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 (창15:1-11)
본문
유명한 운동선수가 데뷔한지 2년 동안은 잘 합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는 마음 중심의 심혈을 기울여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성과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칭찬을 하면 자만감이 생기고 '이 명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에 그 다음 해부터는 잘 못한다고 합니다. 잘 하다가 2년이 지나면서 '이것을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까 이런 행운이 올해에도 올 것인가'하는 불안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을 "2년 징크스"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골프 선수 박세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언론이 먼저 방정을 떨었습니다. 한껏 띄웠다가 갑자기 외면하니까 선수들에게는 공포가 엄습합니다. 칭찬이 잘 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해독이 되는 경우입니다. 골프를 아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박세리 같은 폼은 아주 정교하고 앞으로도 더 잘 칠 가능성이 있는 좋은 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심리적인 압박으로 2년 징크스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신앙 생활에도 동일한 면이 있습니다. 굉장한 업적과 신앙의 성공을 맛보고난 후 찾아오는 허탈함과 두려움 때문에 감정의 흔들림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을 봅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또 다른 구조인 감성이 이성과 상관없이 흔들리는 모습입니다. 인간인 아브람에게도 이런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연약한 순종이었지만 그 순종의 걸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이집트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축복을 계속 더해주셨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조카 롯과 헤어집니다.
그런데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메소포타미아의 네 왕국이 연합해서 남쪽 요단 계곡의 다섯 왕국을 침입했고 남쪽 소돔에 살았던 롯도 포로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브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318명의 훈련받은 자들과 주위의 세 족장과 연합해서 밤에 역습을 해 쳐들어갑니다. 어디서 오는지 몰랐던 적군은 패퇴했습니다. 적들은 모든 물건을 놔둔채 도망갑니다. 굉장한 승리였습니다. 그 승전을 두 사람이 마중나와 축하합니다. 소돔왕과 살렘왕 멜기세덱이 예의를 갖추고 마중 나왔습니다. 멜기세덱은 전쟁의 승리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선언합니다. 지극히 큰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으신 하나님이 아브람을 축복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경배를 드리면서 아브람은 최초로 십일조를 드립니다. 한편 소돔왕은 "잡혀갔던 포로들은 다 내게 보내고 빼앗긴 물건은 아브람이 다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 때 아브람은 NO! 거부합니다. 이것은 '이 전쟁으로 억울하게 빼앗긴 재산들을 갖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 악한 나라 소돔왕과 신앙적으로 연계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내 부요와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산 증거로 드러내겠다. 소돔왕 때문에 형통케 되었다, 치부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이 나의 영광이고 전부다'는 각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속에 갑자기 어둠이 들어섭니다. 두려움이 그를 지배합니다. '북쪽의 네 왕이 "별것도 아닌 목장주에게 대패했다"고 분개하며 다시 군대를 몰고 오면 어떻게 할까'하여 그는 몹시 염려했습니다. '다시 정면으로 싸울 군대가 없는데 쳐들어오면 감당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상 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합니다. "아브람아, 두려워말라. 내가 너의 방패다"라고 말씀합니다. '천사로 너를 보호하겠다, 우박으로 적을 깨뜨리겠다, 너에게 멋진 성을 지어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너의 방패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내가 너의 방패'라고 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뚫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머리 끝 하나 상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내 보호자가 되시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방패인 그 인생을 누가 뚫고 해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몸을 스스로 날려서 지키는 것을 어느 군대가 뚫을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인생을 잘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지난 후의 내 노년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는 보호를 잘 받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닥쳐올 미래를 염려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오늘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의 방패다" 제가 살아오면서 위험에 처한, 위기의 순간들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해주신 일들이 많았습니다. 약 2년 전 일입니다. 북한의 인사 황장엽씨가 북경에서 저를 만나자고 해서 중국 북경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로 돌아오기로 한 날 그 분과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데 황장엽씨는 오지 않고 차와 경호원만 와서 양해를 구하기를 "장군님 생일 선물을 사러 쉐라톤호텔에 잠시 들렀는데, 미안하지만 잠시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11:00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비행기 시간에 늦을 것 같아 그냥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경호원이 부득불 자기네 차를 타고 가라고 해서 그 차를 타고 공항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황장엽씨는 한국으로 망명하려고 10시 05분에 한국 대사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만약 이 사실을 북한 정보원이 알았더라면 저를 공항이 아닌 북한 대사관으로 데려가지 않았겠습니까 그 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한국에 왔는데 그 다음날 황장엽씨 망명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더라구요. 때로 오늘 지켜주신 하나님이내 일 도와주시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홍해를 갈라주신 하나님은 요단강도 갈라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 속에 깊이 울리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졸개를 보내겠다, 천군천사를 보내겠다, 좋은 환경으로 옮겨서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지 않고 내가 너의 방패라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두번째로 말씀합니다.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의 마음 속에는 야릇한 상실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는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좋은 목초지는 조카 롯에게 다 주었습니다. 조카 롯에게 내 축복의 원천이 하나님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했지만 좋은 목초지도 롯에게 주고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도 없는 초라한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말씀으로 약속의 땅을 받았지만 한 번도 실제로 가져보지 못한 현실을 보며 깊은 부족감과 상실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너 바보 아니야" 라고 비웃음 소리도 들었을지 모릅니다. 인간적으로 손실을 겪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이 상급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상급으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만큼 후손을 주겠다고 말씀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 바로 내가 너의 상급이라고 말씀할 뿐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일주일 동안 계속 묵상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이 말의 깊은 뜻을 어떻게 가르칠까'를 궁리했습니다. 그러나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제게 전달할 능력이 없기에 성령님께서 직접 이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주십시오." 억지로 한번 설명해 본다면 '하나님이 나의 상급'이라는 말에는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저를 사랑한다고 생각지 못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내가 예수 믿지 않으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과 축복이 커지는 것을 봅니다. 과거에 저는 하나님께서 심판주라는 것이 생각날 때마다 싫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나서 하나님이 심판주이며 재판관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심판주가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는 오해를 당한 인생들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짓으로 위선을 떤 사람이 잘 살았다고 자랑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판주이기에 진실을 알고 판가름 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심판주인 것이 얼마나 저를 자유롭게 하고 춤을 추며 기뻐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손해가 나도 정직해야될 이유를, 억울해도 참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해(理解)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또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말은 '참된 가치, 사랑한다'는 뜻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것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시시한 것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외롭고 볼품없고, 다른 사람이 외면하는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그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더 깊이 깨닫는다는’ 것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내게 하신 말씀은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유격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요, 영광입니다. 나의 하나님, 그 분의 상급되심은 무한합니다. 사람의 상급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부족할수록 아무도 그 마음을 채우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상급되심은 내 눈 앞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영혼까지 채웁니다. 우리 마음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유한한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내 영혼까지 온전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상급은 순간이 아닌 영원까지 입니다. 과거에는 좋았지만 그 후에는 별것 아닌 것이 참 많습니다. 골동품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갖기까지는 목말라하다가 가져보고 나면 별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상급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내 보배요, 상급입니다. 그 때도 내 만족이고 영광입니다. 이 시간 오직 하나님이 내 상급이 되신다는 말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내 상급이라는 사실을 참으로 안다면 우리 생애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남서울은혜교회 갔더니 자기를 몰라준다고 서운해하십니다. 잘 서운하셨습니다. 내가 봉사하고 열심히 섬겼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불인정은 우리를 실망시키십니다. 내 마음을 영원히 충족시키고 완전하게 채우는 것은 하나님이 상급될 때입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 옆에 있던 브닌나가 아이도 못낳는다고 비웃습니다. 그 때 남편 엘가나가 "한나여 열 아들보다 더 귀한 사랑을 당신에게 주지 않습니까" 라고 위로합니다. 내 상실감이 닥칠 때 우리에게 말씀하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그 분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은사와 형통과 은혜와 성공을 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만일 이런 여자가 있다고 칩시다. 남편이 외국에 출장갔다가 몇 백만 달러짜리 목걸이를 사왔다고 합시다.
그런데 부인이 너무 좋아서 일어나자마자, 식사시간에도, 남편이 출근하는데도 남편의 얼굴보다 반짝거리는 목걸이를 보며 만지작거립니다. 퇴근해서도 목걸이만을 보고 있습니다. 이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나 보다 목걸이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이렇게 믿습니다. 조금만 형통하면 온 세상의 형통을 다 가졌다고 하다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원망하는 신앙의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봅니다. 직장 잃고 물질 잃은 나를 향해서 "내가 너의 상급이다. 다 잃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납니다. 제게 아버지보다 더 신뢰했던 사람에게 배반을 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깨달았던 사실은 '내가 하나님 보다 그 분을 더 좋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뢰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나그네가 될 수 있는 최상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안경 돗수가 맞지 않습니다. '건강이 나빠져가고 있구나, 우리 아버지 집에 갈 순서가 다가섰구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외로울 때, 상실의 때에 가장 값진 보상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이 아브람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나를 향해 '네가 잃어버린 것 보다 소중한 보상이 바로 나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눈동자를 마주치기를 원합니다. 두려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은 친히 아브람의 방패가 되셨습니다. 그 손해를 앞에 놓고 곁에 찾아오셔서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내 생애 속에서도 지극히 큰 상급입니다. 진실로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에게 동일한 주님의 은혜가 성령님의 감동으로 누려지는 복스러운 생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성과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칭찬을 하면 자만감이 생기고 '이 명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에 그 다음 해부터는 잘 못한다고 합니다. 잘 하다가 2년이 지나면서 '이것을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까 이런 행운이 올해에도 올 것인가'하는 불안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을 "2년 징크스"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골프 선수 박세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언론이 먼저 방정을 떨었습니다. 한껏 띄웠다가 갑자기 외면하니까 선수들에게는 공포가 엄습합니다. 칭찬이 잘 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해독이 되는 경우입니다. 골프를 아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박세리 같은 폼은 아주 정교하고 앞으로도 더 잘 칠 가능성이 있는 좋은 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심리적인 압박으로 2년 징크스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신앙 생활에도 동일한 면이 있습니다. 굉장한 업적과 신앙의 성공을 맛보고난 후 찾아오는 허탈함과 두려움 때문에 감정의 흔들림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을 봅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또 다른 구조인 감성이 이성과 상관없이 흔들리는 모습입니다. 인간인 아브람에게도 이런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연약한 순종이었지만 그 순종의 걸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이집트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축복을 계속 더해주셨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조카 롯과 헤어집니다.
그런데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메소포타미아의 네 왕국이 연합해서 남쪽 요단 계곡의 다섯 왕국을 침입했고 남쪽 소돔에 살았던 롯도 포로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브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318명의 훈련받은 자들과 주위의 세 족장과 연합해서 밤에 역습을 해 쳐들어갑니다. 어디서 오는지 몰랐던 적군은 패퇴했습니다. 적들은 모든 물건을 놔둔채 도망갑니다. 굉장한 승리였습니다. 그 승전을 두 사람이 마중나와 축하합니다. 소돔왕과 살렘왕 멜기세덱이 예의를 갖추고 마중 나왔습니다. 멜기세덱은 전쟁의 승리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선언합니다. 지극히 큰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으신 하나님이 아브람을 축복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경배를 드리면서 아브람은 최초로 십일조를 드립니다. 한편 소돔왕은 "잡혀갔던 포로들은 다 내게 보내고 빼앗긴 물건은 아브람이 다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 때 아브람은 NO! 거부합니다. 이것은 '이 전쟁으로 억울하게 빼앗긴 재산들을 갖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 악한 나라 소돔왕과 신앙적으로 연계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내 부요와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산 증거로 드러내겠다. 소돔왕 때문에 형통케 되었다, 치부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이 나의 영광이고 전부다'는 각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속에 갑자기 어둠이 들어섭니다. 두려움이 그를 지배합니다. '북쪽의 네 왕이 "별것도 아닌 목장주에게 대패했다"고 분개하며 다시 군대를 몰고 오면 어떻게 할까'하여 그는 몹시 염려했습니다. '다시 정면으로 싸울 군대가 없는데 쳐들어오면 감당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상 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합니다. "아브람아, 두려워말라. 내가 너의 방패다"라고 말씀합니다. '천사로 너를 보호하겠다, 우박으로 적을 깨뜨리겠다, 너에게 멋진 성을 지어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너의 방패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내가 너의 방패'라고 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뚫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머리 끝 하나 상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내 보호자가 되시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방패인 그 인생을 누가 뚫고 해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몸을 스스로 날려서 지키는 것을 어느 군대가 뚫을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인생을 잘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지난 후의 내 노년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는 보호를 잘 받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닥쳐올 미래를 염려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오늘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의 방패다" 제가 살아오면서 위험에 처한, 위기의 순간들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해주신 일들이 많았습니다. 약 2년 전 일입니다. 북한의 인사 황장엽씨가 북경에서 저를 만나자고 해서 중국 북경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로 돌아오기로 한 날 그 분과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데 황장엽씨는 오지 않고 차와 경호원만 와서 양해를 구하기를 "장군님 생일 선물을 사러 쉐라톤호텔에 잠시 들렀는데, 미안하지만 잠시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11:00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비행기 시간에 늦을 것 같아 그냥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경호원이 부득불 자기네 차를 타고 가라고 해서 그 차를 타고 공항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황장엽씨는 한국으로 망명하려고 10시 05분에 한국 대사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만약 이 사실을 북한 정보원이 알았더라면 저를 공항이 아닌 북한 대사관으로 데려가지 않았겠습니까 그 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한국에 왔는데 그 다음날 황장엽씨 망명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더라구요. 때로 오늘 지켜주신 하나님이내 일 도와주시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홍해를 갈라주신 하나님은 요단강도 갈라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 속에 깊이 울리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졸개를 보내겠다, 천군천사를 보내겠다, 좋은 환경으로 옮겨서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지 않고 내가 너의 방패라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두번째로 말씀합니다.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의 마음 속에는 야릇한 상실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는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좋은 목초지는 조카 롯에게 다 주었습니다. 조카 롯에게 내 축복의 원천이 하나님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했지만 좋은 목초지도 롯에게 주고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도 없는 초라한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말씀으로 약속의 땅을 받았지만 한 번도 실제로 가져보지 못한 현실을 보며 깊은 부족감과 상실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너 바보 아니야" 라고 비웃음 소리도 들었을지 모릅니다. 인간적으로 손실을 겪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이 상급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상급으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만큼 후손을 주겠다고 말씀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 바로 내가 너의 상급이라고 말씀할 뿐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일주일 동안 계속 묵상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이 말의 깊은 뜻을 어떻게 가르칠까'를 궁리했습니다. 그러나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제게 전달할 능력이 없기에 성령님께서 직접 이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주십시오." 억지로 한번 설명해 본다면 '하나님이 나의 상급'이라는 말에는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저를 사랑한다고 생각지 못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내가 예수 믿지 않으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과 축복이 커지는 것을 봅니다. 과거에 저는 하나님께서 심판주라는 것이 생각날 때마다 싫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나서 하나님이 심판주이며 재판관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심판주가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는 오해를 당한 인생들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짓으로 위선을 떤 사람이 잘 살았다고 자랑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판주이기에 진실을 알고 판가름 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심판주인 것이 얼마나 저를 자유롭게 하고 춤을 추며 기뻐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손해가 나도 정직해야될 이유를, 억울해도 참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해(理解)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또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말은 '참된 가치, 사랑한다'는 뜻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것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시시한 것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외롭고 볼품없고, 다른 사람이 외면하는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그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더 깊이 깨닫는다는’ 것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내게 하신 말씀은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유격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요, 영광입니다. 나의 하나님, 그 분의 상급되심은 무한합니다. 사람의 상급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부족할수록 아무도 그 마음을 채우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상급되심은 내 눈 앞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영혼까지 채웁니다. 우리 마음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유한한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내 영혼까지 온전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상급은 순간이 아닌 영원까지 입니다. 과거에는 좋았지만 그 후에는 별것 아닌 것이 참 많습니다. 골동품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갖기까지는 목말라하다가 가져보고 나면 별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상급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내 보배요, 상급입니다. 그 때도 내 만족이고 영광입니다. 이 시간 오직 하나님이 내 상급이 되신다는 말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내 상급이라는 사실을 참으로 안다면 우리 생애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남서울은혜교회 갔더니 자기를 몰라준다고 서운해하십니다. 잘 서운하셨습니다. 내가 봉사하고 열심히 섬겼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불인정은 우리를 실망시키십니다. 내 마음을 영원히 충족시키고 완전하게 채우는 것은 하나님이 상급될 때입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 옆에 있던 브닌나가 아이도 못낳는다고 비웃습니다. 그 때 남편 엘가나가 "한나여 열 아들보다 더 귀한 사랑을 당신에게 주지 않습니까" 라고 위로합니다. 내 상실감이 닥칠 때 우리에게 말씀하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그 분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은사와 형통과 은혜와 성공을 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만일 이런 여자가 있다고 칩시다. 남편이 외국에 출장갔다가 몇 백만 달러짜리 목걸이를 사왔다고 합시다.
그런데 부인이 너무 좋아서 일어나자마자, 식사시간에도, 남편이 출근하는데도 남편의 얼굴보다 반짝거리는 목걸이를 보며 만지작거립니다. 퇴근해서도 목걸이만을 보고 있습니다. 이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나 보다 목걸이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이렇게 믿습니다. 조금만 형통하면 온 세상의 형통을 다 가졌다고 하다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원망하는 신앙의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봅니다. 직장 잃고 물질 잃은 나를 향해서 "내가 너의 상급이다. 다 잃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납니다. 제게 아버지보다 더 신뢰했던 사람에게 배반을 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깨달았던 사실은 '내가 하나님 보다 그 분을 더 좋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뢰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나그네가 될 수 있는 최상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안경 돗수가 맞지 않습니다. '건강이 나빠져가고 있구나, 우리 아버지 집에 갈 순서가 다가섰구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외로울 때, 상실의 때에 가장 값진 보상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이 아브람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나를 향해 '네가 잃어버린 것 보다 소중한 보상이 바로 나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눈동자를 마주치기를 원합니다. 두려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은 친히 아브람의 방패가 되셨습니다. 그 손해를 앞에 놓고 곁에 찾아오셔서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내 생애 속에서도 지극히 큰 상급입니다. 진실로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에게 동일한 주님의 은혜가 성령님의 감동으로 누려지는 복스러운 생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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