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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 이스라엘아! (호5:1-15)

본문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진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죄 가운데서 돌이킬 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며 답답해하시는 하나님의 모습도 엿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잘못한 아이를 꾸짖는 아버지의 지엄함으로, 죄인을 친히 심문하기 위해 나선 왕의 근엄함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말씀은 1절에 기록된 들으라, 깨달으라, 귀를 기우리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들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 말씀들 입니다. 이렇게 동일한 의미를 지닌 말씀들을 거듭 반복해서 사용하심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이미 4:1절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4:1절은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그러나 이 정도의 이야기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듣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돌이키는 것도 없습니다. 무감각해 진 것입니다. 그래서 5장에서는 거듭 반복해서 이것을 강 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 기서 거듭 반복되는 이 말씀은 저들의 돌이키지 않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노 해 하시는 가를 말하고 있는 말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래 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지 않을래 하는 정도 의 권유가 아닙니다. 간곡한 부탁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명령입니다. 마치 임금이 죄 지은 신하를 국문 하면서 네 죄를 네가 알렸다 고 하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실직고 하렷다 고 호령하시는 음 성과 같은 말씀입니다. 깨달아야 할 것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고 깨닫고 귀를 기울여야 할 것 일은 무엇입니까 1 절은 그것에 대해서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장래가 어둡다는 말입니다.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듣고 깨닫고 귀를 기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파멸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의 실상을 바로 깨닫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모습 이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평안히 있어도 좋은 그런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는 데 먹고 마시고 취해 있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까 여러분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 시겠습니까 금식을 선포하고 회계의 운동을 벌려야 할 것입니다. 옷과 마음을 찢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들을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더욱더 깊은 죄악의 길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평 안하다, 안전하다. 외치고 있 었습니다.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 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이렇게 이스라엘은 홀연히 임할 고통 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는 안타까움이 되었습니다. 아니 이제 안타까움에 앞서 진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듭 저들에 게 심판이 있을 것을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절 에서 거듭 반복해서 들으라 깨달으라 귀를 기우리라 고 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 하나님께서도 여러분들을 향해 이렇 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겠습니 까 들으라 아무개 집사야, 들으라 아무개 성도야 이렇게 여러분들을 향해 간곡하게 부르시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무감각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인생에 파멸이 있음을 예고하고 계시 고 더 이상 그렇게 하면 안된다 고 경고하고 계심에도 평안하다 안전하다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여러분 들이 어떻게 하여야 할지 깨달 으십시오. 하나님의 이런 부르심을 묵살하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심판의 이유
그렇다면 여러분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심판이 임하게 되었을 까요 1절은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의 지형과 당시의 정황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해 드립니다. 여기 1절에 소개되고 있는 미스바나 다볼은 사냥터로 유명한 대표적인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 산에 오르면 곳곳에 들짐승을 잡기 위해서 함정을 파 놓기도 하고 날으는 새를 잡기 위해서 그물을 쳐 놓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이 사실에 이스 라엘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도 그렇게 함정들을 파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함정에 실은 누가 빠진 격이 됩니까 그렇 습니다. 이스라엘이 빠진 격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판 함정에 제가 빠진 격 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 놓은 함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죄악을 상징적으로 나타 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십 시오. 자신들의 죄로 인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이 그 올무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만 것입니다. 죄는 스스로 함정을 판다 여기서 우리는 죄의 속성을 알 수 있습니다. 죄는 스스로 함정을 만들어 가는 능력 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죄에 대한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 수 록 그 함정은 깊어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죄를 짖기 시작을 하면 그 죄에서 해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나의 발목 이 죄에 잡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포주들이 윤락 여성을 묶어 두는 방법을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도망 칠 수 없도록 많은 빗을 지게 합니다. 이 빗을 갚으면 풀어 주겠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처음에는 속습니다. 계산이 섭니다. 그래 눈 꼭 감고 얼마 동안만 이 일을 하면 나갈 수 있겠지 그래서 풀려 나가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자신의 계산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알 게 됩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 록 자신의 빗은 더 늘어만 갑니다. 자신의 계산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빗이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많아집니다. 마치 눈덩이가 커지는 것처럼 그렇게 커져만 갑니다. 바로 이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우리들이 처음 죄를 지을 때는 겁이 납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하고 입이 마르기도 합니다. 양심은 계속 말합니다. 이래서는 않되 죄를 짖지마 그러나 죄에 대한 경력이 쌓이면 쌓일 수록 점점 죄가 재미있습니다. 이제는 신나기까지 합니다. 마치 취미 생활을 하는 것처럼 하고 싶기까지 합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처음 주일을 빠질 때는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큰일 날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는 계속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는데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주일 빠지는데 경력이 쌓이면 이제는 당연히 주일은 거르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집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속성입니다. 죄는 우리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우리들의 영혼을 잡습니다. 그래서 꼼짝할 수 없도록 합니다.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들어 갑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 여러분 중에서도 이런 죄의 함정에 깊이 빠져 있지 않습니 까 어떤 죄의 습관에 길들여 져서 이제는 그것이 재미있고 즐겁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단단히 붙들린 것입니다. 죄 의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판 것입니다. 단단히 붙들린 것입니다. 혹 이렇게 말씀하 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그래도 괜찮은데요 예 그래도 괜찮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처 음 죄를 지었는데 난리가 났더 라 그러면 누가 죄를 짖겠습니까 아무도 죄 지을 생각을 한 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들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도 괜찮게 합니다. 주일을 빠져도 괜찮습니다. 거짓말을 해도 괜찮습니다. 도 둑질을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나는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저 깊고 깊 은 죄의 함정으로 빠져들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내 스스로 어찌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덜컥 탈이 나고 맙니다. 바로 이것이 죄의 속성이 며 사탄의 작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일을 빼먹어도 일이 잘 될 것입니다. 거짓말 을 하면 더 일이 잘 될 것입니다. 도둑질을 하면 더 부자가 될 것입니다. 왜요 이것이 사탄의 작전이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끝까지 괠찬을 것이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되 면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어 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돌아갈 수 없는 이스라엘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다. . 여기서 말하는 저희들의 행위는 무엇입니 까 그렇습니다. 저들의 죄악 을 말합니다. 이 죄악이 어떻게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저들을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 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욀까 요 그렇습니다. 발목이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함정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죄의 함정 에, 사탄의 함정에 깊이 빠짐으 로 인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이렇게 한 번 죄에 붙잡히면 돌아 갈래야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일들일 벌어지고 맙니다. 또 보실까요 7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 중에
그러므로 이하에 말씀을 보도록 하죠 새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삼키리로다 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무엇을 삼킵니까 예, 달이 이 스라엘 백성들과 기업을 삼킬 것이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 것인가 참 고민스러운데요. 이렇 게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달의 모습이 매일 변하는 것을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초승달에서부터 시 작을 해서 보름달로 커졌다가 25일 달로 끝을 맺습니다. 달이 이렇게 변하는 것을 눈으로 살필 수 없을 만큼 서서히 변화를 합니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보면 달이 초승달이 되어 있고 보름달이 되어 있고 또 25일 달이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삼킴 바 된 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사그러져 간다는 것입니다. 왜죠 그렇 습니다. 죄에 붙잡힌 결과입니다. 달이 이렇게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변화를 하는 것처럼 죄에 붙잡힌 이스라엘 백성 들도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 이에 이렇게 삼킴 바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죄에 붙잡히지 마십시오. 한 번 죄에 붙잡히면 여러분들이 좀처럼 그곳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죄에 붙잡히지 않도록 힘쓰는 여러분 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떤 죄의 붙잡혔을 까요 행음 3절을 읽습니다.  저들이 빠진 죄가 어떤 것입니까 행음이라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 은 종종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부부 관계로 표현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행음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 시고 살아야 할 신부가 하나님 이 아닌 다른 것들을 남편으로 모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악이었습니다. 그래서 7절은 이 렇게 말합니다. . 무엇을 낳았다고요 예, 사생자를 낳았다고 말합니다. 여기 사생자란 남 편이 인정할 수 없는 아이를 말합니다. 사실 이런 아이가 이 말씀을 전하는 호세아에게 도 있었습니다. 호세아의 아내 가 누구였습니까 그렇습니다. 고멜이었습니다. 고멜은 어떤 사람입니까 음행한 여인 이었습니다. 그는 자주 호세아 와의 관계가 아닌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아이를 낳았던 사람입니다. 따라서 호세아 의 가족 중에도 이런 사생아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사생아를 낳아 데리고 들어올 때마다 호세 아의 마음은 어떻했겠습니까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마땅히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이 스라엘 백성들이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면서 사생아를 낳았을 때 하나님의 마음 역시 무 너져 내리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종종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남편이 많 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사마리아 여인을 잘 알 고 계실 것입니다. 그는 한 사람의 남편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남편을 두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을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과연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들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만 다음으로 이들이 붙잡혔던 죄악은 어떤 것일까요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교만을 죄악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이란 실은 뒤에 언급을 하고 있는 에브라임을 말합니다. 그렇 다면 이들의 교만은 어떤 것일 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있었던 지역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도 지역에 따라서 지역 감정이 있는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 민족들도 우리들과 같이 지역 감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에는 열 두 지파가 있었습니다. 이 열 두 지파는 요셉 의 열두 아들의 후손들로서 각 아들 하나가 한 지파씩 차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열두 지파는 때로 협력을 하기도 하고 때로 마찰하기도 하면서 이스라엘 나라를 형성해 왔습니다. 이 열두 지파의 알력 중에서 특별히 두드러졌던 지 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였습니다. 이 두 지파는 늘 경쟁적인 관계를 가졌습니다. 가나안 에 들어가서 땅을 나눌 때도 에 브라임 지파는 유다 지파 보다 땅이 적은 것에 대해서 불평을 했었고 기드온 때도 자신 들에 대해서 대우를 잘 못한다는 사실로 인해 불평을 했었습니다. 또 유다 지파였던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도 다윗을 따르지 않고 사울의 이스보셋 을 따랐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배반할 때도 이 에브라임 지파가 주동이 되었으며 솔로몬을 반 대하여 북이스라엘을 세운 지파도 바로 이 에브라임이었습니다. 이처럼 에브라임은 스 스로 교만해서 나라까지 나누었 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패망의 길로 인도를 했었습니다. 바로 오늘 여기 본문에서 지적 을 하고 있는 교만이란 이 일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교만함으로 인해 사실은 나라가 두 동강이가 났고 결국 북 이스라엘도 남유다도 멸망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교만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도 크다는 것입니다. 유다지파만 큰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들의 교만이 되어서 저들을 넘어지게 하고 저들을 패망의 길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6:18)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혹 교만하지 않습니까 농촌에 교회가 세워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활을 본 그 동네 유지 한 사람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수감사절이 되어 쌀 두 가마를 헌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 후로는 이 사람이 교회에 출석 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궁금해서 무슨 연고인지 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성찬식에 그만 시험이 들어 나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내가 그래도 쌀 2 가마를 바쳤는데 그 눈꼽 만한 빵 한 조각도 안주고 자기들끼리 만 먹어." 사람은 이 처럼 자기를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들 을 넘어지게 합니다. 앞으로 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 사랑하는 교회에 직분자들을 세우 게 됩니다. 마디장, 교사, 제 직, 위원장, 부장 등을 임명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을 할 때가 되면 늘 걱정이 앞섭니다. 혹 이 일로 넘어지는 사람 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입니다. 왜 넘어지게 됩니까 나도 할 만한데 왜 시키지 않는가 하는 것일 것입니다. 또 누구는 무엇 무엇이 되었는데 나는 이게 뭐냐는 것 때문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시 험에 들지 않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시험에 들면 어쩔 수 없지, 차라리 이런 일로 시험을 받을 사람이라면 안 세우길 잘 했어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만입니다. 이런 교만이 바로 이스라 엘 백성들을 넘어지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런 일에 넘 어지지 마십시오. 지계표를 옮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로잡혔던 죄악은 또 무엇일까요 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 유다의 방백들은 어떠하다고요 예, 지계표를 옮기는 자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계표란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정하여 준 땅의 경계선 을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각 지파에게 땅을 나누 어 준 경계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옮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여 준 것에 대해서 항거하는 것임으로 죄악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명기 27:17절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그런데 오늘 본 문에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예, 유다의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다고 말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의 죄악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여 준 것 이상의 것을 원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 면 이들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욕심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정하여 준 것 이 상의 것을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여 준 것에 대해서 자족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소유가 적음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다른 사람 들의 것을 탐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 께서 허락하신 여러분들의 환경에 대해서 자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예수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이나 여건에 대해서 불만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줄 알고 그 가운데서 자족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단히 안타 깝게도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자신의 삶의 환경에 만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별로 없습니다. 대 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불만을 품고 살아갑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는 이런 환경을 주셨을까 하면서 불만스러워 합니다. 이것은 지계표를 옮기는 행위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자신에게 어떤 환경이 주어 지든지 감사함으로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데는 나름대로의 뜻이 있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진정으로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감사하십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들이 이스라엘에게 있었습니다. 이것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목을 잡 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죄악들 에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 엘 백성들은 그것이 잘못되어졌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1절에서 안타깝게 들으라, 깨달으라, 귀를 기울이라 고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미 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하나님께서 취하신 조치가 무 엇입니까 12절을 읽습니다. . 하나님께서 무엇이 되셨다고요 예, 좀이 되고 썩이는 것이 되 었다는 것입니다. 좀이 한 번 슬기 시작을 하면 곳곳이 삭기 시작을 합니다. 한번 음식 이 썩기 시작을 하면 순식간에 썩고 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무서운 죄를 바라보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응
그렇다면 이 일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무엇이겠습니까 13절을 읽습니다.  에브라임이 어떻게 했다고요 예, 깨달았 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어떻게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질병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렇게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이 문제를 처 리하고 있습니까 앗수르로 사람을 보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 들이 어떻게 이 문제를 처리하여야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옳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나 아가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웃 나라에 가서 도움을 청합니다. 이것은 바른 문제의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문제 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지만 처 방을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오늘 이 이스라엘 백성들 의 모습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상태를 보고 이대로는 안돼겠다. 이대로 가면 무슨 일이 나도 날 것이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들이 영 잘못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을 심방해서 신앙 상담을 하다 보면 제가 어떤 문제를 지적하기 이 전에 벌써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의 해결을 위해 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문제들 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매어 달려야 합니다.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성도들이 자 신들의 문제를 하나님께 내어 놓고 매달리는 성도들이 몇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 떻습니까 하나님께 매어 달리 십니까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같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통하고 있습니까 혹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 들과 같이 어리석은 여러분들은 아닙니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엉뚱한 곳을 향해 달려 가는 여러분들은 아닙니까 아 닙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로 달려나오십시오. 하나님만이 여러분들의 해결 입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 이렇게 간절히 돌아올 것을 뿌리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14절을 보십시다. .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예, 젊은 사자 같을 것이다고 말씀 하십니다. 젊은 사자가 달려들 때 누가 감이 대항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저들을 징계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오늘 말씀은 여 기서 끝맺지 않고 있습니다. 15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내가 내 곳으로 돌 아가서 마치 사자가 사냥을 마치고 자신의 굴로 돌아가는 듯한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돌아가 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와 함께 거하셨습니다. 그것의 상징이 무엇이었 습니까 그렇습니다. 성전이 그것의 상징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처소에 서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계심 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곳에 떠나 원래의 곳인 하늘의 처소로 돌아가시겠 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 해 보십시다. 이제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캄캄한 암흑만이 흐르는 저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존귀함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존귀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하나님께서 저들을 떠나가십니다. 하나님의 처 소로 돌아가십니다. 캄캄한 암 흑인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 15절을 읽습니다. 저희 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 겠다는 것입니다. 얼마간의 어 두움이 계속될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던 것처럼 그런 어두움 의 세월들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 것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렇 게 보면 이 어두움의 세월들을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것을 통 해 하나님께 돌아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아마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도 많은 분들이 이 어두움의 세월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오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어두움의 세월은 우리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죄의 깊이 빠져 있는 우리들이 그 죄의 함정 에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오기를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돌아서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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