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은 (딤후3:15-17)
본문
오늘은 성경 주일이다. 우리 성도들 귀에 익숙한 말은 12월
둘째 주일에 지키는 성서 주일이다. 우리말 성경은 대한 성서공회를 통하여 지금까지 보급되어 왔다. 대한 성서공회에서 대부분의 한국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한글 개역성경을 뒤로하고 천주교와 합작으로 공동번역 성경을 출간했다. 이 공동번역 성경을 한국 개신교에서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표준 새번역 성경을 새로이 번역 출간했다. 그러면서 한글개역 성경을 더 이상 출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표준 새번역 성경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어, 보수교단 연합회에서 표준 새번역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 성경공회를 창설하고 한글 개역성경을 보완하여 신구약 성경을 출판 보급하였다. 이 신구약 성경이 대한 성서공회로부터 판권 침해라는 고소를 받아 1심에서 승소를 했으나, 2심에서 패소함으로 사실상 한국 성경공회의 신구약 성경은 더 이상의 출판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보수교단 연합회의 한국 성경공회가 보수 신학의 입장에서 성경 원문을 직접 번역하여 새로운 성경을 번역 출간하려는 것이다. 이에 보수교단 연합의 한국 성경공회에 속한 우리 교단총회의 산하에 있는 교회들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으기 위해서 성경 주일을 지키게 된 것이다. 모든 성경은….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원작자(原作者)이시다.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다. 일점일획의 틀림이 없는 무오(無吳)한 책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을 인간의 작품과 동일하게 바라보고 비평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 대하여 살펴보고져 합니다. 기독교 신앙 자체가 “하나님 중심”임을 먼저 기억하고 본문 말씀을 살펴봅시다.
1.신구약 성경은 66권이다. 본문 3: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모든 성경은 바로 성경이 “하나”가 아님을 말씀해 준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란 말씀이다.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전체가 신구약 66권의 성경이다. 신구약 66권의 성경 구약 39권, 신약 27권을 쉽게 기억하기 위해 주일학교에서 “3×9 = 27”이란 구구단으로 외우며 성경 공부를 한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신구약 66권의 성경 그러나, 천주교 곧 카톨릭에서는 신구약 66권 외에 성경이 더 있다. 그래서 대한 성서공회가 천주교와 공동 번역한 공동번역 성경에는 신구약 66권의 성경 외에 더 있음을 보게 된다. 모든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책으로 신구약 66권을 말한다. 이 66권의 성경을 정경(正經)이라고 하며, 이 정경 외에도 외경(外經), 위경(僞經)이 있다. 외경(外經)은 교훈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위경(僞經)은 말 그대로 거짓 성경이다.
2.영감으로 기록되었다. 본문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바로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원작자(原作者)이시라는 말씀이다. 이 성경의 영감설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도, 인간의 작품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자유주의, 현대 신신학 쪽에서는 인간의 작품으로 보고 본문 비평을 통하여 성경을 갈기갈기 찢고 있는 것이다. 그 한 예로 “동정녀 마리아”의 문제를 살펴보면 영감설을 믿는 보수 신학 측에서는 여자의 후손(창3:15)→ 처녀(사7:14)→ 마리아(마1:18)로 처녀(마1:23) 마리아 곧 “동정녀 마리아”로 믿는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 측에서는 사7:14절의 “처녀”는 “젊은 여자”라는 말로 결혼한 여자일 수도 있다고 하며, 마1:23절의 “처녀”는 마태가 사7:14절을 잘못 인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곧 성경에는 잘못도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24:43절/ 내가 이 우물 곁에 섰다가 청년 여자가 물을 길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하여/ “청년 여자가” 똑같은 단어임으로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아내 감을 결혼한 젊은 여자 중에서 찾고 있다고 해야 한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되겠는가 누가복음 1:34절/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 이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마리아의 이 고백이 “동정녀임을 말해 주고 있다. 마태나 누가의 계획적인 조작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그래야 현대의 지성인답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입니다. 인간의 작품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동원되기는 했지만, 성령님의 영감에 사로잡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 본문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당신의 말씀인 성경을 주신 것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고져 함이다. 그 구원의 길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고전 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과 멸망을 갈라놓는 하나님의 선포다. 이 성경 말씀에 우리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구원과 멸망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4:12). 성경 외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려주는 책이 없습니다.
4.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본문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모든 성경에는 교훈이 있다. 책망이 있다. 바르게 함이 있다. 가르치고, 꾸짖고, 고치는 그 목적이 바로 “의”라는 것이다. “의(義)”가 무엇일까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에게서는 진정한 “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의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 기껏해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대적 비교의 “의”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에 각자마다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고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마다 다르고, 가정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게 되고 만다. 우리 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아 있다. 남쪽에서 남한에 지사충성(至死忠誠)하는 사람은 바로 북쪽에서 북한에는 대역죄인(大逆罪人)이 되는 것이다. 똑같은 일이 남과 북을 가르는 휴전선을 경계로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처럼 인간의 의는 기준이 없는 의이고, 같은 기준이 주어진데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걸레 같은 의가 되고 만다(사64: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의를 기준으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남한의 사람도, 북한의 사람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 앞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지역이나, 나라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그런 “의의 기준”이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의의 기준”으로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상대적 의가 아닌 절대적 의로 교육을 합니다. 진정한 의를 이루게 됩니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세상의 그 어떤 윤리와 도덕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의가 성경 속에 있기에 오늘 본문 말씀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5.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 딤후 3:17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 바로 구원 얻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가지신 뜻을 이루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이다. 마태복음 5: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함이요, 요구하시는 온전함이다. 이 온전함의 기준은 인간의 기준이 아니요, 하나님의 기준이다.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성경이 없이는 아버지의 온전하심의 기준도 알 수 없다. 그 기준을 안다 해도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모든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십자가의 도 곧 모든 성경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모든 성경은 그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했습니다(히4: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능력이 그 속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이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이것들 외에 더하거나, 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계22:18-19). 다시 말해서 모든 성경을 변개(變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성경은 시대 감각에 맞추고, 현대어에 맞추고, 과학적 사고방식에 맞추고, 이성적 논리에 맞추다 보니 엄청 달라진 성경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서구의 교회들이 앞서 가지만, 우리 또한 그에 못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구원 얻는 능력이 담겨진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말씀입니다. 시편 119: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성도 여러분, 주의 말씀의 맛을 아는지요 다윗은 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의 맛을 보았는지요 주의 말씀의 맛을 본 자들은 말씀을 버릴 수도, 말씀을 떠날 수도, 말씀을 변개시킬 수도 없습니다. 송이 꿀 보다 더 단 주의 말씀의 맛을 맛보고 읽고 또 읽고, 먹고 또 먹고, 행하고 또 행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주일에 지키는 성서 주일이다. 우리말 성경은 대한 성서공회를 통하여 지금까지 보급되어 왔다. 대한 성서공회에서 대부분의 한국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한글 개역성경을 뒤로하고 천주교와 합작으로 공동번역 성경을 출간했다. 이 공동번역 성경을 한국 개신교에서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표준 새번역 성경을 새로이 번역 출간했다. 그러면서 한글개역 성경을 더 이상 출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표준 새번역 성경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어, 보수교단 연합회에서 표준 새번역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 성경공회를 창설하고 한글 개역성경을 보완하여 신구약 성경을 출판 보급하였다. 이 신구약 성경이 대한 성서공회로부터 판권 침해라는 고소를 받아 1심에서 승소를 했으나, 2심에서 패소함으로 사실상 한국 성경공회의 신구약 성경은 더 이상의 출판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보수교단 연합회의 한국 성경공회가 보수 신학의 입장에서 성경 원문을 직접 번역하여 새로운 성경을 번역 출간하려는 것이다. 이에 보수교단 연합의 한국 성경공회에 속한 우리 교단총회의 산하에 있는 교회들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으기 위해서 성경 주일을 지키게 된 것이다. 모든 성경은….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원작자(原作者)이시다.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다. 일점일획의 틀림이 없는 무오(無吳)한 책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을 인간의 작품과 동일하게 바라보고 비평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 대하여 살펴보고져 합니다. 기독교 신앙 자체가 “하나님 중심”임을 먼저 기억하고 본문 말씀을 살펴봅시다.
1.신구약 성경은 66권이다. 본문 3: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모든 성경은 바로 성경이 “하나”가 아님을 말씀해 준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란 말씀이다.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전체가 신구약 66권의 성경이다. 신구약 66권의 성경 구약 39권, 신약 27권을 쉽게 기억하기 위해 주일학교에서 “3×9 = 27”이란 구구단으로 외우며 성경 공부를 한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신구약 66권의 성경 그러나, 천주교 곧 카톨릭에서는 신구약 66권 외에 성경이 더 있다. 그래서 대한 성서공회가 천주교와 공동 번역한 공동번역 성경에는 신구약 66권의 성경 외에 더 있음을 보게 된다. 모든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책으로 신구약 66권을 말한다. 이 66권의 성경을 정경(正經)이라고 하며, 이 정경 외에도 외경(外經), 위경(僞經)이 있다. 외경(外經)은 교훈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위경(僞經)은 말 그대로 거짓 성경이다.
2.영감으로 기록되었다. 본문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바로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원작자(原作者)이시라는 말씀이다. 이 성경의 영감설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도, 인간의 작품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자유주의, 현대 신신학 쪽에서는 인간의 작품으로 보고 본문 비평을 통하여 성경을 갈기갈기 찢고 있는 것이다. 그 한 예로 “동정녀 마리아”의 문제를 살펴보면 영감설을 믿는 보수 신학 측에서는 여자의 후손(창3:15)→ 처녀(사7:14)→ 마리아(마1:18)로 처녀(마1:23) 마리아 곧 “동정녀 마리아”로 믿는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 측에서는 사7:14절의 “처녀”는 “젊은 여자”라는 말로 결혼한 여자일 수도 있다고 하며, 마1:23절의 “처녀”는 마태가 사7:14절을 잘못 인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곧 성경에는 잘못도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24:43절/ 내가 이 우물 곁에 섰다가 청년 여자가 물을 길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하여/ “청년 여자가” 똑같은 단어임으로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아내 감을 결혼한 젊은 여자 중에서 찾고 있다고 해야 한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되겠는가 누가복음 1:34절/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 이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마리아의 이 고백이 “동정녀임을 말해 주고 있다. 마태나 누가의 계획적인 조작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그래야 현대의 지성인답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입니다. 인간의 작품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동원되기는 했지만, 성령님의 영감에 사로잡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 본문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당신의 말씀인 성경을 주신 것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고져 함이다. 그 구원의 길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고전 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과 멸망을 갈라놓는 하나님의 선포다. 이 성경 말씀에 우리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구원과 멸망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4:12). 성경 외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려주는 책이 없습니다.
4.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본문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모든 성경에는 교훈이 있다. 책망이 있다. 바르게 함이 있다. 가르치고, 꾸짖고, 고치는 그 목적이 바로 “의”라는 것이다. “의(義)”가 무엇일까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에게서는 진정한 “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의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 기껏해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대적 비교의 “의”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에 각자마다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고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마다 다르고, 가정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게 되고 만다. 우리 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아 있다. 남쪽에서 남한에 지사충성(至死忠誠)하는 사람은 바로 북쪽에서 북한에는 대역죄인(大逆罪人)이 되는 것이다. 똑같은 일이 남과 북을 가르는 휴전선을 경계로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처럼 인간의 의는 기준이 없는 의이고, 같은 기준이 주어진데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걸레 같은 의가 되고 만다(사64: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의를 기준으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남한의 사람도, 북한의 사람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 앞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지역이나, 나라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그런 “의의 기준”이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의의 기준”으로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상대적 의가 아닌 절대적 의로 교육을 합니다. 진정한 의를 이루게 됩니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세상의 그 어떤 윤리와 도덕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의가 성경 속에 있기에 오늘 본문 말씀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5.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 딤후 3:17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 바로 구원 얻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가지신 뜻을 이루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이다. 마태복음 5: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함이요, 요구하시는 온전함이다. 이 온전함의 기준은 인간의 기준이 아니요, 하나님의 기준이다.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성경이 없이는 아버지의 온전하심의 기준도 알 수 없다. 그 기준을 안다 해도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모든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십자가의 도 곧 모든 성경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모든 성경은 그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했습니다(히4: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능력이 그 속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이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이것들 외에 더하거나, 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계22:18-19). 다시 말해서 모든 성경을 변개(變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성경은 시대 감각에 맞추고, 현대어에 맞추고, 과학적 사고방식에 맞추고, 이성적 논리에 맞추다 보니 엄청 달라진 성경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서구의 교회들이 앞서 가지만, 우리 또한 그에 못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구원 얻는 능력이 담겨진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말씀입니다. 시편 119: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성도 여러분, 주의 말씀의 맛을 아는지요 다윗은 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의 맛을 보았는지요 주의 말씀의 맛을 본 자들은 말씀을 버릴 수도, 말씀을 떠날 수도, 말씀을 변개시킬 수도 없습니다. 송이 꿀 보다 더 단 주의 말씀의 맛을 맛보고 읽고 또 읽고, 먹고 또 먹고, 행하고 또 행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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