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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섬기는 후한 연보 (고후9:1-15)

본문

1. 고린도 교회는 마게도냐 교회처럼 환난을 당하거나 극히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은사도 풍성했으며 물질적으로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은사는 풍성하게 체험했으면서도 남을 구제하고 선교하는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 구약의 말씀을 인 용하며 본문 6,7,8절의 말씀을 했던 것입니다. "(잠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 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잠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11:26) 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 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외국인 노동자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는 김재오 전도사가 97년 2월 2일 평안도 개천에서 식량을 구하러 중국으로 넘어온 조선 청년 세 명을 만 난 후 느낀 감상을 기록한 다음과 같은 시가 있습니다. 대기근이 휩쓰는 북녘-무산의 위대한 영웅-원죄의 땅-비틀, 비틀 발걸음이 헛 딛인다 현기증과 어지러움, 눈동자에 불이 인다 온 세상의 생물들이 음식으로 보인다 신촌, 강남, 화량리 거리엔 기름진 음식들, 술과 포도주 잔치가 열리고 거리엔 비틀, 비틀 구역질 소리 찌꺼기가 쌓였다 굶주림과 사치의 향연 원죄가 내려쓰는 땅 한반도! 탐욕이 흐르는 땅에서 신의 진노가 광풍같이 일었구나 혈육이 제일 두려운 세대여 연약한 백성들끼리 서로 서로 눈을 감고 식용으로 전락한 아이들과 살찐 처녀들 빈궁한 단칸 골방에서 진흙떡을 먹으며 흐느끼는구나 십자가가 내려왔구나 골고다의 십자가가 다시 다시 이 땅에 일었구나 지도에 갇힌 불쌍한 인민들 가여운 인민들을 보고 주께서 우시는구나 주의 십자가를 따라 나도 가련다 십자가를 끌고, 고난의 인민의 땅을 쓸러 가련다 인민이 주체가 되고 수령이 비주체가 되는 예수의 새 하늘 새 땅을 일구러 가련다. 지난 3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의 식량난과 국제 민 간지원 실태 보고회'에서 스티브 린튼 유진벨 재단 이사장은(그의 외증조 할아버지 유진벨 선교사는 1백년 전에 순천에 와서 선교했으며, 그의 외 손자 스티브 린튼은 할아버지의 조선 선교 1백년을 기념해서 유진벨 재 단을 설립하여 북한 식량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양주 한 병 값이면 북한동포 1만5천명이 한 끼니 먹습니다. 북한주민 들은 하루에 식량을 1백-2백g 배급받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식량기구 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6백-8백g의 식량은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국제시세로 옥수수 1톤이 1백50-1백70달러입니다. 16만원이 안 되는 돈이 죠. 옥수수 1톤을 현재 배급량인 2백g씩 배급하면 5 천명이 먹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하룻밤 술집에서 마셔버리는 양주 한 병 값이면 북한 사람 1만 5천명이 한 끼니를 먹는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북한을 보면 아니 할 말로 죽어도 문제, 살아도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은 2-3년 제 대로 못 먹어도 그후에 정상적으로 먹으면 곧 회복됩니다. 그러나 다섯 살 이하의 어린이들의 경우 회복불능의 피해를 입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어릴 때 잘 못 먹으면 우선 키가 자라지 않지만 더 무서운 것은 뇌가 제 대로 발달되지 않아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미발달된 세대를 만들 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아프리카에서 증명된 사실입니다. 남북 한은 21세기에 통일을 해야 하는데 그런 세대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입 니까 국제사회는 북한 기아문제에 대처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올 해 2백만t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유엔에서는 각국 정부차원에서 지원금을 거둬 10만톤을 보낸다고 합니다. 부족분 의 5%밖에 안되는 분량입니다. 비정부기구에서 하는 것은 0.5%나 될까요. 국제사회의 정부와 비정부기 구가 보낸 식량을 돈으로 환산하면 서울에서 6층짜리 건물하나 사기 힘 들 겁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기독교인이니까 하는 얘긴데 이것은 서울 어느 교회의 건축헌금보다도 적은 액수입니다. 이 정도 돈을 가지고 북한을 돕는다고 우리가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모 금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왜 모금이 안되는가. 에티오피아 기아는 북한보 다 덜 심합니다. 그래도 미국정부는 북한지원금의 10배나 냈습니다. 한국 정부도 10배는 냈을 겁니다. 저는 북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백악관에 찾아가 호소했습니다. 담당관리의 말은 이랬습니다.
'북한의 가장 가까운 우방은 중국인데 중국은 올해 옥수수 풍년입니다. 거기다 같은 동포라는 한국은 쌀 풍년입니다. 일본도 쌀 재고 때문에 골 치입니다. 아시아는 21세기 세계경제의 중심이고 북한 문제는 동아시아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동아시아인들이 해결해야지 왜 미국사람 세금으로 쌀 을 보내야 합니까.' 게다가 북한사람들 자존심 때문에 모금이 안됩니다. 제가 미국에서 북 한 돕기 모금운동에 쓰려고 전단을 만들었는데 그게 어쩌다 유엔대표부 에 있는 북한 외교관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 분이 저에게 전화해서 화를 내면서 '왜 전단에다 북한은 가난한 나라라고 썼냐'고 막 항의를 해요. 그래서 제가 '가난 한 나라라고 쓰지 않으면 어떻게 원조를 주자고 하겠 습니까' 했더니 그 분 말씀이 '형편은 괜찮지만 원조 좀 보내자고 쓸 수 없을까요'하는 겁니다. 원래 국제사회에서의 모금이란, '에티오피아' 하면 여러분 눈 앞에 바로 떠오르는 것처럼 바짝 말라붙은 젖에 달라붙은 빼 빼 마른 아기들의 참상이 TV화면에 넘쳐나야 활발해집니다. 그래서 모금 에 필요하니 감정에 호소하는 비참한 모습 좀 찍자고 하면 북한사람들 얘기는 '죽으면 죽었지 나라 망신은 못 시킨다.'입니다. 그래서 북한사람 들이 힘없이 줄서서 쌀 분배받는 것 이상의 사진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일반 가정에 가서 기아 장면을 찍어보려고 여러 집들을 방문했는데 식량만 없지 어쩌면 그렇게도 깨끗한지요. 먼지 하나 없습니다. 물론 손 님 온다고 미리 청소를 했겠지요. 자세히 보면 양말도 없고 다른 것들도 없는 게 눈에 띄지만 사진깜은 안되는 겁니다. 인터뷰라도 해보려고 '당신 배고픕니까'하면 대답은 '괜찮습니다.'입니다. '무엇을 먹고 삽니까'하 면 '선생님이 일전에 쌀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까'합니다. '그전에는 뭐 먹고 살았습니까'하면 '산에 올라가서 남새 캐다 먹었는데 그게 몸에 좋습니다.'합니다. 한국사람들은 정말 상다리가 휘게 차려놓고도 '차린 게 아 무것도 없어 송구합니다.'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진짜로 아무 것도 없을 때는 오히려 있는 체 하는 게 한국사람들인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체질로는 서방문화에서 모금은 못합니다.
그런데 세계무 대에서 기아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은 북한일을 하면서 감동을 많이 받 습니다. 구호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아상황을 조사할 때 어린이만 조사 하면 된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어린이들이 먼저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우선 어린이를 먼저 먹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먹이려고 하지만 노인들은 손자, 손녀에게 양보하고 아 무런 불평없이 조용히 죽어갑니다. 구호전문가들은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다면서 대단히 놀라고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북한이 식량난 때문에 곧 망한다고 생각하지만 한반도 5 천년 역사에서 기아 때문에 망한 정부가 있습니까 북한은 현재 불신 때문에 한국의 손을 잡지 않으려고 합니다. 화해는 민간의 몫입니다. 이 제 한국민들이 나서야 할 차례입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내외국인 4인은 요즘 북한 동포들의 생각을 이렇 게 전했습니다. "보리강냉이, 간장에 비벼 먹고 삽네다. 수해가 아니라 미국과 남조선 때문에 배가 고프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식량문제로 그들을 한 맺히게 한다면 남북화해는 또한 세대 늦어질 수밖에 없다." 96년 한국정부의 대북 정책은 사실상 '북한 동포 굶겨 죽이기'에 비 유될 수 있습니다. 국내의 일부 흡수통일론자들은 내심 '그 길이 빠르다.' 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박경서 박사는 이같은 입장의 한계를 다음 과 같이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언제쯤 망할 것 같으냐고 제게 묻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체사상에 따라 죽어도 조용히 죽는 연습을 50년동안 해온 사람들입니다. 간장에 보리옥수수 비벼 먹고 삽네다.'하는 말 그대로 형편없는 칼로리를 섭취하면서도 정신무장은 엄청난 정도 입니다.' 아울러 그는 북한동포들이 어려움을 이겨나가게 하는 저력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일교회가 보낸 구호식량 배급 과정을 확인하러 평양에 온 독일개신교회 긴급구호국장 헨슬레 여사를 만났는데 그녀는 존 프로 드 세계식량계획 평양주재 부책임자에게 '우리가 보낸 식량이 타겟트 그 룹에게 잘 전달이 됐는가'라고 묻더군요. 타겟트 그룹이란 어린이노 인임산부 등 약자들을 말합니다. 그러자 프로드씨는 '이 곳에서는 식량 을 타겟트 그룹에게 전달하기 위해 특별히 나눠주러 다닐 필요가 없다. 이 민족은 구호식량을 받으면 먼저 노인과 어린이임산부에게 먹이고 가장 안 먹는 게 가장이다.'라고 대답하더군요. 남이든 북이든 그런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통 아닙니까. 세계식량계획 평양주재 책임자인 브리깃 대 칼그램 여사는 '그런 점에서 나는 이 민족을 크게 본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흐뭇했습니다."
2. 헌금이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표시로 하나님께 바 치는 물질을 의미합니다. '헌금'(헬라어로 율로기아)은 축복의 의미를 지 니고 있는데 이는 사랑의 동기에서 나오는 참된 구제는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헌금은 자원함으로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이지 의무적이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자기 희생적인 것이 되 어야지 자기 만족적인 것이 되면 안 되고, 사랑의 동기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자기 자랑에서 비롯되어서는 안됩니다.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구제 헌금을 하든지, 세계 복음화를 위해 선교 헌금을 하든지 모든 헌금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먼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믿음과 사랑으 로 자원함과 기쁨과 감사함으로 해야만 합니다. 헌금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하나님의 은 혜를 기억하고 우리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예배의 행위입니다. 그 한 예가 가난한 과부의 연보였습니다. 그 여인은 생활비 전부를 연보했습니다. "(막12:41)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막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막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 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12: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 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여기 가난한 과부의 연보는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진실된 사랑의 표현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헌금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물질 만능의 사회에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드리는 것이며 이 시대를 지배하는 돈의 악령인 맘몬에 대한 승리 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맘몬주의가 휩쓰는 이 시대를 승리하기 위해서도 황금 만능주의에 휩쓸리는 재정 운영 대신에 먼저 하나님의 뜻 을 살피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세로 보다 신실하게 사용되어져 야 합니다.
3. 물질에 대한 왜곡된 견해들이 교회 가운데 밤람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돈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의 표시오, 가난은 하나님이 불쾌하게 여기는시는 표시라는 것입니다. 이같은 견해가 기독교를 개인적인 번영과 평 안의 종교로 저질, 변질시켰습니다. 이를 막말로 하면 "예수님을 사랑하 고 잘 믿어서 부자가 되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교회들이 정확 한 수학공식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칠배나 복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소위 럭키 세븐 축복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성경이 없는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부 그 자체 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보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주 명백히 하셨습니다. "(눅6: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또한 부 그 자체가 개인의 신앙이나 교회의 성공을 입증해주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단적인 예로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습니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 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 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참다운 부요는 불로 연단한 정금같은 신앙이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부 그 자체가 성공의 척도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이 세상 에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머리 둘 곳 조차 없으셨기 때문 입니다. "(마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 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돈이 이 시대에 힘과 능력으로 행세하고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며 예수를 증거하는 일에는 결코 그것이 힘과 능력이 될 수 없음을 분 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눅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마귀와 화려한 능 력 대결을 펼쳐서, 풍성한 물질을 바쳐서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독생자를 아낌없이 희생하신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의 은혜가 인간 을 변화시키며, 인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의 풍 성함과 건강이 구원의 삼박자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무리들도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방법의 구원을 말한 곳이 전혀 없습니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성구는 "가이오 장로는 핍박당하는 불쌍한 많은 성도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숨을 곳과 쉴 곳을 제공하던 구제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 영혼이 훌륭해져서 구제를 많이 하니 가이오 장로야, 네 영혼이 잘된 것과 같이 네가 육신적으로 더욱 풍성해져서 그러한 선한 일을 더 많이 하며, 빨리 죽지 않아야 선한 일을 더 많이 할 것이니 네 영혼이 잘 됨같이 육신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는 바친 헌금이나 구제의 금액은 장차 하늘 나라에서 받게 될 상급은 될지언정 받을 구원의 축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질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물질 은 인간의 행위의 결과도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의 성구가 이를 증명합니다. "(신6: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 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신6: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 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 리 먹게 하실 때에." 이는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얻게 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욥41:11)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시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레25:23)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4. 그러므로 참된 부요는첫째,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풍요이며,둘째, 형제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은 하나님의 도 우심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첩경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신15: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 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 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신15: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신15:9)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웠다 하고 네 궁핍 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 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신15: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 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 시리라 (신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는 고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측량할 수 없으므로 그런 사랑을 받은 성도들은 특별히 따지지 않고 계산하지 않으면서(마26:6-13의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다른 이들에게 친절함과 관대함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친절하고 너그러운 이 베풂은 내키지 않는데 억지로 하도록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으로 감격에 넘쳐서 하나님께 드리는 응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에게 즐거이 주는 성도를 사랑하시므로 성도는 당연히 즐거이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러면서도 그 베풂은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으 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 라."고 한 것입니다. "(출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기쁨으로 드리는 헌금이 사랑으로 드리는 헌금이며 마음으로 드리는 정성된 헌금입니다. "(눅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이러한 관점에서 헌금은 믿음의 척도이며 믿음의 표준이라고 합니다. 어느 마을에 한 농부가 암소를 정성스럽게 키웠습니다. 어느 날 암소는 예쁜 새끼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하나는 붉은 놈이었고 다른 하나는 흰 놈이었습니다. 둘 다 아주 튼튼하고 귀여웠습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농부는 매우 흐뭇해 했습니다. 농부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저 송아지를 키워 무엇을 하면 좋겠소저 어미 소가 잘 자란 것도 저렇게 좋은 송아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 도 모두 하나님의 보살피심이니, 한 마리는 하나님께 바치기로 합시다.그렇게 합시다." 그 때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어느 것을 바칠까요지금 그 문제로 걱정할 게 뭐요 그것들을 똑같이 키웠다가 때가 오 면 약속대로 하나님께 한 마리를 바칩시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습니다. 두 송아지는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그만 한 마리가 병이 들어 죽어 버렸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알려주려 고 부엌에 있는 아내에게 갔습니다. 남편은 슬픈 기색을 띠며 아내를 향 하여 "하나님의 송아지가 죽어버렸으니 어쩌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물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느 것이 하나님의 송아지라고 결정하시지 않았잖아 요아. 그게 말이요. 나는 항상 흰 놈을 하나님의 것으로 정하고 있었는 데 그 놈이 죽었다는 말이오." 마틴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 가지의 회심이 필요하다. 가슴의 회심, 정신의 회심, 그리고 돈지 갑의 회심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우리 현대인들로서는 돈지갑의 회심 이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신분적인 면에서 남에게 줄 만큼 풍성하고 여유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는 강도만난 이웃의 곤경을 자신이 맡아 돌보았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이야말로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헌금을 드렸던 것입니다. "(엡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 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눅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 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 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10: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 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눅10:34) 가까이 가서 기 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 고 가서 돌보아 주고 (눅10: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 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강도만난 자를 회피하며 기피하며 그냥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가슴과 정신 그리고 돈지갑까지 회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강도 만난 자를 멀리 가서 찾지 말고 내 주변에서, 이 한 많은 한반도에서 찾 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후한 연보는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영육간에 강도만난 우리의 어려운 이 웃들을 외면하거나 기피하지 마시고 가슴과 마음, 정신과 돈지갑을 열어 후한 헌금을 바치시므로 하나님께 영광과 장차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 나라에 보물을 풍성히 쌓아두시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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