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이나 용서하리이까? (마18:15-35)
본문
기독교인은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용서를 다시 구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잘못된 성화관 때문에 용서가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이 두가지 생각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믿어 구원을 얻은 사람이라도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은 법적인 것이요,의인이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인정하시는 것이지 실제로 의인이 되어서 의인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 하셨습니다. 온 몸이 씻음을 받는 것은 한 번 뿐입니다. 그러나 칭의를 받고난 다음에도 우리가 이 세상을 통과하면서 죄의 때를 묻힐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 1서에는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저는 미쁘시고,의로우사,우리 죄를 사하시며,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하셨습니다. 여기에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만 위한 기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 없기 때문에 용서를 구할 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은 요한일서에서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이는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용서함을 받을 길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용서함을 받은 증거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자신에게 잘못한 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를 보면 자신이 용서함을 받았는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형제의 잘못에 대하여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은 주님께 자신도 용서함 받은 사실이 없는 자인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형제에게 대하여 몇번이나 용서하리이까 질문했습니다. 베드로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격이 심히 급하여 불 같은 성격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께 용서에 대해서 질문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형제에 대해서 일곱번이나 용서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요, 이만하면 주님께 칭찬을 들을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우리들은 형제가 내게 잘못했을 때에 어떻게 합니까 용서가 다 무엇입니까 이를 갈면서 복수 안하는 것, 참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인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베드로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의 온유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최대한의 횟수인 7번까지의 용서까지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달랐습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 490번이라도 용서하라. 곧 무한정의 용서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많은 실수와 죄를 짓는 형제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무한정의 용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어째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 용서를 말씀합니까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는 형제에 대하여 무조건 모든 것을 다 용서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우리가 용서해야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무한정의 용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게하시려고 한 비유를 말씀했습니다. 주인에게 빚졌다가 탕감받은 사람의 비유에서 이 교훈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이 종은 주인에게 많은 돈을 빚졌으나,도무지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그래서 이 사람을 주인이 불쌍히 여겨 모든 빚을 다 없이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어야하는 이유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억만가지의 죄를 지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았습니까 그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 용서함을 받은 증거는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는가, 않는가 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자신의 죄를 주님께 고해서 주님의 공로로 용서함을 받은 사람은 이 은혜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틀림 없이 다른 사람을 용서합니다. 그가 죄 용서함을 받았다고 하면서,다른 사람의 실수와 허물을 용서해 주지 못한다면,그는 사실은 용서함을 받은 사실이 없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깨달음이 없어서 주님의 용서가 얼마나 큰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우리 성격대로라면 어떻게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 받은 사실을 알 때에 우리는 어떤 잘못을 내게 한 사람이라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은 것이 너무나 큰 것인 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에게 대한 잘못한 사람의 죄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별 것 아닌 것을 압니다. 아무리 자신를 애 먹이고,해를 끼치고,배신을 하고,욕을 해도,내가 주님께 한 것을 안다면,자신이 어떤 죄인이었고, 어떻게 큰 용서함을 받은 것을 안다면 용서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다 아십니다. 우리의 심령 까지 다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원수되었고, 죄인이요, 연약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믿고 나서도 여전히 불신앙과 불의를 행할 것도 알면서 배신을 당할 것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 구속의 사랑을 인하여 우리의 죄가 다 용서함 받게 되었고, 우리는 오히려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이제 하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입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백성되었습니다.
이런데도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용서함을 받은 일이 없거나, 하나님께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함을 받은 은혜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주기도문에서의 죄 용서의 기도는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저를 용서해 주심을 감사합니다.나를 용서하신 그 용서 같이 나도 다른 사람을 용서합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깨닫습니다.또 내가 살면서 잘못된 것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옵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참 용서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어떻게 자신에게 잘못한 원수 같은 사람도 이 구속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마음도 알게 됩니다.부모되어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했습니다. 전도를 해 봐야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인내와 용서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속을 썩여 보아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속을 썩인 것을 알게 되듯이, 우리가 용서하는 일을 실천할 때에 비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은 알게되고, 그가 또 하나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부모에게 어떻게 못된 짓을 한 자식에게 매를 들면서도 그를 마지막에는 용서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혈육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은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어떤 짓을 했는가를 깨닫고, 그래도 내게 대하여 오래참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을 배반하고 못된 짓을 한 남편,아내라도 우리가 복수심을 가질 수 없고, 그래도 용서해야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배반하고, 세상의 간부를 따라 갔던가하는 것을 깨닫고, 그래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고 돌아 올 때에 받아주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복수심의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5:14-15에도 주님이 이 문제는 다시 다룹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내가 무조건의 용서를 받았고,또 용서를 받아야 할 자인 것을 안다면, 우리가 용서 못할 죄가 있습니까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어떻게 잘못했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벼운 것입니다.그것도 용서 못하면서 어떻게 무거운 내 죄짐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 용서를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무작정 용서를 구하기 전에 내가 할 용서는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제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형제와 불목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목하고 제물을 바쳐라 했습니다. 제물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께 나의 용서, 나의 죄 사해 주시기를 구하는 제사입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이 기도를 드렸고, 이 주님을 본받은 스데반도 마지막에 이와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그 때에 천국문이 열립니다.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 오신 예수님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화해와 용서가 없다면 기독교는 무서운 심판의 종교가 됩니다. 화해와 용서,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또 이 삶을 가르치기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를 친히 지셨습니다. 진실로 용서와 화해,어렵습니다. 말로만 하기는 얼마나 쉬우며 사랑, 용서, 화해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러나 실제로 이를 행하기는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어려움입니다. 남정교회 분리되는 현실에서 이 사랑을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을 실천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화해요,인간과의 수평적인 화해이지만,하나님과의 화해는 사람과의 화해에서 이루어지고,나타납니다.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은 형제를 용서,화해합니다. 우리의 모든 원수 맺는 일,불목,시기,질투,미움을 다 버려야 합니다.이것이 우리의 간구입니다. 죄 용서함을 위한 간구가 우리에게 제일 중요합니다. 주님의 요구는 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마시우게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원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도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하라.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아직도 내 마음에 섭섭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나, 나라가 있습니까 다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용서를 받은 나 자신임을 생각하고, 원수 맺은 것을 풀어야합니다. 복수하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축복으로 복수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복수하는 것입니다. 용서로 복수하는 것입니다. 이 자가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아 그 사랑을 아는 자요, 또 그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자입니다.
요한 1서에는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저는 미쁘시고,의로우사,우리 죄를 사하시며,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하셨습니다. 여기에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만 위한 기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 없기 때문에 용서를 구할 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은 요한일서에서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이는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용서함을 받을 길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용서함을 받은 증거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자신에게 잘못한 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를 보면 자신이 용서함을 받았는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형제의 잘못에 대하여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은 주님께 자신도 용서함 받은 사실이 없는 자인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형제에게 대하여 몇번이나 용서하리이까 질문했습니다. 베드로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격이 심히 급하여 불 같은 성격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께 용서에 대해서 질문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형제에 대해서 일곱번이나 용서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요, 이만하면 주님께 칭찬을 들을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우리들은 형제가 내게 잘못했을 때에 어떻게 합니까 용서가 다 무엇입니까 이를 갈면서 복수 안하는 것, 참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인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베드로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의 온유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최대한의 횟수인 7번까지의 용서까지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달랐습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 490번이라도 용서하라. 곧 무한정의 용서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많은 실수와 죄를 짓는 형제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무한정의 용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어째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 용서를 말씀합니까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는 형제에 대하여 무조건 모든 것을 다 용서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우리가 용서해야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무한정의 용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게하시려고 한 비유를 말씀했습니다. 주인에게 빚졌다가 탕감받은 사람의 비유에서 이 교훈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이 종은 주인에게 많은 돈을 빚졌으나,도무지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그래서 이 사람을 주인이 불쌍히 여겨 모든 빚을 다 없이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어야하는 이유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억만가지의 죄를 지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았습니까 그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 용서함을 받은 증거는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는가, 않는가 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자신의 죄를 주님께 고해서 주님의 공로로 용서함을 받은 사람은 이 은혜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틀림 없이 다른 사람을 용서합니다. 그가 죄 용서함을 받았다고 하면서,다른 사람의 실수와 허물을 용서해 주지 못한다면,그는 사실은 용서함을 받은 사실이 없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깨달음이 없어서 주님의 용서가 얼마나 큰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우리 성격대로라면 어떻게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 받은 사실을 알 때에 우리는 어떤 잘못을 내게 한 사람이라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은 것이 너무나 큰 것인 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에게 대한 잘못한 사람의 죄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별 것 아닌 것을 압니다. 아무리 자신를 애 먹이고,해를 끼치고,배신을 하고,욕을 해도,내가 주님께 한 것을 안다면,자신이 어떤 죄인이었고, 어떻게 큰 용서함을 받은 것을 안다면 용서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다 아십니다. 우리의 심령 까지 다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원수되었고, 죄인이요, 연약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믿고 나서도 여전히 불신앙과 불의를 행할 것도 알면서 배신을 당할 것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 구속의 사랑을 인하여 우리의 죄가 다 용서함 받게 되었고, 우리는 오히려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이제 하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입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백성되었습니다.
이런데도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용서함을 받은 일이 없거나, 하나님께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함을 받은 은혜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주기도문에서의 죄 용서의 기도는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저를 용서해 주심을 감사합니다.나를 용서하신 그 용서 같이 나도 다른 사람을 용서합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깨닫습니다.또 내가 살면서 잘못된 것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옵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참 용서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어떻게 자신에게 잘못한 원수 같은 사람도 이 구속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마음도 알게 됩니다.부모되어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했습니다. 전도를 해 봐야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인내와 용서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속을 썩여 보아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속을 썩인 것을 알게 되듯이, 우리가 용서하는 일을 실천할 때에 비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은 알게되고, 그가 또 하나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부모에게 어떻게 못된 짓을 한 자식에게 매를 들면서도 그를 마지막에는 용서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혈육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은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어떤 짓을 했는가를 깨닫고, 그래도 내게 대하여 오래참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을 배반하고 못된 짓을 한 남편,아내라도 우리가 복수심을 가질 수 없고, 그래도 용서해야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배반하고, 세상의 간부를 따라 갔던가하는 것을 깨닫고, 그래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고 돌아 올 때에 받아주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복수심의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5:14-15에도 주님이 이 문제는 다시 다룹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내가 무조건의 용서를 받았고,또 용서를 받아야 할 자인 것을 안다면, 우리가 용서 못할 죄가 있습니까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어떻게 잘못했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벼운 것입니다.그것도 용서 못하면서 어떻게 무거운 내 죄짐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 용서를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무작정 용서를 구하기 전에 내가 할 용서는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제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형제와 불목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목하고 제물을 바쳐라 했습니다. 제물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께 나의 용서, 나의 죄 사해 주시기를 구하는 제사입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이 기도를 드렸고, 이 주님을 본받은 스데반도 마지막에 이와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그 때에 천국문이 열립니다.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 오신 예수님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화해와 용서가 없다면 기독교는 무서운 심판의 종교가 됩니다. 화해와 용서,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또 이 삶을 가르치기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를 친히 지셨습니다. 진실로 용서와 화해,어렵습니다. 말로만 하기는 얼마나 쉬우며 사랑, 용서, 화해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러나 실제로 이를 행하기는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어려움입니다. 남정교회 분리되는 현실에서 이 사랑을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을 실천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화해요,인간과의 수평적인 화해이지만,하나님과의 화해는 사람과의 화해에서 이루어지고,나타납니다.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은 형제를 용서,화해합니다. 우리의 모든 원수 맺는 일,불목,시기,질투,미움을 다 버려야 합니다.이것이 우리의 간구입니다. 죄 용서함을 위한 간구가 우리에게 제일 중요합니다. 주님의 요구는 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마시우게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원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도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하라.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아직도 내 마음에 섭섭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나, 나라가 있습니까 다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용서를 받은 나 자신임을 생각하고, 원수 맺은 것을 풀어야합니다. 복수하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축복으로 복수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복수하는 것입니다. 용서로 복수하는 것입니다. 이 자가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아 그 사랑을 아는 자요, 또 그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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