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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릴라를 사랑하지 말라 (삿16:15-32)

본문

지금까지 나의 모습이나,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나름대로는 참 안따깝기도 했고, 어떤 때는 참 한심스러운 모습을 볼수 있었다. 이 말은 내가 여러분들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능력의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살아가면서 당하는 여러 문제앞에, 사건 앞에, 환경앞에 꼼짝 못하고 여지없이 휩쓸려 버리고, 무너져 버리고, 늘 마음에 근심이 있고, 무거운 짐이 있고, 답답함이 있고, 자유함이 없는 삶의 모습을 보니까 그렇더라. 한 번 여러분 자신을 솔직히 드러다 보라. 믿는다고 하면서도 문제 앞에 믿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냥 내 방식대로,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대처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생각을 갖고 지난날 삶의 모습을 보니 그냥 이름이 믿는것이지 믿음으로 인한 승리하는 삶, 자유하는 삶, 즐거운 삶을 ‘누리며’살지 못했다. 솔직히 지난 한주간 여러분의 모습을 보라. 걱정 근심이 마음을 짓눌렸다. 환경에 영향을 받아 이러치이고, 저리 치였다.
그런데 그렇게 살게한 배후를 보니까 엄청난 것이 숨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 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믿기 바란다. 마귀가 가져다 주는 것은 우리를 죽이는것-영을 죽이고, 가정을 죽이고, 기쁨을 죽이고, 기를 죽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마귀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멸망케 하려는 것’이다. 더 이상 유익을 얻지 못하게 함이다. 아니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 까지 빼앗아 가는 것이다. 우리들중에 이런 일들이 마귀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 안다.
그런데 알면서도 당한다. 어떻게 해보지도 못한다. 하려고도 해도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까 더 실망이 되고, 더 낙심이 된다. 왜 나는 해보려고 하는데 안되거든요.
그런데 그 화살이 누구에게 가느냐 하면 하나님께로 간다. 하나님께 가다 보니까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나올수가 없다. 그러니 물리고, 물려서 결국 승리하는 것은 마귀요, 실패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나는 해보려고 하는데, 나는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나는 잘 해보려고 하는데 그것을 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힘이 없으니까 이리 끌면 이리 끌리고, 저리 끌면 저리 끌려 간다. 지난 한 주간의 삶이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니였던가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이런 아픔 속에서 얼마나 괴로웠습니까 이런 문제 앞에 얼마나 답답해 하셨습니까 저도 저 나름대로 이런 환경에 빠졌댔었다. 목사 나름대로 당하는 고통과 문제앞에 해결할 길은 보이지 않고 앞에 버티고 있는 문제만 보인다. 어떻게 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할 길도 안보이고, 대책도 방법도 없더라. 그러나 저는 그런 상황에서 딛고 일어 섰습니다. 그것 때문에 무너졌던 마음을 다시 바르게 세웠습니다. 지금은 앞에 가로 막고 있던 큰 문제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마음 약해지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앞으로 그런 잃들이 올때에 그것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비결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더 이상 여러분들에게 다가오는 그 문제나, 사건이나, 환경 때문에 무너지지 맙시다. 그렇게 해 봐야 좋아할 이는 딱 한존재가 있습니다. 마귀, 사탄입니다. 여러분들이 넘어질수 밖에 없고, 무너질수 밖에 없는 그런 길에서 이겨 나갈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1.문제를 이겨 나갈수 있는 길 그 길이 무엇입니까 자 우리들앞에 다가오는 것들을 이겨 나갈수 있으려면 그것을 이겨 나갈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있어야 이깁니다. 힘이 없으니까 이리 당기니까 당겨가고 저리 당기니까 당겨간다. 힘이 있어야 끌려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이길수 있는 힘이 무엇이냐 돈이 힘이 아니다.-돈이 없어서 졌나 아니다. 세상의 배운 것이 없어서 졌나 아니다. 세상의 것이 여러분들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이겨나가게 하지 못한다. 즉 내게 있는 것으로서는 도저히 안된다. 발버둥을 쳐도 안된다. 몸부림을 쳐도 안된다.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된다’. 이 힘이 무엇이냐 (사 49:5)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시 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가 무엇이라 말하는가 (시 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힘이십니다. 재물이 힘이 아닙니다. 사람이 힘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이 힘이 아닙니다. 힘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죽이시고, 살리시며, 높이시고, 낮추십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되지도, 하지도 못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사람이 집을 지키고, 성을 지켜도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힘이십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가 무엇이라 말합니까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 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없어도, 없어도, 없어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이유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없어도, 없어도, 안되도, 안되도, 못해도, 못해도 즐거워하고, 기뻐할수 있는 것입니다.
2.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그런데 놀랍고도 감사한 일은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는 힘이신 하나님이, 어떤 것이 끌어 당겨도 당겨지지 않으시는 힘이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 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셨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예수님을 믿는자들에게. 그래서 바울이 무엇이라 말하는가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 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한없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닿아도 깨어집니다. 한마디에 상처받고, 속상하고, 괴로움을 당합니다. 이런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그릇에 힘이신 하나님이 담겨 있습니다. 엄청난 것입니다. 나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엄청난 사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기는자 되려면, 여러분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존재들입니다. 대단한 존재들입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나를 얼마나 가치없게, 보잘것없게, 무능력하게 여깁니까 아닙니다. 내 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이 있는존재입니다. 보세요. 돈있는자들이 떵떵거립니다. 땅있는 자들이 땅땅 거립니다. 왜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그들이 가질수 없는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이 있는자들입니다. 미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능력있고 가져서가 아니라 내안에 계신 보배되신 예수님 때문에 내가 덩달아 귀한 존재, 천국을 누릴존재가 된것입니다. 나를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으실 만큼 귀한 존재들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무시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있는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식구, 여러분들의 자녀를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제가 이 영안이 열리니까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하게 생각되는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속에 거하고 계신 보배 예수가 보입니다. 그러니 이런 인식과 믿음이 있으니까 문제가 별 것 아닌 것 같이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문제를 다스리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주님이 계시니까 그것을 누를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있는 자들에게는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문제가 와도 흔들리지 않으니까 더 큰 문제로 흔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나 스스로가 내 안에 엄청난 보배가 있음에도 별 것 아닌 것 같이 여기니까 마귀가 우습게 여깁니다. 지 맘대로 합니다. 끄니까 끌려 갑니다. 그러니 실패한다. 아니다. 내 안에는 우주를 다스리는 힘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3.
그런데도 우리가 사단이 역사하는 일들앞에 여지없이 무너짐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힘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는데 있는 힘을 빼앗기고 나니까 더 쓸 힘이 없으니, 넘어지게 하는 문제들이 오니 여지없이 넘어지고 맙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그것은 다른 것 때문에가 아닙니다. 세상을 이길힘이 다빠져나갔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빠져나갔다는 표현보다 더 합당한 것은 ‘힘을 쓰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힘이 강하다 할지라도 힘을 쓰는 곳을 제어하면 절대로 힘을 쓰지 못합니다. 소를 보십시오. 얼마나 힘이 쎕니까
그런데 굴레에 씌인소는 어린아이가 당겨도 당기는 쪽으로 끌려가게 되어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런것입니다. 하나님은 힘이 없고, 부족하고, 연약해서 세상이라는, 문제라는 것 앞에 여지없이 일어서지 못하고 넘어질 존재인 이런 우리들을 어떤 문제든 이길수 있도록 힘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안에 계신 이 예수가 힘을 쓰지 못하도록, 그래서 우리들이 힘써지 못하게 해서 실패하도록, 넘어지도록,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이 원인을 찾아서 그 원인을 고쳐야지 이것 해결하지 아니하고는 절대 해결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도해서 힘을 받은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힘을 쓰지 못하는데. 아무리 은혜받고, 눈물,콧물을 흘린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때는 무엇인가 되는 것 같았는데 교회문 열고 나가면, 아니 예배가 끝이 나고나면, 기도가 끝이 나고나면 또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힘이 많이 있어도 힘을 쓰지 못하면 백전백패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여러분과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말씀을 들을때는 무엇인가 될 것 같았습니다. 기도를 할 때에는 무엇인가 힘이 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끝이 나고나면, 아니면 조그만한 문제에 부딛히고 나면 언제 기도했나 싶습니다. 언제 은혜받았나 싶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그것을 알수 있겠습니까 금방 실망해 버리고, 걱정에 휩싸이게 되고, 염려가 되며, 하늘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답답해 집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정상입니다. 그럴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소위 빛좋은 게살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모양은 목사인데, 모양은 집사인데, 모양은 오랜 신앙생활을 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그것에 사로 잡히면 여기에는 아무리 힘쓴 장사라도 이겨나갈 장사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 스스로가 위로하기를 ‘내가 하나님인가’ ‘이러면서 신앙이 자라지’ 그리고는 주저 앉아 버리고, 주저 앉아 버립니다.
그런데 한 두 번은 그런마음으로 위로를 얻게 되는데 그것이 몇번, 아니 계속 되어지면 아예 무디어져 버립니다. 더 이상 하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기억 하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몰라서가 아닙니다. 못해서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얼마든지 할수 있는 저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 저력이 아니라 힘을 공급하는 발전소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삽시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가 죽고 부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렇게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힘은 있으나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그것으로 인하여 힘이 나가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보십시오. 삼손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삼손은 힘의 상징입니다. 그것도 자기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힘입니다. 삼손이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얼마나 대단한 힘을 쓰는줄 아십니까 (삿 14:5) 삼손이 그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서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어린 사자가 그를 맞아 소리지르는지라 (삿 14: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 음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삿 14:19)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아비 집으로 올 라갔고 여기 보십시오. 얼마나 삼손의 힘이 큽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삼손이 이렇게 힘씀은 그의 힘이 아닙니다.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감동되어, 크게 임하시매’ 삼손은 힘이 없습니다. 인간이 무슨 힘 있겠습니까 조그만한 벌레하나, 병균하나 이기지 못하여 목숨이 끝이 나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이 ‘나타나면’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어느 누가 감히 건드리지 못합니다. 건드렸다가도 오히려 손해를 봅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이런 삶을 삽시다. 건드리지도 못하는 사람, 건드렸다가 오히려 큰 일을 당하는 사람이 됩시다. 그래서 문제가 왔지만 그 문제가 그 사람을 넘어지게 못하게하고, 그 문제가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일들을 하게 합시다. 분명히 될 수 있습니다.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되고, 못합니까 오늘 본문의 삼손을 보십시오. 이렇게 엄청난 힘을 가진 삼손이 20절에-‘나가 힘을 떨치리라 하나’
그런데 21절에-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하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서, 맷돌을 돌리게 하니라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일들을 만났을 때에 대책이 없습니다. 왜 그렇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9절에-‘힘이 없어졌더라’ 힘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힘이 없어진 이유를 무엇이라 말합니까 힘을 쓰는 것을 쓰지 못하도록 그것을 가로 막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엇이라 말합니까 ‘그 머리털을 일곱 가닥을 밀고’-이것은 나실인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을 주시면서 그 힘을 쓸수 있는 근원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잘려버렸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힘을 쓰려해도 쓰지 못합니다. 힘은 있지만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예수가 있지만 예수의 힘을 쓰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4.그런데 삼손이 무엇 때문에 힘을 쓰게했던 머리카락이 잘려 버렸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붙잡아야 할 비결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때문입니까 “들릴라” 때문입니다. 삼손이 들릴라의 무릎에 있었기 때문에 들릴라가 삼손이 힘을 쓰는 머리카락을 잘라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힘이 강했던 삼손도 꼼짝을 하지 못하게 된것입니다. 여러분! 문제가 왔을 때에 그 문제를 이기기를 원하십니까 이제 더 이상 넘어지고 자빠지지 않고 정말 예수 믿는 믿음의 삶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들이 받은 것 쏟아버리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이리치이고, 저리 치일수 없지를 않습니까 언제까지 그 자리 그 모습에 잡힐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들릴라’에게 머리카락이 잘리지 않게 하십시오. 힘을 쓸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힘을 쓰지 못하게 하면 우리 속에 있는 힘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들은 힘없는 종이조각 같습니다. 그러면 바람 빠진 풍선과 같습니다. 바람빠진 타이어와 같습니다. 겉모습은 아무런 문제 없는 타이어입니다.
그런데 누르면 누를수록 눌려들어갑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는 힘을 쓰지 못하도록 자르는 들릴라가 무엇입니까 삼손이 왜 들릴라에게 빠집니까 그를 편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게 해 줍니까 얼마나 마음을 빼앗는 아름다움이 있습니까 삼손이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있을 만큼 편하고 좋은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세상의 그 어떤 것이 들릴라입니다. 이 들릴라는 우리 안에도 있고, 우리 밖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과 밖에서 잡아 당깁니다. 우리 안에 있는 들릴라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이기심, 욕심, 교만, 자랑. 이런 것들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들릴라입니다 우리 밖에 있는 들릴라는 무엇입니까 친구, 일, TV, 세상의 오락등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어느 누구든 이 들릴라에게 빠지면 아무리 힘쎈 장사라 할지라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들릴라가 이끄는데로 끌려 가게 되어 있습니다. 힘없이 무너질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들릴라를 조심하세요. 이 들릴라는 여러분이 있는 멀리에도 있지만-세상에 있는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있는것-여러분의 가장 가까이에도 있다는 사실입니다(내 안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들릴라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를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보십시오. 15-16절에 보면, ‘집요합니다’ ‘날마다’-하루도 쉬임이 없습니다. 오늘날 보십시오. 우리 주변에 있는 들릴라나, 내 속에 있는 들릴라가 어떻게 집요하게 여러분들을 끌어 당기는가 매일 매일 재미나는 연속극,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잠시 틈만 있으면 내 속에서 나를 향한 이기심으로 발동을 시킵니다. 휴일도 없습니다. 휴일에는 더 재미 있습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들릴라의 목표는 ‘머리카락 자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지 맘대로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이 힘을 쓸수 있는 것을 힘을 쓰지 못하도록 힘을 약화 시키는 일들을 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 들릴라의 무릎에 누어서 지금 들릴라가 머리카락을 자를려고, 아니 자르고 있는데도 그냥 좋다고, 편하다고 거기에 누워있습니다. 문제는 그때는 잘 모릅니다. 이 들릴라에 무릎에서 머리카락이 잘려가고 있다는 것은 자기 영혼 말아 먹는일인데도 그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보십시오. 삼손을 잡으려 사람이 왔을 때, 삼손이 어떠합니까 자기 딴에는 그의 힘으로 그들을 골탕먹여 줄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막상 보니 그럴 힘이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문제가 왔을 때 어제도 이겼으니까 이길것이라 생각하고 해봅니다만은 안됩니다. 그 때는 이미 머리카락이 잘라진 것입니다. 해보려고 해도 안됩니다. 문제앞에서 그렇게 하면 잡혀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 볼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있는 사람들이 당하는 일입니다. 도저히 어떻게 해 볼수도 없고, 해보려고 해도 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무릎을 배고 있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삼손이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십시오. 1잡혀 버립니다(21절) 잡혀 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꼼짝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지 없이 잡은자가 끄는대로 가야합니다. 삼손을 잡은 사람들이 다곤의 신당에 놓지 않습니까 가지 말아야 할 자리에 갑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잡은이가 이끌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들릴라가 우리를 사로잡으면 우리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지만 힘을 쓰지 못하고 그가 끄는데로 끌려 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성령님의 사로 잡혀야 합니다. 성령님이 사로잡아 역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영의 사로 잡힐때에 우리의 살길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성령님은 우리들을 어디에 놓습니까 진리의 영이, 우리가 있어야 하고,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생명의 길에 있습니다. 축복의 길에 있습니다.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 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2두 눈을 빼 버립니다(21절) 눈을 빼 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보았던 것을 볼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삼손이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의 삶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역사를 볼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힘으로 사자를 잡아 찢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사자같이 강한 것을 잡아 찢을 수 있었던 것을 볼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보는 것을 볼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볼것이 없는데 소망이 어디 생기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들릴라에 사로잡혀 머리카락을 잘리면 우리의 영안은 어두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삶의 순간순간 역사하심에도 우리들은 볼수가 없습니다. 내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천국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잃어버린 영혼을 위하여 오셔서 구 속의 일들을 하셨는데, 우리들이 눈이 빠지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영혼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옥으로 끌려가는 영혼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보여야 합니다. 보는자가 합니다. 보는자 됩시다. 그래야 능력있는 삶을 삽니다. 그럴려면 눈이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한 번 보시렵니까 창세기에 보면 노아를 보십시오. (창 6:11)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창 6: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 었더라 (창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14)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창 6:15)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창 6:16)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 지니라 세상이 이렇게 어지려우니 세상을 멸하고 하나님의 사람 노아를 구원하시기 위한 일들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것을 보니까 하루 이틀 되어서는 안될것입니다. 장장 120년동안 짓습니다. 이렇게 짓는중에 얼마나 많은 비웃음, 조롱, 멸시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떻게 합니까 (창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즉 노아는 하나님이 지시하신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가 순종 할수 있었던 것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보는 영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본자는 그것을 끝까지 붙듭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은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소망이 둘곳이 없습니다. 무엇을 보겠습니까 오직 우리들이 볼수 있는 것은 우리의 주님밖에 없습니다. 천국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합니다. 보이지를 않습니다. 왜요 들릴라에 의해 두 눈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예수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잘 안되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그 영혼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어 있는 그들의 영혼, 지옥불에 들어갈 그들의 영혼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명령인 복음을 전하는, 예수를 전하는 일들을 하려면 먼저는 영혼을 보는 눈이 있어야 전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뿐입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말씀붙들고, 믿음의 삶을 열심히 내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안되는 것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가뻐하시는, 내 영혼이 살찌워지는, 영적인 것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여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봐야 하는데 보지 못하게 하는 이런 들릴라가 있습니다. 눈 빠지면 큰 일납니다. 오늘날 눈이 좋지 않아서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열망들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도 좀 볼수 있었으면 그래서 안구를 기증을 받으려 합니다. 그러니 눈빠지지 않게 들릴라를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3맷돌을 돌리게 합니다. 삼손이 맷돌을 돌리고 있다는 것은 삼손의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으로 되었다는 것입니까 더군다나 여기서 말하는 맷돌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짐승들만이 돌릴수 있는 그런 맷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삼손이 맷돌을 돌린다는 것은 짐승수준으로 그가 하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짐승보다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들릴라로 인하여 잡혀가, 눈이 빠지고 나면 가장 육적인 삶이 되어집니다. 예수를 몰랐던 사람들보다 더하게 됩니다. 보십시오. 믿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믿었는데 그가 배신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생각하는 것이 몇배나 더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었는데 그 하나님께 대한 실망은 하나님이 없이 실망하는 것보다는 더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생각들이 강팍해집니다. 기도도 잘 안됩니다. 봉사도 하기 싫어집니다. 주님께 대한 반발심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맷돌을 돌리는 모습입니다. 이것 회복하기가 얼마나 힘이 듭니까 맷돌을 돌리면 비참해집니다.
4재주를 부리게 합니다(25절) 재주를 부리게 했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들에게 노리개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비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저이가 하나님 믿었던 사람이래’,‘어디 힘이나 한 번 써보지’ 즉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모습입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밟히는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밟히니 얼마나 아픕니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는데 삼손을 밟으니 얼마나 약이 오릅니까 사람의 혈기만 부리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사람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앞에서 재주를 부리는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앞에서 행하는 모습을 주님이 보시고 기뻐할만한 일들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이처럼 들릴라를 사랑한 사람들이 당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왜 삼손이 이런 지경이 되었겠습니까 왜 우리들이 이렇게 무너져 버립니까 들릴라를 사랑한 것 때문입니다.
5.그렇다면 다시 회복할 방법이 없을까요 이대로 무너져서 내 인생이 끝이 나야 할까요 이렇게 살다가 그냥 끝나시렵니까 아닙니다. 우리들은 이대로 끝나면 안됩니다. 억울해서 눈을 감지 못합니다. 주님앞에 부끄러워 설수가 없습니다. 실패한 이 모습으로 주님앞에 설수 없지 않습니까 무능한 이 모습으로 주님앞에 갈수 없지 않습니까 만신창이가 된 이 모습으로 갈수 없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삼손이 어떻게 합니까 28절의 삼손의 비장한 각오를 보십시오.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그렇습니다. 이대로는 망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억울해서 죽어도 눈을 감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주님앞에 서서 무엇인가를 내어 놓을것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즉 ‘다시 한 번 힘을 주셔서 만회할 기회를 주소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삼손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이대로 무너질수 없습니다.” “주님, 내가 이대로 끝날 수 없습니다.” “주님, 주 앞에 내어 놓을것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니까 무엇이 필요합니까 각오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지금 두손이 매여 있습니다. 그로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힘으로만이 그들을 이길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으로만이 갚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으로만이 그 뜻을 이룰수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합니까 1밀리운 머리털이 다시 나야 했습니다(22절) 머리털이 다시 나야 합니다. 머리를 회복하지 않으면 삼손은 절대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시 회복하려면, 아니 ‘이번 한 번만’하고 다시 내 인생에 정말 길이 남길 역사를 이루려면 우리들의 머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은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은혜받을 생각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은혜로 이길수 있습니다. 주의 은혜가 있을 때만이 그것이 되어집니다.
2여호와께 부르짖어야 합니다(28절) 삼손이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삼손이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말이 여기서만 딱 한 번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가 평소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면 들릴라에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인데, 그래서 힘을 빼앗기지 않았을 것인데
그런데 평소에는 그에게 주신 힘만 믿고 부르짖어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내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한 번 받았다고 그것이 계속 유지되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계속 유지 되려면 그것을 유지할수 있도록 평소에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늘 좋을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저런 문제들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평소에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으면 문제가 다가올 때에 그것을 감당할 힘이 없어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꼭 문제만 있어야 기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문제를 만나기 전에 오히려 기도로 많이 저축을 해 놓아야 실력이 되어 문제를 만났을 때에 능히 이겨 나갈수 있는 실력이 되어집니다. 그러니 지금 문제 없다고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아니 오히려 문제없을 때가 더 위험합니다. 왜요 문제 있을때는 그것을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없고 평안하면 긴장을 늦추어 버립니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들은 기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어찌하든 삼손이 기도합니다. 이 말은 힘을 얻을수 있는 길이 하나님께 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기도해야만이 그가 그 상황을 이길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데 어떤 기도를 합니까 ‘부르짖어’기도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며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3원수가 누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28절) 삼손이 왜 머리카락을 잘리워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잡혀가서 눈이 빼이고, 맷돌을 돌리는 이런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까 들릴라가 자기 원수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여지 없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알았다면 그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하고 보니까 그 원수가 들릴라라는 것이 발견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수를 갚으려 합니다. 여러분! 내 원수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있는 힘을 쓰지 못하도록 힘을 쓰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원수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의 육신을 편하게 하는 것이 원수입니다. 내가 좋은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원수입니다. 내 맘대로, 내 고집대로 하려는 것이 우리의 원수입니다. 이제 우리도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그 원수 갚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앞에서 보라는 듯이 믿음으로 사는것입니다. 그것을 쳐다보는 원수 마귀 사탄이 배가 아플정도로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아무리 원수 마귀가 와서 별의별 짓을 다한다고 해도 꺼덕하지 않을 때 원수를 억울해 죽습니다. 괴로워죽습니다. 원통해 죽습니다. 원수 갚읍시다.
4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29절) 삼손이 상황을 보니까 이번의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 회복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단호한 결단을 했습니다. ‘이번만’ 그렇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맞다 싶으면 즉시 돌아서야 합니다.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돌이킬 기회가 계속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주어진 기회를 마지막 내가 회복할 기회로 알고 결단하면 됩니다. 결단해 보십시다. 5함께 죽어야 합니다(30절 )
그런데 그 결단이 어떤 결단이 되어야 하는가하면 보통결단 가지고는 안됩니다. 삼손이 어떤 결단을 합니까 죽기로 결단을 합니다. 살려고 하면 죽습니다. 절대 살지 못합니다. 내 육신을 죽이고, 내 고집을 죽이고, 내 편안함을 죽이고, 내 정욕을 죽이고, 내 교만을 죽이고, 내 혈기를 죽이고, 내 자만을 죽이고, 내 이기심을 죽여야 합니다. 내 속이나, 밖에 있는 갖가지의 들릴라를 죽이고자 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죽을 때 그도 죽는것입니다. 심지어 내 육신의 생명까지도 주님앞에 내어놓고 나가야 합니다. 문제는 죽고자 결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죽고자하면 산다고 했습니다.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 면 찾으리라 이 결단만 있으면 우리들은 다시 힘을 회복할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내 속에 있는 힘을 쓰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삼손같이 그런 모습들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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