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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히 서 가고 (행9:31)

본문

거센 바람이 부는 어느날 차를 타고 거리를 달린 일이 있었습니다.나무가 뽑히고 간판이 날아가는 거센 바람이었습니다.자동차도 바람의 저항 때문에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저는 그때 차안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만일 이 바람이 30층이나 40층 건물을 쓰러트리는 초강풍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가장 든든한 것은 가장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폭풍우가 휘몰아쳐도 그 뿌리가 뽑히지 않는 나무가 든든히 서 있는 나무인 것이며 태풍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 집이 든든한 집인 것입니다.  하와이 섬중의 하나인 카우아섬을 태풍이 강타했습니다.어떤 집은 송두리채 무너졌고 어떤 집은 지붕이 연 날아 가듯 날아가 버렸습니다.평온할 때는 똑같은 집이었고 안락한 보금자리였습니다.그러나 태풍이 불어 닥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잘 지은 집이나 든든히 세운집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지만 허술한 집은 무너졌습니다.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100층 건물도 흔들리면 위험한 것처럼 제 아무리 크고 많이 모여도 흔들리는 교회는 바람직스런 교회가 못 됩니다. 제 아무리 교회 다닌 연륜이 길고 맡은 일이 커도 흔들리면 좋은 신자가 못됩니다. 우리는 본문 한 구절 속에서 든든한 교회의 모습과 든든한 신앙의 형편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1.평안한 교회입니다. 본문을 보면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평안은 여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성읍이 평안하다든지(왕하 11:20),나라가 평안하다든지(대하 14:5),사람이 사는 땅이 평안하다든지(사 14:7)하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평안하다고 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심령의 평안입니다.그리고 그 평안은 샘처럼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4:27을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6:23에서 평안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평안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찾아야 합니다.평안의 출처는 하나님이십니다. 유대인들이 이해한 평안 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쉰다는 것입니다. 걱정없이 두려움없이 쉬는 것이 평안한 것입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365일 24시간을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쉴 때도 있고 놀러간 때도 있습니다.그러나 백퍼센트 일이나 교회를 잊어버릴 수는 없습니다.경치를 구경해도 설교를 생각하고 꿈을 꾸어도 교회 꿈을 꾸며 잡니다. 몇 년전 가까운 친구 목사 몇 사람이 긴장도 털어 버리고 피곤도 풀겸 구라파와 성지를 다녀오기도 하고 여행을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떠나기 전 몇 가지 다짐들을 했습니다.이번 여행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여행을 하자.아는 사람도 만나지 말자.심각하고 부담스러운 대화나 토론도 하지 말자.양복이나 넥타이도 가지고 가지 말자.그래서 이번 여행 표어는 먹자 놀자 자자 로 하자는 등 여러차례 다짐을 했습니다. 첫 목적지에 도착해서 안 것입니다만 각자 가방속엔 각각 와이셔츠며 넥타이며 양복이 몰래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안에서는 신학토론,밤에는 부흥회,통성기도,목회사례 발표로 밤이 새는 줄을 몰랐습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는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때 여행하면서 듣고 보고 배운 것들을 지금도 가끔씩 인용하거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평안한 것은 쉬는 것입니다.그러나 오랫동안 쉬면 안됩니다.그리고 할 일이 없어서 쉬는 것은 고문이며 고역입니다. 쉬는 것도 일하면서 쉬어야 합니다. 제 주변에는 목회를 하시다가 은퇴한 선배 목사님들이 있습니다.놀라운 것은 은퇴후에도 계속 바쁘게 일하고 활동하는 분들은 건강하고 활기가 넘쳐 있지만 하는 일이 없이 소일하는 분들은 수척해 질뿐만 아니라 몰라보리만큼 노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쉬는 것은 필요합니다.여가도 필요하고 휴가도 필요하고 오락도 필요하지만 아주 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 역시 영원히 쉬는 곳입니다만 그러나 우두커니 앉아서 쉬는 나라는 아닙니다.그곳도 영적 활동이 있습니다.예를 들면 찬송과 교제가 그것입니다.참으로 쉬는 것은 마음이 평안할 때 가능합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6시에 출근하고 회사에서 밤을 지새며 10년동안 휴가 한번 가본 일이 없이 회사를 키운 사장이 있었습니다.회사 경리 책임자의 잘못으로 문제가 일어나 10여일 구치소에 수감된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편합니까.5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밤샘을 하지 않아도 되고 거래처에 전화를 걸지 않아도 되는 10일 동안을 그가 어떻게 표현한 줄 아십니까.“그 10일은 지옥이었습니다.단 하루밤도 편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습니다.원망과 증오심 그리고 걱정과 분노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그러나 믿음때문에 그 고통을 인내하고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라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습니다. “주 날개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평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밑 즐거워라 그 사랑 끊을자 뉘뇨 주 날개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이 찬송은 찬송 작가 구싱이 읊은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항구적 쉼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안전한 것을 평안이라고 이해 했습니다. 며칠전 부자동네 큰 대문이 있는 골목을 지나는데 동행했던 사람이 “요즘 이 집 잠 못잘거요”라고 말했습니다.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불안해서 그럴꺼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 큰 집에 높은 담장에 세파트와 토사견이 두 마리씩이나 있고 경비원이 있고 관리인이 있는 집이라는데 뭐가 불안해서 잠을 자지 못하느냐고 했더니 사정 리스트에 찍혔다는 얘기였습니다. 여러분,평안한 것은 언제 어디에 있어도 평안한 것입니다.언제 어디서나 안전한 곳이 있습니까 시인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나의 산성,나의 피할 바위 그래서 나는 그에게 피했노라 나는 거기서 안연히 쉬기를 원하노라”고.
셋째 하나가 되는 것을 평안이라고 이해 했습니다. 부부관계를 예로 들겠습니다.둘이 하나가 될 때 행복하고 평안합니다.두 사람이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삶의 태도가 다르면 함께 살기가 힘들게 됩니다. 한 사람은 된장찌게 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을 하는데,한 사람은 그 냄새만 맡으면 생기가 돈다면,한 사람은 흰색 커튼을 바라보면 노래가 절로 나오는데 한 사람은 흰색 커튼만 바라보면 실신을 한다면…… 둘이 하나 되는 것이 평안한 것입니다.어떻게 둘 셋 열이 하나가 됩니까 바울은 에베소서 2:14-17에서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십자가로 둘을 하나로 만들었으며 원수된 것도 십자가로 소멸하셨으며 둘을 화평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둘이 하나가 되는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처럼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이 날마다 평안하기를 축원합니다.

2.주를 경외하는 교회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인격적 존재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추상적,가상적으로 여기는 것은 경외가 아닙니다.살아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 나와 대화가 가능한 실존자로 믿는 것이 경외입니다.
둘째 주를 높이는 것입니다. 주님 자신은 스스로 낮추셔서 세상에 오셨습니다만 우리가 주님을 낮추거나 과소평가 해서는 안됩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으로 높이는 것,그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는 분으로 섬기는 것이 경외입니다.
셋째 사랑하는 것입니다. 맹종은 덮어 놓고 따라가는 것이고 굴종은 비굴한 태도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은 기쁨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참된 경외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남편 말이라면 꼼짝 못하고 순종하는 아내가 있습니다.무슨 일이나 무슨 말이나 순종했습니다.그러나 그녀가 순종할 때마다 속으로 뇌까리는 말이 있었습니다.그것은 “내가 팔자가 더러워서 네 말을 듣고 있다만 잠잘 곳과 먹을 것과 살아갈 능력만 있으면 끝장이다”라고. 그것은 존경도 사랑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외하는 사람은 아쉬울 때만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사흘동안 저를 찾아와 어떤 어려운 부탁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박목사님을 존경한다는 둥,사모했다는 둥,능력을 믿는다는 둥,영원히 잊지 않고 은혜를 갚겠다는 둥,그 바람에 그를 도와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전화 한통도 저에게 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그래선 안됩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경외합시다. 그리고 주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합시다.그것이 인격적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3.성령님의 위로가 있는 교회입니다. 위로가는 말의 헬라어 원문의 뜻은 가까이 있는 가까운 관계 라는 것입니다.슬픔을 당한 사람에겐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보다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사람의 위로가 더 큰 법입니다.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해주는 위로가 힘이 있는 것입니다. 사업 실패로 절망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이리뒤척 저리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채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가족들은 텔레비젼 앞에 앉아 코미디 프로그램을 들여다 보면서 손뼉을 치고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산 친구로부터 전확가 걸려 왔습니다.위로와 격려의 전화였습니다.그의 가족은 가까이 있으나 먼 사람들입니다.그러나 부산 친구는 멀리 있으나 가까운 사람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누가 날마다 내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 그리고 나와 변함없는 관계를 맺으며 도움을 주고 힘을 주고 위로를 줄 사람이겠는가를…… 초대교회는 성령님 하나님의 위로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서 갈수 있었습니다.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 우리 곁에 성령님으로 임재해 계십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에서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그리고 1:4에서는 “모든 환난중에서도 우리를 위로하사 환난을 이기게 하시고 환난당하는 다른 사람들도 위로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건드리지 맙시다.다른 사람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 됩시다. 든든히 서 가는 교회는 평안합니다.주님을 경외합니다.성령님의 위로가 넘칩니다. 든든한 신앙 역시 평안합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주님을 경외하고 위로받고 위로하며 삽니다. 든든히 서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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