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디모데의 결단하는 신앙 (행16:1-5)

본문

인생은 수없이 찾아오는 선택의 삶을 삽니다. 조그만 선택에서부터 큰 선택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선택을 잘하면 행복한 삶을 살게 되겠지만 선택을 잘못하면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에는 늘 긴장이 있고 고달픔이 있습니다. 내가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결정되고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고 나의 운명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 방향을 잘 선택하면 나의 미래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잘못 선택하면 나에게 아주 좋은 장점과 가능성이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선택은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선택은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졸업 후 내가 어떤 직장에 가서 일을 하느냐 하는 문제도 중요한 선택입니다. 내 적성에 맞는 직장을 선택하면 일이 잘 풀려 나가겠지만 일터를 잘못 선택하면 이것처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사람의 직장은 참 중요한 생활 터전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자신의 적성과 잘 맞지 않는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고역입니다. 또 내가 누구와 결혼하느냐 하는 것도 참 중요한 선택입니다. 내가 누구와 결혼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부부가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부인의 목소리가 유난히 큽니다. “지금까지 참아 왔는데 더는 못 참겠다”고 하면서 싸웁니다. 그러면서 “내가 집을 나갈테니 아이들하고 한번 잘살아봐”라고 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들 하지만 이 선택은 10년이 아니고 일생을 좌우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들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본문을 보면 디모데라는 젊은이가 나옵니다. 이 젊은이의 모습을 보면 무엇인가 우리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젊은이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생의 길을 참 지혜롭고 용기 있게 잘 선택하였다는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여기 나오는 디모데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세 가지 지혜로운 선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신앙을 잘 선택했습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고 어머니는 유대인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헬라인이 되어 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헬라에서 공부하고 성장해서 출세해 주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장차 경건한 신앙인이 되어 주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유대인의 정신을 이어받은 전통 신앙인이 되어 줄 것을 바랐을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디모데는 갈등이 많았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헬라에서 살고 있고 또 헬라 정신이 배어 있습니다. 헬라 문화는 젊은이의 기호에 참 잘 맞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헬라 문화는 매력과 즐거움과 자유함과 인간적인 삶의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그런 문화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권고를 따르자면 그런 생활을 버려야 합니다. 경건해야 하고 절제해야 하고 종교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때로는 수고도 해야 하고 헌신도 해야 하고 제약된 삶을 살아가기도 해야 합니다. 이런 삶은 한창 나이인 디모데에게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두 길 사이에서 디모데가 고민을 합니다. 어머니의 권고를 따르자니 용기가 없고 아버지의 권고를 따르자니 재미는 있겠지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진지한 요구를 거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심각한 고민이었겠습니까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디모데는 결국 어머니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단을 내립니다. 이때 디모데의 나이 21세입니다. 그러니 그 선택이 얼마나 용기 있는 결단입니까 오늘 21세 된 청년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이런 결단을 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선택인가를 말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에 다니던 아이들도 커서 청년이 되면 이 길을 떠나지 못해서 안달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청년들이 신앙이 있건 없건 교회에 나와서 앉아 있어 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한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디모데의 결단은 참 용기 있고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쁩니다. 이것은 제 인생 가운데서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입니까 그래서 다른 것 다 박탈당해도 이 한 가지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좋은 축복입니까 그래서 디모데의 결단은 지혜롭고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2. 인생을 잘 선택했습니다. 성경에서는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어른들로부터 칭찬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이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려면 우선 인사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십시오. 인사성이 없습니다. 어른들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제가 누구인지를 다 알면서도 그냥 지나칩니다. 그래서 먼저 아는 채하면 그때 마지 못해 인사를 합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뒷맛이 참 씁쓸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 같아도 어려운 일입니다. 디모데는 지금 21세의 청년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가 그만큼 순수한 청년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순수하게 자라면 생각이 아름답습니다. 정신이 고상합니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도 아주 부드럽습니다. 그러니까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나 자연이나 만물이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좋습니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움 속에서 살아갈 때 가장 조화된 아름다움이 있고 향기가 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삶이나 모습들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꾸밈과 가식과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꾸밈이 많고 가식이 많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역겹고 거부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모두 순수성을 상실해서 그렇습니다. 이것은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도 자연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풀 한 포기도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작품이고 예술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 자연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너무 만들어지고 꾸며지고 조작됩니다. 소위 분재라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람들이 나무가 자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철사로 나무를 옭아매어 놓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고목나무인데 위는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가지 한두 개만 남겨 놓습니다. 지극히 기형적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작품이라고 하고, 예술이라고 해서 좋아합니다. 요즘 애완동물들을 보십시오. 동물도 동물다울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동물들을 데려다가 우습게 깎아 놓고, 울긋불긋 물을 들여 놓고, 머리에 리본을 달고 옷을 입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강아지를 품에 안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밤에는 개를 데리고 자기도 합니다. 그 강아지가 동물입니까, 인형입니까 모두 자연스러움을 상실한 모습들입니다. 디모데라는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함”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어머니가 그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 가정의 자연스러운 신앙적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신앙 안에서 순탄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경건한 삶이 자연스럽게 디모데의 몸에 배었을 것이고 그런 모습이 또한 자연스럽게 몸 밖으로 나타나고 표현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디모데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활 속에서 살아야 고유한 향기가 나고 행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디모데는 그의 인생을 아주 잘 가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을 향기나는 인생으로 가꾸는 것” 이것은 아주 좋은 삶의 태도이고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수고와 희생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디모데가 사도 바울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철 모르는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그저 편안하게 살아가는 온실 속의 인생이었습니다. 부잣집 아들은 온실 속의 꽃과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따르는 고민을 모릅니다. 고민 중에서 가장 큰 고민은 배고픔에서 오는 고민입니다.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은 이 고민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모릅니다. 디모데가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루스드라에 사도 바울이 전도차 왔습니다. 그때 디모데는 처음으로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들려주는 말씀을 진지하게 경청했습니다. 그때 무엇인가 마음의 큰 변화를 느꼈을 것입니다. 바울은 앉은뱅이도 고쳤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칭송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으로 떠받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갑자기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 있는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방해를 했습니다. 그들의 선동으로 전도는 방해를 받았고 바울은 그들이 돌에 맞아 실신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실신한 바울을 죽은 줄 알고 동구 밖으로 끌고 가 버리고 그곳에 돌부더기를 쌓아 놓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디모데는 일련의 사건을 똑똑하게 목격을 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 버렸지만 디모데는 혼자서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사도 바울은 정신을 차리고 돌무더기를 헤치고 일어나 나옵니다.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일어나더니 저는 다리를 가지고 더베라는 곳으로 떠납니다. 또다시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디모데는 이 같은 일련의 일들을 보고 나서 하나의 큰 의문이 생겼습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저러고 다니는가, 도대체 왜 그 많은 학식, 재주, 능력, 좋은 가문 등을 모두 버리고 더구나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버리고 저렇게 고난의 생활을 하고 있단 말인가” 하고 깊이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바로 이 부분에 있습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 이것이 축복입니다. 디모데는 깊은 생각을 한 끝에 자신도 그런 삶을 살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리고 그 길로 사도 바울의 뒤를 따라 나섭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평안한 삶을 버리고 안락한 생활도 뒤로 하고 고난의 길, 희생의 길을 찾아서 떠납니다. 그렇게 해서 이 땅에 그 유명한 디모데라는 전도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용기 있고 마음 숙연해지는 지혜로운 결단입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고와 땀이 필요한 고난의 길은 걸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가지는 가장 큰 꿈은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에 취직하는 일입니다. 그리고는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잣집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 이 시대의 풍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돈이 필요하면 더 수고하고 노력하고 때로는 육체 노동이라도 해서 벌어서 쓰려고 하지 않고 강도짓부터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유괴해서 큰 돈을 만지려고 합니다. 아주 좋지 않은 선택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지혜롭지 못한 선택을 하고 살아가니가 이 세상이 이렇게 시끄럽고 문제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좋지 않은 삶의 수단이고 발상이며 부끄러운 일입니다. 모모세 타다시라는 일본인이 있습니다. 그는 상사주재원으로 27년간이나 한국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얼마나 잘 알겠습니까 이 사람이 지은 책이 서점가의 화제입니다.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라는 긴 제목의 책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아주 인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인은 삶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주 어설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8가지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그중 두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6번째 이유가 이런 것입니다. 일본은 오늘날 고도 성장을 한 나라가 되었는데 처음부터 고도 성장을 목표로 계획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으로부터 원자탄을 얻어맞고 나라가 잿더미가 되었을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먹고 사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섬나라이기에 어디고 갈 곳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지금과 같은 고도 성장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하기를 일본인은 배가 고프면 더 일한다고 했습니다. 참 중요한 말입니다. 그리고 11번째 이유는 더욱 우리의 마음을 부끄럽게 합니다. 회사가 부도가 날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회사의 임원이나 경영진들이 자기 집을 저당잡히고 친척들 집까지 저당잡혀서 은행 융자를 받아 회사를 살리는 것이 일본인들의 위기시 선택하는 삶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월급을 3,40% 내리고 회사 살리는 데 주력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 방법이 일본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입니다. 회사가 부도날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우선 사장은 돈을 미리 빼돌리고 자기 몫 챙기기 바쁘고 노동자들은 월급을 챙기기 위해서 투쟁부터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회사가 유지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오늘날은 양파 같은 인생이 너무나 많습니다. 양파는 겉에서 보면 아주 그럴 듯합니다. 그래서 속에 무엇이 있는가 싶어서 한 켜를 벗겨 보면 또 껍데기가 있고 두 켜 세 켜를 벗겨 보아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벗겨 보아도 씨도 없고 핵심도 없고 중심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가는 세상이 시끄러운 것입니다. 디모데는 21세의 젊은이입니다. 아직 나이 어린 청년이지만 그는 깊이 생각한 끝에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치입니다. 오늘 성경은 디모데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37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