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릴라를 사랑하지 맙시다 (삿16:15-30)
본문
우리 성도들에게는 힘이 필요합니다. 힘이 있어야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은 세상의 권세나 물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 인생에 큰 힘입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원동력은 힘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로부터 공급받은 은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수 없다는 것은 전도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고 사는 것도 사랑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힘이 있어야 목회도 합니다. 힘이 있어야 믿음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떤 것을 준비하고 계획해도 힘이 없으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먼저 힘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를 만난 사람은 새 힘을 얻습니다. 삼손은 힘의 상징입니다. 누구나 힘이 있으면 ‘삼손’과 같이 힘이 세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사였습니다. 당시는 왕도, 선지자도 없었기에 사사가 왕과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사는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어서 이 땅을 다스리는 독특한 직분입니다. 많은 사사 중에서도 삼손은 가장 힘있는 자였습니다. 그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사자를 염소 새끼 찢음 같이 죽였습니다”(삿14:6) 또 나귀 턱뼈로 일 천명을 죽였고, 성문 짝을 뽑아서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삿16:3) 누구도 힘있는 삼손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이길 수 없는 아주 강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은 나실인 이었습니다. 나실인은 ‘구별되다, 거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나실인은 몇 가지금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 머리를 자르지 않아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세상의 즐거움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시체를 만지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더러운 것을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은 더러운 것, 없어질 것, 썩어질 것들을 가까이 하면 좋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다 썩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에 깊이 빠져 있으면 깨끗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 되라”고 권면 하고 있습니다.
셋째, 독주를 금했습니다. 이는 세상에 취하거나,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실인의 표시는 머리에 있었습니다. 삼손이 힘이 있었지만 그 힘의 비결은 머리에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 그분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삼손의 머리카락이 잘렸습니다. 즉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는 힘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원수들 앞에서 두 눈이 빠지고 맷돌 돌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힘을 잃고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머리카락이 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일하다가, 버스 타다가 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로서 어디에서나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1.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들릴라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리는 이유는 그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들릴라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들릴라‘는 세상, 썩어짐, 쾌락의 상징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마음도 빼앗으려는 존재가 있습니다.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들릴라를 찾아야 합니다. 본문 15절 말씀에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라고 하면서 마음을 파고 들어왔습니다. ‘들릴라’에게서 자신을 지키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고 지키지 못하니 하나님이 주신 힘을 상실한 것입니다. 16절 에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힘은 단순한데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요즘 사는 것이 죽을 지경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무엇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까 들릴라 즉 세상에 빠지면 즐거울 것 같은데 결국은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들릴라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내 속에 파고 들어오는 들릴라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 욕심입니다. 명예입니다. 물질입니다. 신앙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성도들은 들릴라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과 신앙을 순수하게 잘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번뇌했다”는 것은 마음이 나뉘어 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반절, 들릴라에게 반절, 이렇게 마음이 나뉘어지니 번뇌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마음을 먼저 복된 쪽으로 돌려야 합니다. 들릴라는 한번 침투하면 마음이 나뉘어집니다. 힘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이 나뉘어지면 기도도 안됩니다. 예배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나뉘어져 있는데 원수인 블레셋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힘을 잃어버린 사람은 결코 은혜를 누릴 수 없게 됩니다.
2. 그럼 마음을 들릴라에게서 지킬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소극적으로 말하면 들릴라를 못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 됩니다. 사람은 두 가지를 다 할 수 없습니다. 한 쪽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한쪽을 소홀하게 여깁니다. 양쪽으로 신경을 쓰다보니 마음이 나뉘어지고 번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내를 두명 둔 사람은 “저리 갔다, 이리 왔다”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힘을 잃습니다. 마음이 나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비난만 받습니다. 솔로몬은 아내를 1000명을 두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나중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고, 그 영화로움과 풍성한 은혜를 잃어버리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들릴라가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힘의 원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 인간을 사랑하는 것 즉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기에 전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말씀하는 데 그것이 곧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불쌍한 영혼이 천국을 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하여 노력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들릴라 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들릴라에게 빠지니 자꾸 번뇌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번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을 사랑하자!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자! 고백한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곧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이 순수합니다. 자신을 잘 지키는 자입니다. 날마다 기쁨과 확신 속에 살아갑니다. 들릴라 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하는 것은 능력이 될 수 없습니다. 힘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머리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곧 거룩과 성결을 지키고 사명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은혜를 잃습니다. 힘을 잃게 됩니다. 20절에 “삼손이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실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들릴라 에게 빠지고서도 아직 힘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내가 큰소리치고 자신감이 넘쳐도 이 순간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면 힘을 잃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떠나면 무너지고 맙니다. 삼손처럼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되고 맙니다. 넘어지지 맙시다. 넘어지는 것은 패배입니다. 씨름선수가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상대방보다 먼저 넘어지면 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일들을 계획해도 넘어지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떠나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엡6장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진리로 무장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들릴라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들릴라에게 빠지면 안됩니다. 마음이 나뉘어 힘을 쓸 수 없게 됩니다. 결국 넘어지게 되고 맙니다. 삼손이 들릴라를 가까이 해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결국 사명을 잃고, 능력을 잃고, 얻은 것은 배신감과 좌절감, 후회뿐이었습니다.(옆 사람과 넘어지지 맙시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합시다. 아멘)
3. 하나님이 삼손에게서 떠나시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 두 눈을 잃었습니다.(21)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리고난 후 하나님이 떠났습니다. 영적인 감동과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렇게 힘있던 그는 결박당해도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원수들에게 두 눈이 빠지는 아픔과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게 되면 영적 장님이 됩니다. 영안을 상실하면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볼 것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이미 마음속에 ‘들릴라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영안을 잃으면 안됩니다. 주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은혜의 힘을 갖고 살 수 없게 됩니다.
2) 놋줄을 매었습니다.(21) 그 당시에 강한 줄은 놋줄 이었습니다. 삼손은 놋줄로 꽁꽁 묶였습니다. 모든 것이 속박된 것입니다. 자유를 잃었습니다. 기쁨도, 소망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영안이 닫히면 모든 것이 다 묶입니다. 들릴라가 한번 들어오면 이렇게 됩니다. 이 속에 빠져 있으면 비전을 잃습니다.
3) 옥중에서 맷돌을 돌렸습니다.(21) 맷돌은 사람이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소와 같은 짐승이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한 사명 받고 놀라운 힘을 얻은 삼손은 하나님이 떠나시니 짐승과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없이 들릴라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짐승과 같이 불쌍하게 사는 것입니다. 짐승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도는 들릴라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4) 원수들의 노리개 감이 되었습니다.(25) 25절에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이 감동하실 때, 그 누구도 삼손을 당해낼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힘을 잃고 나니 원수들 앞에서 노리갯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도 은혜의 힘을 잃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밟힙니다. 때로는 손가락질 당하고 노리개 감이 되고 맙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부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가리고, 복음의 역사는 막힙니다. “저런 것이 목사여 저런 사람이 어떻게 예수 믿는다고 해”이런 소리는 절대 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힘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삼손은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써커스 단이 재주부리는 것처럼 원수들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들릴라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들릴라는 처음에는 좋게 보여도 우리의 신앙을 빼앗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들릴라를 사랑하지 맙시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아멘. 목사는 목사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습니다. 성도는 성도가 가진 힘이 있습니다. 그럼 성도들의 힘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은혜입니다. 영성입니다. 능력입니다. 이 힘이 떨어지면 세상에 밟힙니다. 세상의 노리개 감이 되고 맙니다. 요즘 교회가, 목사, 장로, 성도들이 얼마나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다시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은혜와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들릴라를 내 쫓고 다시 힘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1) 주께 나가 부르짖어야 합니다.(28) 이것이 회복의 길입니다. 28절에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하고 부르짖어 간구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을 답답하게 합니까 무엇이 안됩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분명히 회복되어질 것입니다. 삼손은 실패하고 나서 이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들릴라를 사랑한 것이 이렇게 큰 상처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다시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도만이 회복의 길입니다.
2) 한번의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28)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번만’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놓치고 또 다음에 하면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결국 다시 회복의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배수의 진을 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죽게 됩니다. 주님과 영원히 상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계속 번뇌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각오해야 합니다. 실수는 이번으로 끝내야 합니다. ‘세상만 사랑했던 것’ ‘들릴라에게 빠졌던 실수를’ 이번으로 끝내야 합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4) 같이 죽기를 구했습니다.(30) 30절 기둥을 붙잡고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세상 좋아하던 것을 십자가에 장사지내야 합니다. “나의 옛 사람이 죽겠습니다. 이 한번만 기회를 나를 죽이고 달라는 것”입니다. 비장의 각오였습니다. 삼손은 살았을 때보다 더 많이 원수를 물리쳐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니 더 큰 능력, 은혜, 힘을 얻은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던 나, 들릴라에 빠졌던 나를 죽여야 새 힘을 얻습니다. 우리 모두도 들릴라에 빠질 위험이 많습니다. 언제나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달콤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가지고 있는 힘도 다 잃고, 결국 패배의 인생이 되고 맙니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신 힘을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은 ‘이번만’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더욱 크신 주의 은혜를 힘입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로부터 공급받은 은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수 없다는 것은 전도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고 사는 것도 사랑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힘이 있어야 목회도 합니다. 힘이 있어야 믿음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떤 것을 준비하고 계획해도 힘이 없으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먼저 힘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를 만난 사람은 새 힘을 얻습니다. 삼손은 힘의 상징입니다. 누구나 힘이 있으면 ‘삼손’과 같이 힘이 세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사였습니다. 당시는 왕도, 선지자도 없었기에 사사가 왕과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사는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어서 이 땅을 다스리는 독특한 직분입니다. 많은 사사 중에서도 삼손은 가장 힘있는 자였습니다. 그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사자를 염소 새끼 찢음 같이 죽였습니다”(삿14:6) 또 나귀 턱뼈로 일 천명을 죽였고, 성문 짝을 뽑아서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삿16:3) 누구도 힘있는 삼손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이길 수 없는 아주 강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은 나실인 이었습니다. 나실인은 ‘구별되다, 거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나실인은 몇 가지금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 머리를 자르지 않아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세상의 즐거움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시체를 만지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더러운 것을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은 더러운 것, 없어질 것, 썩어질 것들을 가까이 하면 좋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다 썩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에 깊이 빠져 있으면 깨끗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 되라”고 권면 하고 있습니다.
셋째, 독주를 금했습니다. 이는 세상에 취하거나,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실인의 표시는 머리에 있었습니다. 삼손이 힘이 있었지만 그 힘의 비결은 머리에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 그분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삼손의 머리카락이 잘렸습니다. 즉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는 힘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원수들 앞에서 두 눈이 빠지고 맷돌 돌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힘을 잃고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머리카락이 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일하다가, 버스 타다가 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로서 어디에서나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1.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들릴라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리는 이유는 그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들릴라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들릴라‘는 세상, 썩어짐, 쾌락의 상징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마음도 빼앗으려는 존재가 있습니다.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들릴라를 찾아야 합니다. 본문 15절 말씀에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라고 하면서 마음을 파고 들어왔습니다. ‘들릴라’에게서 자신을 지키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고 지키지 못하니 하나님이 주신 힘을 상실한 것입니다. 16절 에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힘은 단순한데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요즘 사는 것이 죽을 지경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무엇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까 들릴라 즉 세상에 빠지면 즐거울 것 같은데 결국은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들릴라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내 속에 파고 들어오는 들릴라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 욕심입니다. 명예입니다. 물질입니다. 신앙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성도들은 들릴라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과 신앙을 순수하게 잘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번뇌했다”는 것은 마음이 나뉘어 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반절, 들릴라에게 반절, 이렇게 마음이 나뉘어지니 번뇌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마음을 먼저 복된 쪽으로 돌려야 합니다. 들릴라는 한번 침투하면 마음이 나뉘어집니다. 힘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이 나뉘어지면 기도도 안됩니다. 예배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나뉘어져 있는데 원수인 블레셋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힘을 잃어버린 사람은 결코 은혜를 누릴 수 없게 됩니다.
2. 그럼 마음을 들릴라에게서 지킬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소극적으로 말하면 들릴라를 못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 됩니다. 사람은 두 가지를 다 할 수 없습니다. 한 쪽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한쪽을 소홀하게 여깁니다. 양쪽으로 신경을 쓰다보니 마음이 나뉘어지고 번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내를 두명 둔 사람은 “저리 갔다, 이리 왔다”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힘을 잃습니다. 마음이 나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비난만 받습니다. 솔로몬은 아내를 1000명을 두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나중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고, 그 영화로움과 풍성한 은혜를 잃어버리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들릴라가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힘의 원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 인간을 사랑하는 것 즉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기에 전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말씀하는 데 그것이 곧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불쌍한 영혼이 천국을 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하여 노력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들릴라 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들릴라에게 빠지니 자꾸 번뇌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번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을 사랑하자!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자! 고백한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곧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이 순수합니다. 자신을 잘 지키는 자입니다. 날마다 기쁨과 확신 속에 살아갑니다. 들릴라 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하는 것은 능력이 될 수 없습니다. 힘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머리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곧 거룩과 성결을 지키고 사명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은혜를 잃습니다. 힘을 잃게 됩니다. 20절에 “삼손이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실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들릴라 에게 빠지고서도 아직 힘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내가 큰소리치고 자신감이 넘쳐도 이 순간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면 힘을 잃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떠나면 무너지고 맙니다. 삼손처럼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되고 맙니다. 넘어지지 맙시다. 넘어지는 것은 패배입니다. 씨름선수가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상대방보다 먼저 넘어지면 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일들을 계획해도 넘어지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떠나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엡6장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진리로 무장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들릴라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들릴라에게 빠지면 안됩니다. 마음이 나뉘어 힘을 쓸 수 없게 됩니다. 결국 넘어지게 되고 맙니다. 삼손이 들릴라를 가까이 해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결국 사명을 잃고, 능력을 잃고, 얻은 것은 배신감과 좌절감, 후회뿐이었습니다.(옆 사람과 넘어지지 맙시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합시다. 아멘)
3. 하나님이 삼손에게서 떠나시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 두 눈을 잃었습니다.(21)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리고난 후 하나님이 떠났습니다. 영적인 감동과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렇게 힘있던 그는 결박당해도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원수들에게 두 눈이 빠지는 아픔과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게 되면 영적 장님이 됩니다. 영안을 상실하면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볼 것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이미 마음속에 ‘들릴라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영안을 잃으면 안됩니다. 주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은혜의 힘을 갖고 살 수 없게 됩니다.
2) 놋줄을 매었습니다.(21) 그 당시에 강한 줄은 놋줄 이었습니다. 삼손은 놋줄로 꽁꽁 묶였습니다. 모든 것이 속박된 것입니다. 자유를 잃었습니다. 기쁨도, 소망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영안이 닫히면 모든 것이 다 묶입니다. 들릴라가 한번 들어오면 이렇게 됩니다. 이 속에 빠져 있으면 비전을 잃습니다.
3) 옥중에서 맷돌을 돌렸습니다.(21) 맷돌은 사람이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소와 같은 짐승이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한 사명 받고 놀라운 힘을 얻은 삼손은 하나님이 떠나시니 짐승과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없이 들릴라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짐승과 같이 불쌍하게 사는 것입니다. 짐승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도는 들릴라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4) 원수들의 노리개 감이 되었습니다.(25) 25절에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이 감동하실 때, 그 누구도 삼손을 당해낼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힘을 잃고 나니 원수들 앞에서 노리갯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도 은혜의 힘을 잃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밟힙니다. 때로는 손가락질 당하고 노리개 감이 되고 맙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부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가리고, 복음의 역사는 막힙니다. “저런 것이 목사여 저런 사람이 어떻게 예수 믿는다고 해”이런 소리는 절대 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힘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삼손은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써커스 단이 재주부리는 것처럼 원수들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들릴라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들릴라는 처음에는 좋게 보여도 우리의 신앙을 빼앗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들릴라를 사랑하지 맙시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아멘. 목사는 목사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습니다. 성도는 성도가 가진 힘이 있습니다. 그럼 성도들의 힘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은혜입니다. 영성입니다. 능력입니다. 이 힘이 떨어지면 세상에 밟힙니다. 세상의 노리개 감이 되고 맙니다. 요즘 교회가, 목사, 장로, 성도들이 얼마나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다시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은혜와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들릴라를 내 쫓고 다시 힘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1) 주께 나가 부르짖어야 합니다.(28) 이것이 회복의 길입니다. 28절에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하고 부르짖어 간구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을 답답하게 합니까 무엇이 안됩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분명히 회복되어질 것입니다. 삼손은 실패하고 나서 이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들릴라를 사랑한 것이 이렇게 큰 상처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다시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도만이 회복의 길입니다.
2) 한번의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28)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번만’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놓치고 또 다음에 하면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결국 다시 회복의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배수의 진을 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죽게 됩니다. 주님과 영원히 상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계속 번뇌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각오해야 합니다. 실수는 이번으로 끝내야 합니다. ‘세상만 사랑했던 것’ ‘들릴라에게 빠졌던 실수를’ 이번으로 끝내야 합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4) 같이 죽기를 구했습니다.(30) 30절 기둥을 붙잡고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세상 좋아하던 것을 십자가에 장사지내야 합니다. “나의 옛 사람이 죽겠습니다. 이 한번만 기회를 나를 죽이고 달라는 것”입니다. 비장의 각오였습니다. 삼손은 살았을 때보다 더 많이 원수를 물리쳐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니 더 큰 능력, 은혜, 힘을 얻은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던 나, 들릴라에 빠졌던 나를 죽여야 새 힘을 얻습니다. 우리 모두도 들릴라에 빠질 위험이 많습니다. 언제나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달콤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가지고 있는 힘도 다 잃고, 결국 패배의 인생이 되고 맙니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신 힘을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은 ‘이번만’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더욱 크신 주의 은혜를 힘입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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