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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충성하지 말라 (대상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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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러렀을때에 소들이 뛰기 시작했다. 웃사는 반사적으로 법궤가 수레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법궤를 잡았다. 그 순간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를 쳐서 그는 즉사하고 말았다. 온 백성의 기쁨의 감격이 충격의 순간으로 바뀌었다. 잔치자리가 장례 자리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법궤를 찾으러 했던 이 모든 것이 중단되었고, 임시로 가드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방치해두게 되었다. 그러면 도대체 웃사는 충성했는데 왜 죽은 것일까 웃사는 법궤가 떨어질까봐 좋은 의미에서 붙잡았는데 왜 즉사하게 되었는가 이런 문제는 오늘날 우리들이 주님을 위하여 믿는다고 믿으나, 일한다고 일하나 주님께로부터 인정이 없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마7장에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고, 선지자의 일을 했음에도 주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하시는가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이 웃사처럼 실컷 행하여 놓고서는 헛수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열심히 믿어놓고 그것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열심히 일해놓고 일한 대가로 받지 못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웃사의 즉사이유는 무엇인가
1.편리 때문이다. (민 7:9)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 법궤는 소들이 끌어서는 안된다. 법궤에는 고리가 달려 있고, 그 고리에 채를 지워서 고핫 자손만이 나를 수 있게 되어 있다. 법궤는 땀 흘리며 운반해야 한다. 어깨가 아프게 날라야 한다. 그래서 시내산에서 가나안까지 40년간 어깨에 메고 날랐다. 그때에 요단강이 갈라졌고,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는 일을 담당하라’(민7:9)했는데, 편리하게 날랐다. 하나님의 교회는 피와 땀과 눈물로 받들어져야 한다. 신앙은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키워가야 한다. 요즘 얼마나 교통이 발달하여 다니기에 편한지 모른다. 농촌보다는 도시가 문화혜택을 많이 받기에 얼마나 편한가
그런데 그런 편안함이 있어도 아픈 사람이 더많고, 연약한 몸을 가진 것이 도시 사람인 이유는 무엇인가 요즘은 몇 발자국만 가도 차를 타고 가려한다. 그러나 옛날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건강의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편한 것만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편리주의는 교회를 망친다. 편리 주위는 신앙을 말아먹는다. 편하게, 쉽게 신앙생활 하려고 하지 말라.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망친다. 주일날 예배 안 드리고 쉰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힘들어도 예배를 드려야 한다. 힘들어도 깨어 기도해 해야한다. 아까워도 헌금을 해야한다. 바빠도 전도를 해야 한다. 배고파도 금식을 해야한다. 어려워도 용서를 해야 한다. 고통스러워도 죄를 버려야 한다. 시간이 없어도 봉사를 해야한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을 수 있기를 바란다.
2.무지 때문이다. 법궤는 아무렇게나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운반법이 있다(민4:4-6). (민 4:4) 고핫 자손의 회막 안 지성물에 대하여 할 일은 이러하니라 (민 4:5)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간 막는 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민 4:6)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민 4:7) 또 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 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 1법궤는 레위제사장이 직접 어깨로 날아야 한다.
2법궤는 해달가죽으로 씌워 날라야 한다. 3아무나 성물을 만져서는 안된다(민4:15) 이것이 법궤 운반 수칙이다.
그런데 웃사는 만질 자격도 없는데 충성한다고 만졌다. 인간적인 생각이 하나님의 법칙을 이길 수 없다. 웃사는 알지 못하고 충성하였기에 즉사하였다. 무지는 불신앙이 되기 쉽다. 그래서 호세아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한다’(호4:6)라고 말했다. 바울은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쫓는 것이니라’(롬10:2)라고 말했다. 바울이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열심히 특심했으나 지식이 없어서 예수 믿는 이를 핍박했다. 웃사는 무지대문에 즉사하였다. 알고나서 충성하여야 한다. 그럴러면 1성경공부를 해야한다.
2영적 투자의 시간을 가져라 3물질적으로도 영의 성장을 위하여 아낌없이 투자하라.
3.설마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고 설마 죽을까’생각하였다. 교만과 경솔로 가득 찼다. 이 설마는 모르고가 아니다. 알고 있으면서 행하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 해야 할 줄 알면서 ‘설마’하지 말라. 반드시 대가가 있다. 주일성수 안해도 설마, 십일조 안해도 설마, 죄를 지어도 설마, 봉사안해도 설마 설마 나 한사람 빠진다고 무슨 일이 이런 생각들은 금물이다. 우리 속담에도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4.피 때문이다. 법궤는 피없이 대할 수 없는 성물이다. 대제사장들조차 1년에 꼭 하루만 법궤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었다.
그런데 피 없이는 아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웃사는 피 없이 법궤를 만졌다. 그래서 즉사하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내 죄를 덮을 때에 우리는 성결하게 되어 감히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심판대에 설 수 있고, 그분의 자비와 긍휼과 은총을 받을 수 있다. 예수피를 가지고 일들을 감당하자. 웃사처럼 즉사하지 말고 법궤를 옮기는 사람이 되자. 편리함, 무지, 설마, 피 없는 것은 즉사한다. 힘들어도 끝까지 좇아가자. 모르면 알고 행하자. 설마가 아니라 두려움으로 하자. 예수님의 피 공로의지하고 믿음으로 일들을 감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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