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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의 해결자 (사37: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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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은 우루과이 라운드로 말미암아 쌀수입이 개방된다하여서 국내적으로 심히 우울하던 한주간이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곳 곳에서 항의하고, 데모하고,농민 대표들이 제네바에 까지 직접가서데 모하는 여러운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농촌을 위해서 농촌 을 살려 보려고 농촌에 복음자르 전하러 가신 수천명의 목회자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걱정스럽기 그지업2씁니다. 또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 무기 개발로 인해서 매우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온 세계가 이것을 풀어 보려고 협상하지만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 게 해야합니까 어려움은 개인이나 국가나 그 시대에 따라서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고 종교마다 보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에서는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을 전생의 죄값으로 생각합니다.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 고자 노력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모든 교통이 욕심(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욕망을 제거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래서 깊은 산 에 들어가 고행을 하고,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회교에서는 고난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고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전생의 죄값으로 생각지도 않습니다. 이 고난을 피하기 위해 현실에서 떠나 산속으로 들어갈 것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고난을 여 러가지로 설명합니다. 자기의 죄값으로 당하는 고난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의 고난을 말합니다. 잘 믿는 사람 의로운 사람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분이 더 고난이 많다는 것을 성경은 말해 주 고 있습니다. 또 어떤 고난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 합니다. 또 어떤 고난은 우리로 잘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하 빈다. 다시 말하면 우루과이 라운데가 계산상으로 보면 실업률이 능러 나고, 싸시장 개방으로 농촌에 엄청난 타격이 있을 것으로 말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인하여 얼마든지 더 유익이 되게 할수도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현실의 앞만 보아서는 안됩니다.우리는 우리 위에 계시는 하나님 우주만물의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강대한 이웃 국가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쳐들 어왔을때 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모두 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어려움을 해결하고 승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기독교는 고난을 통 하여 발전합니다. 어려움을 통하여 더 많은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이 기독교의 생각입니다. 고난은 왜 우리에게 옵니까 우리 자신을 깨끗케 하기 위해 옵니다. 고난이 지나가면 가정이 깨끗해지고 심령이 깨끗해집니다. 어려움은 우리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의지하던 내 자신, 인간 을 의지하던 나약한 자신 자를 믿던 연약한 내 모습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우리의 영혼의 눈을 뜨게 하고, 환란과 고난이 우리로 더 큰 은혜와 더 큰 축복을 받 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어려움을 당할 때 히스기 야 왕 같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하나님께 내어 놓으면 하나님께서 해 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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