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1,14-16)
본문
오늘의 말씀은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 서로가 서로를 호칭하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서로 부르는 호칭이 무었인가 "성도"라고 부르고 있다. 성도란 거룩한 무리라는 말이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성도들을 향하여 모든 행실에 거룩하라는 말은 너무도 당연한 말인 것이다. 당시 성도들에게 거룩하다는 이름만 있고 그들의 행실이 거룩에 이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한두가지의 일에는 거룩할 수도 있겠으나 모든 행실에서는 그렇게 거룩ㅅ한 삶이 되지를 못했던 것이 당시의 성도들의 행실이었던 같으다. 종말을 살고 있는 오늘의 성도들은 과연 행실에서 거룩한가
1,순종하는 자처럼 14절의 말씀이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라 했다. 이 말씀은 참 어려운 말씀 중에 어려운 말씀이다. 먼저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이라는 말부터 생각하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이라는 말은 창의 13절을 전제로 하고 있음이다. 이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음으로 마음의 허리를 동일 줄 알고 또 그ㅌ신할 줄도 알고 또 장차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소망하면서 살고 있음 자체가 바로 순종하는 자식의 삶인 것이다. 순종하는자가 된 것이 곧 성도인데 이제 성도가 되었으면 거룩한 행실을 하라는 것이다. 거룩한 성도가 되는 지름 길은 순종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기 순종이라는 말이 참 의미가 많은 말이다. 이 순종이라는 말은 "아래"라는 단어와 " 듣는다" 두 단어가 합쳐저서 만들어진 단어로서 그 뜻은 "아래서 듣는다"이다. 참으로 순종은 아래서 듣는 것이 순종인데 요즘 사람들은 순종은 많이 말하지만 아래서 듣는게 아니라 대등한 위치에서 아니 한 단계 올라가서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듣고 있는 것을 많이 본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어야 거룩해 진다.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어야 성도가 된다. 성령님의 인도 아래 있어야 거룩한 행실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 거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과 염소의 특별한 구별이 무었일까 양은 목자가 이끄는대로 어디든지 잘 순종하는게 특징이다. 그러나 염소는 그렇지 않다. 자기 고집을 내 세우다가 주인이 매를 들어 쳐야 비로써 순종하는체 함이 다르다. 새로운 해에는 우리 모두가 다 양처럼 순종하는 성도가 되자.
2,.사욕을 좇지 말고 " 그리고 나서 "이전 알지 못하던 때에 좇던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이전에 알지 못하던 때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를 말하고 있다. 또 이전 알지 못하던 때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지 못하던 때를 말한다. 그 때에 본을 삼았던 사욕을 이제는 본받지말라는 것이다. 이말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 성도라면 결코 사욕에 사로잡혀서 살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을 때의 생활로 돌아 가지 말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을 때는 하는 모든 일이 자기 중심일 수 밖에 없다. 남을 위하는체 하면서도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삶이었음을 볼 수 있다. 베드로 당시에 성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 중에 사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사도들을 도우면서도 교회에서 봉사를 하면서도 서로 서로의 교제를 나누면서도 사욕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매사에 자기의 낯을 드러내기 를 더 힘썼던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당을 만들고 즉 주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사람을 만들기를 더 좋와했던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이제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이기적, 개인적, 즉 사욕에 사람이 되지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을 다시 바구어서 말하면 사욕의 사람은 결코 거룩한 생활을 하고 있는게 아니니 성도라고 말하기가 곤란 사람들이다. 성도라면 모름지기 사사로운 사욕에서 벗어나 만인이 인정하는 칭송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진정으로 필료로 하는 사람 즉 주님이 필료로 하는 그 사람이 바로 거룩한 사람 즉 성도인 것이다. 주님은 성도를 찾고 있다. 주님은 거룩한 사람을 찾고 있다. 약1;14절에 야고보 사도는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다. "오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자기의 욕심이 곧 사욕인 것이다. 사욕의 사람이 되지 말고 주님의 일에 욕심을 내는 사람 즉 교회의 일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의 일에 욕심을 가진 자가 성도이다.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거룩한 자인 것이다.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건 사람은 매사에 주의 영광을 생각하기에 그 하는 일이 다 거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부르신 자처럼 15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거룩한 자가 되라" 16절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5절에서 말하는 부르신 거룩한 자가 누구인가 16절에 내가 거룩하니 라고 말하는 분이 누구신가 성경에서 거룩을 말할 때 삼위하나님을 가리킨다.
1),하나님의 거룩(계4;8, 요17;11)
2),예수 그리스도의 거룩(막1;24, 눅1;35, 요6;69, 계3;7, 행3;14)
3),성령님의 거룩. 계4;8절을 보면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저 천국에는 거룩한자 뿐이다. 거룩하지 못하면 갈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이 내재하고 있는 성도라면 또한 거룩해야 한다. 이 말은 성도라면 하나님을 닮고, 예수를 닮고, 성령님을 닮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 성령님의 보호와 인도와 축복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성도들의 예배가 거룩해야 한다. 성도들의 교제가 거룩해야 한다. 성도들의 생활이 거룩해야 한다. 우리 성도가 거룩해야함은 우리들의 희망사항이 아니다. 물론 사도 베드로의 요구사항도 아니다. 우리가 거룩해야함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레11;44) 계20;6절에 "이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라고 했다. 모든 행실에 사욕을 버리고 거룩한 자가 되자. 그래서 땅에서도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고 또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성도들을 향하여 모든 행실에 거룩하라는 말은 너무도 당연한 말인 것이다. 당시 성도들에게 거룩하다는 이름만 있고 그들의 행실이 거룩에 이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한두가지의 일에는 거룩할 수도 있겠으나 모든 행실에서는 그렇게 거룩ㅅ한 삶이 되지를 못했던 것이 당시의 성도들의 행실이었던 같으다. 종말을 살고 있는 오늘의 성도들은 과연 행실에서 거룩한가
1,순종하는 자처럼 14절의 말씀이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라 했다. 이 말씀은 참 어려운 말씀 중에 어려운 말씀이다. 먼저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이라는 말부터 생각하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이라는 말은 창의 13절을 전제로 하고 있음이다. 이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음으로 마음의 허리를 동일 줄 알고 또 그ㅌ신할 줄도 알고 또 장차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소망하면서 살고 있음 자체가 바로 순종하는 자식의 삶인 것이다. 순종하는자가 된 것이 곧 성도인데 이제 성도가 되었으면 거룩한 행실을 하라는 것이다. 거룩한 성도가 되는 지름 길은 순종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기 순종이라는 말이 참 의미가 많은 말이다. 이 순종이라는 말은 "아래"라는 단어와 " 듣는다" 두 단어가 합쳐저서 만들어진 단어로서 그 뜻은 "아래서 듣는다"이다. 참으로 순종은 아래서 듣는 것이 순종인데 요즘 사람들은 순종은 많이 말하지만 아래서 듣는게 아니라 대등한 위치에서 아니 한 단계 올라가서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듣고 있는 것을 많이 본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어야 거룩해 진다.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어야 성도가 된다. 성령님의 인도 아래 있어야 거룩한 행실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 거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과 염소의 특별한 구별이 무었일까 양은 목자가 이끄는대로 어디든지 잘 순종하는게 특징이다. 그러나 염소는 그렇지 않다. 자기 고집을 내 세우다가 주인이 매를 들어 쳐야 비로써 순종하는체 함이 다르다. 새로운 해에는 우리 모두가 다 양처럼 순종하는 성도가 되자.
2,.사욕을 좇지 말고 " 그리고 나서 "이전 알지 못하던 때에 좇던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이전에 알지 못하던 때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를 말하고 있다. 또 이전 알지 못하던 때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지 못하던 때를 말한다. 그 때에 본을 삼았던 사욕을 이제는 본받지말라는 것이다. 이말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 성도라면 결코 사욕에 사로잡혀서 살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을 때의 생활로 돌아 가지 말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을 때는 하는 모든 일이 자기 중심일 수 밖에 없다. 남을 위하는체 하면서도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삶이었음을 볼 수 있다. 베드로 당시에 성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 중에 사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사도들을 도우면서도 교회에서 봉사를 하면서도 서로 서로의 교제를 나누면서도 사욕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매사에 자기의 낯을 드러내기 를 더 힘썼던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당을 만들고 즉 주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사람을 만들기를 더 좋와했던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이제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이기적, 개인적, 즉 사욕에 사람이 되지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을 다시 바구어서 말하면 사욕의 사람은 결코 거룩한 생활을 하고 있는게 아니니 성도라고 말하기가 곤란 사람들이다. 성도라면 모름지기 사사로운 사욕에서 벗어나 만인이 인정하는 칭송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진정으로 필료로 하는 사람 즉 주님이 필료로 하는 그 사람이 바로 거룩한 사람 즉 성도인 것이다. 주님은 성도를 찾고 있다. 주님은 거룩한 사람을 찾고 있다. 약1;14절에 야고보 사도는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다. "오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자기의 욕심이 곧 사욕인 것이다. 사욕의 사람이 되지 말고 주님의 일에 욕심을 내는 사람 즉 교회의 일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의 일에 욕심을 가진 자가 성도이다.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거룩한 자인 것이다.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건 사람은 매사에 주의 영광을 생각하기에 그 하는 일이 다 거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부르신 자처럼 15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거룩한 자가 되라" 16절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5절에서 말하는 부르신 거룩한 자가 누구인가 16절에 내가 거룩하니 라고 말하는 분이 누구신가 성경에서 거룩을 말할 때 삼위하나님을 가리킨다.
1),하나님의 거룩(계4;8, 요17;11)
2),예수 그리스도의 거룩(막1;24, 눅1;35, 요6;69, 계3;7, 행3;14)
3),성령님의 거룩. 계4;8절을 보면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저 천국에는 거룩한자 뿐이다. 거룩하지 못하면 갈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이 내재하고 있는 성도라면 또한 거룩해야 한다. 이 말은 성도라면 하나님을 닮고, 예수를 닮고, 성령님을 닮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 성령님의 보호와 인도와 축복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성도들의 예배가 거룩해야 한다. 성도들의 교제가 거룩해야 한다. 성도들의 생활이 거룩해야 한다. 우리 성도가 거룩해야함은 우리들의 희망사항이 아니다. 물론 사도 베드로의 요구사항도 아니다. 우리가 거룩해야함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레11;44) 계20;6절에 "이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라고 했다. 모든 행실에 사욕을 버리고 거룩한 자가 되자. 그래서 땅에서도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고 또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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