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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할자의 징조 (요9:13-21)

본문

지난시간 우리는 망조에 대해서 상고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맥을 같이해서 멸망할자의 징조가 무엇인지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망조라는 말은 언제사용합니까 깨달을만한 기회가 주어졌으나 깨닫지 못할 때 “망조가 들렸다”고 합니다. 이 망조는 어느 의미에서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옛사람들도 성경을 몰랐지만 “악한 그릇이 가득차면 사람은 손을 대지 못하지만 하늘은 반드시 죽이는니라”라는 격언을 생각해 볼 때 심판은 분명히 있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죄악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고 역사위에 세워진 일들을 돌이켜 볼 때 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 찬란했던 문화들이 왜 잡초에 묻히고 바다속에 수장되고 기껏해야 박물관의 유리관속에 갇혀 있습니까 하나의 공통점은 죄악이 관영할 때 그 문화는 심판을 받아 몰락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문화의 끝은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입니다. 죄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그저 죄악이 있다고 “옳다, 저기 심판할 곳이 있구나!” 하시며 당장 심판의 칼을 종휭무진 휘두르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충분한 기회를 주십니다.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셔서 지금도 참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노아의 날, 죄악이 관영하다고 당장 심판의 비를 내리셨습니까 무려 120년이씩이나 기회를 주셨고 배가 다 완성이 된 후에도 7일을 더 연장해 주셨습니다. 전문가들 말로는 성경에 설계된 배를 당시의 기술로 만드는데는 10년이면 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120년 7일동안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와 같은 사람일지라도 보내시어 경고하시고 기회를 주고 타이르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 전에도 아브라함과 천사를 보내시어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받아들이는 자는 살았고 거절하는 자는 죽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망조라는 말을 다시 되새겨 봅시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거절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긍휼의 기회를 마다하고 꾸역꾸역 망할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가르켜 망조가 들렸다고 말을 합니다. 누구에게나 이 망조는 있는 법입니다.이 위험성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그럼으로 죽지 않으려면 내게 있는 망조가 무엇인가 빨리 파악하고 송충이 떨어버리듯 급히 털어버려야 합니다. 그럼 본문을 배경으로 해서, 그리고 망조를 무시했다가 망한 몇사람의 실례를 들러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본문의 종교지도자들은 소위 메시야 전문가들입니다. 메시야가 아브라함 후손으로 올것이며 베들레헴에서 어떻게 태어날 것이며 메시야가 오면 저는자가 걷고 눈먼자가 눈을 뜨며 갇힌자가 해방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리고 그들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인할 수 없는 예언된 증거들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도 눈먼자가 눈을 뜨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소경되었던 자가 직접 증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군중들의 인기가 예수에게 몰리자 시기심이 발동하여 구체적으로 죽이기를 모의합니다.이것이 망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러고도 안망하고 견디겠습니까예수님의 예언대로 그들은 돌위에 돌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다망하고 말았습니다. 롯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믿음좋은 삼춘을 모시고 우상의 땅 갈대아우르를 떠났습니다. 삼춘 덕분에 하나님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도 보았습니다. 이쯤되면 하나님께 온마음이 기울여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롯은 물질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육체때문에 영혼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깨우치실 목적으로 4대 연합국의 왕에게 포로도 되게 하셨고 재물도 약탈당하게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이 망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가 가룟 유다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그는 12제자중 한사람으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특별대우를 받아 돈을 맡아 관리하는 회계로서의 귀한 직분을 맡았습니다. 얼마나 부러운 신분입니까 그는 또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말씀을 3년동안 들었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3년동안 보아왔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먹고 자고 동행하며 주님의 사랑을 3년동안 받았습니다. 이만하면 자기 욕심 다버리고 예수좋다고 쫒아 다니며 주님과 바른관계를 맺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예수팔아 돈벌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때 예수님은 분명히 그에게 몇번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정신차리지 못하는 가룟 유다, 이길이 바로 망조가 이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필경 그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망조들린 사람입니까 이 세경우를 종합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성도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며 사욕을 쫓아 행하는사람입니다 성도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사단의 뜻과 자기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 이 사람이 망조들린 사람입니다. 본문의 종교 지도자들, 그들앞에 분명히 부인할 수 없는 메시야가 나타나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발앞에 꿇어 엎드려 종교권을 예수에게 넘기고 예수를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 신앙노선이 최고라고 하는 독선과 자기들이 최고의 엘리트그룹이라는 교만과 메시야에 대한 시기심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욕을 쫒아 예수를 처치하려고 하다가 자기네들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께 반역한 그들은 주후 70년 디토장군에 의하여 추방되고 나서부터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할때까지 무려 1878년동안 거지꼴로 전세계에 구걸하며 다녀야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히틀러에게 수백만명이 학살당하지 않았습니까 왜 이러한 어려움을 당해야만 했습니까 망 조가 들었을 때 돌이키지 않다가 필경은 이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매사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택할것은 택하고 버릴것은 버리고 갈길은 가고 안갈길은 안가야 이것이 안망하는 길이며 사는 길입니다.
2.성도라고 하면서 눈앞의 일만보고 멀리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도살장으로 돼지를 끌고 가는 것은 매우 쉽다고 합니다. 그저 코앞에 콩하나씩 떨어뜨리면 이것 줏어먹다가 도살장으로 자기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롯과 아브라함을 비교해 봅시다. 롯은 우선 먹기 좋은 곶감이 달다고 초원이 있고 시냇물이 있고 문화저택이 있는 요단강 너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우선 내눈앞에 있는 초장과 시냇물만 보았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죄악은 보지 못했습니다. 가룟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자기 주머니에 들어올 은30냥만 생각했지 그 돈으로 인해 목매달다가 떨어져 배터져 죽을 것은 못보았습니다. 더구나 저 지옥불의 뜨거운 고통은 더더욱 보지 못했습니다. 본문의 종교 지도자들은 또 어떻습니까 인기와 체면만 차리줄 알았지 곧 있을 심판의 칼날은 보지 못했습니다. 먼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채 예수님께 대항하다가 예루살렘은 망했고 민족은 거지떼가 됬고 수많은 동족들이 가스실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브라함은 비록 사막땅이라도 헤브론 산지를 택했습니다. 과연 먼 앞날을 내다본 아브라함은 오늘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며 수많은 성도에게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지 않는 않습니까 그렇다고 거지가 되었습니까 오히려 롯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가군 318명을 거느릴만한 부자가 된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먼 앞날을 내다보아야 합니다. 영원을 내다보는 성도라야 이땅위의 이런저런 어려움을 다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성도가 무수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도 인정치 않는 사람입니다.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보면서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신 분이시구나. 그분만 섬겨야지.!” 해야 될텐데 이러한 능력을 보면서, 그 결과를 누리고 있으면서, 누구보다 그 혜택을 입고 살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부인하며 거절하는 사람-바로 망조들린 사람입니다. 롯이 갈데아우르에서 소돔성까지 자리를 잡으면서 하나님의 권능을 얼마나 많이 보았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 3년동안 주님 따라다니며 얼마나 많은 권능을 보았습니까 그러나 그의 눈에는 예수님이 돈으로만 보였을 뿐입니다. 본문의 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메시야의 능력을 지금 바로 코앞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조차 자기들의 인기의 라이벌로 보았습니다.무신론자는 이론적 무신론자와 실제적 무신론자 이렇게 두종류가 있습니다.이론적인 무신론자들은 그리 무섭지 않습니다.비록 과학적으로 하나님이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고는 하지만 인생의 심각한 위기에 부딪쳣을 때 즉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정말로 무서운 것은 실제적인 무신론자들입니다.겉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실제로는 마치 하나님이 안계신 것같이 사는 사람들, 이들이 참으로 절망적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보면서 그 마음에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이들이 망조들린 사람입니다.
4. 성도가 은혜의 기회를 악용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 있는 것, 죄가 없어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숨쉬고 있는 것, 하나님께 잘보여서 숨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대로라면 우리는 100번죽어야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의 날이라 고 하셨기에 은혜의 날로 정하셨기에 이렇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천둥번개 치는데도 하나님이 나에게 벼락을 안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몰라서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고 다 듣고 계시고 다 보고 계십니다. 당장 벼락 때려야 마땅하지만 지금은 구원의 날이기에, 은혜받을 만한 날이기에 회개의 기회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망조들린 사람은 이 기회를 악영하여 더 많은 죄를 범합니다. 롯이 이기회를 악용했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도, 본문의 종교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도 끝은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문이 닫히는 날이 그날이요 소돔과 고모라에 불비 내린날이 곧 그날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마땅히 이 기회를 이용하여 부지런히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5. 하나님이 자녀에게 주시는 징계와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주는 경고를 무시하는 환자, 고속도로의 경고 표지판을 무시하고 달리는 운전자, 다 망조들린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생길에 때로는 경고도 하시고 때로는 징계도 하십니다.
그런데 이징계와 경고를 재수탓으로 돌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한다면 그사람이 망조들린 사람입니다. 6. 끝까지 완악하여 돌이키지 않는 사람입니다. 바로는 10번씩이나 매맞고 의 권능을 보았으나 끝까지 완악하다가 결국 홍해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를 망하게 할 징조는 내게 없는가 이 아침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 지옥에서 울부짖는 나의 영혼의 비명소리를 상상해 봅시다. 물론 그럴리 없겠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망조를 무시하고 끝까지 그 길을 가면 이렇게 될수 밖에 없습니다. 저 지옥에서 한맺힌 소리로 이를 갈며 울부짖는 한 사람,가룟 유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사욕을 쫒아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다가 나여기 왔노라. 눈앞의 은30냔만 보다가 나 여기 왔노라. 주님의 능력을 보았으면서 인정하지 않다가 나 여기 왔노라. 주님이 주신 많은 기회를 무시하다가 나 여기 왔노라. 주님이 징계하실 때 오히려 반항하다가 나 여기 왔노라. 끝까지 완악하여 회개하지 않다가 바로와 같이 나 여기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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