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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엡1:20-23)

본문

바울 사도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을 에베소에 있는 교인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17절 이하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에베소 교인들이 이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는 그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1. 너희가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
2.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원한다.
3.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알게 되기를 원한다.
4.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얼마나 크신가를 알게 되기를 원한다.
20절에 와서 바울은 다시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베소 교인들이 궁극적으로 깨닫고 알아야 할 진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1. 높아지신 그리스도

우선 그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은 이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장 큰 증거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존귀함과 우월성을 만방에 선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죽음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어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학문이 뛰어나도 죽은 다음에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당시 그리스 철학에서는 영혼불멸 사상이 대두되고 있었는데, 비록 육체는 죽어 없어질망정 인간의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생각입니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죽음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그 공포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해답이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그 이상의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연구하고 애를 써도 육신이 죽는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는 모든 노력과 수고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위대한 선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아무도 극복할 수 없었던 그 죽음을 정복하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가장 탁월했던 학자보다 위대하고 가장 힘있는 권력자보다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이 확실해지는 것이지요.

그가 그처럼 죽음을 정복하고 다시 살아나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서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19절에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가를 알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바로 그 능력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자기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오른편이라는 것은 제2인자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그 2인자는 또한 대리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잘 해석해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제2인자가 된 것이지요. 그렇지만 요셉은 실제로 애굽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서 바로 대신 애굽을 다스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권세를 위임받아서 만물을 다스리신다는 뜻이지요.

그리스도께서 그처럼 높아지셨습니다. 20절에 보면 '죽은 자들'이라는 말과 '하늘에서'라는 말이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from 죽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to 하늘이에요. 죽음보다 낮은 곳이 어디입니까? 그리고 하늘보다 더 높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옮기우셨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처럼 높아지기 전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낮아지셨다는 것이 전제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을 때 만물이 그를 조롱했습니다. 사탄이 그를 시험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제자의 손에 의해 팔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그에게 신성모독죄를 적용해서 처참하게 사형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원수들은 승리에 도취되어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서 역사하셨습니다. 그의 모든 고난과 희생이 거룩하고 귀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그를 다시 높이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죽음에서 하늘로 높이셨습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붙잡혀 사형을 당해야 했던 사형수의 신분에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의 대리자로 높아지셨습니다.

21절과 22절에서는 그의 높아지심의 상태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에게는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이 주어졌습니다. 그것도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권이 그에게 집중됩니다. 시간과 공간을 통틀어 최고의 통치자가 되시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셨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게 되니까 만물이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기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편 110편 1절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발등상이라는 것은 발판입니다. 과거에 그에게 반역하고 대항하던 세력들이 꼼짝도 못하고 그 발 아래 짓밟히듯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2. 교회에게 주어진 그리스도

그런데 갑자기 22절 뒷부분에서 그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우선 22절에는 발과 머리가 대조되어 있지요? 우리말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만물 위의 머리로 삼으셔서 교회에게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의미가 약간 다르지요? 다른 곳에서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고 말하고 있고, 23절에서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라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22절에서의 의미는 그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영어성경들도 원문에 가깝게 번역이 되어 있는데, 한글성경들은 하나같이 '교회의 머리'로 번역을 했더군요. 여기서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높이셔서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의 머리가 되게 하신 다음, 그 그리스도를 교회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의 의미와 가치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높이신 것이 바로 교회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모임이지요.
그런데 그 교회는 그리스도를 가졌습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하면 최고로 높아지셔서 만물을 다스리시고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상에서 교회처럼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그처럼 높아지시고 존귀해지신 것이 교회를 위한 것이라면, 그 무엇이 이 교회를 대적하거나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만물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우리가 가졌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거나 겁낼 필요가 있습니까?

교회는 그래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진 곳입니다.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는 사탄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구원을 선포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집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역할과 사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구원이 선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인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구체화되고 나타나는 현장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게 될 때 그 일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것은 우리의 몸을 통해서입니다. 우리의 손과 발이 움직일 때 그 일이 성사됩니다. 우리의 몸을 통해서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기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모으십니다. 교회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통치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교회가 중세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세속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지요. 그리스도의 주권과 만물 위의 머리되시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할 일입니다. 교회를 보면 그리스도가 보여야 하고, 교회가 하는 말은 그리스도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사도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는 만물의 근원이 되십니다.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만물의 결론이 되십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롬 11:36). 여기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신다, 즉 만물을 채우신다는 말은 온 우주를 다스리스고 상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이라고 한 것은 교회가 우주적이라는 뜻입니다. 교회의 우주성이라는 것은 보편성을 말합니다. 교회는 어느 특정한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교회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교회를 위하여 낮아지셨다가 다시 높아지신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이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며, 그의 사역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도록 우리가 함께 충성하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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