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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의 탁월성 (창37:1)

본문

37장은 35장의 계속입니다.
그런데 35장은 이삭이 열조에게 돌아가는 것으 로 맺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이삭의 역사가 끝나고 야곱의 역사 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시간적으로 서 술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상 구분하기 위해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사실 이삭은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후에 죽 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죽음을 35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일단 이 삭의 역사를 마무리 짓고 야곱의 후예들 즉,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하여 기록 하고자 함입니다. 이제부터의 관심은 그래서 이스라엘 곧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 대 한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37장은 "야곱의 약전은 이러하니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레아와 라헬간의 사랑 싸움은 끝내 그 아들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이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이 급전하여서 요셉에게로 전환 되고 있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꿈 이야기가 불씨가 되어 그 동 안 계속되어 왔던 질투가 폭발하고 맙니다. 그 결과 요셉은 은 20에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려가고 맙니다. 요셉은 극렬한 형들에 의하여 죽게 되었지만 유 다의 적극적인 만류로 목숨만은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무대는 바뀌어 요셉에게서 유다에게로 촛점이 바뀌게 됩니다. 즉, 유다가 그의 자 부 다말과 상관하여 쌍동이 아들을 생산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37장과 38장에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고 어떻게 이스라엘의 12 지파의 족장들이 그와같은 일을 행할 수 있을까 하는 큰 의구심을 감출 수 없 습니다. 배 다른 형제라 하지만 한 피를 이은 형제를 팔아 버릴 수 있을까 하는 것과, 파렴치하게도 아버지 앞에 가서 그 동생이 들짐승에게 찢겨 죽었다 고 거짓을 고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을 볼 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먼 훗날 자기들을 극진한 기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가 담겨있으리라는 것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 이야기도 또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유 다(그는 적어도 약속의 자녀이며 천만인의 이스라엘의 두령이 될 사람입니다)는 가나안 여인을 취하여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데, 자기의 자부와 상관하게까지 된 이야기를 장황하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유다가 큰 아들 엘이 죽자 다말에게
둘째 아들 오 난을 들여보낸 것은 수혼법(후사가 없이 남편이 죽을 경우 그의 동생이나 가 까운 친척이 대신 들어가 후사를 잇게 하는 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난은 다말에게서 날 아들이 자기의 후사가 아니라 형의 후사가 될 것을 싫 어해서 땅에 설정(onanism)해 버리자 하나님은 그 행위를 악하게 보시고 오난 을 죽이시고 맙니다. 이 수혼법은 이스라엘에게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후사가 끊어진다는 것은 그 가문이 멸절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는 이스라 엘의 후사의 출생은 곧 하나님 약속의 성취인 것이므로 어느 상황에서든 그 후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해 주신 특별한 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난이 이 법을 어겼으므로 결국 엘의 가계가 끊어지고 엘의 가계가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단절되게 되므로 그 행위는 큰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난을 죄없다 아니하시고 죽이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유다는 세 째 아들 셀라 역시 다말과 상관하다 혹시 잃을까 하여 두려워해서인지 셀라가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다말에게 들어가는 것을 하락하지 않고 다말을 집에 가 서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셀라가 장성한 뒤에도 다말과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자 다말은 스스로 면박을 취하고(이런 행위는 당시 창기들이 하는 관습이었습니다)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고 베레스와 세라를 생산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는 유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깊 으신 섭리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성경은 자세하게 기록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다의 허리에서 인류의 구세주이자 아담-노아-아브라함과의 언 약의 성취자가 되실 메시야가 나와야 하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엘이 후 사가 없이 죽고난 후에 동생 오난이 다말에게서 후사를 이를 아들을 생산하 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난은 자기의 개인적인 감정이 앞서서 하나님 의 이러한 계획을 무시하고 후사를 생산하지 않은 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며, 전 인류의 구속과 언약을 깡그리 깨뜨리는 죄악이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유다를 통해 메시야를 예비하셨는지는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12아들 중 그리고 큰 아들도 아닌 네째 아들에게 후사를 잇도록 하셨는 지 좀더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곳 37, 38장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언뜻보면 37장 부터는 요셉에 대해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은 20에 팔려가는 것은 마치 예수님이 은 30에 팔린 것을 미리 보는 듯도 합니다. 또한 요셉이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여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어 부귀영화 를 누리는 것을 볼 때 신앙의 승리의 기쁨을 보는 것 같고, 우리 성도들도 오 직 믿음으로 모든 시험과 고난을 극복하는 날 그와같은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 같고, 그와같은 일을 섭리하시며 경영하시는 하나님 을 발견하고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 큰 하나님의 계획은 물론 이스라엘 민족이 극한 기아로 아사 직전에 있을 때 그들이 요셉에 의해 구원을 얻게 되며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은 갑자기 유다의 기사를 요셉 이야기 속에 삽입하고 있 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시각을 요셉에게서 유다에게로 돌리 도록 유도하고 있는 점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다의 행실에 돈 독한 믿음의 모양이 있어 우리에게 어떤 귀감이 가는 것을 기록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이방 여인을 취했기 때문에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 을 잃어버리고 이방인과 혼합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아가 자부와 관계를 맺고 쌍동이 아들을 생산한다는 기사는 세상사에서도 기이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강한 의지와 깊은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한 유다를 택하여 다윗의 조상이 되게하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은 순 전히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다가 선택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의지의 발로였다는 것입니다. 오난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획 을 깨뜨리려고 했었고 유다 자신까지도 셀라를 통해 엘의 뒤를 잇지 않으려 했으나 하나님은 직접 유다를 통해 그 혈통을 잇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보게됩니다. 그리스도는 물론 인간의 가계에 서 출생하십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초역사적인간섭과 창 3:15 이후 의 신실하신 약속의 성취라는 놀라운 의지가 감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약속과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은 히브리인의 계보만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인물들까지 동원하고 계심을 볼 때, 메시야의 구원사역이 히브리인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전 인류를 포괄하고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메시야는 초역사적이며 우주적인 구 속사역을 펼치실 분임이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인간의 가계를 가지셨으나 그것을 선택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 가계를 구성할 인물을 결정하신 분 도 하나님이십니다. 즉, 메시야는 단순히 인간의 족보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 입니다. 사람들이 후사를 낳고-낳고 해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그 인물 하 나 하나까지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특별한 간섭을 통하여 마침내 메시야를 이 땅에 출생하게 하셨던 것입니아. 이점이 곧 우리 인간과 다른 출생을 가지 신 메시야의 탁월성인 것입니다. 바로 그분 메시야을 통해 예비하신 구원의 반석 위에 내가 선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날 제비를 뽑아 나를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의 반열에 오르도록 하시기 위해 수 천년 전부터 이처럼 역 사를 이끌어 오시고 준비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값이 있는 것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있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기뻐 하며 감격하며 자랑할 수 있으며, 바로 이것 때문에 내 목숨을 걸고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구원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 이 아닙니다. 이상을 볼 때 우리는 단순히 요셉에게만 우리의 촛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약속의 씨이시며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경로를 걸쳐 탄생 하게 되는가를 알 수 있는 유다의 계보에게도 눈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메시야가 어떻게 우리에게 오셨는가를 기록한 책이며 바로 그 메시야가 아담-노아-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성취자임을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15. 요셉:하나님 백성의 보호(창 39장-4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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