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 예언의 성취 (사7:10-17)
본문
구약성경은 메시야 즉,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예언의 글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의 나실 곳은 유대땅 베들레헴(미 5:
2)이라고 했으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하셨으며,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사7:14)이라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왕적 지위의 예언은 예수님께서 나시기 1천년 전 다윗이 왕조를 수립하고, 그가 훌륭한 왕으로 존경받게 되었을 때부터 그는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 보면, 다윗의 대에서 왕이 이어지고 끊어지지 않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한 대로 왕위가 끊어졌으나, 다윗은 대대로 계속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장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은 예수님의 메시야성을 예언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사야서의 예언에서는 진전된 모습 이었습니다. 사7:10117, 사9:117은 겉으로는 그 예언자의 시대에 다윗 왕조에서 위대한 상속자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 아기는 후대에 나실 예수님 이었습니다.
이사야 11장에는 현재의 실재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가 그려지고 있으며, 실로 그 왕국의 조건은 에덴의 평온한 날들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 민족은 더 이상 다윗의 후대가 왕이 될 수 없다고 인정 되었을 때에도 메시야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생활(약70년) 속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최근에 사해바다 부근의 한 동굴에서 두루마리의 성경 사본을 발견 했는데 이 두루마리는 엣세네파들이 기록한 것 이었는데, 그들은 금욕주의자로서 끝까지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도 오늘의 다윗의 후손 에게서 메시야가 나실 것을 기록한 성경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약의 예언의 성취로서 이루어진 것 입니다. 이것은 어느 성경을 보아도 알 수 있으며, 구약에서부터 예언의 성취는 반드시 예수님으로부터 이룩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약(Old testament) 이 있었고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구약을 신약의 그림자라고 인정합니다. 예수는 역사적 사실의 실체요, 구약성경은 그 실체를 증명하기 위한 예언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가겠다고 했으나 연기 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바울이 거짓을 말한 것 때문에, 그의 복음도 거짓이라고 부정하는 자리에 까지 갔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연기 했던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항상 이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사랑을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언자들은 죽고, 나라는 망하고, 국민은 포로가 되고, 바벨론도 망하고, 페르샤도 망하고, 헬라도 지나가고, 로마가 유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에도 메시야의 기대는 계속되었습니다. 그 소망은 오직 이스라엘의 생명과도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반드시 성취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예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을 통해서 앞으로 되어질 사건을 미리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이 한 마디 예언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람으로서, 곧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성직자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들은 존경받았으며, 때로는 박해 속에서 죽임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생명을 다했습니다. 예언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전 생애를 걸었습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유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평생 예루살렘에서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듣기 좋은 말만 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며, 마지막에는 벌거벗고 다녔다고 했습니다.(사20:3) 엘리야 같은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제사장 850명과 기도전쟁을 해서 승리하고 그들을 기손 강가에서 모두 죽였으나, 이튿날 이세벨 왕후의 칼이 무서워 40일 40야를 도망다녔습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아내를 얻어 고민과 아픔 속에서 살았습니다. 요나는 어떤 면에서 예언 때문에 자신이 도망갔었으나, 억지로 니느웨로 가서 예언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언자들은 일단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는 목숨을 걸고 그것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곧 예수님에 대한 내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 중심이 예수그리스도요, 신약의 중심이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약에는 예수님의 탄생만이 아니라, 그의 33년 동안 사신 모든 생애가 구약의 예언의 성취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곧 구약예언의 성취라고 했습니다. 왜 예언이 필요했습니까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면에서 성취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그것이 이미 과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바로를 만날 때에도 이미 그의 마음이 강퍅해져서 모세가 여러 번 돌아 나와야 할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적을 행해도 그들 중에서 이적을 행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예언은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라고 하는 것과, 다음은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에 바로의 하수인들이 이적을 행했을 때 모세가 모르고 있었다면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필요했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중요한 역사의 계획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도 큰 일을 계획할 때 그 기록을 남깁니다. 그것은 하나의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계획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계획서는 휴지가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은 성취되기 위하여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은 진실했습니다. 물론 거짓 예언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귀에 듣기 좋은 소식을 들려 주려는 사람들이요, 진실한 예언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들에게 버림을 당했고,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예언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유대 민족과 항상 함께 계시다는 증거를 알리는 내용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직접 탄생하셨을 때에는예수라고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항상 이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후대에 전달되었으며, 메시야 신앙은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번도 어긋난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도 한심한 일들이 많이 있다고 여기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그러한 가운데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인간들을 통해서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이것은 너무도 확실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기에 인간은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사람은 복을 받고, 부정적으로 이용되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항상 신앙으로 살고, 기도하고,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나아가서 전도하는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누가 살 수 있습니까 이 땅에서 복음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옛날 예언자들이 살았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고, 당시에는 성취되지 않았다고 수모를 당했으나, 하나님의 예언이었으므로 받은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믿는 것같이 예수님의 다시오심 즉, 심판주로 오실 예수재림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기다림의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탄생을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재림은 더디 성취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앙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예언의 성취는 예수 탄생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모든 예언은 이렇게 성취되며 누구에게나 확실하게 알려집니다. 예언자들은 예언한 사실을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선견자(先見者)라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선견자란 미리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보았으므로, 확실히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눈으로 본 것을 믿었습니다. 이들은 복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마5:8)라고 했습니다. 예언자들은 마음이 깨끗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의 하인은 눈이 어두어 불수레를 탄 천군천사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예언을 믿는 사람들은 항상 예언자들의 말씀의 진실성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예언의 성취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이것에 대한 신앙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취된 예언에 대하여 바른 자세를 가지고, 수용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성과 과학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달나라를 거쳐서 화성에까지 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옛날 그 모호한 예언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문제는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결코 변치 않았습니다. 알도우스 헉슬레이는 그의 용감한 새 세계 라는 미래 상상 소설에서 기독교는 박물관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으나, 그 예언은 결코 참된 것이 아님이 현실적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캐롤이 울려 퍼지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믿음의 증거요, 새로운 역사를 바라보는 신앙인들의 찬양입니다. 천군천사들이 베들레헴 상공에서 찬양하므로 목자들이 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했던 것처럼, 오늘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 어디서나 예수를 찬송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데서 기독교 신앙, 즉 구원의 진리는 영원히 살아 있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언은 말씀대로 성취되기 위하여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성취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기상천외한 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예언은 항상 성취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구원역사는 예언에 의하여 성취되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 예수탄생의 기록을 신약성경으로만 읽지 말고, 구약의 예언을 연결하면서 읽으면 더욱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달리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한 역사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사람의 손을 통해서 기록했으나, 성령님의 감동으로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도 그것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한 말씀으로 수용하게 하며,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예언은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 아니요, 복음으로서 생명과 영혼에 가장 큰 양식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언자들은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이었으며, 그들의 충성이 곧 예수를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탄생역사를 예언했던 옛날 사람들은 하늘에서 이를 지켜볼 것이며, 오늘도 기독교역사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생명의 말씀은 미래를 약속하는 예언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자이십니다. 내일을 약속하는 사람에게 이 예언처럼 신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치 않으시며, 영원토록 생명의 면류관을 우리들에게 주실 분 이십니다. 이 성취의 기쁨을 모두 만족하도록,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2)이라고 했으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하셨으며,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사7:14)이라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왕적 지위의 예언은 예수님께서 나시기 1천년 전 다윗이 왕조를 수립하고, 그가 훌륭한 왕으로 존경받게 되었을 때부터 그는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 보면, 다윗의 대에서 왕이 이어지고 끊어지지 않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한 대로 왕위가 끊어졌으나, 다윗은 대대로 계속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장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은 예수님의 메시야성을 예언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사야서의 예언에서는 진전된 모습 이었습니다. 사7:10117, 사9:117은 겉으로는 그 예언자의 시대에 다윗 왕조에서 위대한 상속자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 아기는 후대에 나실 예수님 이었습니다.
이사야 11장에는 현재의 실재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가 그려지고 있으며, 실로 그 왕국의 조건은 에덴의 평온한 날들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 민족은 더 이상 다윗의 후대가 왕이 될 수 없다고 인정 되었을 때에도 메시야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생활(약70년) 속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최근에 사해바다 부근의 한 동굴에서 두루마리의 성경 사본을 발견 했는데 이 두루마리는 엣세네파들이 기록한 것 이었는데, 그들은 금욕주의자로서 끝까지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도 오늘의 다윗의 후손 에게서 메시야가 나실 것을 기록한 성경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약의 예언의 성취로서 이루어진 것 입니다. 이것은 어느 성경을 보아도 알 수 있으며, 구약에서부터 예언의 성취는 반드시 예수님으로부터 이룩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약(Old testament) 이 있었고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구약을 신약의 그림자라고 인정합니다. 예수는 역사적 사실의 실체요, 구약성경은 그 실체를 증명하기 위한 예언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가겠다고 했으나 연기 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바울이 거짓을 말한 것 때문에, 그의 복음도 거짓이라고 부정하는 자리에 까지 갔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연기 했던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항상 이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사랑을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언자들은 죽고, 나라는 망하고, 국민은 포로가 되고, 바벨론도 망하고, 페르샤도 망하고, 헬라도 지나가고, 로마가 유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에도 메시야의 기대는 계속되었습니다. 그 소망은 오직 이스라엘의 생명과도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반드시 성취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예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을 통해서 앞으로 되어질 사건을 미리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이 한 마디 예언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람으로서, 곧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성직자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들은 존경받았으며, 때로는 박해 속에서 죽임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생명을 다했습니다. 예언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전 생애를 걸었습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유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평생 예루살렘에서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듣기 좋은 말만 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며, 마지막에는 벌거벗고 다녔다고 했습니다.(사20:3) 엘리야 같은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제사장 850명과 기도전쟁을 해서 승리하고 그들을 기손 강가에서 모두 죽였으나, 이튿날 이세벨 왕후의 칼이 무서워 40일 40야를 도망다녔습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아내를 얻어 고민과 아픔 속에서 살았습니다. 요나는 어떤 면에서 예언 때문에 자신이 도망갔었으나, 억지로 니느웨로 가서 예언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언자들은 일단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는 목숨을 걸고 그것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곧 예수님에 대한 내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 중심이 예수그리스도요, 신약의 중심이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약에는 예수님의 탄생만이 아니라, 그의 33년 동안 사신 모든 생애가 구약의 예언의 성취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곧 구약예언의 성취라고 했습니다. 왜 예언이 필요했습니까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면에서 성취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그것이 이미 과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바로를 만날 때에도 이미 그의 마음이 강퍅해져서 모세가 여러 번 돌아 나와야 할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적을 행해도 그들 중에서 이적을 행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예언은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라고 하는 것과, 다음은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에 바로의 하수인들이 이적을 행했을 때 모세가 모르고 있었다면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필요했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중요한 역사의 계획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도 큰 일을 계획할 때 그 기록을 남깁니다. 그것은 하나의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계획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계획서는 휴지가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은 성취되기 위하여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은 진실했습니다. 물론 거짓 예언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귀에 듣기 좋은 소식을 들려 주려는 사람들이요, 진실한 예언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들에게 버림을 당했고,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예언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유대 민족과 항상 함께 계시다는 증거를 알리는 내용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직접 탄생하셨을 때에는예수라고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항상 이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후대에 전달되었으며, 메시야 신앙은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번도 어긋난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도 한심한 일들이 많이 있다고 여기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그러한 가운데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인간들을 통해서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이것은 너무도 확실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기에 인간은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사람은 복을 받고, 부정적으로 이용되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항상 신앙으로 살고, 기도하고,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나아가서 전도하는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누가 살 수 있습니까 이 땅에서 복음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옛날 예언자들이 살았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고, 당시에는 성취되지 않았다고 수모를 당했으나, 하나님의 예언이었으므로 받은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믿는 것같이 예수님의 다시오심 즉, 심판주로 오실 예수재림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기다림의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탄생을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재림은 더디 성취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앙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예언의 성취는 예수 탄생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모든 예언은 이렇게 성취되며 누구에게나 확실하게 알려집니다. 예언자들은 예언한 사실을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선견자(先見者)라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선견자란 미리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보았으므로, 확실히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눈으로 본 것을 믿었습니다. 이들은 복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마5:8)라고 했습니다. 예언자들은 마음이 깨끗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의 하인은 눈이 어두어 불수레를 탄 천군천사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예언을 믿는 사람들은 항상 예언자들의 말씀의 진실성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예언의 성취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이것에 대한 신앙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취된 예언에 대하여 바른 자세를 가지고, 수용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성과 과학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달나라를 거쳐서 화성에까지 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옛날 그 모호한 예언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문제는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결코 변치 않았습니다. 알도우스 헉슬레이는 그의 용감한 새 세계 라는 미래 상상 소설에서 기독교는 박물관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으나, 그 예언은 결코 참된 것이 아님이 현실적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캐롤이 울려 퍼지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믿음의 증거요, 새로운 역사를 바라보는 신앙인들의 찬양입니다. 천군천사들이 베들레헴 상공에서 찬양하므로 목자들이 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했던 것처럼, 오늘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 어디서나 예수를 찬송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데서 기독교 신앙, 즉 구원의 진리는 영원히 살아 있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언은 말씀대로 성취되기 위하여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성취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기상천외한 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예언은 항상 성취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구원역사는 예언에 의하여 성취되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 예수탄생의 기록을 신약성경으로만 읽지 말고, 구약의 예언을 연결하면서 읽으면 더욱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달리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한 역사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사람의 손을 통해서 기록했으나, 성령님의 감동으로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도 그것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한 말씀으로 수용하게 하며,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예언은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 아니요, 복음으로서 생명과 영혼에 가장 큰 양식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언자들은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이었으며, 그들의 충성이 곧 예수를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탄생역사를 예언했던 옛날 사람들은 하늘에서 이를 지켜볼 것이며, 오늘도 기독교역사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생명의 말씀은 미래를 약속하는 예언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자이십니다. 내일을 약속하는 사람에게 이 예언처럼 신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치 않으시며, 영원토록 생명의 면류관을 우리들에게 주실 분 이십니다. 이 성취의 기쁨을 모두 만족하도록,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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