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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인 교회(2) (살전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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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 편지를 쓴 저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이름은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였습니다. 그러면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알아보겠 습니다. 물론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요, 은혜와 평강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은 바울의 감사 기도를 통하여 데살로니가 교회가 모범적인 교회임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의 감사.
1) 감사 조건과 내용(2-10)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모범적이라는 것을 다음의 내용으로 보아서 잘 알 수 있습니다.
(1)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생각하고 감사했습니다.(2b) 교역자인 바울의 감사 제목은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사업에 성공하였기 때문도 아니고, 명예나 지위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생각하니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목회자들의 감사 제일 조건입니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녀와서 전하여 준 소식을 듣고 바울은 너무나 기 뻤습니다. 환난 중에도 신앙을 지키고 서로 사랑하면서 교회를 든든히 섬긴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 할 때마다 2절에 보니 "너희를 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놓고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을 놓고 기도 할 때에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름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감사가 나오고 어떤 사람은 눈물이 나옵니다. 그리고 답답함을 느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때에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2)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우들의 신앙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 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의 신앙 상태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믿음의 역사요,
둘째는 사랑의 수고요,
셋째는 소망의 인내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숙한 성도의 모 습이요, 질적 부흥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 믿음의 역사. 우리 성도가 언제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이 좋을 때에 감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히11장 1절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보 지 못했지만 본 것처럼 믿고 사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지만 실제로 소유한 사람처럼 사는 것입니다. 지금 몸이 괴롭지만 이미 하나님 께서 고쳐 주신 것을 믿고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 성도들은 믿음에 있어서는 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생긴다고 하십니다.(롬 10:17) 그래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기 위해서 열심히 교회에 올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 같아도 또 들어야 합니다. 다 아는 것과 같아 도 그 유혹에 넘어 가지 말고 또 들어야 합니다. 앉으나 서나 들어야 합니다. 들어 가나 나오나 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히브리 백성들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을 행할 때든 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 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그것을 손목에 매 고, 네 미간에 붙이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 까! 이것은 철저히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더욱 왜 그래야 하는지를 신6:2에서 말씀하시기를 ".너와 네 아 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기 너희에게 명한 그 모 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이 장구하기 위해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죽은 믿음은 역사가 일어나 지 않습니다. 그러나 산 믿음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약2:17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 은 죽은 믿음이라고"고 하셨습니다. 우리 속에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의 힘이 외 부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신앙 행위에 대한 열매 가 맺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방여인이 두 사람이 올라있는데 기생 라합과 룻입니다. 그런데 그 라합은 믿음의 여인인 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이 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믿음은 모험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험 을 두려워하지 아니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다면 그 약속에 합당한 행동을 하여야 하는데 그 행동이 바로 역사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있다고 하는데 늘 걱정이나 하고 있고, 부정적인 소리 나 하고 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근심케나 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행전 27장에서 믿음의 사람,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며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바울이 죄수가 되어서 로마로 끌려가게 되는데 알렉산드리아라고 하는 배를 타고 뵈닉스에서 출항합니다. 벌써 그전에 바울은 이 출항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주가 선장의 말을 바울 말보다 더 믿음으로 무리한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배가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는데 얼마 가지 못하여 유라굴라라고 하는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그 배에는 276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그 광풍을 이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표류하기를 14일 동안 합니다. 이미 사람들은 절 망의 그림자가 그 얼굴을 덮었고 살 소망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믿음의 사람 바울은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낙심하고 절망해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음 식도 나누어주면서 격려하고 위로하고 용기와 희망을 심어 줍니다. "당신들 중에 머리털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행27:33-37)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똑같은 환경입니다.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초 죽음이 되어있고, 어떤 이는 눈이 빛나고 있습니다. 무슨 차입니까! 믿음의 차이입니다. 결국 바울의 믿음이 죽어 가는 알렉산드리아의 276명을 살려 내고 마는 것 입니다. 바울의 믿음에는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산 믿음의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대선의 성도들은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들은 이 어려운 시대에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부정적인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하고 어두운 시대를 더 어둡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믿음이냐 하면 9절에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행함 있는 믿음! 역사가 있는 믿음의 교회 성도들이었기 때문에 모범된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고,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와 싸우는 행위가 보이지 않고, 마음속에 탐욕이나 육신의 정욕과 안 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같은 우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죽은 믿음일 것입니다. 보통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과 행위가 함께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 하도다."하면서 우리가 믿는 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위와 합리화를 추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행여나 죽은 믿음의 소유자들 이 될까 두려우니 행하는 역사로 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사랑의 수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열심히 사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 전4:9에서는 "형제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 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사랑에 대하여 칭찬한 교회는 데살로니가 교회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었는데 수고하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으로 수고 하듯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수고 없이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의 "수고"라고 하는 말은 "고통스러우리 만큼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교회와 주를 위하여 어떤 괴롬과 아품을 사양하지 않 았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수고하셨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 를 지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 주님을 위 해서 어떤 환난 고통도 참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1:24에서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수고는 사랑의 증표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이런 것으로 가득 차 있었 습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수고를 아끼지 아니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 하고,
둘째로 이웃을 사랑하고,
셋째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는 것입꿀없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었는데 수고하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으로 수고 하듯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수고 없이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의 "수고"라고 하는 말은 "고통스러우리 만큼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교회와 주를 위하여 어떤 괴롬과 아품을 사양하지 않 았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수고하셨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 를 지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 주님을 위 해서 어떤 환난 고통도 참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1:24에서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수고는 사랑의 증표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이런 것으로 가득 차 있었 습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수고를 아끼지 아니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 하고,
둘째로 이웃을 사랑하고,
셋째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는 것입늙 군인들이 전쟁의 위험과 피흘리는 아픔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승 리의 소망 때문일 것과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에 기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컨데 현재의 고난은 장 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쪼록 우리가 믿음, 소망, 사랑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역 사와 수고와 인내의 행위들이 외적으로 들어 나야 할 것입니다. 이 열매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며,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윤활유가 될 것입니다.
(3) 신앙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감사했습니다.(5-10)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이렇게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충만한 교인들이 되니 주위에 아름다운 교회라는 소문이 온 누리에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 살전1:8절입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 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여러분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회가 잘 되려면 소문이 좋아야 합니다. 그것 도 믿음의 소문이 좋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소 문이 있었는가 살펴보겠습니다. . 전도자를 바로 아는 교회로 소문이 났습니다. 5절 하반 절에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좋은 소문은 교역자 와 성도간의 아름다운 소문입니다. 이 관계가 아름답지 못하면 교회가 아름답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는 먼저 전도자나 교역자를 자로 알아주는 교회 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으면서 그들의 멸시 천 대를 받으면서 남모르는 눈물을 많이 흘리던 때였습니다. 바울이 간데마다 쫓아다 니면서 괴롭게 하는 유대인들은 바울을 중상하고 함부로 대하고 말할 수 없이 괴 롭게 했지만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만은 바울을 훌륭한 전도자로 알고 존 경하고 받들어 섬겼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같은 종들을 하나님의 신실 한 종으로 알고 섬긴 것입니다.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모범적인 교회로 아름 다운 소문을 마게도냐와 아가야 각처로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환난 중에도 기쁨으로 도를 받는 교회로 소문이 났습니다.
(6) 6절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님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라고 하는 말씀을 봅니다. 여기에 관한 기록이 행17:5-10에 나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무렵 대단한 핍박과 환난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난과 핍박 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외적인 고통과 핍박을 말합니다. 복음을 받아 드리는 사람 들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받아 드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난이 오고, 핍박이 오고 시험을 당하게 되고 어려움이 오면 신 앙이고, 교회이고 다 자포 자기하기가 쉬운 법입니다. 교회에서 조금 부담스러우면 그 부담이 싫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그런 환난 중에도 오히려 기쁨으로 도를 받아 능히 승리하였다고 기록하 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신앙을 본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 때문에 환난을 당하면 우리 예수님도 환난 받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행7:54이하에 보면 스데반 순교 장면이 나옵니다. 성난 유대인들이 이를 갈 며 스데반을 둘러서 있는데 스데반이 성령님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니 무엇이 보입니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예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대부분 보좌에 계신 예수님은 앉아 계신 것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스데반이 핍박받아 순교하는 장 면을 보신 예수님은 일어서신 예수님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스데반을 격려하시고 환영하시기 위해 일어서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자랑스러운 스데반을 앞서간 성도들과 천군 천사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일어서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을 섬기다 어려운 일이 있다고 신앙을 멈추지 말고, 오히려 주님 도우실 줄 믿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기쁨으로 도를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딤후3:12에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느니라"라고 하 셨습니다. 행4:12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고 사도들은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 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행5:41) . 주님과 사도들을 본 받는 신앙의 소문이 있었습니다.(6c) 6절 하반 절에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본 받 으려고 하는 신앙! 사도들을 본 받으려고 하는 신앙! 이것이 신앙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를 바라보자!"(히12:2) 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우리가 주를 본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에 희생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최후 승리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 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 보자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들을!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신앙 생활은 어떠한 신앙 생활입니까!
첫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돌려버리는 신앙 생활입니다.(빌3:7)
둘째는 자신을 항상 쳐서 복종 시키는 생활입니다.(고전9:27)
셋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주님만 높이며 자랑하는 생활입니다.(고전2:1,2)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주님을 본 받는 자 임으로 바울을 본 받는 것은 주님을 본 받는 생활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 생활 할 때에 그들에게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우상을 내어 버렸습니다.(9b)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배격하였습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특징은 지금까지 간직하여 오던 불의하고 죄악된 요소들 을 다 버리고 새롭게 변화되어 갔던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섬기되 성경에 가르친 데로 살아 계신 하나님! 인격적이신 하나님으로 알고 철저히 섬겼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의 주님을 확신하며, 이 신앙 고백 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 하반 절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대선 교회가 이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아름다운 소문을 가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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