의 길이요, 도망자의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이 모세의 생의 마지막 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를 통하여 훈련하시는 시련과 고난의 길이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로 훈련시키시는 과정이었다.
2.영적인 훈련에서 왔다. 누가 뭐래도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였고, 히브리 민족의 영웅이다. 그러한 모세의 위대한 지도력은 어디서 왔는가 영적인 훈련에서 왔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영적 훈련은 어떻게 받았는가
⑴.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본문 9절에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라고 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자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 감사가 넘칠 뿐이다.
그런데 그 아이를 자신이 젖을 먹이며 키울 수 있다니 얼마나 큰 은혜인가 거기에다 키우는 삯까지 받고서 말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남아 학살령에서 살아 남고, 자신의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을 익히며 자라는 모세 바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함께 하심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그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란 아이는 결코 망하지 않는 법이다. 한나의 무릎 위에서 자란 사무엘, 유니게의 무릎 위에서 자라난 디모데를 보라. 어머니 요게벳의 무릎 위에서 히브리 민족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익히고,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먹고 자라나는 모세 그는 어린 유년기에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영적 훈련을 쌓았다. 젖먹이는 기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 성경은 밝히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사무엘의 경우에서 살펴보면, 자기 혼자서 신변 처리(잠자고, 옷 입고, 밥 먹고)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대략 7세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 기간 동안 모세는 어머니로부터 신앙 교육을 받고, 히브리 민족의 여호와 하나님을 가슴에 새겼다. 그분만이 히브리 민족의 소망이요, 구원자로 섬겼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실 인도자로 믿었다.
⑵.미디안 광야에서 본문 15절에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고 했다. 바로 왕궁에서 “그 시대 최고의 학문”을 연마하고, “그 시대 최의 스타”로 자라난 모세,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은 “그 시대 최고”의 인간적인 여건으로는 안되었다. 인간의 여건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실패자, 살인자, 도망자라는 낙인이었다.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는 “그 시대 최고의 스타”에서 실패자의 처참한 모습으로 추락한 자신을 바라보며,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 참으로 의지할 게 못되는 인간, 그 인간의 무능함과 미약함을 체험으로 익히고 있다.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며 40년간의 수련을 쌓는 모세의 미디안 광야 생활 양 떼를 치며 한 마리의 양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양 떼를 치며 한 마리 양의 생명의 귀중함을 배웠다. 양 떼를 치며 양무리를 인도하는 법을 배웠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양 떼인 이스라엘을 맡기시기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훈련이다. 하나님의 양 떼인 이스라엘을 맡겨 다스리게 하실 다윗을 준비하시며, 그 아비의 양 떼를 치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라.
⑶.가시나무 떨기 체험으로 출애굽기 3: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고 했다. 모세의 영적 훈련의 최고의 절정이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며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 하나님은,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셨다(출3:6).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듣고, 안다”고 하셨다(출3:7). “내가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고 하셨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셨다(출3:10). 비로소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 “그 시대 최고의 스타”로서 가졌던 기대로도, 히브리 민족을 위한 의분으로도, 형제의 고통을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도 불가능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심을 입었다.
3.하나님이 함께 하심에서 왔다. 하나님의 양무리인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나가는 지도자 모세, 누가 뭐래도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요, 히브리 민족의 영웅이었다. 그 모세의 위대한 지도력은 어디서 왔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서 왔다고 성경은 밝힌다.
⑴.겸손한 사람에게 출애굽기 3:11-12절에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했다. “그 시대 최고의 스타”로 자신만만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여호와 하나님의 “이제 가라” 말씀 앞에 자신의 부족을 아뢴다. “정녕 너와 함께 하시라”는 약속도, 이적과 기사의 표징에도 모세는 자신의 부족을 고한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겸손이 지나치면 핑계와 불충이 되고 만다. 결국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부족을 채워주실진데 무엇을 두려워하리요. 그저 아-멘으로 응답할 것밖에 없다.
⑵.하나님의 지팡이 출애굽기 4:20절에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고 했다.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신 하나님, 못 믿어워 하는 모세에게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지팡이”이다. 모세의 손에 쥐어진 지팡이는 더 이상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였다.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표이다.
1.열 재앙 모세와 바로 왕의 줄다리기는 열 재앙으로 이루어진다. 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 재앙이다. 이 중 피(출7:17), 개구리(출8:5), 이(출817), 우박(출9:23), 메뚜기(출10:13), 흑암(출10:22, 모세의 손에 지팡이가 있었다고 보면) 등 여섯 재앙은 “하나님의 지팡이”로 내려졌다.
2.홍해를 갈라지게 모세의 기적으로 불려지는 그의 대표적인 이적이다. 가장 웅대하고 극적인 장면들이다. 모세의 기적이라 불려지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지팡이”로 말미암은 이적이다. 진퇴양난의 절대절명의 위기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 모세의 당당함과 여유 있는 모습, 바로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모습이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모습이다(고후4:8).
3.바위에서 샘물이 마실 물이 없어서 원망하는 백성들,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시고 만나 내려 먹이시는 하나님, 그 전능의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고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들, 참으로 야속한 일이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곧잘 원망하는 백성들, 그래도 그들이 하나님이 맡겨 주신 “하나님의 양 떼”이기에 야속하다 말 못하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모세, 바로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호렙산 바위에서 샘물이 나게 하여 므리바가 되게 하고(출17:6), 신 광야 가데스에서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한 것도 모세의 손에 쥐어진 “하나님의 지팡이”로 말미암은 이적이다(민20:10).
4.아말렉과의 전쟁 모세의 손이 오르내림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라진 유명한 전쟁이다. 전투하는 군사에 전혀 관계없이 모세의 손이 문제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의 손에 쥐어진 “하나님의 지팡이”가 가져다 준 이적이다(출17:9).
⑶.반역자의 처단에서 고라, 다단, 아비람, 온, 네 사람이 중심이 되어 250명의 족장들이 반역을 도모했다. 땅이 입을 열어 삼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심을 보여 주셨다.
⑷.가나안을 눈앞에 두고서 신 광야 가데스에서 모세의 실수, 이로 인해 하나님은 모세를 버리셨다. 여호수아로 대신하게 하셨다. 그렇게도 소원했던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서 그 땅을 밟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보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니 모세의 손에 쥐어진 “하나님의 지팡이”도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지팡이”가 아니었다. 지난날의 “모세의 지팡이”로 돌아왔다.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혈기를 부리는 모습이다. 혈기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지난 날 “그 시대 최고의 스타”로 부렸던 혈기 안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모세이었지만 “우리가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반석을 두 번 내리쳤다. 인간의 혈기는 늙어 가도 죽지 않았고, 미디안 광야의 훈련에서도 죽지 않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에서도 죽지 않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고(고전9:27), 날마다 죽노라고(고전15:31) 고백하였나 보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호수아가 들어간 것은 더 큰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지만 그가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것은 하나님을 뒤로하고, “우리가”하는 인간적인 요소가 튀쳐 나왔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히브리 민족의 영웅 모세, 오늘의 지도자들이 부러워하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은 그의 위대한 지도력 때문이다. 모세의 위대한 지도력은 어디서 왔는가 다시 한번 곰곰이 묵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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