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은사를 가지고 있다 (롬12:3-8)
본문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난 후 전쟁중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어느 성공회의 성당을 복원하려고 했습니다. 공사가 한참 진행되된중 그들은 교회앞에 서있는 예수님의 파괴된 동상을 어떻게 보수할 것인가를 의논했습니다. 파괴되기 전의 동상은 예수께서 두손을 펼치시고 사람들을 환영하는 모습이었다. 동상밑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마태복음 11장의 말씀이 색여져 있었습니다. 파괴된 성당은 설계도대로 복원하면 되는데 예수님의 손은 조각가가 사망하였기에 어떻게 원형대로 복원할지를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토의 끝에 예수님의 손은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하고 예수님의 동상밑에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놓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손 외에는 다른 손을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Christ has no hands but ours)." 바울은 오늘 본문말씀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 크리스챤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손외에는 다른 손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주님은 우리들의 발외에는 다른 발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여, 나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며,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주님의 사역을 이 세상에서 행하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그의 영적인 은사를 주셔서 그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은사란 영어로는 spiritual gifts라고 불리우는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일에 사용되는 영적인 능력을 의미합니다. 교회성장학자인 피터 와그너교수는 은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은사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성령님께서 교회의 각 지체에게 선물로 주신 특별한 영적인 능력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은사를 우리에게 주시기에, 우리는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이며, 내가 섬겨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비추어 올바른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못하며,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기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올바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지 못하고 그 은사를 사장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른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자신을 과대하여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설교학자가 목회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설교를 스스로 평가해 보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자기는 평균수준을 넘어서는 설교자라는 평가를 하며 평균 80이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을 상대로 목사님들의 설교를 평가해보니, 낙제점수를 겨우 넘어서는 평균60점 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높게 나 자신을 평가합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에도 우리는 자기 스스로 상당히 외국어를 잘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나의 발음이 미국인에 가까울 정도로 굉장히 좋은 것으로 내귀에는 들리는데, 막상 녹음해 놓은 테이프를 들으며 자신의 영어발음이 너무나 안좋은 것을 알게되며 큰 실망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높게 평가를 합니다. 반면에 우리주변에는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훨씬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실제보다 너무나 낮게 평가하기에 그들은 패배의식과 열등의식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찬송가 가사를 600개 이상 작사한 영국의 유명한 찬송가 작사자인
Isaac Watts가 썼습니다. 1절에 보면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나(For such a worm asI)위해 그 보혈 흘렸네"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욥기 25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눈에는 달도 밝지 않고 별도 깨끗하지 않은데 하물며 벌레와 구더기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라고 했으며 이사야 41장 14절에 보면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벌레보다도 못한 존재, 지렁이보다 못한 자라고 스스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저자들과 아이삭 왓쯔경은 우리가 회개할줄을 모르고죄 가운데 거할 때, 창조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자신을 이기적인 정욕만을 만족시키려고 할 때, 인간은 벌레처럼 더럽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을 벌레나 지렁이로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자신을 벌레같은 존재로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하여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사로 잡혀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벌레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경 같은 사람도 열등감과 자기비하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의 후임이었던 린든
B. 존슨대통령도 그의 각료들을 대할 때 열등감 때문에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각료들은 하바드대학출신들이었는데 존슨 대통령은 Southwest Texas State College 출신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도 열등의식,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귀한 존재들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8편의 저자는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사람이 아들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돌보십니까 주께서는 그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그에게 씌우셨습니다(시편 8L1,4-5)."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다름 사람들과 비교하여 나는 더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자랑하거나 교만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모든 것, 나의 생명, 지식, 지위, 재물, 명예, 능력 등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에게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유한 것들 중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 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할 때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라고 고백치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자져서도 아니되겠습니다. 나는 예수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존귀한 자녀가 되었음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교만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되며, 항상 겸손한 자세로 두럽고 떨리는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3절에서 말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스탠포드대학 인근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셨던 Ray Stedman 목사님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거울을 보고 3가지를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고 합니다.
1.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나는 동물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나는 동물처럼 행동 하지 않으련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어주신 능력으로 하나님에게 연결되며, 그에게 응답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나는 짐승처럼이 아니고 사람처럼 행동할 것이다.
2.나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다. 이것은 나에게 일어난 것중에 가장 놀라운 일이다. 나는 아무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만, 나는 내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의미에서 나는 하나님을 나르는 자가 되었다, 오늘 내가 하루를 살아가면서 직면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내안에서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3.나는 하나님의 계획안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위대하고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도 일하시며,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이루시는 일에 한 부분이 된다. 내가 오늘 행하는 일은 목적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오늘 아무 의미없는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적은 사건이나, 가장 미미한 말 한마디나 관계 등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는 일에 관계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의미와 목적이 있는 것이다. 주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에 감격하여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려 헌신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믿음의 분량대로 다양한 은사와 재능, 능력 등을 선물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은사를 활용하여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하여 그의 거룩한 뜻을 이땅위에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안에서지체가 되어 한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홀로있는 단독자로 부르시지 않고 지시지 않고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한 일원으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결혼생활을 홀로 할 수 없듯이 신앙생활도 홀로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로서 신해야 합니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가운데 하나는 입은 옷을 다 벗어버리고 적신이 되어 거울앞에 서서 자기 몸을 관찰해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거울앞에 비취는 나의 적신이 몸을 살펴보면 내몸은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 몸은 몸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있고, 다리와 발, 팔과 손, 눈, 코, 입, 귀등, 여러 가지 다양한 지체와 기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기관이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안의 한지체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몸이 다양한 기관과 지체들로 구성되어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교회도 사회적, 가정적인 환경이나 배경이 다르고, 교육수준이나 경제적인 형편이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이루며,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4-5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도 다양성가운데도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몸은 한 지체로 되어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체들로 되어있습니다 만일 온 몸이 다 눈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들으며 온몸이 다 귀하면 어떻게 냄새를 맡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시는 대로 한몸에 여러 가지 지체를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너는 내게 필요없다'고 하거나 머리가 발에게 '너는 내게 필요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몸 가운데 약해보이는 지체가 오히려 더 필요합니다. 우리는 몸 가운데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부분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또 별로 아름답지 못한 부분을 더욱 아름답게 꾸밉니다. 그래서 몸 안에 분열이 없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첵도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여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은 그 몸의 각 지체입니다.(고전 12:14-26) 교회는 교향악단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교향악단에는 수많은 종류의 악기가 사용됩니다. 모든 악기는 자기의 고유하며 독특한 소리를 내지만 합하여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멜로디를 내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영국의 성서 신학자 F.F.Bruc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솜씨의 특징은 다양성중의 통일성이다. 이것은 자연세계에 잘 나타나 있지만 무엇보다도 신앙공동체인 교회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안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정적,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성품, 기질,능력 등을 가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은 크리스챤이 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서로 다른 각종의 은사들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은 공동의 선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여 사역을 행하는 것이다. 교회의 영광은 다양한 개성과 다양한 은사, 그리고 다양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들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치된 목적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입니다. 옛날 옛적에 어느 숲속의 동물들이 모여 학교를 설립하고 여러 가지과목을 공부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커리큘럼에 보면 달리기, 올라가기,헤엄치기, 날기 등이 필수과목으로 정해졌고 모든 동물들은 이 과목들을 이수해야만 했습니다. 오리는 헤엄치는데에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더 헤엄을 잘 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에는 평균수준으로 합격점을 받았고, 달리는 일에는 형편이 없었습니다. 오리가 달리는 일은 너무나 못하기에 선생님은 오리가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교에 남아 달리는 훈련을 더 받도록 했습니다. 오리들이 달리는 훈련을 너무 심하게 받게되자 다리에 심한 상처들이 생겨 헤엄치는 일조차 제대로 잘할 수가 없게되었습니다. 토끼는 달리는 일에는 학급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수영을 잘못하였기에, 계속 수영훈련만 받다가 다리근육에 신경조직에 경련이 자주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다람쥐는 나무를 올라가는 일에는 가장 뛰어났습니다. 나무위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날아가는 일도 매우 잘했는데, 선생님은 다람쥐가 나무밑에서 나무위를 향하여 나르는 연습을 반복하여 시킴으로 다람쥐는 너무나 지쳐 다리를 절룩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람쥐는 다리가 절뚝거리기 시작하자 그들의 주특기인 나무 올라가는 과목에도 C학점을 받았고 달리는 과목에는 D학점을 받았습니다. 독수리는 선생님의 말을 잘 듣지 않았기에 다른 짐승들보다도 더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독수리는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일에는 항상 일등을 했는데, 날개를 사용하여 나무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독수리가 다람쥐처럼 다리를 사용하여 올라가라고 말해도 그 말을 듣지 않고 날개를 사용하였기에 문제아로 점을 찍혀 많은 기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어떠한 분야에는 타고난 은사와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잘 행할 수 있지만, 어떤 분야에는 은사와 능력이 부족하여 잘 행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개발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그 은사를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섬기는 삶을 통하여 성장합니다. 받기만 하면 비만증과 같은 질병에 걸립니다.
그런데 섬기는 삶을 살기위하여는 나의 영적인 은사가 무엇인가를 알아 받은 은사대로 섬겨야 섬기는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특별한 성도들에게만 은사를 주시지 않고 모든 성도들에게 각각 알맞은 은사를 다 주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본문말씀 6절에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7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는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라고 말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가를 알고 그 은사를 개발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사용해야 할것입니다. 성탄절 계절에 서양인들은 각 자녀들에게 알맞은 성탄절 선물을 사서 잘 포장하여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놓습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성탄절 아침 자기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선물을 찾아서 포장지를 뜯어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 무엇인지 알게됩니다.
그런데 부모가 성탄절 선물을 크리스마스 트리밑에 놓았는데, 아이들이 선물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면 부모의 마음은 매우 섭섭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알맞은 영적 은사를 다 주셨는데, 우리가 그 선물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않고 선물을 사용하지도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몹시 섭섭하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은사에 관하여 언급하는 구절은 여러 곳에 있지만 특히 고린도전서 12장, 14장 베드로전서 4장, 에베소 4장, 그리고 본문 말씀인 로마서 1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성경에는 30여개의 은사들의 목록이 기록되어있다고 말합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치는 은사,기적을 행하는 능력, 영을 분별하는 은사, 방언하는 은사,방언을 통역하는 은사, 다스림 즉 행정관리의 은사, 사도의 은사 사도의 은사란 새로운 교회의 개척이나 , 다른 문화권에서 선교하는 사역의 은사를 의미합니다. 재주(기술, 기능)의 은사, 예능의 은사(창의적 의사전달, 그러니까 연극, 글쓰기, 미술, 음악 등의) 전도의 은사, 목자의 은사, 대접하는 은사, 중보기도의 은사, 지도력의 은사,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예언하는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권위하는 은사(권면 또는 격려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대체로 우리의 성격에 따라 은사를 주십니다.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좀더 활동적인 은사를 주시고, 내향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은 조용한 은사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재능과 은사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유사합니다. 재능이나 은사는 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능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은사는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적인 선물입니다. 재능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나 글을 잘쓰는것처럼 하나의 기술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은사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와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 재능이 있다면 그는 가수로써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챤이 노래를 잘 부르는 재능이 있어 그 노래를 통하여 주님을 섬긴다고 한다면, 그는 노래를 잘 부르는 재능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은사도 같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습니까 미국의 윌로크릭 교회에서 네트워크 은사배치사역이란 세미나를 교회안에서 가져 교인들이고 하여금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며, 또한 주어진 은사대로 적절한 사역처에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윌로크릭교회에서 가지는 네트워크 은사배치사역의 책이 한국말로도 번역되어 한국교회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주어진 은사를 발할 수 있는 방법은 나의 passion과 열정이 어느 사역에 가있는가를 점검함으로써, 어느 사역을 내가 가장 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를 점검함으로써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열정과 내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사역을 행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자매님은 성가대와 교사도 해보았는데 그 사역에서도 큰 기쁨과 환희를 맛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자매님에게는 항상 깊게 기도하고 싶은 열정과 갈망이 있었는데, 교회안의 중보사역 team에 들어가 이웃을 위한 중보사역을 하게되자 마음이 너무나 기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 자매님의 은사는 중보기도 사역이었습니다. William McRae목사는 오늘날의 교회를 비유하여 마치 축구경기장의 모습과 같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성도들은 축구시합을 구경하기 위하여 입장권을 사서 모여든 관중과 같고, 교회의 사례금을 받는 교역자들은 경기장에서 축구경기를 하는 직업선수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사역의 주체자는 사례금은 받는 교역자들이요, 일반성도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행하는 주체자가 아니라, 관람객이나 아니면 비평가나 평가자가 되었는데 이것은 잘못된 교회의 모습이며 성서적인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교역자의 역할은 에베소 4잘 12절에 나오는 것처럼 "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비젼을 제시하며 성도들을 가르치며, 인도하는 코오치의 역할이요, 사역의 주체자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 성서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도에 여러 가지 사역을 개발하여 작년보다 어 많은 성도님들이 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영어주일학교에서 섬기는 분들도 있으며 영어tutor교사로 섬기는 분들고 있으며, 영어예배사역에서 외국인 전도를 위하여 섬기는 분들도있습니다. 금년도 후반기에 수학tutor 프로그램도 실시할 예정이며, 급식 프로그램도 개발하여 지역사회를 섬기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당면한 커다란 경제적인 위기로 인하여 모두가 위축되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어려운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은사를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시키는 크리스챤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받은 은사를 개발하여 그리스도의 몸된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역을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내리시는 크신 은혜와 축복, 기쁨과 희열,충족감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못하며,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기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올바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지 못하고 그 은사를 사장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른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자신을 과대하여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설교학자가 목회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설교를 스스로 평가해 보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자기는 평균수준을 넘어서는 설교자라는 평가를 하며 평균 80이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을 상대로 목사님들의 설교를 평가해보니, 낙제점수를 겨우 넘어서는 평균60점 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높게 나 자신을 평가합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에도 우리는 자기 스스로 상당히 외국어를 잘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나의 발음이 미국인에 가까울 정도로 굉장히 좋은 것으로 내귀에는 들리는데, 막상 녹음해 놓은 테이프를 들으며 자신의 영어발음이 너무나 안좋은 것을 알게되며 큰 실망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높게 평가를 합니다. 반면에 우리주변에는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훨씬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실제보다 너무나 낮게 평가하기에 그들은 패배의식과 열등의식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찬송가 가사를 600개 이상 작사한 영국의 유명한 찬송가 작사자인
Isaac Watts가 썼습니다. 1절에 보면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나(For such a worm asI)위해 그 보혈 흘렸네"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욥기 25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눈에는 달도 밝지 않고 별도 깨끗하지 않은데 하물며 벌레와 구더기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라고 했으며 이사야 41장 14절에 보면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벌레보다도 못한 존재, 지렁이보다 못한 자라고 스스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저자들과 아이삭 왓쯔경은 우리가 회개할줄을 모르고죄 가운데 거할 때, 창조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자신을 이기적인 정욕만을 만족시키려고 할 때, 인간은 벌레처럼 더럽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을 벌레나 지렁이로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자신을 벌레같은 존재로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하여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사로 잡혀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벌레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경 같은 사람도 열등감과 자기비하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의 후임이었던 린든
B. 존슨대통령도 그의 각료들을 대할 때 열등감 때문에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각료들은 하바드대학출신들이었는데 존슨 대통령은 Southwest Texas State College 출신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도 열등의식,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귀한 존재들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8편의 저자는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사람이 아들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돌보십니까 주께서는 그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그에게 씌우셨습니다(시편 8L1,4-5)."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다름 사람들과 비교하여 나는 더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자랑하거나 교만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모든 것, 나의 생명, 지식, 지위, 재물, 명예, 능력 등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에게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유한 것들 중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 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할 때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라고 고백치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자져서도 아니되겠습니다. 나는 예수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존귀한 자녀가 되었음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교만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되며, 항상 겸손한 자세로 두럽고 떨리는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3절에서 말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스탠포드대학 인근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셨던 Ray Stedman 목사님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거울을 보고 3가지를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고 합니다.
1.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나는 동물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나는 동물처럼 행동 하지 않으련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어주신 능력으로 하나님에게 연결되며, 그에게 응답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나는 짐승처럼이 아니고 사람처럼 행동할 것이다.
2.나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다. 이것은 나에게 일어난 것중에 가장 놀라운 일이다. 나는 아무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만, 나는 내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의미에서 나는 하나님을 나르는 자가 되었다, 오늘 내가 하루를 살아가면서 직면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내안에서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3.나는 하나님의 계획안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위대하고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도 일하시며,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이루시는 일에 한 부분이 된다. 내가 오늘 행하는 일은 목적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오늘 아무 의미없는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적은 사건이나, 가장 미미한 말 한마디나 관계 등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는 일에 관계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의미와 목적이 있는 것이다. 주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에 감격하여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려 헌신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믿음의 분량대로 다양한 은사와 재능, 능력 등을 선물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은사를 활용하여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하여 그의 거룩한 뜻을 이땅위에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안에서지체가 되어 한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홀로있는 단독자로 부르시지 않고 지시지 않고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한 일원으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결혼생활을 홀로 할 수 없듯이 신앙생활도 홀로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로서 신해야 합니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가운데 하나는 입은 옷을 다 벗어버리고 적신이 되어 거울앞에 서서 자기 몸을 관찰해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거울앞에 비취는 나의 적신이 몸을 살펴보면 내몸은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 몸은 몸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있고, 다리와 발, 팔과 손, 눈, 코, 입, 귀등, 여러 가지 다양한 지체와 기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기관이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안의 한지체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몸이 다양한 기관과 지체들로 구성되어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교회도 사회적, 가정적인 환경이나 배경이 다르고, 교육수준이나 경제적인 형편이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이루며,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4-5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도 다양성가운데도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몸은 한 지체로 되어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체들로 되어있습니다 만일 온 몸이 다 눈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들으며 온몸이 다 귀하면 어떻게 냄새를 맡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시는 대로 한몸에 여러 가지 지체를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너는 내게 필요없다'고 하거나 머리가 발에게 '너는 내게 필요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몸 가운데 약해보이는 지체가 오히려 더 필요합니다. 우리는 몸 가운데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부분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또 별로 아름답지 못한 부분을 더욱 아름답게 꾸밉니다. 그래서 몸 안에 분열이 없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첵도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여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은 그 몸의 각 지체입니다.(고전 12:14-26) 교회는 교향악단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교향악단에는 수많은 종류의 악기가 사용됩니다. 모든 악기는 자기의 고유하며 독특한 소리를 내지만 합하여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멜로디를 내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영국의 성서 신학자 F.F.Bruc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솜씨의 특징은 다양성중의 통일성이다. 이것은 자연세계에 잘 나타나 있지만 무엇보다도 신앙공동체인 교회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안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정적,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성품, 기질,능력 등을 가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은 크리스챤이 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서로 다른 각종의 은사들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은 공동의 선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여 사역을 행하는 것이다. 교회의 영광은 다양한 개성과 다양한 은사, 그리고 다양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들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치된 목적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입니다. 옛날 옛적에 어느 숲속의 동물들이 모여 학교를 설립하고 여러 가지과목을 공부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커리큘럼에 보면 달리기, 올라가기,헤엄치기, 날기 등이 필수과목으로 정해졌고 모든 동물들은 이 과목들을 이수해야만 했습니다. 오리는 헤엄치는데에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더 헤엄을 잘 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에는 평균수준으로 합격점을 받았고, 달리는 일에는 형편이 없었습니다. 오리가 달리는 일은 너무나 못하기에 선생님은 오리가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교에 남아 달리는 훈련을 더 받도록 했습니다. 오리들이 달리는 훈련을 너무 심하게 받게되자 다리에 심한 상처들이 생겨 헤엄치는 일조차 제대로 잘할 수가 없게되었습니다. 토끼는 달리는 일에는 학급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수영을 잘못하였기에, 계속 수영훈련만 받다가 다리근육에 신경조직에 경련이 자주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다람쥐는 나무를 올라가는 일에는 가장 뛰어났습니다. 나무위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날아가는 일도 매우 잘했는데, 선생님은 다람쥐가 나무밑에서 나무위를 향하여 나르는 연습을 반복하여 시킴으로 다람쥐는 너무나 지쳐 다리를 절룩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람쥐는 다리가 절뚝거리기 시작하자 그들의 주특기인 나무 올라가는 과목에도 C학점을 받았고 달리는 과목에는 D학점을 받았습니다. 독수리는 선생님의 말을 잘 듣지 않았기에 다른 짐승들보다도 더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독수리는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일에는 항상 일등을 했는데, 날개를 사용하여 나무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독수리가 다람쥐처럼 다리를 사용하여 올라가라고 말해도 그 말을 듣지 않고 날개를 사용하였기에 문제아로 점을 찍혀 많은 기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어떠한 분야에는 타고난 은사와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잘 행할 수 있지만, 어떤 분야에는 은사와 능력이 부족하여 잘 행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개발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그 은사를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섬기는 삶을 통하여 성장합니다. 받기만 하면 비만증과 같은 질병에 걸립니다.
그런데 섬기는 삶을 살기위하여는 나의 영적인 은사가 무엇인가를 알아 받은 은사대로 섬겨야 섬기는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특별한 성도들에게만 은사를 주시지 않고 모든 성도들에게 각각 알맞은 은사를 다 주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본문말씀 6절에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7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는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라고 말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가를 알고 그 은사를 개발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사용해야 할것입니다. 성탄절 계절에 서양인들은 각 자녀들에게 알맞은 성탄절 선물을 사서 잘 포장하여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놓습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성탄절 아침 자기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선물을 찾아서 포장지를 뜯어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 무엇인지 알게됩니다.
그런데 부모가 성탄절 선물을 크리스마스 트리밑에 놓았는데, 아이들이 선물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면 부모의 마음은 매우 섭섭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알맞은 영적 은사를 다 주셨는데, 우리가 그 선물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않고 선물을 사용하지도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몹시 섭섭하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은사에 관하여 언급하는 구절은 여러 곳에 있지만 특히 고린도전서 12장, 14장 베드로전서 4장, 에베소 4장, 그리고 본문 말씀인 로마서 1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성경에는 30여개의 은사들의 목록이 기록되어있다고 말합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치는 은사,기적을 행하는 능력, 영을 분별하는 은사, 방언하는 은사,방언을 통역하는 은사, 다스림 즉 행정관리의 은사, 사도의 은사 사도의 은사란 새로운 교회의 개척이나 , 다른 문화권에서 선교하는 사역의 은사를 의미합니다. 재주(기술, 기능)의 은사, 예능의 은사(창의적 의사전달, 그러니까 연극, 글쓰기, 미술, 음악 등의) 전도의 은사, 목자의 은사, 대접하는 은사, 중보기도의 은사, 지도력의 은사,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예언하는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권위하는 은사(권면 또는 격려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대체로 우리의 성격에 따라 은사를 주십니다.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좀더 활동적인 은사를 주시고, 내향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은 조용한 은사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재능과 은사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유사합니다. 재능이나 은사는 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능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은사는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적인 선물입니다. 재능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나 글을 잘쓰는것처럼 하나의 기술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은사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와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 재능이 있다면 그는 가수로써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챤이 노래를 잘 부르는 재능이 있어 그 노래를 통하여 주님을 섬긴다고 한다면, 그는 노래를 잘 부르는 재능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은사도 같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습니까 미국의 윌로크릭 교회에서 네트워크 은사배치사역이란 세미나를 교회안에서 가져 교인들이고 하여금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며, 또한 주어진 은사대로 적절한 사역처에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윌로크릭교회에서 가지는 네트워크 은사배치사역의 책이 한국말로도 번역되어 한국교회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주어진 은사를 발할 수 있는 방법은 나의 passion과 열정이 어느 사역에 가있는가를 점검함으로써, 어느 사역을 내가 가장 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를 점검함으로써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열정과 내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사역을 행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자매님은 성가대와 교사도 해보았는데 그 사역에서도 큰 기쁨과 환희를 맛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자매님에게는 항상 깊게 기도하고 싶은 열정과 갈망이 있었는데, 교회안의 중보사역 team에 들어가 이웃을 위한 중보사역을 하게되자 마음이 너무나 기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 자매님의 은사는 중보기도 사역이었습니다. William McRae목사는 오늘날의 교회를 비유하여 마치 축구경기장의 모습과 같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성도들은 축구시합을 구경하기 위하여 입장권을 사서 모여든 관중과 같고, 교회의 사례금을 받는 교역자들은 경기장에서 축구경기를 하는 직업선수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사역의 주체자는 사례금은 받는 교역자들이요, 일반성도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행하는 주체자가 아니라, 관람객이나 아니면 비평가나 평가자가 되었는데 이것은 잘못된 교회의 모습이며 성서적인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교역자의 역할은 에베소 4잘 12절에 나오는 것처럼 "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비젼을 제시하며 성도들을 가르치며, 인도하는 코오치의 역할이요, 사역의 주체자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 성서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도에 여러 가지 사역을 개발하여 작년보다 어 많은 성도님들이 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영어주일학교에서 섬기는 분들도 있으며 영어tutor교사로 섬기는 분들고 있으며, 영어예배사역에서 외국인 전도를 위하여 섬기는 분들도있습니다. 금년도 후반기에 수학tutor 프로그램도 실시할 예정이며, 급식 프로그램도 개발하여 지역사회를 섬기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당면한 커다란 경제적인 위기로 인하여 모두가 위축되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어려운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은사를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시키는 크리스챤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받은 은사를 개발하여 그리스도의 몸된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역을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내리시는 크신 은혜와 축복, 기쁨과 희열,충족감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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