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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 (약1:1)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에서 실제적으로 부딪히는 말하는 문제에 대하여 교훈 하시는 야고보의 말씀이다. 이 야고보는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예수님의 12 제자 중의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이다(마13:55) 그는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는 주님을 믿지 않았다(요한7:3,5)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후에 믿게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갈1:19. 2:9. 행12:17. 21:18) 전해 오는 바에 의하면 야고보는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무릎이 낙타의 무릎과 같았다고 한다. 야고보서가 다른 성경과 달리 신앙의 교리적인 면보다 윤리적인 면 곧 실제적인 삶의 행위에 대한 교훈에 치중하고 있는 것도 야고보의 신앙생활이 주님을 따라다니며 주님께 직접 교훈을 받으며 배우고 익힌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경건을 통해 이룩한 신앙생활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경건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던 야고보의 교훈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말씀을 살펴 보고져 한다. 물론 말에 관한 교훈은 약3:1-12에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말하는 문제에 대해 처음 언급한 오늘 본문 말씀,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말씀 속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듣기는 속히하라 본문 19절에 “듣기는 속히하고”라 했다. “듣는다”는 것은 남의 말을 듣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의 것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수입이다. 우리는 듣는 것을 통하여 여러 가지 새로운 소식과 값진 정보를 얻게 된다. 지금까지 몰랐던 지식이나 변천해 가는 시대적 조류도 알게 된다. 그래서 그 듣는 것을 “속히하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1.빨리 받아 들이라 시대적 조류는 너무도 빨리 변해가고 있다. 내가 뒤로 물러가지 않고 머물기만 해도 엄청나게 뒤쳐지는게 현실이다. 과학 문명이 발달할 수록 더욱 빨리 변한다. 이제는 과학이라고도 하지 않고 첨단 과학이라 한다. 세대를 구분하면서도 구세대→ 기성세대→ 신세대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한 세대를 약 30년으로 본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적 조류는 너무도 빨라서 그렇게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X세대가 등장을 한다. 이 쪽도 아니고 저 쪽도 아닌 어중간한 세대일까…. 아니면 지금까지의 세대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대라서 X세대일까 우리 성도들은 세상탓만 하고 주저 앉아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그들도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대상자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에 관한 정보와 자료들을 빨리빨리 받아 들여야 한다.
2.많이 받아 들이라. “듣기는 속히하라”는 말은 많이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천천히 받는 것 보다 속히 받으면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많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깊이 알라는 말이요 정확히 알라는 말이다. 날아가는 말 한 마디로 전부를 알 수 없고 흔히 말하는 “귀 동냥”으로 진실을 알 수 없다. 어떤 일이던 무슨 문제이던 진실을 알고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관한 내용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많이 받아들이라고 했다.
3.여러 가지를 받아 들이라. “듣기는 속히하라”는 말은 한두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를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다방면의 정보와 지식을 갖추라는 것이다. 곧 팔방미인이 되라는 말이다. 이는 우리 성도가 복음을 가지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각계 각층의 여러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복음전파의 대상자이기에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을 받아 들여야 하겠다.
2.잘 소화하라. 본문 19절에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라 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할 때, 곧 받아들이기는 빨리하고 내어 보내기는 천천히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차고 넘치게 된다.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1.걸러내라.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차고 넘치지 않게 들어온 것을 걸러내어 쓸모 없는 것은 버려야 한다. 불필요한 생각, 잊어버려야 할 기억들 모두 내어 버려랴 한다.
2.충분히 이해하라 들은 것을 말하기에 앞서 확실하게 알고 이해하라는 것이다. 들을 때는 그것이 남의 것이지만 말할 때는 그것이 바로 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한 말, 그것은 바로 내 것이기에 그 말에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3.검증하라 내 것은 체험을 통하여 입증되어진 것이다. 육체적이던 정신적이던 경험되어져 알고 있다. 그러나 받아들인 남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검증을 해야 한다. 내가 직접 해 보고 확실하고 진실한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참 내 것이 되고 산 지식이 된다. 한 예로 문제집의 모범 답안도 때로는 잘못 될 수 있다. 항상 내 것으로 삼을 때는 확인하고 검증하는 일이 필요하다.
3.말하기는 더디하라. 본문 19절에 “말하기는 더디하며”라고 했다. “말한다”는 것은 내 것을 내어놓는 것이요 남에게 주는 것이다. 곧 지출이다. 듣는 것의 반대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가진 정보와 자료를 발표하는 것이요 상대방에게 건네 주는 일이다. “더디하라”는 것은 속히하는 것의 반대적 의미이다.
1.신중하라 전도서 5:2절에 “너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했다. 받아들이는 것과는 달리 내어 보내는 일은 신중하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속에는 바로 나의 인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2.적게 하라 전도서 5:2-3절에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고 했다. 잠언 10:19절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했다. 허물을 면키 어려운 우매자의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말을 적게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말에 실수가 없으면 완전한 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약3:2)
3.진실하라 거짓을 말하는 자는 거짓말로 참되게 보이도록 꾸며야 한다. 거짓을 감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말이 많아진다. 그러나 진실은 꾸밀 필요가 없다. 진실은 그 자체가 바로 진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4.잘 박힌 못 전도서 12:11절에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고 했다. 지혜자의 말은 듣는 이의 가슴에 잘 박힌 못과 같이 깊이 아로새겨진다는 것이다. 바로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이유와 목적이기도 하다. 참으로 가슴에 와 닫는 그 말 한 마디, 내 가슴 속에 고이 간직된 그 말씀이 내 삶에 얼마나 많은 힘과 용기를 주었던가. 삶의 기쁨과 소망을 주었던가 우리가 하루에도 수천 수만 마디의 말을 듣고 살지만 모두가 다 가슴에 와 닫는 것은 아니다. 잘 박힌 못과 같이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것은 드물다. 잘못하면 나의 말 한 마디가 남의 가슴에다 깊은 상처를 주게 된다. 평생에 씻기지 않는 아픈 상처를 남기게 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런 상처를 남기기 쉽다. 잘못으로 형을 살고 돌아온 아들에게 “내게는 너 같은 아들 없다. 내 집에서 썩 나가라” 호통치시는 아버지의 그 한 마디는 뉘우치고 돌아온 아들의 가슴 속에 아픈 상처가 되었고 전과자라 받아 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며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말았다. “세상 사람이 나를 버려도 내 부모는 그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하는 유서에 남겨진 한 마디는 아버지의 가슴 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되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말씀은 이런 잘못된 말로 남의 가슴에 상처와 아픔을 주는 못질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 말 한 마디가 남에게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주고, 소망을 주는 말을 하라는 것이다. 들은 바를 잘 소화하여 충분히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하는 신중함을 더하여 남에게 감동을 주는 말 한 마디를 하라는 것이다. 감동을 받은 만큼 나의 말 한 마디는 상대방의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참으로 명심하자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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