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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히 서가고 (행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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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이상적 교회를 꼽는다면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 초대교회가 될 것입니다.초대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은 빈약했습니다.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골고루 갖춘 교회였습니다.그러기에 늘 초대교회에 대한 향수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지니고 있었던 특징들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1.성령님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사도행전에서만 찾으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성령님은 천지창조 당시 여호와 하나님의 신 으로 역사하였고 요셉을 감동하사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왕에게도 임재하셨고 예언자와 선지자들에게 그리고 마리아에게 주의 제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특정집단에 임재하신 것은 사도행전 2장의 경우입니다. 오순절 성령님강림 이전의 교회와 이후의 교회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구심점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란 속된 표현을 빌리면 어중이 떠중이가 모여 이합집산이 심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꿰뚫고 꿰메는 축이 필요하고 바늘이 필요한 법입니다.성령님의 능력은 그것을 가능케 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사도행전 2:5이하를 보면 당시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아라비아,바대,메데,메소포다미아,애굽,구레네,리비야 등 각처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인종 전시장이었고 언어 전시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성령님강림과 함께 방언이 시작되었습니다. 2:11을 보면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다 우리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라며 놀랐다고 했습니다.성령님의 능력은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려 주신 것입니다. 교회는 신령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신령한 사건과 신령한 언어가 통해야 합니다. 2:4을 보면 “저희가 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야 신령한 힘이 넘치게 되고 그 힘이 넘쳐야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충만이라는 헬라어는 플렐로오(plerow)입니다. 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꽉 채우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은 텅 빈 심령 텅빈 교회를 꽉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2 평평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모난 마음을 평평하게 하십니다. 계층간의 갈등을 평평하게 만드십니다. 교회안의 불화나 반목을 평평하게 만드십니다. 3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감화와 영향을 줍니다.그래서 사람들의 감동받고 새로운 삶을 결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만족하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야 참 만족을 누리고 감사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충만하면 만족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5 확증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고 증거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이상과 같이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면 신령한 힘이 솟구치고 그 힘이 교회와 가정을 새롭게 해 주는 것입니다.
2.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42을 보면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맞벌이 부부가 아침,점심,저녁식사를 외식으로 처리하는 경우와 잠깐이지만 아침식사를 (커피,토스트 정도)함께 하고 그리고 퇴근후 돌아와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부부의 경우를 놓고 이혼율을 조사했습니다. 집에서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갖는 부부가 이혼율이 훨씬 적었습니다. 떡을 함께 뗀다는 것은 떡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교제에 있습니다.그것은 사랑의 표현이며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초대교회를 하나로 묶었고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 공동체 속에서 천국 지향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린 언젠가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문제는 서로 사랑하다가 들어가느냐 얼굴 붉히고 미워하다가 들어가느냐 입니다. 성령님충만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집니다. 그러나 악령은 우리네 마음을 강팍하게 만듭니다.그리고 전투적 인간으로 만듭니다. 성령님충만하고 사랑 넘치는 삶을 살아갑시다.
3.기적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성령님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납니다.앉은뱅이가 일어났고 죽은자가 살아 났고 병자들이 고침받았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오늘도 우리 교회안에서 기적을 행하십니다. 오늘도 성령님은 병든 사람들을 고치십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기적은 다른데도 있습니다.그것은 최대의 박해자,사울이 회개하고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그것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님충만한 교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4.부정이 용납되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은혜받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밭을 팔아 바치겠다고 약속한 후 적당한 구매자가 있어서 그 땅을 처분하게 되었습니다.문제는 목돈을 쥐고난 후에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5:3을 보면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님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라고 했습니다.그리고 4절 끝을 보면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몇가지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약속은 그것이 크건 작건간에 지켜야 된다는 것,
둘째는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것,
셋째는 약속을 어기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은 사단의 역사라는 것,
넷째는 베드로를 속인 것이 곧 하나님을 속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날 그 현장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베드로의 설교에 은혜 받고 베드로에게 약속했습니다.그리고 베드로에게 땅 판 돈을 가져다 바쳤습니다.이렇게 조명하면 이 사건은 베드로와 아나니아 부부의 사건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과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린 여기서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님 하나님은 그 누구도 속일 수 없습니다. 성령님충만한 교회는 부정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혹 자신이 하나님께 약속했다가 불리하거나 불이익하다는 이유로 묵살한 경우는 없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5.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열두 명으로 시작된 초대교회가 수만 명으로 성장한 것은 성령님의 역사와 초대교인들의 순교적 전도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풀러신학교 교회성장학 교수였던 맥가브란 박사는 교회 성장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구분했습니다. 1 생물학적인 성장으로 교인이 결혼해서 교인을 낳는 성장,
2 이동성장으로 도시집중이나 인구이동 현상때문에 오는 성장, 3 회심성장으로 전도해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충신 교회가 지리적 환경의 조건으로 본다면 모여드는 곳은 아닙니다.흩어지고 빠져 나가는 동네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지속성장의 은총을 누려 왔습니다.우리는 일만명 배가운동의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초대교회처럼 우리 교회도 지속 성장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흔히 쓰는 성장과 성숙이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성장은 외적현상이고 성숙은 내적 현상입니다. 성장과 성숙은 동시적이며 보완적이어야 합니다.쉽게 말하면 키도 크고 몸무게도 불어나고 철도 들고 인격도 갖춰져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초대교회가 성장했던 것처럼 우리 충신 교회도 성장하고 성숙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6.든든히 서 가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9:31을 보면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의 전도를 받아 세워졌던 유다,갈릴리,사마리아 지방에 있던 교회들이 든든히 서 갔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 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 환난에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박해받는 교회였습니다.스데반 집사가 순교했고 야고보 사도가 순교했습니다.베드로가 옥에 갇히고 교인들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농촌 타작마당에 가면 탈곡기계가 있습니다.볏단을 집어 넣으면 알곡은 떨어지고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 밖으로 떨어지게 하는 기계입니다. 신앙의 점검은 탈곡기 속에 넣어 보아야 합니다.든든한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둘째 성령님의 능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든든히 서 갈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힘 없는 사람은 스스로 설 수 없습니다.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서서 신앙의 길을 걸으려면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감정에 치우치는 것도,이성에 치우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균형과 조화와 일치를 이루게 해 주십니다.
셋째 자기 몫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흔들리는 사람은 자기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성령님의 능력은 내 심지를 곧게 해 주십니다. 그 심지가 곧아야 흔들리지 않고 자기 맡은 일을 올바로 해 내는 것입니다. 자동차 1대가 움직이는데 동원되는 부품은 자그만치 314천가지가 된다고 합니다.그 중 그 어느 것 하나만 제 몫을 못해도 차에 문제가 생깁니다. 가령 볼트 하나만 빠져도 일이 벌이집니다. 교회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는 든든히 서 가고 있습니까 겉도는 나사 못이나 부품은 아닙니까 성령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몫을 다하라”고 “네 구실을 다하라”고. 날마다 든든히 서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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