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내가 행하기에 달렸다 (시6:6-10)
본문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은혜와 복을 내려주십니다. 우리의 앞날은 우리가 행하기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마음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고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나환자촌에 가서 봉하하시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환자로 눈, 코, 입 손과 발이 다 망가졌지만 태어난 자녀들이 그 어려운 여건을 뛰어넘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대학 교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환자의 자녀로 태어난 아이들은 절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하면 얼마든지 그 모든 환경을 넘어서서 큰일을 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부모님을 만나도, 어떤 동리에 태어나도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마음먹고 나만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고, 큰 일을 할 수 있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고추 농사를 지어서 시장에 갔는데, 고추 판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하다가 그 돈을 다 잃었습니다.
이 사람은 본전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도박판을 쫓아다니다가 몇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 때에 따라서슨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면 더 따야 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쫓아다니고, 또 잃으면 본전을 찾아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도박판을 쫓아다녔습니다. 결국에는 어치피 이 길로 들어섰으니 크게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구에서 제일 유명한 도박 스승을 찾아가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도박에 대해서는 완전히 도통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분이 어느 읍내에 가서 도박을 하는데 자기가 속이는 것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돈도 다 빼앗기고 기어오다시피해서 집으로 왔습니다. 거의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보니 웬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랍니다. 후닥닥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부인이 아기를 낳고 실신해서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이 양심은 있어서 자기 방에 가서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답니다. 그리고는 부인을 간호해서 회복시켰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게 잘못 살아왔는지 깊이 깨닫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해 농사를 지었는데 얼마나 고추 농사가 잘되고 수박도 잘되었는지 돈을 많이 벌어서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텔레비전 프로그렘 “세상 사는 이야기”에 초대손님으로 나와 했던 이야기입니다. 자기 하기에 달렸습니다. 화투치는 곳에 가면 그런 길이 열려서 그렇게 인생이 끝나고, 온갖 고생을 합니. 그러나 자기가 열심히 일하니까 좋은 세상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성공이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실패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잘못 먹으면 당장 불행과 슬픔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이 멀리에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또 슬픔과 불행이 천리 만리 밖에 있다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발걸음을 한번 잘못 옮기면 마음을 한번 잘못 먹으면 바로 그곳에 저주도 있고 죽음도 있고 슬픔도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잘해야 합니다. 내가 잘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뜻대로 해야 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믿음대로 된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네가 행하기에 달렸으니 행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잣집 아들이지만 집을 나가니까 자기 길이 어디 열립니까 멸시 천대받고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못 먹고 온갖 고생을 다합니. 결국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 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장 아버지가 은혜를 주십니다. 그를 사랑하시고 잔치를 베푸시고 옷을 갈아입히시고 가락지를 끼워주십니다. 아버지 품안에 안기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복된 아들이 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내가 그 길을 따르지 않으면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렸습니다. 내가 잘하면 영원히 내 앞날이 열릴 것이고, 내가 잘못하면 이 땅에서나 이 세상을 떠나서나 안될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닙니다. 내게 달려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책임 전가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설명하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안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깁니다. 내가 왜 가난합니까 너 때문에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고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부자인 네가 내 것을 빼앗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시 빼앗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법으로는 안되니까 혁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너도 되고 나도 되는 방법은 생각하지 못하고 너 때문에 내가 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책임 전가합니다. 그래서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비판, 사회에서도 비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런 생각으로 살ㅊ아가니 잘될 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야 잘된다고 앞장서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왜 은혜를 못 받습니까 나는 은혜 받으려고 하는데 목사가 설교를 아무렇게나 하니까 은혜를 못 받는 것이라고 합닏. 설교를 잘못한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사회가 문제다. 죄악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이 아무리 어두울지라도 내가 불을 켜면 나는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찬송가 502 장). 세상이 험하여 태산 같은 준령이 있을지라도 내가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십니다. 내가 하기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물이 없으면 샘을 파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썩었다고 말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소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썩는 세상에서 같이 썩지 말고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모두가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고 탓하면 안됩니다.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간단합니다. 불행한 가정은 “너 때문이다. 내가 너를 잘못 만났다. 어떻게 하다 너한테 걸렸는지 모르겠다”하며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도 자기 부인이 좀 못생겼다고 해서 “나는 2부 예배에 갈테니까 당신은 3부 예배에 와”하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인물이 나쁘면 맛사지를 좀 시키든지, 옷을 해주든지 할 것이지 부인을 그렇게 낮추어 보면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부인이 키가 작다고 같이 안 나온다고 합니다. 결혼할 때 처갓집이 가난할 수도 있고, 부인이 키가 작을 수도 있고, 인물이 못날 수도 있고, 공부를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대신 다른 좋은 것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좋은 것으로 덮어주면 아름다운 것만 드러나는 줄 믿습니다. 내가 좋은 마음을 먹고 사랑하면 행복할 수 있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나쁘게 생각하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사랑하시고 우리가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하시지만 가시나무에서 좋은 것을 기대하시지는 않습니다. 가시나무에는 가시가, 포도나무에는 포도가 열린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순종할 때 좋은 열매가 맺힐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나를 택하여 주신 엄청난 은혜를 감사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축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습니까 행복은 누가 주는 것입니까 여기 있는 것도 아니고 저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민 가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어떻게가 아닙니다. 내가 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땅에 살다 간 사람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부유한 삶을 누렸던 분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하나님 앞에 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시16: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였더니다윗의 삶은 길이 열린 것입니다. 다윗은 아름답게 보았습니다. 감사히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끊임없이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의 삶이 평생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목동의 삶으로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목동, 외로운 목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3천 년이 지난 지금도 베두인 족을 보면 1천년 전에 살던 방식대로 그렇게 지낸답니다. 다윗도 그런 목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동으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하며 위를 바라보고 살아갈 때에 목동의 삶을 천국같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 언제 이런 시가 나왔습니까 목동으로 있을 때에 이런 시가 나왔습니다. 목동의 삶을 감사하면 그곳도 천국이 될 줄 믿습니다.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마음먹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지옥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어쩌다가 이런 데 걸렸을까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사는가 하면 그곳은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안 알 수 없도다”(찬송가 410 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찬송가 405 장). 다윗은 그 후로 엄청난 환난에 빠집니다. 사울 왕의 추적을 받고 13년 동안 끊임없이 도피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시편 가운데 가장 은혜로운 시도 환난 가운데 기도한 내용입니.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 낙심할수록 환난을 못 이길 뿐만 아니라 축복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환난 가운데 더 큰 환난이 옵니다. 요셉도 환난을 당하였지만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어려움을 잘 견뎌내어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이고, 이삭도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고난이나 어려움을 크게 보고 절망하고 불평하면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영광이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옵니다. 그러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잘하면 넘어설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일선 파출소에 여순경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일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깜짝 놀라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별볼일 없는 사람이 출세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순경이라도 잘하면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됩니다. 순경은 평생 순경만 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능력만 있으면 올라가는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이 교장도 될 수 있고, 이사장도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본 첫인상을 평생 그 사람의 이미지로 생각하고 묶어 놓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문지기였지만 나중에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다가 남의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잘 행하면 얼마든지 과장도 될 수 있고, 교수도 될 수 있고, 총리도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가지가 영원히 나를 운명처럼 덮어 누르는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이겨냈습니다. 끝까지 겨뎌내고 나중에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다음에도 어려움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감격해하는 그의 마음은 식을 줄 모르고 평생 동안 타올랐습니다. 다윗은 “(삼하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나 같은 것을 왜 이렇게 축복하여 주시나이까, 아무 자격이 없는 나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은혜를 주시나이까 하고 감격했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옮기면서도 너무 감사해서 옷이 내려가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한 번도 저버리지 아니하고 감사하는 길로만 걸어간 사람입니다. 그는 천했습니다. 그는 약했습니다. 그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 그의 발걸음이 하나님 앞에 복받을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축복받을 길을 찾아간 다윗의 길에 영원한 축복이 주이진 줄 믿습니다. 불행이 어디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는 감사하지 아니하고, 남을 부러워하고, 남을 시기하는 데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잘해도 안되는데, 저 사람은 별 것 아닌데도 교회 일에 앞장선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불행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별 것 아니었는데 저렇게 잘되고, 나는 무엇이든 잘하고 대단했었는데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면 바로 그것이 불행인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이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목동일 때는 목동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여러분, 옛날 사진을 한번 꺼내놓고 보십시오. 중, 고등학교 때 머리를 빡빡 깎았던 그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옷 벗고 찍은 사진을 보면 그것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내 모습을 감사하고 아름답게 볼 때에 그곳에 천국이 있고 또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따르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줄로 재어주십니다. “너는 어느 나라에서 살아라. 너는 누구하고 살아라” 하고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주십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은 결혼을 할 때도 선택해서 배우자를 만났다고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목사가 결혼 주례를 하면서 마지막에 선포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규백군과 안혜순 양은 부부가 된 것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라.” 그 다음은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주신 것입니다. 교회와 여러분을 누가 짝지어 주셨습니까 평강교회에 내가 나오고 싶어 나왔습니까 그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줄로 재어주신 곳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줄로 재어주신 가정, 줄로 재어주신 국가, 줄로 재어주신 기업 속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달란트를 감사하면서 감당할 때 천국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줄로 재어주신 곳을 떠나는 것이 교만입니다. 떠나면 시험에 듭니다. 마귀는 언제나 그런 곳에 역사합니다. “내가 이런 것을 어떻게 해 내가 누군데” 여기에 마귀가 역사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이단이 참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에만 이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에서도 이단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단의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목사 아닌 가짜 목사가, 교회 아닌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교회나 목사를 이단으로 한데 몰아서 비난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다 마귀가 역사해서 이단이 생긴 것입니다. 이단의 특징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에 가보면 강단을 화려하게 꾸며 놓고 신비스럽게 보이려고 얼룩얼룩한 옷을 입고 관을 씁니다. 왜 그렇습니까 임금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를 최고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정신병자가 됩니까 감사하는 사람, 하나님께 은혜받은 사람이 정신이 돌 리가 있겠습니까 불평하고 신세타령해서 도는 것입니다. 교만으로 돌든지, 불만으로 돌든지 도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정신병자를 가만히 살펴보면 안하무인이고 기고만장합니다. 자신만 똑똑하고 모든 사람들은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곳에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쁨은 어디 있습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주님께서 은혜를 주셨나이다.” 하면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심령이 천국인 줄 믿습니다. 나를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구속의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주신 구역들은 모두 아름답습니다. 가정을 봅면 가정에 감사할 일이 왜 이렇게도 많습니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셔서 감사한데, 밥맛을 좋게 해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잠이 잘 오는 것도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감사할 일을 찾아서 악기를 가지고 연주를 해보십시오. 춤을 추어 보십시오. 북을 쳐 보십시오. 기뻐해 보십시오.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이 나라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제 세계를 향하여 가는 깅이 넗어지고 오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우리 나라가 얼마나 복받은 나라인지, 서울이 얼마나 좋은 도시인지 모두 알게 된 것입니다. 전세계의 대도시 가운데 서울같이 아름다운 곳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도시 한가운데 남산이 있고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인왕산 등 높지 않은 산들로 돌러싸여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도시인 뉴욕에 가보십시오. 아무리 둘러봐도 산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강처럼 좋은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센 강이나 템스 강도 이야기로 듣던 것만큼 물이 맑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좋은 줄 모릅니다. 우리가 먹는 과일도 다른 나라 과일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맛이 좋습니다. 요즘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쌀을 사 간다고 합니다. 한국 쌀이 맛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농산물, 우리 나라 기후, 우리 나라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남의 나라 산삼은 우리 나라 금산의 인삼만 못합니다. 우리 나라 삼이 약효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속지 마십시오. 고사리도 산나물도 우리 것이 좋습니다. 맛이 전혀 다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감사할 줄 몰라서 천국같이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6월은 원호의 달입니다. 여러분, 우리 민족을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원호의 달에 원호 가족들을 생각하며, 그분들에게 감사해야 됩니다. 그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아직도 병상에서 지내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보살피며 은혜를 감사해야 됩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사람은 본전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도박판을 쫓아다니다가 몇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 때에 따라서슨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면 더 따야 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쫓아다니고, 또 잃으면 본전을 찾아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도박판을 쫓아다녔습니다. 결국에는 어치피 이 길로 들어섰으니 크게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구에서 제일 유명한 도박 스승을 찾아가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도박에 대해서는 완전히 도통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분이 어느 읍내에 가서 도박을 하는데 자기가 속이는 것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돈도 다 빼앗기고 기어오다시피해서 집으로 왔습니다. 거의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보니 웬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랍니다. 후닥닥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부인이 아기를 낳고 실신해서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이 양심은 있어서 자기 방에 가서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답니다. 그리고는 부인을 간호해서 회복시켰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게 잘못 살아왔는지 깊이 깨닫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해 농사를 지었는데 얼마나 고추 농사가 잘되고 수박도 잘되었는지 돈을 많이 벌어서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텔레비전 프로그렘 “세상 사는 이야기”에 초대손님으로 나와 했던 이야기입니다. 자기 하기에 달렸습니다. 화투치는 곳에 가면 그런 길이 열려서 그렇게 인생이 끝나고, 온갖 고생을 합니. 그러나 자기가 열심히 일하니까 좋은 세상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성공이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실패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잘못 먹으면 당장 불행과 슬픔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이 멀리에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또 슬픔과 불행이 천리 만리 밖에 있다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발걸음을 한번 잘못 옮기면 마음을 한번 잘못 먹으면 바로 그곳에 저주도 있고 죽음도 있고 슬픔도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잘해야 합니다. 내가 잘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뜻대로 해야 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믿음대로 된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네가 행하기에 달렸으니 행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잣집 아들이지만 집을 나가니까 자기 길이 어디 열립니까 멸시 천대받고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못 먹고 온갖 고생을 다합니. 결국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 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장 아버지가 은혜를 주십니다. 그를 사랑하시고 잔치를 베푸시고 옷을 갈아입히시고 가락지를 끼워주십니다. 아버지 품안에 안기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복된 아들이 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내가 그 길을 따르지 않으면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렸습니다. 내가 잘하면 영원히 내 앞날이 열릴 것이고, 내가 잘못하면 이 땅에서나 이 세상을 떠나서나 안될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닙니다. 내게 달려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책임 전가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설명하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안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깁니다. 내가 왜 가난합니까 너 때문에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고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부자인 네가 내 것을 빼앗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시 빼앗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법으로는 안되니까 혁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너도 되고 나도 되는 방법은 생각하지 못하고 너 때문에 내가 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책임 전가합니다. 그래서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비판, 사회에서도 비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런 생각으로 살ㅊ아가니 잘될 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야 잘된다고 앞장서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왜 은혜를 못 받습니까 나는 은혜 받으려고 하는데 목사가 설교를 아무렇게나 하니까 은혜를 못 받는 것이라고 합닏. 설교를 잘못한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사회가 문제다. 죄악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이 아무리 어두울지라도 내가 불을 켜면 나는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찬송가 502 장). 세상이 험하여 태산 같은 준령이 있을지라도 내가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십니다. 내가 하기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물이 없으면 샘을 파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썩었다고 말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소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썩는 세상에서 같이 썩지 말고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모두가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고 탓하면 안됩니다.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간단합니다. 불행한 가정은 “너 때문이다. 내가 너를 잘못 만났다. 어떻게 하다 너한테 걸렸는지 모르겠다”하며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도 자기 부인이 좀 못생겼다고 해서 “나는 2부 예배에 갈테니까 당신은 3부 예배에 와”하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인물이 나쁘면 맛사지를 좀 시키든지, 옷을 해주든지 할 것이지 부인을 그렇게 낮추어 보면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부인이 키가 작다고 같이 안 나온다고 합니다. 결혼할 때 처갓집이 가난할 수도 있고, 부인이 키가 작을 수도 있고, 인물이 못날 수도 있고, 공부를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대신 다른 좋은 것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좋은 것으로 덮어주면 아름다운 것만 드러나는 줄 믿습니다. 내가 좋은 마음을 먹고 사랑하면 행복할 수 있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나쁘게 생각하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사랑하시고 우리가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하시지만 가시나무에서 좋은 것을 기대하시지는 않습니다. 가시나무에는 가시가, 포도나무에는 포도가 열린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순종할 때 좋은 열매가 맺힐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나를 택하여 주신 엄청난 은혜를 감사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축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습니까 행복은 누가 주는 것입니까 여기 있는 것도 아니고 저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민 가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어떻게가 아닙니다. 내가 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땅에 살다 간 사람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부유한 삶을 누렸던 분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하나님 앞에 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시16: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였더니다윗의 삶은 길이 열린 것입니다. 다윗은 아름답게 보았습니다. 감사히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끊임없이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의 삶이 평생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목동의 삶으로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목동, 외로운 목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3천 년이 지난 지금도 베두인 족을 보면 1천년 전에 살던 방식대로 그렇게 지낸답니다. 다윗도 그런 목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동으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하며 위를 바라보고 살아갈 때에 목동의 삶을 천국같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 언제 이런 시가 나왔습니까 목동으로 있을 때에 이런 시가 나왔습니다. 목동의 삶을 감사하면 그곳도 천국이 될 줄 믿습니다.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마음먹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지옥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어쩌다가 이런 데 걸렸을까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사는가 하면 그곳은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안 알 수 없도다”(찬송가 410 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찬송가 405 장). 다윗은 그 후로 엄청난 환난에 빠집니다. 사울 왕의 추적을 받고 13년 동안 끊임없이 도피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시편 가운데 가장 은혜로운 시도 환난 가운데 기도한 내용입니.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 낙심할수록 환난을 못 이길 뿐만 아니라 축복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환난 가운데 더 큰 환난이 옵니다. 요셉도 환난을 당하였지만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어려움을 잘 견뎌내어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이고, 이삭도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고난이나 어려움을 크게 보고 절망하고 불평하면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영광이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옵니다. 그러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잘하면 넘어설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일선 파출소에 여순경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일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깜짝 놀라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별볼일 없는 사람이 출세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순경이라도 잘하면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됩니다. 순경은 평생 순경만 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능력만 있으면 올라가는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이 교장도 될 수 있고, 이사장도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본 첫인상을 평생 그 사람의 이미지로 생각하고 묶어 놓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문지기였지만 나중에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다가 남의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잘 행하면 얼마든지 과장도 될 수 있고, 교수도 될 수 있고, 총리도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가지가 영원히 나를 운명처럼 덮어 누르는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이겨냈습니다. 끝까지 겨뎌내고 나중에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다음에도 어려움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감격해하는 그의 마음은 식을 줄 모르고 평생 동안 타올랐습니다. 다윗은 “(삼하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나 같은 것을 왜 이렇게 축복하여 주시나이까, 아무 자격이 없는 나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은혜를 주시나이까 하고 감격했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옮기면서도 너무 감사해서 옷이 내려가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한 번도 저버리지 아니하고 감사하는 길로만 걸어간 사람입니다. 그는 천했습니다. 그는 약했습니다. 그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 그의 발걸음이 하나님 앞에 복받을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축복받을 길을 찾아간 다윗의 길에 영원한 축복이 주이진 줄 믿습니다. 불행이 어디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는 감사하지 아니하고, 남을 부러워하고, 남을 시기하는 데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잘해도 안되는데, 저 사람은 별 것 아닌데도 교회 일에 앞장선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불행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별 것 아니었는데 저렇게 잘되고, 나는 무엇이든 잘하고 대단했었는데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면 바로 그것이 불행인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이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목동일 때는 목동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여러분, 옛날 사진을 한번 꺼내놓고 보십시오. 중, 고등학교 때 머리를 빡빡 깎았던 그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옷 벗고 찍은 사진을 보면 그것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내 모습을 감사하고 아름답게 볼 때에 그곳에 천국이 있고 또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따르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줄로 재어주십니다. “너는 어느 나라에서 살아라. 너는 누구하고 살아라” 하고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주십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은 결혼을 할 때도 선택해서 배우자를 만났다고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목사가 결혼 주례를 하면서 마지막에 선포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규백군과 안혜순 양은 부부가 된 것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라.” 그 다음은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주신 것입니다. 교회와 여러분을 누가 짝지어 주셨습니까 평강교회에 내가 나오고 싶어 나왔습니까 그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줄로 재어주신 곳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줄로 재어주신 가정, 줄로 재어주신 국가, 줄로 재어주신 기업 속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달란트를 감사하면서 감당할 때 천국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줄로 재어주신 곳을 떠나는 것이 교만입니다. 떠나면 시험에 듭니다. 마귀는 언제나 그런 곳에 역사합니다. “내가 이런 것을 어떻게 해 내가 누군데” 여기에 마귀가 역사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이단이 참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에만 이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에서도 이단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단의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목사 아닌 가짜 목사가, 교회 아닌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교회나 목사를 이단으로 한데 몰아서 비난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다 마귀가 역사해서 이단이 생긴 것입니다. 이단의 특징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에 가보면 강단을 화려하게 꾸며 놓고 신비스럽게 보이려고 얼룩얼룩한 옷을 입고 관을 씁니다. 왜 그렇습니까 임금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를 최고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정신병자가 됩니까 감사하는 사람, 하나님께 은혜받은 사람이 정신이 돌 리가 있겠습니까 불평하고 신세타령해서 도는 것입니다. 교만으로 돌든지, 불만으로 돌든지 도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정신병자를 가만히 살펴보면 안하무인이고 기고만장합니다. 자신만 똑똑하고 모든 사람들은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곳에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쁨은 어디 있습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주님께서 은혜를 주셨나이다.” 하면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심령이 천국인 줄 믿습니다. 나를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구속의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주신 구역들은 모두 아름답습니다. 가정을 봅면 가정에 감사할 일이 왜 이렇게도 많습니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셔서 감사한데, 밥맛을 좋게 해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잠이 잘 오는 것도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감사할 일을 찾아서 악기를 가지고 연주를 해보십시오. 춤을 추어 보십시오. 북을 쳐 보십시오. 기뻐해 보십시오.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이 나라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제 세계를 향하여 가는 깅이 넗어지고 오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우리 나라가 얼마나 복받은 나라인지, 서울이 얼마나 좋은 도시인지 모두 알게 된 것입니다. 전세계의 대도시 가운데 서울같이 아름다운 곳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도시 한가운데 남산이 있고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인왕산 등 높지 않은 산들로 돌러싸여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도시인 뉴욕에 가보십시오. 아무리 둘러봐도 산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강처럼 좋은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센 강이나 템스 강도 이야기로 듣던 것만큼 물이 맑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좋은 줄 모릅니다. 우리가 먹는 과일도 다른 나라 과일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맛이 좋습니다. 요즘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쌀을 사 간다고 합니다. 한국 쌀이 맛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농산물, 우리 나라 기후, 우리 나라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남의 나라 산삼은 우리 나라 금산의 인삼만 못합니다. 우리 나라 삼이 약효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속지 마십시오. 고사리도 산나물도 우리 것이 좋습니다. 맛이 전혀 다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감사할 줄 몰라서 천국같이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6월은 원호의 달입니다. 여러분, 우리 민족을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원호의 달에 원호 가족들을 생각하며, 그분들에게 감사해야 됩니다. 그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아직도 병상에서 지내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보살피며 은혜를 감사해야 됩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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