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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갈6:6-10)

본문

인간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사회는 모인 회중(會衆), 공동체를 말합니다. 인간이라는 말을 한문으로 풀어보면 ‘사람 사이’라는 뜻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나의 존재입니다.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인간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상대가 있음으로 존재합니다. 또 내가 있음으로 ‘너’라는 관계로 상대방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관계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인생의 성패는 이 관계를 놓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나’라는 주체는 ‘너’라는 객체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는 인생의 과제입니다. 인간은 독립된 자아로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 안에서 나를 발견하며, 나를 형성해가며,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오늘은 관계성을 가지고 몇 가지로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을 삼고자합니다.
1.대신관계(對神關系)를 바로 하여야 합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가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 계십니다. 인간이 원하든 원치 않든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자녀관계요,둘째는 원수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누구든지 차별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불신자는 마귀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물로 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물 아래 인간은 다 죽습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은 다 죽습니다. 지옥가게 됩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말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거듭난다는 말입니다. 또 성령님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본래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은 인간을 떠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님이 임하시고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자녀답게 산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고 산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통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수 있습니까 1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까 예배 행위에는 그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창조주요, 예배하는 대상은 그의 피조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상을 만들지 말며 절하여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 외에 참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요, 만물을 주관하고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신론, 범신론을 믿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자기를 가리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선언하십니다. ‘나만이 너희를 지은 창조주다’ 말씀하십니다. 다른 신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비기리라’했던 마귀에게서 파생된 종교입니다. 종교는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사망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만 섬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 대상과 더불어 언제나 중시되는 것은 예배의 태도입니다. 우상을 하나님 섬기듯 해도 안되지만 하나님을 불신자들이 우상 섬기는 것만큼도 섬기지 못한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예배입니다. 예배에 임하는 여러분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2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그의 도움으로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로서 연약한 인간은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도 같은 것입니다. 기도가 끊어지면 심령이 죽습니다. 사무엘은 나는 여호와 앞에 결단코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어떻습니까 기도가 잘 안된다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뭔가 장애물이 생긴 것입니다. 코를 막고 숨을 못 쉬면 질식할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기도가 안될 때일수록 더욱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혼의 대화입니다. 기도를 통해서만 인간은 하나님을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기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함께 사는 부부가 대화가 없다면 그보다 삭막한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문제라도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문제가 있다면 기도로 풀어야 합니다. 죄지은 것이 있다면 기도로 고백하십시오. 소원도 기도로 아뢰십시오. 하나님이 다 들으십니다. 기도를 호흡이라 했을 때 호흡은 어떻게 합니까 들어마시고 또 내뿝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확신을 가지고 아뢰세요. 그리고 이번에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겸손하게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여러분의 심령에 천국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3전도와 선교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찾는 것은 믿는 자의 삶의 최우선 순위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구원받는 데 있습니다. 영혼구원은 하나님의 가장 주된 관심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의 최종목적입니다. 신앙의 좋고 나쁨은 하나님의 뜻을 본인의 마음과 환경을 초월해서 받아들이느냐로 판명되어집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통한 예수님의 출생을 “주의 계집종이오니 .”하면서 받아들였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자신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려 할 때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죽을 힘을 다해 죽을 때까지 전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곳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증거 되기를 원하십니다. 전도와 선교가 자기 인생의 목적인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바로 한 사람입니다.
2.대물관계(對物關系)를 바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인하여 거룩하다 일컬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을 가리켜 성도라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를 성전이라 말합니다. 성전에 구비되어 있는 가구를 가리켜 성구라 말합니다. 예배에 사용되어지는 물건들을 성물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도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할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거룩은 구별을 통해 나타납니다.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 중에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할 줄 알아야 참된 신앙인입니다. 1물질의 구별, 곧 십일조입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 1:21) 모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가지고 온 것도 없고, 떠날 때 가지고 갈 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청지기로 그것을 관리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물질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내놓으라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요구하셔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각오는 하고 살아야 합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이 것이지만 그 중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으로 내어놓으라고 친히 요구하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이 물질이 없어서 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고백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말라기서에 보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도적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 오라 말씀하시면서 십일조는 너희가 여호와께 돌아온 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왔다면 십일조를 드리라 명령하셨습니다. 물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는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를 말씀해줍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세상에 속할수록 축복을 잃어버립니다. 이렇듯 인간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십일조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통해 행복하게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2맡은 직분에 충성하여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직분을 똑같이 나누어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를 위한 다양한 일들이 있고, 여러 직분들이 있습니다. 주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기에 작은 일이라도 중요합니다. 일을 맡은 자는 작은 일이라도 충성하여야 합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한 사람을 하나님은 큰일에 크게 충성한 사람과 동등하게 취급해 주십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을 동일하게 칭찬하셨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 25:21) 다윗은 양치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합니다(눅 16:10).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고전 4:2).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계 2:10). 3성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그 어떤 장소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성전의 모양이 아무리 초라해도 그곳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룩하게 구별한 장소입니다. 언젠가 우리도 우리 손으로 하나님의 집 성전을 아름답게 건축하여야 합니다. 앞서서 우리는 교회 이름을 새롭게 바꾸고 단장하려고 생각합니다. 성전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에 지하실에서 어렵게 목회 하시는 개척교회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건물을 잘못 얻어 지하실 벽에서는 줄줄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장마철을 만나 눅눅하고 습기가 심해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조그만 제습기가 있기는 했지만 거의 도움이 못되는 듯했습니다. 장롱을 다 열어 젖히고 옷을 향해 선풍기 바람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책들은 곰팡이가 나서 책장에 꽂아놓지도 못한 채 한쪽에 놓여 있었습니다. 6.25 피난민이 피난해 온 듯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만일 평신도라면 이 모습을 어떻게 보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 모습이 이러니 교인들은 거의 없는 듯 싶었습니다. 사뭇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와 같은 장소를 세상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돌아서겠지만 주님은 이곳을 향해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계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하며 돌아서는 사람이라면 신앙적으로는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꿋꿋하게 목회 하시는 목사님을 보고 감사하는 성도라야 희망이 있는 성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성도는 성전을 성전으로 구별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참된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한번이라도 쓸고 닦고 치우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찾아오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아름답게 가꾸고 또 사랑하십시오. 성전을 얼마나 사모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 신앙의 척도를 가늠할 만큼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3.대인관계(對人關系)를 바로 하여야 합니다. 성도는 귀합니다.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님으로 함께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존귀한 자입니다.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우리가 상대방보다 훨씬 못한 위치에 있다할지라도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그래서 자기를 사랑할 줄 알고 긍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기 긍정과 사랑이 있을 때 불의에서도 자기를 지킬 수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을 통한 자기사랑과 더불어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크고첫째 되는 계명입니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동일한 분량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마 22:37-40) 사람이 나를 이렇게 대우해 달라는 말처럼 낯뜨거운 이야기도 없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교역자 보건주일이기에 제가 여러분에게 저를 향하여 이렇게 하라 말씀을 드려도 크게 부담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하나님이 이 강단에 여러분을 위하여 세운 사람이라고 믿는다면 그를 어떻게 상대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신앙과 필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말씀하십니다. 10절 말씀에는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십시오. 애경사를 만나거든 교역자와 함께 그 아픔과 기쁨을 나누십시오. 좋은 일이 있을 때, 슬픈 일이 있을 때 하나님 다음으로 생각나는 사람이 목사라면 여러분은 신앙적으로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성미가 떨어지면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쌀을 가져오라고 말을 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카드를 보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게 말을 해도 오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이요, 그 이유 정도는 여러분이 알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러분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다락방 집회가 있어서 충주에 가면 꼭 식사대접을 하려 하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말씀하시는 장로님 가정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대접을 받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 신앙과 믿음이 귀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런 대접을 받고 기쁘게 장로님 가정을 축복합니다. 여러분, 목사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그래야 여러분 신앙이 축복된 믿음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목사님 잘못이 있다해도 덮어드리려고 애를 씁니다. 제가 목사이기에 제가 먼저 목사님들을 먼저 대접하는 일들에 힘을 쓰려고 합니다. 매주 세 개 교회의 주보를 작성해 드립니다. 인쇄소에서 다섯 개 교회 주보를 찾아다 교회까지 배달해 드립니다. 목사님, 안 바쁩니까 시간 남아서 그런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니까 합니다. 제가 목사니까 더욱 목사님들에게 더욱 그렇게 합니다. 오해 없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25일에 대전에 어느 교회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목사님과 사모님이 가족들과 삼계탕 끓여 드시라며 토종닭 세 마리와 미역과 쌀 한 포대를 주셨습니다. 운전하면서 오다가 생각나는 목사님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더 어렵고 고생하시는 목사님입니다. 찾아가서 대전에서 준 거 그대로 다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아이들 먹이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습니까 성경학교 준비하느라 땀흘리는 교사들에게 닭죽이라도 끓여주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아이들보다, 우리 교사들보다 하나님이 그 목사님을 더욱 안타깝게 여기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렇게 했으니 그렇게 알고 그 목사님, 사모님 만나면 잘 먹었다고 인사나 드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잘했다 그래요. 나무라지 않고 그렇게 말해주는 그런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다시 감사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과장이 아니라 별 욕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라고 부탁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교역자를 어떻게 상대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과 필연적인 연관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역자 보건주일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이렇게 도와달라는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합니다. 1영적으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를 늘 기억하고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는 사도들로 하여금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게 하기 위하여 세워졌습니다. 목사가 목사 본연의 영적인 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도로 늘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마음으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목사에게 근심거리가 되지 마십시오.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십시오. 사랑해 주시고, 화목해 주시고, 평안한 마음을 주십시오. 3물질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사렙다 과부는 자식과 함께 마지막 먹고 죽을 양식을 엘리야를 공궤하는 일에 드렸습니다. 목사가 어려울 때는 여러분이 어려움을 각오하고라도 물질적으로 도우십시오.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입니다. 목사도 지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들어가 처음 싸울 때에 모세의 팔이 내려 왔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옆에 그 두 팔을 들어주는 아론과 훌이 되십시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지쳐서 죽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떡과 물로 엘리야에게 힘을 공급하던 천사가 되십시오. 사울이 성도를 핍박한 것이 그리스도를 핍박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메섹 언덕에서 사울에게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했습니다. 주의 종과 백성들을 돕는 일도 주님께 한 일로 인정해 주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에베소서에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하셨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대하듯 상대방을 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하듯 목사에게 하십시오. 그 신앙과 믿음이 복된 것입니다. 오늘은 교역자 보건주일입니다. 교역자를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라는 이유로 허물이 있어도 덮고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기억하고 사랑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축복 받은 영혼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함으로 모든 목회사역에 최선을 다해 협력하시고 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시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살아 계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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