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막6:30-31)
본문
쉬는 것도 일하는 것입니다. 인간 생활에 필요한 네 가지가 무엇인가 고대 희랍의 명의(名醫) 히포크라테스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네 가지를 일, 수면, 놀이, 휴식이다”고 했습니다. 그의 주장을 성경에 조명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일은 창조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근로의 사명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로니가후서 3:10)고 했습니다.
둘째, 수면은 근로를 통해 피로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시 밤과 낮을 적절히 구별해 낮 동안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면을 취하게 하신 것입니다.
셋째, 놀이는 왜 필요한가 인간은 일과 수면만으로 살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다양한 욕구 충족을 위해 스포츠나 오락이나 취미 생활이 있어야 삶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넷째, 휴식은 일의 능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적당하게 가져야 합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다가 죽었습니다. 이유인즉 악보에 쉼표가 없었다고 합니다. 휴식은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이집트에 나세르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6일전쟁에서 패한 후 보복을 위해 침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정신없이 일에 몰두했습니다.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잠깐 쉬는 낮잠조차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가혹한 상황 속에서 심장 발작을 일으켜 52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원인은 긴장의 연속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정치가 영국 수상 처칠은 달랐습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휴가 시간은 가졌습니다. 그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정권을 잡았으나 9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일할 줄도 알았지만 쉬는 법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휴가 문화는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태복음 9:35)고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성과 촌을 두루 다니며 복음 전하는 일에 분주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자들에게 여가를 이용하여 적당하게 쉬게 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마가복음 6:31)고 했습니다. 주님은 일하고난 후에 반드시 쉬게 했습니다. 쉴 때는 따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가게 했습니다. 쉬되 너무 오래 쉬면 안됩니다. 잠간 쉬었다가 힘을 얻어 다시 사명의 현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경제위기로 인하여 씀씀이는 조금씩 줄었으나 그래도 휴가철을 맞이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피서지를 찾고 있습니다. 이때 기독교인들의 휴가 문화는 어떠해야 하는가 주님의 가르침을 좇아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째:일하고 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이 그렇게 가르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애굽기 20:8-9)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킴에 대하여 너무도 철저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사십년간 훈련시켰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엿새 동안에 힘써 자신의 모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후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엿새 동안에 일하지 않은 자는 안식일을 지킬 자격도 없습니다. 신약의 복음 원리도 그러합니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마가복음 6:30-31)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주님께 와서 그 되어진 사건을 낱낱이 보고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무리를 피하여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쉬게 했습니다. 분주하게 사역한 후에 한적한 곳을 찾아서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밤부터 시작입니다. “.저녁이 됨에 아침이 되니.”(창세기 1:5)라고 하심은 쉼을 통해 힘을 얻어 창조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원 역사도 쉼을 주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고 했습니다. 성령님도 우리의 마음속에 참 평안을 주어 쉬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님을 받으라”(요한복음 20:21-22)고 했습니다. 주님을 잃은 제자들의 심령에는 참된 안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통해 참된 쉼을 주신 것입니다.
둘째:인간은 쉬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인간은 타락 이전에도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어떤 분은 인간이 타락 이전에는 완전한 존재인줄로 아는데 그것은 잘못된 착각입니다. 인간은 타락 이전에도 역시 피조물이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8)고 했습니다. 타에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창조한 모든 육축들의 이름을 짓고 잠들어 쉬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돕는 여자 하와를 지으신 것입니다(창세기 2:19-23).
그러므로 인간 아담의 사역에는 쉼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절대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나의 사전(辭典)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고 했습니다. 한때 권위주의가 지배했던 시절에 “하면 된다”라는 적극적인 가능성의 사고방식(positive thinking = possibility thinking)이 지배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게 불가능이란 과연 없는 것인가 무엇이든 하면 다 가능한가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당신의 정원에 대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고, 하루에 한 번씩 뛰어 넘으면 나중에는 높은 대나무도 넘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집에 송아지 한 마리를 키우면서 하루에 한 번씩 들어올리면 나중에 큰 황소도 든다고 합니다. 사실 그것이 가능할까 아닙니다. 매일 했던 것을 하지 못하는 날이 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 상황입니다. 모든 능력은 예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고 했습니다. 내 힘과 의지와 결심으로는 불가능하나 내게 능력 주시는 전능자 그분이 도우시면 가능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옥중에 실라와 기도하고 찬송했는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사도행전 16:26)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을 가지고 갈 때 선교지 현장에서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드로아에서 복음전할 때 삼층에서 떨어져 죽었던 유두고를 안수하여 살렸습니다(사도행전 20:10). 멜리데에서 독사에게 물렸으나 죽지 않았습니다(사도행전 28:5). 그곳에서 추장 보블리오 부친의 열병과 수많은 병자들을 안수하여 고쳤습니다(사도행전 28:7-9).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나타난 능력입니다.
셋째:쉼을 통해 재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쉼은 재창조의 시간입니다. 휴가나 방학을 영어로 버케이션(Vacation)이라고합니다. 이말은 “비운다, 청소한다, 준비한다”(Vacate)라는 말에서 나온 단어인데 지난 오랫 동안 쌓인 더러운 것을 청소하고 소재한다는 말입니다. 휴가때 즐기는 것을 리크레이션(Recreation)이라고 합니다. 이는 다시(Re)라는 말과 창조(Creation)말의 복합어로서 재창조라는 말입니다. 두 사람이 나무를 하려 갔습니다. 한 사람은 쉬지를 않고 일했으나 얼마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적당히 일하고 조금씩 쉬었으나 더 많은 나무를 했습니다. 나중에 친구가 묻기를 “당신은 쉬면서 나보다 적게 일을 했는데 어찌 더 많은 나무를 했는가”라고 물으니 “나는 쉴 동안에 칼을 갈았다”고 했습니다. 휴식이란 무디었던 칼날을 가는 시간입니다. 휴가 기간은 잠깐 이어야 합니다. 긴장과 휴식은 적당한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기타의 줄이 너무 팽팽하게 당겨져 있으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느슷하게 풀려 있어도 안됩니다. 좋은 음색은 적당하게 당겨져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너무 긴장이 오래 계속되어 스트레스가 되어도 안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게 풀려서 규범과 규칙을 잃어버려도 안됩니다. 휴식은 적당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말하기를 “휴식은 당신이 없어서 고용주가 아쉬울 정도는 가능하지만 당신이 없어도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느낄 정도로 길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조용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고 했습니다. 휴가때 로뎀나무를 찾읍시다. 엘리야는 로뎀 나무 그늘에서 영적인 재충전을 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열왕기상 19:5-8)고 했습니다. 휴가때 로뎀 나무 그늘을 찾아서 천사를 만나야 합니다. 신령한 떡을 먹고 한적한 곳 시내산을 찾아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명의 현장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과 쉼은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세계보건 기구에서 나온 보고서에 의하면 사람은 놀고 있을 때 체력이 더 소모된다 고 합니다. 일할 때는 소모된 만큼의 에너지가 재생산됩니다.
그러므로 노는 사람이 더 빨리 죽는다는 것은 이미 의학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 중독에 걸려 휴식을 모르는 것도 문제입니다. 할메니지 박사는 “휴식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은 쉴 줄도 압니다. 쉼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삶의 원동력입니다. 링에서 싸우는 권투 선수가 3분을 싸우기 위해 1분을 쉽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두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과 휴식입니다. 이 두가지의 조화와 균행속에서 인간의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금년 휴가철에 영적인 재충전을 하여 하반기에는 더 큰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일은 창조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근로의 사명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로니가후서 3:10)고 했습니다.
둘째, 수면은 근로를 통해 피로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시 밤과 낮을 적절히 구별해 낮 동안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면을 취하게 하신 것입니다.
셋째, 놀이는 왜 필요한가 인간은 일과 수면만으로 살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다양한 욕구 충족을 위해 스포츠나 오락이나 취미 생활이 있어야 삶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넷째, 휴식은 일의 능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적당하게 가져야 합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다가 죽었습니다. 이유인즉 악보에 쉼표가 없었다고 합니다. 휴식은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이집트에 나세르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6일전쟁에서 패한 후 보복을 위해 침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정신없이 일에 몰두했습니다.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잠깐 쉬는 낮잠조차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가혹한 상황 속에서 심장 발작을 일으켜 52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원인은 긴장의 연속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정치가 영국 수상 처칠은 달랐습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휴가 시간은 가졌습니다. 그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정권을 잡았으나 9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일할 줄도 알았지만 쉬는 법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휴가 문화는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태복음 9:35)고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성과 촌을 두루 다니며 복음 전하는 일에 분주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자들에게 여가를 이용하여 적당하게 쉬게 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마가복음 6:31)고 했습니다. 주님은 일하고난 후에 반드시 쉬게 했습니다. 쉴 때는 따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가게 했습니다. 쉬되 너무 오래 쉬면 안됩니다. 잠간 쉬었다가 힘을 얻어 다시 사명의 현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경제위기로 인하여 씀씀이는 조금씩 줄었으나 그래도 휴가철을 맞이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피서지를 찾고 있습니다. 이때 기독교인들의 휴가 문화는 어떠해야 하는가 주님의 가르침을 좇아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째:일하고 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이 그렇게 가르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애굽기 20:8-9)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킴에 대하여 너무도 철저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사십년간 훈련시켰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엿새 동안에 힘써 자신의 모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후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엿새 동안에 일하지 않은 자는 안식일을 지킬 자격도 없습니다. 신약의 복음 원리도 그러합니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마가복음 6:30-31)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주님께 와서 그 되어진 사건을 낱낱이 보고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무리를 피하여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쉬게 했습니다. 분주하게 사역한 후에 한적한 곳을 찾아서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밤부터 시작입니다. “.저녁이 됨에 아침이 되니.”(창세기 1:5)라고 하심은 쉼을 통해 힘을 얻어 창조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원 역사도 쉼을 주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고 했습니다. 성령님도 우리의 마음속에 참 평안을 주어 쉬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님을 받으라”(요한복음 20:21-22)고 했습니다. 주님을 잃은 제자들의 심령에는 참된 안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통해 참된 쉼을 주신 것입니다.
둘째:인간은 쉬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인간은 타락 이전에도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어떤 분은 인간이 타락 이전에는 완전한 존재인줄로 아는데 그것은 잘못된 착각입니다. 인간은 타락 이전에도 역시 피조물이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8)고 했습니다. 타에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창조한 모든 육축들의 이름을 짓고 잠들어 쉬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돕는 여자 하와를 지으신 것입니다(창세기 2:19-23).
그러므로 인간 아담의 사역에는 쉼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절대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나의 사전(辭典)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고 했습니다. 한때 권위주의가 지배했던 시절에 “하면 된다”라는 적극적인 가능성의 사고방식(positive thinking = possibility thinking)이 지배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게 불가능이란 과연 없는 것인가 무엇이든 하면 다 가능한가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당신의 정원에 대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고, 하루에 한 번씩 뛰어 넘으면 나중에는 높은 대나무도 넘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집에 송아지 한 마리를 키우면서 하루에 한 번씩 들어올리면 나중에 큰 황소도 든다고 합니다. 사실 그것이 가능할까 아닙니다. 매일 했던 것을 하지 못하는 날이 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 상황입니다. 모든 능력은 예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고 했습니다. 내 힘과 의지와 결심으로는 불가능하나 내게 능력 주시는 전능자 그분이 도우시면 가능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옥중에 실라와 기도하고 찬송했는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사도행전 16:26)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을 가지고 갈 때 선교지 현장에서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드로아에서 복음전할 때 삼층에서 떨어져 죽었던 유두고를 안수하여 살렸습니다(사도행전 20:10). 멜리데에서 독사에게 물렸으나 죽지 않았습니다(사도행전 28:5). 그곳에서 추장 보블리오 부친의 열병과 수많은 병자들을 안수하여 고쳤습니다(사도행전 28:7-9).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나타난 능력입니다.
셋째:쉼을 통해 재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쉼은 재창조의 시간입니다. 휴가나 방학을 영어로 버케이션(Vacation)이라고합니다. 이말은 “비운다, 청소한다, 준비한다”(Vacate)라는 말에서 나온 단어인데 지난 오랫 동안 쌓인 더러운 것을 청소하고 소재한다는 말입니다. 휴가때 즐기는 것을 리크레이션(Recreation)이라고 합니다. 이는 다시(Re)라는 말과 창조(Creation)말의 복합어로서 재창조라는 말입니다. 두 사람이 나무를 하려 갔습니다. 한 사람은 쉬지를 않고 일했으나 얼마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적당히 일하고 조금씩 쉬었으나 더 많은 나무를 했습니다. 나중에 친구가 묻기를 “당신은 쉬면서 나보다 적게 일을 했는데 어찌 더 많은 나무를 했는가”라고 물으니 “나는 쉴 동안에 칼을 갈았다”고 했습니다. 휴식이란 무디었던 칼날을 가는 시간입니다. 휴가 기간은 잠깐 이어야 합니다. 긴장과 휴식은 적당한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기타의 줄이 너무 팽팽하게 당겨져 있으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느슷하게 풀려 있어도 안됩니다. 좋은 음색은 적당하게 당겨져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너무 긴장이 오래 계속되어 스트레스가 되어도 안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게 풀려서 규범과 규칙을 잃어버려도 안됩니다. 휴식은 적당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말하기를 “휴식은 당신이 없어서 고용주가 아쉬울 정도는 가능하지만 당신이 없어도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느낄 정도로 길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조용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고 했습니다. 휴가때 로뎀나무를 찾읍시다. 엘리야는 로뎀 나무 그늘에서 영적인 재충전을 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열왕기상 19:5-8)고 했습니다. 휴가때 로뎀 나무 그늘을 찾아서 천사를 만나야 합니다. 신령한 떡을 먹고 한적한 곳 시내산을 찾아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명의 현장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과 쉼은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세계보건 기구에서 나온 보고서에 의하면 사람은 놀고 있을 때 체력이 더 소모된다 고 합니다. 일할 때는 소모된 만큼의 에너지가 재생산됩니다.
그러므로 노는 사람이 더 빨리 죽는다는 것은 이미 의학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 중독에 걸려 휴식을 모르는 것도 문제입니다. 할메니지 박사는 “휴식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은 쉴 줄도 압니다. 쉼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삶의 원동력입니다. 링에서 싸우는 권투 선수가 3분을 싸우기 위해 1분을 쉽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두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과 휴식입니다. 이 두가지의 조화와 균행속에서 인간의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금년 휴가철에 영적인 재충전을 하여 하반기에는 더 큰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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